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활동비 예산은 큰 폭으로 증가해왔다. 2001년 4,954억 원이었던 특수활동비 예산은 2015년 8,810억 6,100만 원으로 77% 이상 증가했다. 증빙의 의무가 없어 ‘깜깜이 예산’으로 불리는 특수활동비는 십여 년 전부터 논란의 중심이 되어왔지만 여·야는 정치셈법에 따라 입장을 바꾸며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지난 9월 7일 양당 원내대표들이 특수활동비 제도 개선을 위해 힘을 합치기로 했지만, 괄목할 만한 결과를 도출할지는 지켜 볼 일이다.

8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예정됐던 8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특수활동비 개선 소위 건을 놓고 여야의 대립으로 열리지 못하며 본회의장이 텅 비어있다.

특수활동비란
특수활동비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말한다. 주로 국정원, 군, 검찰, 청와대 등의 첩보활동이나 비밀수사에 사용하도록편성된다. 특수활동비의 운용 세부 지침은 중앙관서의 장이 마련하도록 돼있다. 감사원의 ‘특수활동비에 대한 계산 증명지침’에는 특수활동비를 현금으로 미리 지급한 경우, 사용처가 밝혀지면 경비집행의 목적달성에 현저히 지장을 받을우려가 있는 상황에 한해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수활동비가 문제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수증 첨부가 필수적이지 않기 때문에 사적 유용 가능성이 크다. 감시·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묻지마 예산’, ‘눈먼 돈’, ‘권력자의 쌈짓돈’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특수활동비는 2011년 8,515억 원에서 2012년 8,441억 원으로 줄어드는 듯했으나 2013년 8,511억 원으로 늘었고 2014년에는 8,672억, 올해는 8,810억 원으로 증가했다. 2015 특수활동비 부처별 예산을 보면 국가정보원이 4,782억 원으로 가장 많고 국방부는 1,793억, 경찰청 1,263억, 청와대가 266억, 국회가 84억 원 순이다.

2015년 특수활동비 예산은 8,810억 원에 달하며, 부처별로는 국정원이 4,728억 원의 예산을 배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리의 온상이 된 특수활동비
지난 5월, 홍준표 경남지사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비자금은 ‘국회 대책비(특수활동비)’로 만든 것이라고 해명해 논란이 일었다. 신계륜 새정치연합 의원도 상임위원장 직책비 일부를 자녀 유학비로 썼다고 털어놔 논란을 증폭시켰다.

2015년 국정감사에서는 경찰청 내부의 특수활동비 부정 사례가 적발돼 또 한 번 논란이 일었다. 광주의 한 경찰관은 6개월간 근무가 없는 비번에 사용한 식대 150만∼200만 원을 수사비로 부당 청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적발된 사례 대다수는 수사관이 비번 때 수사비를 사용하거나 관외 지역에서 유류비를 사용하다가 적발됐다.

특수활동비가 문제가 된 것은 꽤 오래전부터다. 2007년 당시 김성호 법무부 장관이 부산시의회의장 등 유력인사들과 저녁식사비 등으로 600여 만 원을 쓰고 공식 업무추진비 한도액(400만 원)을 넘는 200여 만 원을 특수활동비로 처리했다가 논란이 일자 뒤늦게 사비 처리한 일이 있었다. 2009년엔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노무현 대통령 정부 시절 2005~2007년에 걸쳐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 5,000만 원을 차명계좌에 빼돌린 혐의로 구속돼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같은 해 11월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은 출입기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특수활동비로 기자들에게 50만 원이 든 봉투 8개를 돌린 것이 밝혀졌다. 김 총장은 2년 뒤에도 검찰총장과 검찰 고위간부가 참석한 워크숍에서 9,800만 원 특수활동비를 검찰 간부들에게 격려금으로 나눠줘 물의를 빚었다.

2010년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신 후보자가 문화부 제2차관 재임 시절 13개월간 1억 9,000만 원에 이르는 특수활동비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1년엔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이 2008년 재직시절 업무추진비 명목으로 국정원 특수활동비 2억 5,000만 원을 처남 명의 계좌로 빼돌린혐의로 기소됐고, 2013년 11월 국회 정보위원회 국감에서는 국가정보원이 불법 대선개입 혐의를 받고 있는 심리전단 소속 여직원 김모 씨의 댓글작업에 동원된 ‘알바(아르바이트)’에게 월 280만 원씩 11개월 동안 3,080만 원을 특수활동비로 지급한 사실이 확인됐다. 이쯤 되면 특수활동비가 비리의 온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명성 제고해야
문제는 투명성이다.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필요한 정보활동에 쓰인다는 이유로 감시·감독에서 자유롭다. 활동비의 규모와 지출 사항 등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은 9월 24일에 진행된 2015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현재 경찰청에서만 연간 1천억 원이 넘는 특수활동비가 지출되고 있지만 그중 3분의 2는 내역도 모르고 감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부정사용에 대한 처벌과 관리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어떤 내용인지 경찰이 자체적으로 내부 조사를 해 국회의원인 나마저도 자료에 접근이 어렵다"고 비판하면서 “특수활동비 사용내역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수활동비는 영수증 등 증빙자료를 남기지 않고 현금처리가 가능해 사용처가 잘 드러나지 않을 뿐더러 사적 유용 사실이 적발되더라도 사용목적이 적합한지 판단 기준이 불분명해 처벌이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정치논리가 걸림돌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홍준표 경남지사가 5월 9일 새벽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있다. 이틀 뒤인 5월 11일 오전 경남도청 소회의실에서 경선자금 1억여 원의 출처는 아내의 비자금이며, 비자금은 자신의 특수활동비로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기관의 특수활동비 공개·검증문제는 19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 들머리의 최대 쟁점이다. 야당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내에 ‘특수활동비 제도개선 소소위’를 만들자고 주장했고, 여당은 그에 반대하며 평행선을 달리다가 8월 28일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는 아예 열리지도 못했다.
여당관계자는 “박근혜 정부 들어 특수활동비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물가상승률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삭감된 것”이라며 “특수활동비 공개는 심각한 안보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야당 관계자는 “특수활동비를 전면 공개하자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부처에 분산돼 있는 ‘눈먼 돈’을 정리해 삭감하자는 것”이라며 여당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꼬집었다.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공방이 십여 년 동안 이어져 왔지만 일관성 있게 논의되지는 못했다.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여야의 입장이 달라지면서 비리의 진원지가 될 때까지 방치해 둔 것이다.

노무현 정권 당시 한나라당은 “묻지마 예산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며 특수활동비 삭감을 요구했다. 2005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개선을 촉구했던 사안이다. 박 대통령은 “국정원이 쓰는 예산 중 불투명한 것이 많다”며 베일에 싸여 있는 국정원 예산에 대한 국회의견제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각 부처에 국정원이 계상한 특수활동비들이 대표적인 불투명예산이라며 개정안 마련을 당에 지시하기도 했었다. 반면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특수활동비를 핑계로 펼치는 정치공세”라고 대응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두 당의 입장만 바뀐 채 똑같은 주장이 반복되고 있다. 여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특수활동비 개선에 적극적인 반면, 새누리당은 “대법원의 한명숙 전 총리 유죄 판결에 대한 화풀이이자 정치공세”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새누리당은 특수활동비 논란이 국가에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국정원 등 정보기관의 특수활동비는 안보 상황과 연계된 문제로 공개하라는 것은 매우 가벼운 처사라며 새정치민주연합의 태도를 비난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8월 31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5월 홍준표 경남도지사 등 여야 정치인들의 특수활동비가 문제되면서 제도를 개선하자고 여야가 약속한 것”이라며 “이제 실천을 하면 되는데 새누리당이 모르쇠로 나오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안 의원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예산도 기말과 관련된 것은 비공개로 의회에서 보고를 받는다. 의원들이 보고를 받을 때 비공개로 선서를 하는 등 책임에 관한 제도를 마련하면 될 일”이라고 전했다. 여당이 정보기관의 비밀유지와 안보를 이유로 들어 제도 개선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뜻이다.

정치권이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때마다 만지작거리던 카드가 바로 특수활동비다. 국회의 기득권 내려놓기의 일환으로도 거론되었다가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치셈법에 따라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이다.

올릴 때는 ‘만장일치’ 기득권 내려놓기엔 미지근
여야 의원들은 그동안 세비를 올리자는 의견에는 이견 없이 쉽게 합의했다. 올해 세비를 3.8% 올리려다 사안이 공개돼 여론의 질타를 받자 인상 결정을 철회하기도 했다. 반면 특수활동비 규모 삭감에는 미지근하다. 그동안 국회는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는 일에는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어물쩍 넘어가는 모습을 보여 왔다. 여·야의 입장 차 이면에는 국회의 특수활동비도 줄여야 하는 이유도 숨어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특수활동비 삭감을 놓고 이토록 팽팽하게 맞서는 이유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라는 의심의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하는 모습에서 국민들의 비난을 피하기 힘들다.

특수활동비는 국민들의 혈세다. 국민들은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권리가 있다. 의회가 정부 예산 편성을 통제하고 그 지출을 감시하는 것은 본연의 임무다. 특수활동비 내역을 들여다보고 감시해서 국민 세금의 낭비와 유용을 막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모든 내역을 공개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제한된 범위의 예산 전문가들에게 비공개 감시를 받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맞다.

지난 9월 7일 새누리당 원유철,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국회에서 만나 특수활동비 관련 개선안을 다음달 27일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여야공방으로 본회의가 무산되는 등 진통을 겪었지만, 제도 개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데 합의한 것이다. 여야는 상임위별로 다음달 27일까지 특수활동비 개선안을 마련해 내년 예산안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다음 달 중에 특수활동비 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실시할 예정이다. 여·야 모두 책임감 있는 자세로 제도 개선에 임하길 기대해본다.

김의상 기자  estkin@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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