[두 얼굴의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시리즈 두 번째 주제는 성범죄 공화국이다. 성희롱, 성추행을 넘어선 성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우리가 문화 후진국임을 보여준다. 개인의 욕구를 위해 타인의 고통을 용납하는 이기적 의식을 짚어본다.
 
당당한 가해자, 고통 받는 피해자
최근 학교에 배치된 경찰관과 학생 간 성관계 사건이 불거지면서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앞서 외딴 섬마을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학부모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건 역시 근래에 보기 힘든 일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상식 수준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일들이 연이어 터지며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올해 3월 경찰청은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구현한다는 목적으로 ‘성폭력 근절 협업단체 정책간담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강신명 청장은 “사회 약자에 대한 정책의 질적 완성도를 높이는 한편, 기관과 단체·지역사회가 함께 성폭력 범죄에 대한 협업치안을 구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매년 반복되는 얘기였지만 그간 성폭력에 노출된 이들이 실낱같은 기대감을 가졌다. 하지만 이러한 의지가 무색하게 지난 6월 21일 섬마을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수사기관의 의지가 빛을 잃은 순간이었다.

이처럼 최근 발생한 성 관련 범죄는 대한민국의 무너진 성의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월적 지위에서 이를 이용해 개인의 욕구를 채운 사건은 인격이 갖춰지지 않은 인간의 두 얼굴을 대변한다. 또 다른 사례인 섬마을 성폭행 사건은 낮은 국민 의식을 보여준다. 해당 사건의 충격적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우리 사회에서 스승으로 여겨지고 존경받아야 할 교육자가 성폭력을 당했다는 점과 그 가해자가 학부모였다는 것이다. 둘째는 사건을 은폐하고 가해자를 감싸려는 듯 행동을 취한 섬마을 주민의 이기적 모습이다. 사건 발생으로 섬마을 이미지가 나빠져 생활이 어렵게 된다는 걱정과 피해자를 도리어 비난하는 발언이 취재 결과 드러난 것이다. 명백한 잘못에도 이기적 행동과 제 식구 감싸기가 나타나며 국민 의식이 여전히 낮다는 것을 보여준 방증이다.

사회 인식 바꿔야
앞선 두 사건의 문제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두 사례 모두 피해자가 용기를 내지 못하거나 은폐했다면 재연될 가능성이 컸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홀로 관사생활을 하는 여성 인력은 1,366명에 달한다. 현재 인원이 그렇다는 것이고 그간 관사를 거쳐 간 여성을 헤아리면 그 수가 더 많다. 드러나지 않은 성범죄가 잠재됐을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실상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13년 기준으로 성폭력 관련 피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응답자의 66.6%에 달했다. 3명 가운데 2명은 사회적 편견을 우려해 자신의 고통을 숨긴 것이다. 결국 당사자는 비밀을 유지한 채 심리적 고통에 시달려야 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가해자는 제 식구 감싸기로 관대한 처벌을 기대하고 피해자가 오히려 숨어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한편, 피해자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이 가지는 경찰의 이미지에도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다. 성범죄와 관련해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1.1%에 불과했다. 신고하지 않는 이유로 신고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응답을 택한 비율은 14.4%에 달했다. 신고해도 처벌 수위가 낮고 가해자의 보복과 성범죄 사실을 밝히는 데 경찰이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인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사회 지도층 인사가 연루된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의 지위가 뒤바뀐다는 인식도 일부 응답자 사이에서 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과거 성관계 경험이 있더라도 현재 동의하지 않으면 성폭력이라는 사회 인식이 확립돼야 한다. 발생 빈도가 높은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 관련해서는 고용노동부와 협력해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및 피해자 구제에 대한 안내서를 배포해야 한다. 이를 통해 피해자 지원의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