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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OECD 국가 中 자살률 11년째 1위, 부끄러운 자화상경제위기 때마다 자살률 치솟아… 정부대책 시급
한재희 기자 | 승인 2015.10.17 10:54|(187호)

9월 10일은 늘어나는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2003년 제정된 ‘세계자살예방의 날’이다. 자살예방의 날을 계기로 되돌아본 대한민국의 현주소는 암울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건강 통계 2015’에서 한국은 인구 10만명당 자살률 29.1명으로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서 11년째 벗어나지 못했다. OECD 회원국 평균 12.0명보다 2.5배가량 높고, 2위인 헝가리(19.4명)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높다. 정부는 2004년부터 두 차례 자살예방종합대책을 시행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자살률은 좀처럼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4번째로 한국인의 주요 사망 원인이 된 지금, ‘자살 공화국’이라는 멍에를 벗어내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모습. 자살방지를 위해 고안됐다. 9월 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정한 ‘자살 예방의 날’이다. 우리나라는 11년 연속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경제상황이 만들어낸 아노미 상태

연간 자살자 통계를 보면 경제위기 이후 자살률이 급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학자 뒤르켐은 아노미 상태를 자살의 이유 중 하나로 설명했다. 아노미란 사회의 급격한 변화로 질서에 혼란이 발생하거나 사회 환경의 차이, 통제결여 등으로 사회나 개인이 불안정해진 상태를 뜻한다. 즉 개인이 아노미 상태에 빠지면 삶의 가치와 목적의식을 잃고 심한 무력감과 좌절감을 느끼게 되어 심하면 자살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경제적 아노미 상태에 빠져 있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실패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실용정부를 내세운 지난 정권에서는 신자유주의를 더욱 강조했을 뿐, 실패에 대한 보완책을 세우지 못했다. 그 결과 경제적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4에 가까워졌다. 지니계수는 가계간 소득분포가 완전히 평등한 상태를 0으로 상정해 산출하는 지수로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정도가 높아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심화됨을 의미한다. 0.4를 넘으면 상당히 불평등한 소득 분배의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불평등이 심화되고 저성장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그동안 한국사회를 지탱했던 ‘성장 중심 경제질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기존의 경제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리 잡지 못하면서 생긴 공백에 사회는 불안정해졌다. 뚜렷한 질서도, 안전장치도 없는 아노미 상태에 빠진 것이다. 경제적 아노미 상태가 결국 ‘자살 공화국’이라는 우울한 결과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경제 위기 때마다 자살률 늘어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원인통계’를 토대로 분석해보면 경제위기 때마다 자살률이 치솟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통계자료를 보면 자살률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다음해인 98년 18.4명으로 전년대비 40% 급증했다. 성장경제 속에서 실패에 대한 준비가 전무했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쫓겨나왔다. 실업과 실직은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큰 위협이었고, 위협에 내몰린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카드대란으로 신용불량자가 폭증했던 2003년(22.6명)과 글로벌 금융위기에 휩쓸린 2008년(31.0명)도 각각 26%, 15%씩 자살률이 증가했다. 2008년 이후 자살률은 가파르게 올랐다. 2009년 31.0명, 2010년 31.2명, 2011년 31.7명으로 경제위기로 한 번 치솟은 자살률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점도 보여주고 있다.

2014년 통계청이 전국 1만 7664가구 13세 이상 3만 7,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사회조사 결과 지난 1년 동안 한번이라도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사람은 6.8%였다. 이들이 자살을 생각한 이유로 ‘경제적 어려움(37.4%)’이 가장 높았고, 가정불화(14%), 외로움(12.7%)이 뒤를 이었다. 10대를 제외한 전 연령에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자살을 생각했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자살의 원인이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병리 현상, 즉 국가 차원의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하고 있다는 뜻이다.

효과 없는 정부정책
11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정부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현 정부가 여러 사회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목표로 추진 중인 복지정책은 경제적 위기에 내몰려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에게 안전망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일본의 경우 자살률이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2010년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06년 자살예방기본법에 따라 1, 2차 종합대책을 수립한 뒤 매년 3,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국가 차원의 대대적인 자살 방지에 나선 결과다.

우리 정부도 손을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3년부터 ‘자살 공화국’ 오명을 쓰기 시작하면서 2004년에는 ‘자살예방정책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자살 고위험군 관리에 집중한 1차 종합계획과 사회안전망 구축을 골자로 한 2차 종합계획이 끝난 후 2011년에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 제정돼 시행되었다. 하지만 2004년 1,2차 종합계획은 관심 부족 등으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지난해 시행됐어야 할 3차 종합대책은 아예 발표조차 안 되고 있다. 자살방지를 위한 후족조치가없는 상황이다. 자살 예방 관련 예산 역시 고작 86억 원에 불과하다. 정부가 자살 예방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국가차원 종합적 대책 마련 필요
자살의 이유가 사회·경제적 요인에 있다는 점에서 자살률이 자연적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전문가들은 빈곤문제, 복지 사각지대 해소, 경제적 불평등 해소 등을 포함한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만이 자살률을 낮출 수 있는 해법이라고 말한다.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안전망이 있어야 자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이후에도 사회보험이나 연금을 통해 개인이 희망을 갖고 회생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 교수는 “경제적 타격이 누적되면서 만성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택하게 된다”며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는 근본적인 대책과 자살위험군의 심리적 불안감을 체계적으로 치료해 주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조선진 카톨릭대학 교수도 “자살예방을 위한 예산과 인력 문제를 해결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살방지를 위한 정책결정을 위해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더불어 자살의 원인이 경제적 요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연령·소득 등 사회적 요인에 따라 다양한 만큼 상황에 맞는 맞춤형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국무총리 산하에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자살로 인한 직간접적 사회적 손실비용이 6조 5천억 원에 이른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대응해야 할 국가적 과제다. 범국가적 예방·치료 시스템이 치밀하게 구축된다면 해결할 수 있는 질병으로 인식해야 실효성 있는 정책 수립이 가능해진다.

언론도 자살 방지에 힘써야

2014년 10월 31일 생활고에 시달리던 독거노인 최모 씨가 목숨을 끊으며 자신의 시신을 수습하러 올 사람을 위해 남긴 봉투. 자살을 이해시키려는 언론보도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 언론보도는 자살을 말리는 것이 아니라 부추기고 있다. 자극적인 단어선택과 보도방식이 문제다. 흥미를 유발시키는 선정적인 제목과 함께 지나치게 자세한 설명으로 자살에 대한 공감을 높이고 있다. 자살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는 경우 수용자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하고 자살을 합리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공과금과 자신의 장례비를 봉투에 담아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개의치 마시고”라는 글귀만 남긴 채 생을 마감한 최모 씨, 송파 세 모녀 사건 등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택한 자살이었다. 언론은 그들이 왜 자살을 택했는가에 초점을 맞춰 방송했고, 사람들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의 자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정부의 후속대책들이 어떻게 시행되고 실효성은 있는지, 보완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질타하는 언론은 극소수였다.

핀란드의 경우, 사회적으로 개인의 자살에 대해 조명하지 않으며, 설사 시청률을 의식하여 조명할 경우 강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가령, 5년 전 유명가수인 만디 람피가 자살했을 때도 “만디 람피(19)는 수요일 갑자기 사망했다”로 보도하였으며 어떻게 죽었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자살 방지에 힘쓰고 있는 일본은 물론, 미국과 호주 정부 모두 언론에 협조를 부탁했다. 자살보도를 최소화하고, 보도를 해야 한다면 단편적 사실 전달에 그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 마련을 촉구했다. 언론사들 역시 증가하는 자살률에 책임감을 느끼고 보도준칙을 세웠다.

우리나라 역시 2004년 한국기자협회가 ‘자살 보도 권고기준’을 마련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언론은 그동안의 보도 태도를 자성하고 자살방지에 힘을 보태야 한다.

한재희 기자  wisehan@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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