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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의 달인, 난세의 영웅이 되나? 이원종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 발탁!“대통령 원활한 국정 운영에 최선 다할터”
황인환 본지 편집위원장 | 승인 2016.06.03 18:29|(195호)

협치(協治)의 달인은 누구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5월 16일 집권 후반기를 맡길 비서실장에 이원종 전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장을 발탁 기용하고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에 안종범 전 경제수석, 경제수석에는 강석훈 전 19대 의원으로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를 놓고 언론과 정치권은 이 비서실장의 고향이 충청북도 제천이라는 점을 들어 다가올 대선을 향한, 의미있는 포석이 아니냐며 설왕설래가 많다. 그러나 청와대는 오래 지켜본 후 발탁하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내세우며 오히려 협치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기용한 데 만족하는 눈치다.


정치·경제·사회·국방 등 위기에 빠진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구원투수로 등장한 신임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누구
며, 그가 어떻게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을 구해낼지 그의 탁월한 용병술을 기대해 본다.

이원종 비서실장, 그는 누구인가?

이원종 비서실장은 충북 제천 출신으로 현재 74세다. 그는 오랜 공직 생활로 인하여 일찍부터 ‘행정의 달인’이라는 별호를 받았는데 그만큼 행정 분야의 화려한 이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역대 가장 존경할만한 시장을 한명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원종 전 시장을 꼽는데 정작 그는 고건과 구자춘 전 시장을 ‘달인’이라고 꼽는다. 공무원 사회에서 ‘달인’의 칭호를 얻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에게나 붙여주질 않는 명예다.

이원종은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국립체신학교를 졸업하고 1963년 체신부 9급 공무원 서기보인 공중 전화 수금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주경야독으로 야간대학을 나와 성균관대(야간) 행정과에 편입해 1966년 제4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는 특유의성실성과 친화력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했고,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에도 청와대 내무행정 비서관으로 파견됐었다. 그 후 5 개 구청장, 충북지사(관선)를 거쳐 1993년 공직 입문 30년 만에 서울시장(관선)에 취임했다가 성수대교 붕괴사건(1994.10.21.)으로 사임한 후 민선 충북지사를 2회(1998년~2006년) 연임했다. 충북지사 시절 가장 큰 역점사업은 오송바이오산업단지 조성사업이다. 그리고 대학교수와 총장등 학계에 몸 담았다가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대통령+직속지역 발전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임명된 후 2대까지 연임 하던 중 이번 청와대의 부름을 받게 되었다.

이 비서실장은 인사 때마다 충청권 출신 총리 후보로도 여러 번 거론되었지만 관선 서울시장 재임 기간중의 성수대교 붕괴사고건으로 청문회 통과가 염려되어 제외되곤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 없는 청와대의 제2인자 위치인 대통령 비서실장에 올랐다. 그리고 그에겐 이제 ‘행정의 달인’이 아닌 ‘협치의 달인’이라는 또 다른 별명이 요구되고 있다.

물러날 줄 아는 사람

그의 공직 철학에는 도(道)가 있다고 알려졌다. 공자의 말 ‘공성 명수 신퇴 천지지도(功成名遂身退天 地之道也)’ 즉 공을 이루고 이름을 얻었으면 물러나야 한다. 이것이 천지의 이치라는 철학이다. 그래서 공무원들은 그를 ‘물러날 때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이라 고 존경한다. 민선 충북지사 시절에도 지지율이 50% 를 넘어 3회까지 당선될 수 있었으나 “지사로서 이루고자 했던 것을 다 이루었으니 물러나야 한다”라고 발표하고 출마하지 않아 전국적인 화제가 되었다. 요즘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국무총리까지 역임 하고도 일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고, 장관·도지 사를 역임하고도 국회의원이나 교육감 또는 다른 선 출직에 출마하는 등 지위의 금도(襟度)가 무너진 시대의 공직자 의식과는 사뭇 다르다. 이 비서실장은 군자의 도(君子之道)를 지닌 공직의 사표(師表)라고 추켜세워도 손색이 없는 인격을 지닌 인물이다.
 

2012년 2 월 29일 충북 지역 민생 탐방에 나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외가인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고(故) 육영수 여사의 생가를 방문해 안채와 사랑채 등 집안을 둘러보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의 충북 방문 은 2009년 11월 이후 27개월 만이었다.


육영수 여사 생가 복원에 앞장

이원종 비서실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인연을 묻는 질문이 많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연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만 충북지사 시절 고 육영수 여사 생가 복원에 앞장선 것이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박 대통령과의 인연 때문이 아니라 국민적 신망이 높은 고 육영수 여사의 생가를 복원한다는 충청북도 문화관광자원 확보 차원에서 추진된 일이었다.

육영수 여사 생가는 충북 옥천 교동리의 1800년대 99칸 전통 한옥이었다. 소유주는 육 여사의 부친 육 종관 씨. 그러나 육 씨 사후(1965년) 소유권이 여러 명으로 분할, 방치되어 폐가로 변해 1999년 철거됐다. 그러다가 1990년대 육씨 문중과 육영재단 중심으 로 생가 복원 논의가 있었으나 무산되었고, 2000년 초에 다시 복원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원종 충북지사 시절이었다.(1998~2006년)

이원종 비서실장이 충북도지사 시절 영부인인 고(故) 육영수 여사 (1925~1974)의 생가가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9181m²)에 안채, 사랑채, 사당, 중문채 등이 있는 99칸짜리 전통 한옥으로 복원됐다.

당시 이 지사는 이 집을 복원하면 문화재적 가치가 있고, 관광객이 많이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고 육영수 여사 생가를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하고 복원 위원회에 40억 원을 국비로 지원했다. 2005년 2월 28일 기공식에는 아들인 박지만 씨만 참석했다. 그 후 복원 공사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충청북도와 옥천시가 손잡고 앞장서 완공식을 마쳤다.

이 때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주자는 구설 수에 말려들까봐 와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외가 를 문화재로 만들어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당시 공사 예상액은 90억 원이었 고, 현재 육영수 여사 생가는 연간 20~30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서 괄목할 성과 올려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많지만 그중에서 지역발전 위원회의 활동이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를 올렸다. 이원종 당시 지역발전위원장은 박 대통령이 주장하는 ‘국민이 행복한 사회, 국민이 행복한 지역발전’에 혼신을다한장본인이다. 그는 모든 일에 박대통령의 구호인 ‘국민이 행복한 사회’를 앞세웠다. 그는 지자체의 수장을 여러 번 해봤기 때문에 현장에 맞는 정책을 수립하고 그것을 지역민과 더불어 실천해 소기의성과를올리는데탁월했다. 그리고 그 목표는 항상 지역민이 행복한 사회의 실현이었다. 이런 점이 박대통령의 눈에 띄어 비서실장 기용의 한 요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5월 18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 실장 기용을 정관계 일각에서는 “박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관료 그룹을 중심으로 그동안 추진해왔던 정 책을 순조롭게 마무리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는 뜻으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청와대는 15일 그를 임명하면서 “행정 전반에 걸쳐 풍부한 경험과 식견을 갖추고 있고 친화력과 신망이 있는 분”이라고 기용된 배경을 브리핑했다. 그는 카리스마를 발휘해 조직을 이끌어 나가기보다는 유머 감각과 친화력으로 소통하고 합리적 방안을 도출해 내는 스타일이라고 평가된다.
 

이 비서실장 기용, 정치적 해석 분분

20대 총선 이후 정치권의 관심은 역시 차기 대선 이다. 여야 정치권은 차기 대선의 잠룡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충청도 출신으로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총선 민심 이탈 이라는 최악의 수렁에 빠진 새누리당을 건져낼 유일 한 희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20대 총선 참패가 새누리당 예비 잠룡들에게 남긴 상처가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비이락인가? 정부의 요직과 여당의 중심
인맥이 충청권 중심으로 변해가고 있는 징후가 곳곳 에서 포착된다. 역대 대권 구도에서 충청권이 이처럼 부각된 때는 예전엔 없었다.

여기에 충북 제천 출신의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임명은 기름에 불을 당긴 형국으로 삽시간에 정치권을달굴 수밖에없다.

우선 새누리당이 새 원내대표로 정진석 의원(충남 공주)을 선임하면서부터 충청권 잠룡 추대에 대한 의혹이 더욱 구체적으로 정치권에 퍼지기 시작했다. 정 진석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겸임하면서 새누리당 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김용태 의원(대전)을 기용하자 충청권이 전면 포진하게 된 형국이 되었다. 지금 김 의원은 중도에 사퇴했다.

충청권이 정가의 중심에 떠오르면서 가장 큰 태풍 은 역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대권론이다. 정치권은 충청 출신 정치인의 전방배치를 반총장의 차기 대권과 연관시키고 있는데 특별히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 기용을 확실한 ‘격발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충청권의 약진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괄목할 만하다. 박병석 의원(대전)이 국회의장에 도전장 을 낸 상태고, 안희정 충남지사(논산)가 대권 의사를 밝히고 있으며, 변재일 의원(청원)이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다. 스윙 보터(선거 때마다 선택을 달리 하는)였던 충청권 이 이제 주역으로 변해가고 있는 모습이다.

2016년 5월 4일 청주 새뜰마을을 둘러보는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좌측 두 번째), 이동필 장관(맨 우측)

상시청문회법 처리 첫 시금석

청와대와 내각의 분위기가 대통령의 이란 방문을 계기로 살아나고 있다. 3당의 원내 지도부와의 회동을 통해 협치(協治)의 계기를 마련한 만큼 다시 국정 현안에 힘을 모을 때가 됐다.

그 런 가운데 19대 국회가 마감되면서 불쑥 끼어든 상시청문회를 개최하자는 국회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다시 정국을 흐리게 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 법이 발효되면 업무를 추진할 수 없다는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를 주문하고 나섰다. 19대 국회의 돌출 행동이 20대 국회를 초반부터 정쟁으로 몰아넣으려는 덫을 심어놓고 떠나버린 고약한 심보다.

그러나 입법은 입법. 청와대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이자, 이 비서실장이 처음으로 맞이하게 된 난제이다.

거부권을 행사하자니 3당 협치 위반이 되고, 그렇다고 대통령이 받아들이면 당장 행정이 마비되는 사태가 올 게 뻔하다. 여당이 상시청문회법을 두고 행정부 마비법이라는 이유다. 야당은 마치 즐기듯 청와대의 처분을 기다리 고 있다. 거기에 여소야대 3당 체제이다. 이 비서실장의 현명한 해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비서진 개편으로 박 대통령은 행정 경험이 풍부하고 연륜이 있는 이 비서실장을 통해 비서실을 안정시키면서 정책 관련 수석비서관에는 박 대 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알고있는 인물들을 전진 배치해 추진력을 높이려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비서실장도 “비서실의 힘을 하나로 합쳐 대통령께서 최적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보좌하자”라고 다짐했다.

이동필 장관(맨 우측)2015년 8월 27일 '지역발전 평가'우수상 받는 박홍률 목포시장 (우측)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문제 담담하되 솔직하게

이원종 비서실장 임명이 ‘반기문 대망론’을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임명 이유에 대해 반 총장과는 “같은 고향 정도이며, 10년 전 식사 옆자리에 있었다”라면서 잘 모른다고 말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충북 저명인사들의 친목 모임인 ‘청명회’에 대해서는 “그런 모임이 있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청명회가 무슨 모임인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작년 11월 이원종 비 서실장은 충북 청명회 권태호 회장으로부터 고문으로 위촉을 받고 기념사진까지 촬영했다.

대한민국에 반기문 총장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충북인사로 청명회를 모를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더구나 그 지역의 맹주들인 처지에 말이다. 그러나 위치가 위치인만큼 모든 문제를 사전에 조기 차단하겠다는 결의에서 ‘모른다’는 대답으로 일관할 수 있음을 이해한다. 평소라면 그렇게 답할 이 비서실장이 아니다. 작년 이완구 전 총리도 모른다고 했다가 곤혹을 치뤘다. 귀찮은 질문을 피하려는 충청도 사람들의 ‘레토릭(rhetoric)’ 같은데 좀 더 세련된 문구를 개발하면 어떨까 싶다. 말 한 마디로 쓸데없는 오해를 낳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대부분 의 언론들은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의 기용으로 반기문 대선 후보 추대를 위한 밑그림이 완성되었다고 보고 있다. 정치권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 앞으로 1년 6개월이 남은 대선이기 때문에 후보자를 발표하기에는 아직 많은 기간이 남았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결코 많은 기간이 아니다. 야권에서도 자진해서 대권 주자라고 자처하고 나서는 잠룡들이 하나 둘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문재인, 안철수주자같은 경우에는 무려 4년이나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고 봐야한다. 여당도 어떤 방식으로라도 운을 떼야 홍보전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물론 킹메이커들의 전략이 어련하겠느냐만 복수(複數)로라도 띄워놓는 것이 유리하지 않을까 싶다 .

물론 이원종 비서실장이 앞으로의 정국에서 엄청난 역할을 수행하겠지만 박 대통령을 위한 일, 정권을 재 창출하는 일에는 누구보다도 큰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정권 후반부를 책임질 비서실장으로서의 임 무가 단순히 ‘행정의 달인’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는 충고이다. 이원종 비서실장은 ‘협치의 달인’이어야 하고, 정국을 풀어나가는 ‘지혜 주머니’여야 하며, 차기 정권 을 창출해내야하는 ‘킹메이커’의 역할도 수행해야 한 다. 목적은 오로지 주군인 ‘박근혜 대통령’을 위하고, 국민이 행복해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다.

이원종 비서실장의 장도(壯途)를 축원해 마지 않는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약력

1942년 4월 4일 충청북도 제천 출생
가족: 슬하 4녀

경력사항

2016.05. ~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2013.07. ~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
2012.02. 서울연구원 이사장
2011.04. 한국지방세연구원 이사장
2006.08. 성균관대학교 국정관리대학원 석좌교수

2002.07. ~ 2006.06 제31대 충청북도 도지사
1998.07. ~ 2002.06 제30대 충청북도 도지사
1996.08. 제4대 서원대학교 총장

1980. 서울특별시 용산구 구청장
연도 없음 대통령비서실 내무행정비서관
1966. 제4회 행정고시 합격

1963. 체신부

학력사항

~ 1998. 충북대학교 행정학 명예박사
~ 1996. 성균관대학교 행정학 명예박사
~ 1986.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 1965. 성균관대학교 행정학 학사

수상내역
2008. 제21회 우관상
1990. 홍조근정훈장
1979.
근정포장
 

황인환 본지 편집위원장  weis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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