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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안보위기타개①朴 대통령 원칙 앞세워 단호한 대응, 43시간 걸친 ‘빅딜'깜짝 성사에 사전 접촉할 틈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협의
김의상 기자 | 승인 2015.09.09 10:17|(186호)
지난 22일 북한의 제안으로 시작된 무박 4일, 43시간이라는 이례적 협상 진기록을 남긴 마라톤협상은 ‘8·4 북 지뢰 도발’에 대한 명시적 사과를 거부하던 북한이 막판에 유감 표명을 하기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25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엄중한 한반도 위기상황 속에서 사전 실무접촉이 이뤄질 틈도 없이 남북 고위급 인사들이 갑자기 마주앉아 남북관계 현안을 하나하나 협의해야 했기 때문에 협상장에는 전례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2+2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단호한 응징’ 원칙을 꺾지 않으며 북한의 DMZ 목함지뢰 도발 인정을 이끌어냈다. 북한이 지뢰폭발 사건에 대한 유감을 표명함에 따라 우리 정부도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는 빅딜이 극적 타결됐다.
 
   
▲ 북한의 포격도발로 인한 대치상황과 관련해 남북 고위급 접촉이 열린 8월 22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우리측 대표인 김관진 청와대국가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북측 대표로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가 비공개로 회담을 하기 전 악수를 하고 있다.
2+2 밤샘 마라톤협상
북한이 ‘군사적 행동’을 예고한 8월 22일 오후 5시를 고작 2시간 앞두고 남북고위급 회담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21일 오후 4시 북측이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명의로 먼저 접촉 제안을 했다. 청와대는 이에 두 시간 후인 오후 6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명의로 “김양건 당 비서가 아닌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접촉에 나오라”는 수정 통지문을 보냈다. 이후 두 번의 통지문이 더 오간 뒤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오후 3시 긴급 브리핑을 갖고 회담 예정을 발표했다.
 
이날 남북고위급 회담은 우리 측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북측 황병서 총정치국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겸 노동당 비서가 참석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2+2 회담으로 진행됐다. 북측이 김양건 비서 명의 통지문을 통해 먼저 대화를 제안하고 남측의 수정안에 대해 다시 수정안을 제시하는 등 적극 응한 것에서도 북한이 이번 사태를 대화로 해결할 생각이 있음을 보였다.
 
한편, 북한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 등 북한 언론은 이날 회담을 타전하며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노무현 정권을 마지막으로 그동안 북한 언론은 우리 정부를 ‘남조선 괴뢰’, ‘괴뢰당국’ 등으로 지칭했다. 보수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이 대한민국 국호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북고위급 접촉이 성사된 지 1시간 30여 분 만에 북한 언론이 소식을 전한 것 역시 기존 보도 행태와 비교했을 때 매우 신속한 것이었다. 이 같은 북한 언론의 태도 변화는 북한 정부의 대화 의지를 드러냈던 것으로 해석된다.1차 협상이 22일 오후 6시 30분 시작돼 23일 새벽 4시 15분까지 거의 10시간 가까이 계속됐고, 2차 협상은 23일 오후 3시 30분 시작돼 25일 0시 55분까지 나흘간 계속됐다.
 
‘사과’ 표현 합의에 시간 걸려
남북 접촉은 22일 오후 6시 30분경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시작해 1·2차를 합쳐 43시간 넘게 진행됐지만 협상 막판까지 북측의 사과 문구 표현과 수위를 합의하는 데 난항을 겪었다. 24일 저녁에도 타결 직전까지 간 협상이 다시 난항에 빠진 것은 남북이 공동보도문 작성의 큰 틀은 합의했지만 미세 조정 작업에서 이견을 보였기 때문이다.
 
22일 평화의 집에서 마주앉은 남북 대표단은 기조발언을 주고받은 후 협상을 벌이다가도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훈령을 받기 위해 정회하기를 반복하며 ‘대리 정상회담’을 연상케 했다.
 
23일 오후 3시 30분부터 재개된 2차 협상에서도 1차 때와 마찬가지로 남북 접촉 상황이 협상장의 오디오 및 비디오 기기를 통해 청와대와 주석궁에 실시간으로 전달됐으며 공동보도문 작성 국면에 들어서는 양측이 초안을 제시한 뒤 본국의 지침을 받아 조율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남북 협상 대표단은 협상 전략의 노출을 우려, 도·감청이 불가능한 직통 회선을 통해 지도부에게 지시를 하달 받거나 연락책을 직접 본국으로 보내는 방식을 취했다. 북한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평양으로 이동해 김 위원장에게 대면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24일 오전 3시간 이상 협상이 정회된 것은 이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사과의 주체를 북한으로 명시하는 것과 ‘사과’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데 거부감을 나타냈던 북한이 25일 새벽 ‘유감’ 표명으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합의의 실마리가 마련됐다. 
 
25일 발표된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 공동보도문’에 따라 북한은 노동신문 25일자 4면에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준전시상태를 해제하는 한편, 우리는 25일 정오를 기해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모든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
 
무박 4일간의 마라톤협상에서 남북 대표단이 가장 애먹었던 부분은 ‘북한의 지뢰 도발 책임 인정과 사과, 재발 방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박 대통령이 2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협상의 마지노선을 ‘확실한 사과와 재발 방지’라고 제기한 것이 협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 접촉은 남북 간 군사적 의제뿐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과 ‘5·24 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관계 전반이 협상 테이블에 오르면서 더욱 쉽지 않았다는 평가다.
 
대북 확성기 방송, 북한 인민 심리전의 핵무기
   
▲ 대북 심리전은 북한에 가장 효과적인 비대칭전력이다. 사진은 대북 심리전에 쓰인 확성기.
북한이 48년 만에 포격 도발까지 감행한 것은 우리 측의 대북 확성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선제 포격에 이은 우리군의 대응 포격 이후 남북은 더욱 첨예하게 대립했다. 북한은 포격 도발 직후인 20일 오후 김양건 당 중앙위 비서 명의의 서한과 북한군 총참모부 명의의 전통문을 통해 대북 심리전 중단을 요구했다. 북한은 서신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은 선전포고”라면서도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고 했다. 전통문에서는 “오늘 오후 5시부터 48시간 내에 대북 심리전 방송을 중지하고 모든 수단을 전면 철거할 것과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우리 정부 역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경기도 용인 제3야전군사령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추가 도발 시 즉각 대응’할 것과 ‘선 조치 후 보고’를 주문하는 등 강력한 지시로 북한에 맞대응했다.
 
심진섭 한국교통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대북 심리전이야말로 북한 정권이 핵무기보다 더 두려워하는 비대칭전력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군 관계자는 “김정은 정권 입장에서 김 씨 일가 3대 세습과 비리, 독재 권력 내부의 부도덕성을 고발하는 대북 확성기는 참을 수 없는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다. 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북한 당국은 주민들이 외부 세계에 눈 뜨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면서 “대북 확성기 방송 등 북한 정권의 실체를 알리는 대북 심리전은 김정은 정권에게는 정권의 존립 기반이 되는 사상과 체제를 뿌리째 흔들 수 있는 메가톤급 위협”이라고 말했다.
 
외신 “김정은, 벼랑 끝 전술 미숙”
남북 간 긴장이 계속됨에 따라 외신의 관심도 높아졌다. 다수 외신과 해외 전문가들은 이번 북한 도발 사태가 유발한 긴장 수위가 과거 수차례 있었던 남북한의 충돌과는 다른 면이 있다고 주목했다.
 
뉴욕타임스는 22일(현지 시각) 사설에서 “작금의 사태는 주요 강대국들이 세계의 가장 오래된 위협인 핵무장국 북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새삼 상기시켜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AP통신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벼랑 끝 전술’에 미숙한 것이 포격 사태를 둘러싼 우려를 키웠다고 보도했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벼랑 끝 전술의 달인이었으나 김정은 위원장은 그런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통신은 이어 김일성·김정일의 경우 “위협과 도발을 한계점까지 끌고 가면서도 불화가 번지지 않도록 관리하며 양보와 원조를 따내는 위험한 게임을 능숙하게 해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조부, 부친과 같은 능숙함이나 경험이 부족하고 정부와 군의 고위 인사들을 마구 숙청한 터라 조언자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도발 주체 인정하며 유감 표명
   
▲ 박근혜 대통령이 8월 21일 오후 북한의 포격도발과 관련해 경기도 용인의 제3야전군 사령부를 방문, 우리 군의 대응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한민구(왼쪽부터) 국방장관, 박근혜 대통령,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박근혜 대통령은 20일 북한의 포격 도발을 보고받자마자 즉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를 긴급 소집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해선 단호 대응하고 우리 군은 만반의 대비태세를 유지하는 동시에 주민의 안전과 보호에도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하며 북한의 추가 도발이 있을 경우 단호하게 응징할 것을 재확인했다.
 
협상 결과를 놓고 보면 우리 측이 핵심 요구 사항을 관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남북 간 가장 큰 쟁점은 북한이 지뢰 도발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었다. 북은 이 사건을 남한이 날조한 사건이라며 무력 대응을 예고했다. 결국 남북은 긴 시간 협상을 조율하다가 북한이 ‘유감을 표명하는 선’에서 절충했다.
 
북은 그동안 고작 네 번의 사과·유감 표현을 했으며 1968년 청와대 무장공비 침투 때 4년, 1996년 북한 잠수함 동해 침투 때 3개월, 2002년 2차 연평해전 때 1개월 등으로 표현 시기도 늦었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때는 도발 행위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이런 행태에 비춰 보면 이번 ‘유감 표명’은 큰 의미를 갖는다. 유감 표명의 주체가 북한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했기 때문이다. 전옥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는 “우리 대표단이 사상 유례 없는 마라톤회의를 통해서 일촉즉발의 군사적 위기를 막은 것에 상당한 의의가 있다”며 ‘사과’가 아닌 ‘유감’이라는 표현에 대해 “북한 협상 특성을 보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 북한”이라며 “‘북한은’을 주어로 해서 유감을 표명한다는 것은 차선을 택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환경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그동안 특정 사안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주체를 밝히지 않거나 ‘남과 북은’ 등의 표현으로 애매하게 넘어갔다. 북한이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과 더불어 군사적 압박에는 빠른 유감 표명을 보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 측이 북한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전제 조건을 붙인 것도 의미가 있다. 두고 볼 일이지만 북이 언제고 다시 도발 행태를 보이면 언제든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의상 기자  estkin@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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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노동신문은 8월 21일자 1면에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인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조성된 위험천만한 정세에 대처하여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 긴급소집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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