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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교과서의 단일화 문제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 승인 2015.11.02 11:44|(188호)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사회과학이든 인문과학이든 관점이 무척 중요하다. 자연과학에서는 엄밀한 증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논쟁이 될만한 것이 없다. 올바른 것과 틀린 것이 확연히 가려지는 곳이 자연과학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에서는 사람에 따라서 어떤 현상이 올바른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경제학만 하더라도 학자들 사이의 관점은 매우 치열한 편이다. 스탠포드대 후버연구소에 재직했던 토마스 소웰(Thomas Sowell)은 자신의 걸출한 저서 즉, ‘세계관의 충돌(The Conflict of Visions)’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세계관, 즉 관점이 다른 학자들은 세상 혹은 역사적 사실 혹은 정책을 아주 다르게 바라본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도 작은 정부와 규제완화 그리고 민영화 등과 같은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들은 학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 않다. 시카고대학을 중심으로 과거에 오하이오주립대 등 몇몇 학교에서 그런 류의 주장에 동조하는 학자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었다. 나머지 대학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학자들은 적절한 정부개입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 거시경제에서는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케인즈학파에 손을 드는 학자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 개입을 축소하고 개인의 선택에 더 많은 것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유주의 경제학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신자유주의 학파라 불리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 걸출한 학자 가운데 한 명이 프리드리히 폰 미제스이다. 오스트리아학파에 속했던 그는 정부 개입을 옹호하는 학자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던 1950년대 이후의 미국 경제학계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기가 힘들었다. 오래 전에 미제스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 미국 또한 1950~60년대 학계 분위기가 이렇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선호한다. 이런 성향은 선후배 문화와 진영논리가 큰 영향을 미치는 한국의 사회 및 인문과학계에서 더 심할 것이다. 필자가 사학계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그러나 386세대가 사학계의 대세를 차지하고 있다면 어떤 관점을 가진 학자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을지를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한국사의 쟁점들이 신문지상에 소개될 때마다 나는 겉으로 드러난 문제에 주목하기보다는 현상의 밑바닥에 관심을 갖게 된다. 한국 사학계는 거대한 다수 의견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이들 외에는 대학에 자리를 잡기가 무척 힘들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이는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한국의 경제사학계서도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그래도 경제사학계는 실물을 다루기 때문에 전통 사학계에 비해서 훨씬 현실과 괴리된 관점이 주류를 차지하기는 쉽지 않다.
일반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학자들이 주류를 차지하고 나면 나머지 사람들은 목소리를 제대로 높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일반 사회나 학계나 간에 진영논리가 무척 드센 편이다.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사실을 놓고 논쟁을 하기 보다도 ‘우리’와 ‘그들’이 강하게 나누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고대사는 유물이나 사료를 바탕으로 주장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진영논리의 영향이 다소 덜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의 경우는 바라보는 사람이나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대학 교수들은 한번 임용이 되면 거의 평생을 대학에서 보내게 된다. 따라서 어떤 관점을 가진 교수들이 주류를 차지하면 어느 학교든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채용할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면 특정 관점이 증식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아마도 한국의 사학계가 그런 상황에 놓여 있지 않는가라는 추측을 해 보게 된다. 만약에 이런 상황이라면 특정 관점을 지나치게 반영한 역사책들이 교과서의 주류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해 학자들은 저마다의 소신이나 믿음에 따라 자신의 고유한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예를 들어, 북한에 의한 남침을 북한이 의도적으로 일으킨 사건이라기보다도 당시의 시대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류의 주장을 펼칠 수도 있다. 그것은 학자의 양심의 문제이기 때문에 논문을 통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일은 어느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한국사, 더 좁게는 현대사에 대해서는 자신의 사관을 지나치게 내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필자는 국정이나 독점이나 정부 개입과 같은 용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대신에 경쟁이나 시장원리 그리고 개인의 선택과 같은 용어를 선호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용 교과서에 특정 학자나 특정 진영의 관점이 지나치게 반영되고 이를 시정할 방법이 없다면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정부 개입이 최선책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학계 분위기를 미루어볼 때 피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한국사는 한국민의 집단적 기억을 후세들과 공유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사학자들만의 영역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 현대사의 기념비적인 사건들에 대해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묘사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정부 개입이 최선이 될 수는 없지만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이 치열하게 내부에서 논쟁을 벌리고 이를 바탕으로 교과서는 정리된 의견이 실려야 된다고 본다.
특정 분야를 깊이 파고 들다보면 오히려 균형잡힌 시각을 놓칠 수도 있다. 근래에 한국사를 둘러싼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이 교과서에 버젓이 실리는 것을 보면서, 사학자들 가운데 일부가 편협함이란 덫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 가를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정부 개입이 최선은 아니지만 한국적 상황에서 집필진과 위원회를 다른 시각의 학자들로 구성하고 이를 기초로 반듯한 교과서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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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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