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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교 창교 50주년 한얼절 기념행사민족성업(民族聖業), 근본 민족종교의 위대한 반백년
글·사진 이채현 기자 | 승인 2016.05.04 16:52|(194호)
 
성국교 전경
유구한 반만년 역사 속에서 찬연한 민족문화를 이뤄온 대한민국. 외세의 침략 등 수많은 역경 속에서 우리민족이 스스로의 독자성과 주체성을 잃지 않고, 세계 속에서 빛나는 한류문화를 창달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내면에 정체성처럼 단단한 의식적 통일성 – 즉 민족정신이 면면히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외래문화와 종교들이 범람하고 있는 현 시대, ‘한얼교’의 지나간 50년은 순수한 근본 민족종교로서 우리민족의 얼과 자긍심을 일깨워, 민족 본연의 자존을 고취시키고자 한 길이었다. 특히 이번 4월 4일 한얼절은 한얼교 창교주 신정일 한님 탄신 77주년이자 추모 17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었다. 정경뉴스는 이 한얼절 기념행사와 더불어 민족성업에 바쳐진 한얼교 반백년의 창교역정을 되짚어보았다.

창교 50주년 한얼절 행사

지난 4월 3일 한얼교는 한얼절을 하루 앞두고 강화도 마니산 ‘한얼온궁’에서 한얼절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한얼절은 한얼교 창교주 신정일 한님의 탄생일이자 ‘한’으로 돌아가신 날을 기리는 기념식이다. 이날 행사에는 수천 명의 한인 외에도 사회 각 분야의 저명인사들이 참석하여 한얼교 창교 50년의 거룩한 뜻을 함께 기렸다. 행사는 개식사를 시작으로 한얼바른님·몸얼한·무량성취한, 무무주 염송으로 이어졌고, 창교 역사와 인연이 깊은 내외 귀빈들의 축사가 있었다. 정혜사의 길혜암 주지스님은 이날 축사에서 “완전한 종교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한얼교’는 완전한 언어 ‘한’을 통해 완전한 인간상 ‘한얼상’을 지향한다”면서 한얼교의 철학적 완결성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사람의 인격을 정신적으로 평가하듯 그간 국민의 뼈대사상이 없었다. 그런 가운데 ‘한얼’은 국민의 통합과 주체성 회복에 도움을 줄 유일한 종교며 한얼교가 민족종교가 되는 날은 대한이 일등국가가 되는 날임을 확신한다”고 평가했다. 한국언론인연합회 최재영 회장 역시 이날 축사에서 생전 한님과의 돈독했던 인연을 회상하며 “한 민족의 뿌리 홍익인간의 정신을 이어받아 독창적인 민족종교로 이어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이날 행사는 축가와 화환 증정, 한민족선언서 낭독 외 국악연주 등을 통해 한얼절의 의미를 다졌다. 한얼교는 ‘홍익인간’이라는 5000년 한민족의 국조 단군성조님의 정신이념을 이어받아 계승하며 모든 존재를 널리 이롭게 하리라는 절대적 가치를 깨닫고 실천하고 있다. 단군기원 51년 설축한 참성단은 세계역사상 가장 오래된 제단이며, 한얼을 기념하던 제단으로 단군사상과 그 원리가 녹아있는 사료이자 국보에 속하는 장소다.그런 이유로 한얼교에 강화도 마니산은 의미가 크다. 한얼교 창시자 신정일 한님은 강화도 참성단을 우리 민족의 시원이라고 깨치고 1967년 10월 참성단을 찾아 단군 이래 5,000년 만에 처음 천제를 봉행한 후부터 한얼교는 마니산 참성단 성역화 작업을 시작했다. 신정일 한님은 1970년부터 매년 참성단 성지순례를 거행하며 참성단의 중요성을 세상에 알리고, 사재를 털어 성전 부지를 마련하고 터전을 닦았다. 이번 행사가 열린 ‘한얼온궁’은 이러한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한얼교의 성지다. 이날 의미 한얼절 행사에서는 창교주의 친필법문 휘호 전시 및 한얼교 대표 경전 판각전시회, 창교 반 백 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사진전 등이 펼쳐졌다. 또 1999년 ‘한’으로 돌아가신 창교주 한님의 한성식(다비식)을 치른뒤 수습된 진모사리, 치사리, 진신사리를 직접 친견하는 사리 친견식을 통해 창교주의 뜻을 기렸다.

창교주 신정일 한님의 수행과 업적

창교주 故 신정일 한님은 어떤 분일까. 홍익인간과 한얼사상을 초월적으로 계승한 한얼교의 창교주 신정일한님은 경북대 법학과와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시부터 구도(求道)를 시작해 졸업 후 본격적으로 전국의 명산과 큰 사찰을 다니면서 명망 높은 고승들과 법거래를 나누던 중 1965년 깨달음을 얻고 신통력을 얻으니 이때부터 대중이 그를 따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중 한님의 설법을 듣기위해 몰려든 2만 여 명의 대중들로 인해 기차가 정체되는 일이 발생, 민중을 소요한 죄로 7일한 구류됐던 한님은 이를 계기로 정부의 승인을 받은 정식 종교 ‘정일회’를 만들었다. 이후 전국에 많은 교단을 건립하고 빠르게 성장해 78년 ‘한얼교’로 개명하며 비로소 진정으로 우리의 순수 민족 종교가 탄생됐다.
 
한님 성체사리를 모신 곳
만유하는 한의 진리, 몸소 실천

신정일 한님은 한얼 정신을 통해 우리 민족 5천년정신사를 꿰뚫어 종과 횡으로 결실을 맺은 대단원의 종교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한얼의 근원사상이 종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정치·철학·경제·사회·문화·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하여 한인들에게 증명했다.
 
한주의 정치

신정일 한님은 1980년에는 한사상연구회 이사장, 1981년에는 민족정신선양단체협의회 회장, 1984년에는 근로농민당 명예총재가 되었으며, ‘한주의 정치이념’을 내놓으며 1987년 9월 ‘한주의 통일 한국당’을 창당 한 후 ‘한주의 다살림’을 구호로 내놓고 시대적 제약과 경제적 희생, 정치적 당락의 한계를 초월 - 1987년 제 13대, 1997년 제 15대 대통령 선거에도 두 차례나 출마했다.
 
한주의 온경제

한님은 경제적으로으로 역시 ‘한원리온경제’라는 경제이념과 원리를 수립하고 개인 유산으로 일군 한온그룹의 회장을 역임하면서 국가 경제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는 석유자원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한이라크명예영사 등으로 활동하며 이라크에 민간외교 차원에서 의료지원과 인도주의적 외교활동 등의 노력을 기울여 할파야 초대형 석유 광구의 독점개발사업권을 획득해 간사회사로서 삼성물산, SK, 석유개발공사와 컨소시엄을 결성하기도 했다. 또 러시아에는 실리외교를 통해 브리아티아의 옥광산 독점 개발권을 획득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주)BAU섬유산업, (주)대양선하, (주)바이오메이나, (주)한얼앙고라모직, (주)한온뮤직, (주)일동카페리 등 에너지, 신기술, 신소재 사업 위주의 23개 계열사의 기업경영을 통해 왕성한 기업 활동을 펼쳤고 세계 무역발전 촉진을 위해 대전 세계무역센터 허가권도 취득했다.
 
한님 성체사리 친견장 입구
선진 민간 외교, 세계로의 한얼의 웅비

신정일 한님은 미국, 중국, 일본, 필리핀, 영국, 러시아, 이라크 등의 국가와 활발한 외교활동을 하며 세계 주요 인사들과 만나며 한사상과 한얼정신을 근본으로 남북통일을 위해 힘썼다. 그는 1989년 외교국방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했고 하버드 대학의 존 F. 케네디 스쿨에서는 객원연구원으로 1991년 ‘중한론’을 발표해 미국유력 인사들로부터 인정받아 미국 부시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 다수의 미국 상하원 의원들을 비롯해 전 세계 각국의정상들과 면담을 통해 한얼정신을 알렸다. ‘중한론’은 남북통일 문제의 신기능주의적 정치·외교적 해법에 관한 외교학설이다. 또 중국의 개혁개방을 예견하고 한·중 수교 10년 전부터 중국과의 깊은 외교적 관계를 유지해 중국정부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이를 기념해 중국 백두산(장백산) 서쪽에 국사보호지역으로 묶여 들어갈 수 없는 천만 평을 백두산 자연과 우리정기를 보호하기 위해 ‘산문’을 지어 기증했다. 1997년에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파운데이션 펠로우로 임명받아 한얼진리를 바탕으로 인류발전의 올바른 지표를 밝히기도 했다.
 
한 사상, ‘한온이즘’의 창도와 사회문화 활동

신정일 한님은 사회문화 방면에도 쉬지 않고 활동했다. 그는 1967년 정화운동을 전개하며 홍보지 ‘정화’와 월간지 ‘얼’외에도 ‘묘도경(妙道經)’, ‘진공묘유론(眞空妙有論)’, ‘단군바른님’, ‘얼·바름·행복’, ‘한얼교민족성전’, ‘한얼정신전집(1∼6)’등 수십 종의 서적을 출판하고‘동양문화신문’을 창간해 언론 창달을 위해 노력했다. 1980년에는 한 사상연구소를 설립해 ‘한’이 우주자연 현상에서부터 인간 사회 현상 및 물질, 정신 모든 면에 걸쳐 절대 자리임을 강조하면서 1981년 10월 21일 조선호텔에서 ‘한의 원리’를 선포했다. 1985년에는 대구 검도회장 취임 및 1998년에는 대한 우수협회 회장에 취임해 문화 체육 분야에서도 큰 공헌을 했다. 그밖에도 종교통합운동(1974), 단군숭봉운동(1975), 얼바름 행복운동(1978), 개천절 경축범국민운동(1978), 한얼정신 전국보급 범국민운동(1980),한사상운동(1981), 민족정신 선양 사회계몽운동(1982), 한얼을 드높이는 온겨레모임(세종회관), ‘하나주의 진실론’대강연과 대학강의, 일본에서 열린국제우주법학 기조연설 등 폭넓은 분야에서 다양한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1978년에는 개천절 조찬기도모임을 개최한 이래 대도시에서 매년 개최했으며, 1970년부터는 강화도 마니산 성지순례 단을 조직하여 연례행사로 추진했고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사용해 강화도마니산 아래의 대지를 매입해 한얼교 성전을 건립했다. 1988년에는 성지순례 행사에 10만여 명이 참가하기도 했다.
 
만교일본 만법귀정(萬敎一本 萬法歸正),한얼말씀 완성

한얼교는 특정 대상을 믿고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다. 한얼교에게 참된 진리란 모든 존재가 하나되어 진리를 이해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기에 어떤 형상이나 상징을 두지 않고 그저 참된 진리의 자리를 상징하는 빈자리만을 둔다. 그 빈자리는 만물을 창조하는 우주 삼라만상 존재의 본성인 형상 너머의 자리이자 그 신성과 하나 될 우리의 본성이자 순수의식인‘나얼’은 기독교와 천주교의 ‘그리스도의식’, 불교의‘불성’, 힌두교에서의 ‘아트만’을 뜻한다. 그 빈자리는 ‘나얼’을 찾아 한얼과 하나 될 우리 스스로가 앉아야할 자리를 의미한다. ‘한얼’의 ‘한’은 하나이자 영원불멸한 전체, ‘얼’은 그 안에 깃든 혼, 즉 만물의 본질을 뜻하며 ‘한얼’은 만물의 본성, 모든 신앙의 본체(불교의 불성, 기독교의Christ, 이슬람의 알라, 천주교의 Holly Spirit)을 표현한다. ‘나얼’은 나라는 에고(Ego)가 생기기 전 순수의식의 본성을 뜻한다. 따라서 한얼교는 예수님이나 노자, 공자, 부처님, 단군님 같은 성현들을 초월의 스승으로 삼는 한얼교는 성현들과 그들의 종교를 존중하고 종교 간의 화합을 지향한다. 그렇기에 한얼교는 한얼교의 철학과 사상을 배우면서도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이 가능하고 한얼교교인이 되지 않더라도 자유롭게 한사상을 배울 수 있도록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런 무형의 ‘한얼’의 뜻을 정확히 나타내고 종교적이며 철학적이며 우주와 생명의 근본이 들어 있는 우리말의 뜻을 밝히기 위해 1997년 신정일 한님은 스스로의 힘으로 36권이나 되는 한얼교만의 경서를 홀로 손수 편찬했다.
 
전국 200만 한인가진 탄탄한 민족종교

이후 1대 법통 시대 한얼교는 단순 종교단체에서 거대한 민족 정신운동을 하면서 탄탄한 기성종교로 자리 잡아 강화 마니산 성지 순례와 개천절 전국 행사, 단군 숭봉 조찬행사 등 민족 종교로서의 역할을 해나가면서 한때 전국 2백만 명의 교세를 자랑하기도 했다. 1982년 문화공보부가 펴낸 <종교 단체 현황>에 따르면 한얼교는 당시 52만 명의 신도가 있었으며,1997년 전국에 186개의 지부와 대구, 서울, 부산 등지에 본궁이 있고 약 41만 명의 신도가 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다.
 
창시자 한님의 한성과 위기, 민족정신의 재정립

끊임없이 외래종교가 확장하는 현실에서 1999년 창교주 한님이 한성한 후 IMF 등 국제적 금융 위기 속에서 한얼교 역시 총체적인 위기 상황을 겪을 뻔했다. 하지만 2대 법통이 한온그룹을 성공적으로 구조조정한 후 한얼교 재단정비와 쇄신으로 교단 안정화와 재건의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2대 법통은 지금까지 교단의 개혁과 현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편 한님바른님의 사상과 철학,한얼정신을 세상에 전할 수 있도록 한 사상의 핵심가르침을 재정립해왔다. 그는 전통적인 종교 관습과 형태를 탈피해 창시자의 이념초월과 화합정신에 따라 누구든 자유롭게 한사랑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한얼교의 철학과 사상을 배우면서도 공식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등 진화하는 사회의식에 발맞춰 자유롭고 미래지향적인 종교로서의 기반을 닦았다. 특히 그는 교단체제의 투명성을 제고함과 동시에 예술을 통해 깨달음과 깨어남을 접목하는 시도를 해 진리에 대한 성찰과 명상으로 절차를 대신할 수 있는 법을 제시했다.
 
한님에 대한 기도와 기적의 행사

종교 자체와 그 철학의 의미를 몸소 실현했던 한님을 기리는 자리여서 그럴까. 한얼절 한님께 기도를 드렸던 사람들 중에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이번 한얼절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한 한인에게 일어난 기적은 참 신비롭기까지 하다. 한 한인은 다리를 절어서 지팡이를 짚지 못하면 걷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어느 병원을 가도 도저히 다리를 고칠 수 없자 이곳에 온 그 한인은 부인과 함께 기도를 하려는 수천의 인파 덕분에 새벽한시가 돼서야 기도를 올릴 수 있었다. 경황없이 온 탓에 뭔가를 한님에게 드리고 싶었는데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은 고작 피다만 담배 한개비 뿐이었다. 결국 정성을 다해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이고 기도를 드렸고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는지 몰랐을 무렵 정수리로 큰 방울이 떨어졌다고 한다. 비가 오는가 해서 하늘을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지만 순간 온몸으로 시원한 기운이 번져갔고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더니 이 한인은 지팡이 없이 산을 내려오게 됐다고 전한다. 참으로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위대한 나아감의 반세기를 고대하며

올해로 창교 50주년, 그간 한얼교는 여러 가지가 혼재돼 스스로와 민족에 대한 의미와 이해가 퇴색하는 이 시대 민족의 정체성을 다시 깨어나게 하려는 사명을 다해왔다. 한얼교의 향후 50년은 끊임없는 성찰과 시대 인류의 의식진화에 따른 변화 노력을 통해 이런 ‘깨어남의 반세기’를 넘어서는 ‘위대한 나아감’의 반세기가 되길 기대한다.

글·사진 이채현 기자  redjoker@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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