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을 상실하면 비용을 치루게 된다

“우리는 정녕 여기까지인가?”
한 신문을 대표하는 논객이 쓴 칼럼의 제목이다. 그는 칼럼에서 이런 우려를 털어놓는다. “오늘날 우리 앞에 놓인 정치·경제·사회·외교·국방·교육 등 전방위적 과제는 우리가 과연 한 민족, 한 국가로서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요즘 들어 수시로 우리를 엄습하는 것은 대한민국은 정녕 여기까지인가 하는 통탄이다.”(김대중 고문, 2016.6.21.)
근래에 우리 사회의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을 것이다. 사회 전체가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현안과제의 해결에 무기력함을 보인지 오래 되었다. 여기에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을 털어놓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세종시에 최소 1천억원 이상이 소요되는 국회 분원을 설치하자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국회 전체와 함께 청와대까지 세종시로 이전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행정부처들이 옮겨가 버린 과천시를 방문할 때마다 그리고 현대식 신축 건물로 가득찬 세종시를 방문할 때마다 정치가 얼마나 우리들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지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멀쩡한 시설들을 그냥 둔 채 그 많은 재정을 간접부문에 그렇게 투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러나 역사는 어떤 결정이 내려지고 나면 그 결정에 따라 역사의 진로가 크게 바뀌어 진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복잡한 것이 아니다. 정치가 시대 변화와 상황 변화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 결국 국가는 쇠락의 길을 들어설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정치가들은 세상 현장과 유리된 사람들이다.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고 벌이를 위해 고심해야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오로지 어떻게 하면 세원을 확보하거나 미래 세대의 돈을 끌어다가 사용할 궁리에 골몰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어떻게든 우리 사회는 지출에 대해 더 엄격한 준칙을 정해서 실천에 옮겨야 한다. 성장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불요불급한 지출 규모를 빠르게 확장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어려움을 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분수를 넘어서는 지출을 향한 질주는 앞으로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책임에 대한 원칙이 허물어져 내리는 것이다. 어떤 행위에 대해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 가는 매우 중요하다. 책임감이 희박해지면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의 행위에 따른 비용을 타인에게 전가하려는 강력한 동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실한 체제 운영의 원칙은 ‘자기 책임의 원칙’을 명확히 하는 일이다. 어떤 회사가 부실화 되면 당연히 부실화에 대한 책임을 최우선적으로 회사의 이해당사자들이 질머져야 한다. 회사가 부실화 되었는데 이제까지 받아왔던 봉급을 그대로 받고 인력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국가로 하여금 우리를 도와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것인가.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무리한 주장들이 아무런 여과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싫정이다. 조선산업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많지만 한국 전체 일자리에서 1% 남짓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어려움을 당하는 당사자들에게는 큰 문제이겠지만 나라 전체를 두고 보면 심각한 사안은 아니다. 회사가 경쟁력을 상실하게 그것에 대해 마땅히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설령 구조조정을 위해 재정자금을 투입하더라도 과감한 임금 삭감과 인력 감축 그리고 무분규에 대한 약속에 있어야 한다. 왜, 특정 회사의 부실을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떠 안겨야 하는 가? 4조원, 5조원이란 엄청난 돈이 누구 집 아이의 이름은 아니지 않는 가?
그러나 두고 보라. 우리 사회는 큰 위기를 맞을 때까지 기본적인 너무나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데 실패할 것이다. 설왕설래를 그친 다음에 아마도 또 수조원대의 재정지원이 뒤를 따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모든 것이 정치화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를 잃는 일은 어느 누구도 하려 하지 않는 상황이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여당이 현안을 회피하기 위해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하면 야당은 결사적으로 반대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더 얻어내기 위함일 가능성이 높다. 언론을 두고 청문회를 하니 마니 하는 이야기들이 오고 가겠지만 결국 국민들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타협안이 도출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여당도 문제를 넘어갈 수 있고 야당도 무엇인가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쪽으로 합의가 될 것이다.
이렇게 재정을 낭비하면서 결국 한국은 언젠가는 그런 바보스러운 선택들의 총 결산을 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또 한번의 큼직한 경제위기일 것이다. 아무도 이 시대와 다음 세대에 엄청난 빚을 떠안기는 것에 대해 심각한 고민이 없는 것을 보면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 책임의 원칙’이 강력한 실현되지 않는 한 한국의 앞날을 가시밭이 될 것이다.

공병호(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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