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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회동, 왜 이런 수준일까
박상병 시사평론가 정치학 박사 | 승인 2015.11.02 11:45|(188호)
박상병 시사평론가 정치학 박사

모처럼만에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만났다. 박 대통령이 지난 3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3자회동을 한 이래 7개월 만이다. 이번에는 딱히 뚜렷한 의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박 대통령이 방미 결과를 설명하고 예산국회에 대한 정치권의 협조를 구한다는 점에서 굳이 비판할 이유가 없었다. 국정이 어려울 때 대통령과 정치권의 대화 테이블이 마련돼 ‘대화정치’가 복원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단순한 만남, 그 이상의 의미를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은 말 그대로 ‘정치의 수준’에 달려 있다. 이번에도 일각에서 ‘혹시나’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모두 ‘내 말만 하겠다’
사실 이번 청와대 회동은 시작부터 매끄럽지 못했다. 청와대가 5자회동을 제의하자 야당은 3자회동으로 역제의하면서 자칫 무산될 뻔 했다. 그러다가 또 대변인 배석 여부를 놓고 다투다 이때도 결렬 위기까지 갔었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이 요구사항을 모두 철회하고 청와대 뜻에 순순히 응함으로써 청와대 회동이 성사된 것만 해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리고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대화 내용을 녹음해도 되겠느냐고 하자 박 대통령이 청와대를 뭘로 보시느냐며 거부했다는 얘기는 씁쓸하다 못해 무기력한 야당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수모를 받고서도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는 뭘 기대하고 청와대로 갔을까. 문재인 대표는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여론을 대변하고 싶었던 것이다. 제1야당 대표로서 들불처럼 번지는 국정화 반대여론을 등에 업고 청와대로 가서 박근혜 대통령과 예리한 각을 세우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성과를 손에 쥐기 위해 청와대로 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국정화 반대여론의 선두에 서는 격이고, 또 이를 통해 당내 반대파들의 비판과 저항을 어느 정도 무마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문재인 대표가 빈손회동 결과를 알고도, 또 청와대로부터 약간의 서운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한 것은 이런 이유가 컸다. 그래서 보라는 듯이 강경한 어투로 작심발언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정치적 판단을 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최고 수준의 담론 방식으로 구체화했다는 점이다. 야당 대표가 참석한 청와대에서, 그리고 야당 대표들이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있음에도 이에 물러서지 않고 더 강경한 어조로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심지어 전교조와 역사문제연구소까지 언급하면서 이들 좌편향 단체에 소속된 좌파 학자들이 편향된 국사교과서를 만들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쯤 되면 교육부 공무원을 향해, 또 새누리당을 향해 몇 번씩이나 강조해야 할 발언보다 훨씬 더 강력한 효과가 있다. 직접 반대측과 각을 세워 대통령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는가. 그래서 야당 대표를 청와대로 불렀던 것이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은 부수적인 효과도 거두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야당 대표에게 경제와 노동, 민생을 당부했다. 자칫하면 노동개혁 실패와 장기간 경제침체의 원인을 야당 탓으로 돌릴 수 있는 명분까지 얻었다. 또 있다. 이종걸 원내대표에게 몇년 전의 일까지 언급하며 “그 때 왜 이X, 저X 했느냐”고 묻고서는 사과까지 받아냈다. 정말 뒤끝 있는 집요한 승부사적 기질까지 다시 보여준 셈이다. 아마 새누리당 의원들이 더 놀라지 않았을까 싶은 대목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굳이 손익계산서를 따진다면 최대 수혜자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 앞에서 야당과 정면대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각에서 우려했던 당청관계의 불협화음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박 대통령이 밀어주고 김 대표가 앞장서는 모습이었다. 이를 통해 김 대표는 박 대통령과의 갈등설을 일축하고 풍우동주(風雨同舟)의 정상화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공천룰을 둘러싼 당내 친박계의 저항마저 지체 또는 약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케 됐다. 김 대표에게 이 보다 더 좋은 모멘텀이 어디 있겠는가. 말을 아끼던 김 대표가 이번만큼은 말을 아끼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라 하겠다.

당리당략 앞에 민생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 대표의 요구에 어느 것도 양보하지 않았다. 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 요구는 정면 반박했다. 심지어 차세대 전투기(KF-X) 사업과 관련해 김관진 안보실장과 한민구 국방장관을 문책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표 요구에는 아무런 답변조차 없었다. 야당의 얘기를 경청하겠다는 것보다 박 대통령의 뜻을 전하겠다는 의지가 더 컸다고 봐야 한다. 김무성 대표도 예외가 아니다. 대화정치 복원이나 야당 설득 같은 것은 애초부터 생각지도 않았다. 이번 기회에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확실히 구축하고 대야투쟁의 선봉에 나서겠다는 정략이 앞섰다. 이렇게 해야 당내 역학관계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봤던 것이다.
문재인 대표의 계산도 당리당략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전 같았으면 청와대 회동을 거부했을 것이다. 손에 잡히는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더러 차 한잔 마시고 나올 텐데 굳이 이 시점에서 청와대 회동을 수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청와대 회동의 최대 명분이었던 박 대통령의 방미 결과마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문 대표는 두 번, 세 번 양보해서 청와대로 향했다. 문 대표 역시 정략적 판단으로 볼 때 괜찮은 기회로 봤던 것이다. 빈손으로 와도 남는 장사로 봤다는 얘기다.
따라서 이번 청와대 5자회동은 어느 쪽도 크게 이익을 봤거나 일방적으로 손해를 봤다고는 볼 수 없다. 애초부터 “내 말만 하고 끝내도 좋다”는 정략적 판단이 앞섰다는 뜻이다. 그래서 5자 모두 나름 짭짤한 성과를 얻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가장 아픈 대목이 있다. 이젠 청와대 회동마저 기대할 것이 없다는 ‘정치의 무능’이 더 각인되고 동시에 그 무능으로 인해 국민적 절망감이 더 심연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누가 국민의 피울음을 대변하고 또 대신 울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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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시사평론가 정치학 박사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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