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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의 영역 ‘서민증세’, 무조건 반대할 일인가복지 재원 충당 위해 모두가 더 내야…
김의상 기자 | 승인 2016.02.04 10:21|(191호)
지난해 초 담뱃세 대폭 인상에 이어 소주값까지 올랐다. 국내 주류업계는 지난해 11월 하이트진로를 시작으로 일제히 가격 인상에 동참했다. 이에 여론은 정부가 담뱃값에 이어 ‘국민 술’인 소주 가격까지 올린다며 서민증세 논란이 커지고 있다. 또 관련 업체들의 소주가격 인상을 정부가 용인했는지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반면 고소득층에게만 증세하는 것은 복지 재원 충당에 무리가 있다는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서민증세 역시 필요하다는 의견이지만 ‘서민증세 우선론’은 아니다. 고소득층과 서민 모두가 더 내야 한다는 것이다.


 
2014년 9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참석해 담뱃값 인상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문 장관은 이날 “단기적으로 가격 인상만으로 8%p 가량 흡연율 감소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왼쪽부터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방문규 기획재정부 제2차관.
월급 빼고 다 올라…
시쳇말로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요즘, 담뱃값에 이어 소주값까지 오르며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쌍두마차의 고삐가 풀렸다.
소주 업계 부동의 1위인 하이트진로가 지난 11월 30일부터 ‘참이슬’의 출고가를 961.7원에서 1015.7원으로 5.62% 인상하자 지역 소주업체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가격을 올렸다. 인상 가격과 시기를 저울질하던 롯데주류도 1월 4일부터 제품출고가를 평균 5.54% 인상했다. 주력 제품인 ‘처음처럼(17.5도)’의 360ml 병 제품 출고가는 946원에서 1,006.5원으로 6.4% 올랐다. 이로 인해 일반 음식점에서 병당 3,000~4,000원대 하던 소주값이 5,000원대로 껑충 뛰었다.
소주업체들은 소주가격이 동결된 2012년 이후 3년간 전력비(26.9%)와 연료비(16.6%)가 증가했고 공병 단가가 135원에서 148.5원으로 뛰는 등 병 관련 비용이 10%가량 늘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반면 소비자단체는 소주 원재료 가격이 최근 3년간 하락했고, ‘순한 술’ 유행으로 소주 도수가 낮아지면서 주정 비용이 오히려 더 줄었다고 주장한다. 또 공병 취급수수료와 보증금을 올리는 법률 개정안이 아직 국회에서 통과하지도 않았는데 미리 인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지난해 초 정부가 국민건강을 해치는 흡연율을 낮춘다는 명분을 앞세워 담뱃세를 1,550원에서 3,318원으로 114% 인상했는데 세수 확보가 목적인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일고 있다. 정부 예측과 달리 실제 담배 소비량은 크게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담뱃세로 거둬들인 세금이 금연캠페인, 흡연부스 설치 등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쓰이지 않았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담배 가격대별 세수.
건강증진보다 세수 확보가 목적?
기획재정부는 ‘1월 7일 2015년 담뱃값 인상에 따른 효과’를 발표했다. 이 발표에 따르면 2015년 담배 반출량은 31억 7,000만 갑으로, 2014년(45억 갑) 대비 29.6%(13억 3,000억 갑) 감소했다. 반면 연간 담배 세수는 2014년 대비 3조 6,000억 원 증가한 10조 5,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당초 정부는 담뱃값 인상으로 2조 8,000억 원의 세수 증가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8,000억 원이 더 걷힌 것이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 지연 등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꼼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2014년 9월 당시 담뱃값 인상을 발표하면서 “단기적으로 가격 인상만으로 8%p 가량 흡연율 감소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성인남성 흡연율은 최근 1년간 5.8%p 감소에 그쳐 국민건강을 위한다는 정부 주장이 궁색해졌다.
담뱃값 인상으로 더 걷힌 세수 3조 6,000억 원 중 국민건강증진사업의 원활한 추진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지원하기 위한 건강증진부담금 등에 편성된 예산은 3분의 1 수준인 1조 2,000억 원에 불과한 것 역시 정부의 담뱃값 인상의 목적이 국민건강보다 세수 확보에 무게를 뒀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담뱃값 인상이 금연율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정부가 세수를 고려해 인상 폭을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해 6월 보고서에서 “담배가격이 4,500원보다 낮을 때는 가격 인상이 세수 증대로 이어지지만 4,500원을 넘어서면 총 세수는 감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지난해 담뱃값에 이어 올해 소주값 인상 역시 건강증진과는 무관할 것으로 보인다. 소주값이 소폭 올라도 가격 상승으로 인한 소비량 감소에는 큰 효과가 없을 것으로 전망돼 출고가 중 주세 등 세금 비율이 원가 대비 130%에 육박하는 주류세 구조상 결국 세수 확보에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시판되는 담배에 삽입된 흡연 경고그림. 정부는 예상보다 흡연율 하락폭이 적은 이유로 경고그림의 도입 지연을 들었지만 궁색하게 들린다.
한국사회에서 세금은 신뢰를 잃었다
세금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국가 또는 지방공공 단체가 필요한 경비로 사용하기 위하여 국민이나 주민으로부터 강제로 거두어들이는 금전. 여기서 말하는 ‘필요한 경비’는 사회복지지출과 공공재(公共財)를 포함 공공질서, 안전, 행정, 국방, 교육 등에 다양하게 쓰인다.
복지에는 당연히 세금이 들어간다. ‘무상복지’라는 용어 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 내가 낸 세금을 미래에 내가 돌려받는 개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매우 낮은 편이다.
복지선진국들의 경우 국민 대다수가 자신이 낸 세금보다 더 많은 복지혜택을 돌려받게 되지만, 성장에 치우친 시대를 살아온 우리 국민은 직접적인 복지 혜택을 누려본 경험이 적다. 때문에 ‘내가 낸 세금만큼 돌려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믿음이 없다.
또한 우리 국민은 조세제도의 공정성에 의심을 품는다. 증세의 부담을 자신들만 짊어지고 다른 사람들은 회피할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특히 국민들은 정부가 일반 국민들의 세금은 늘리고 기업이나 부유층의 조세부담은 경감해준다고 의심한다. 또한 (소득 내역이 투명한) 유리지갑인 근로자들은 자신들이 자영업자들에 비해 부당하게 많은 세금을 부담한다고 생각한다.

터부시된 ‘서민증세’
우리 사회에서 서민증세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근로소득자에 대한 최저한세 주장은 그간 진보·보수 어느 쪽에서도 정면으로 제기하지 않았다. 상위 20%가 총급여 513.4조 원의 절반을 점유하고, 하위 80%가 나머지 절반을 차지하는 우리 사회에서 ‘서민 증세’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큰 탓이다. 지난해 6월 기획재정부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면세자 축소 방안’ 마련 요구에 대해 이 제도 도입을 언급했으나 무게가 실리지는 않았다.

 
복지 재원 마련에 모두 참여하는 분위기 만들어야…
이런 분위기 속에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인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이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내놨다. 부자증세만으로는 복지 재원이 부족하다며 서민증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김상조 소장은 근로소득세에도 법인세와 마찬가지로 최저한세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지난해 10월 20일 발표한 ‘연말정산 파동이 남긴 과제 및 대안’이란 보고서에서 “급여소득자 모두가 최소한의 납세 의무를 부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최저임금(연소득 1,300만 원) 이상을 받는 급여생활자들은 모두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MB 감세 철회’나 ‘부자 증세’만으로는 부족한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김 교수는 자신의 제안이 ‘서민증세 우선론’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김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복지를 확대하자고 하면서 정작 재원 조달 방안인 증세에 대해선 진보-보수 모두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미래를 위해 모두가 세금을 더 내는 논의의 물꼬를 트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소수의 고소득층에 집중한 직접 증세만으로는 필요한 복지 재원을 확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여야 및 진보·보수가 모두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겨레 10월 20일)
김 소장은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실질적인 대안인 증세는 고려하지 않고, ‘부자감세 철회’나 ‘법인세 인상’, ‘MB 감세 철회’만을 주장하고 있는 야당 역시 비판하고 나섰다. 김 소장은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효과가 희석되고 특히 2012년과 2013년에 이르면 부자감세는 소멸 내지 역전된 것으로 나타났다”며“‘MB 감세 철회’라는 슬로건은 정치적으로는 유효할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재검토할 시점이 됐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부자감세는 이미 실효성을 잃었다. <표 1>에서 상위 1%, 5%, 10% 고소득층의 1인당 총 급여를 하위 10%, 20%, 40%의 1인당 총급여, 평균소득, 중위소득 등과 대비한 소득배율 추이를 보면, 공통적으로 2010년을 정점으로 하여 가장 악화되었다가 이후 조금씩 개선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예컨대, 상위 1% 대 하위 10%의 소득배율은 2008년 167.62배에서 2010년 171.06배로 악화되었다가 2014년 118.43배로 크게 개선되었고, 상위 1% 대 중위소득의 소득배율 역시 2008년 10.47배, 2010년 11.12배, 2014년 10.01배의 추이를 보였다.
소득배율은 간접세의 비중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2007년 총국세수입 중 간접세 비중은 48.3%였다. 이후 2008년 49.3%, 2009년 51.9%로 간접세 비중이 계속 늘었고 2010년 53.1%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참이슬’ 소주의 출고가 인상으로 지방소주까지 가격 인상 도미노현상이 이어지면서 서민증세 논란도 가중되고 있다.
서민도 내고 부자는 더 많이 내면 될 것
김상조 소장의 주장이 ‘유리지갑 월급쟁이’들의 소득세만 올려야 한다거나, 무턱대고 소득세부터 올리자는 것은 아니다. 복지 혜택을 확대하기 위해서 바뀌어야 할 조세제도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민층이 큰 부담이 느끼는 간접세를 올린 것처럼 대기업 등에 매기는 법인세도 올려야 하고, 불필요하게 깎아주는 세금도 줄여야 할 것이다. 고소득 전문직, 자영업자들의 탈세 단속도 더 엄격해져야 한다. ‘부자증세’도 필요하고, 각종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 투기 목적의 부동산 거래 및 보유에 대한 세금부담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김 소장은 과세표준 1억 5천만 원 초과 구간에 새로운 소득구간을 하나 더 신설해 현행 38%보다 높은 한계세율을 설정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게 김 소장의 지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이 지금보다 더 나은 복지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접세 위주 조세제도는 불합리
우리가 부담하는 세금 중 소득세가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부분 국민은 소득세보다 부가가치세를 더 많이 낸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소비활동을 할 때마다 세금을 낸다. 주유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고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우리는 느끼지 못할 뿐 세금을 내고 있다. 정부가 집계한 지난해 세입 중 부가가치세는 57조 원으로 소득세보다 4조 원 많다.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는 세금을 실제 부담하는 자와 납부하는 자가 다르기 때문에 본인이 1년에 얼마를 내는지 알기 어렵다. 얼마를 어떻게 내는지 경로를 추적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는 정부의 세입 늘리기 수단으로 이용된다.
간접세는 세입 늘리기 용이한 반면 소득재분배에 있어선 악영향을 끼친다. 똑같은 소비를 했다고 가정할 때 소득이 적을수록 간접세가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신뢰부터 되찾아야…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건 공약 ‘증세 없는 복지’는 결국 임기 내내 박 대통령 자신을 묶는 포승줄이 됐다. 증세가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증세 얘기만 나오면 ‘증세 없는 복지’로 곳곳에서 딴죽을 걸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줄곧 ‘증세 없는 복지’를 외쳤지만, 그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 이미 드러났다. 국민들이 받아든 건 담뱃값 인상 같은 ‘꼼수증세’나 보육예산 축소 같은 ‘복지축소’다.
한국경제는 이미 성장이 멈춘 듯 둔화했다. 아울러 복지 수요가 급증하는 현 상황에서 조세제도를 그대로 두고 오래 버틸 수는 없다. 세금을 늘려야 하는 것은 언제고 받아들여야 할 문제이지만, 그에 앞서 행정이 투명하고 세금 혜택이 내게 돌아온다는 사회적 신뢰가 기초돼야 한다.

김의상 기자  estkin@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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