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혜숙 시낭송가는 시를 좋아하던 고등학생 시절 취미로 시낭송을 시작해 국가가 인정하는 프로의 자리에 오른 지 20년이 됐다. 국 여사는 매주 금요일 ‘서초구 금요음악회’ 사회를 보던 1995년 서초구에서 열린 시낭송 대회에 주민들의 추천으로 출전해 최우수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 중 우리나라에 시낭송운동을 일으킨 김수남 전 소년한국일보 사장이 있었고 국 여사의 시낭송 솜씨를 눈여겨본 김 사장이 재능교육에서 주관하는 전국시낭송대회 참가를 권유했던 것이 시낭송가로서의 첫걸음이 됐다. 국 여사는 1997년 전국시낭송경연대회에서 대상인 교육부장관상을 받으며 한국시인협회로부터 시낭송가라는 인증서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국 여사는 본격적으로 시낭송을 하게 됐다.

 

국혜숙 시낭송가는 재능문화와 한국시인협회가 주최하는 전국시낭송경연대회를 ‘시낭송계의 사법고시’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시낭송가 칭호를 받기가 힘들다는 것. 16개 지역의 시도예선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면 세종문화회관에서 치르는 본선에 참가할 자격이 주어지고 본선에서 동상 이상을 입상해야만 한국시인협회로부터 시낭송가 인증서를 받을 수 있는데 매년 인증서를 받는 시낭송가가 고작 20명 안팎이니 시낭송계의 사법고시라는 국 여사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재능시낭송협회는 우리나라 시낭송계의 뿌리로 전국 13개의 협회를 비롯해 중국, 캐나다에도 지회가 있고 중앙회를 비롯하여 지회마다 시낭송 교육을 위한 아카데미를 연다. 또 매년 8월 2박 3일 재능시낭송여름학교 과정을 개최해 발성법 강의와 시낭송 클리닉을 진행하고 국민에게 아름다운 정서를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혜숙 시낭송가는 “예술의 전당, 세종문화회관 등 전문적인 무대부터 노인요양병원과 학교, 지적장애우 시설까지 500회 이상의 시낭송을 하며 보람 있는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서초구립 노인요양센터에서는 마음이 닫혀있어 표정이 없을뿐더러 수족을 움직이지도 못하는 60대 노인이 박두진 시 ‘해’와 정지용 시 ‘향수’ 낭송을 듣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더니 곧이어 손을 하늘로 올리고 대성통곡을 했다. 당시 센터장이었던 박지숙 수녀는 “저 분이 감정을 있는 대로 표출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눈앞에서 이런 기적이 펼쳐져 놀랐다”고 했다.

국 여사는 “시낭송을 통해 많은 곳에서 많은 분의 마음을 치유했지만 아직 교도소는 가본 적이 없다”며 “접촉할 방법을 몰라 가지 못했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꼭 교화를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낭송에 대해 “사람마다 마음에 갖고 있는 정서가 모두 다른데 그 판을 건드려주는 것”이라며 “사람의 여러 마음 중 선한 마음을 끄집어내고 정서적으로 순화시키는 역할을 해준다”고 했다.

 

미국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시낭송을 한다. 미국 국민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는 1961년 대통령 취임식 당시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에게 축시를 부탁 받았다.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 취임식 때는 흑인 시인 엘리자베스 알렉산더(Elizabeth Alexander) 예일대 흑인문학 교수가 ‘이날의 찬가(Praise for the day)’를 낭송했다.

공자는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을 감복시키는데 시만한 것은 없다”고 했다. 언어로 행하는 예술 중 최고로 꼽히는 시를 소리 내어 읊는다는 것은 정신을 지배하고 마음을 움직여 행동을 변하게 하는 힘이 있다. 국혜숙 시낭송가는 “사람의 본성은 터뜨리고 나면 차라리 속이 시원할 것 같은데 그러질 못하고 안으로 삼켜야 하는 속울음이라는 것이 있다”며 “낭송하는 시를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꼈을 때 마음을 풀기도, 안아주기도, 토해내게도 하여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국혜숙 시낭송가는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식 이후 취임식 중 시낭송이 전통이 된 것은 시낭송이 사람 마음에 감동을 주기 때문 아니겠냐”며 “우리나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융성 발전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문화 선진국처럼 대통령 취임식 때 시낭송을 하면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두진 ‘해’

‘해’를 낭송하면 사람들은 온 몸에 새 기운이 돋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해는 희망이요, 광명이자 생명이기 때문에 힘찬 맥박을 느끼게 된다. 소망을 가지고 염원하는 새해, 어려움에 처했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또 병환 중인 분들께 ‘해’를 낭송하면 강한 힘을 얻는다고 해 보람을 느낀다.

 

박두진 ‘청산도’

지리산 아래 산골에서 자랐다. 때로 부모님과 함께 지리산자락을 오르며 청산도를 많이 낭송하곤 했지요. 그래서 청산도를 읊을 때는 지리산자락이 펼쳐지면서 돌아가신 부모님 얼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절절하게 낭송하게 된다. 덕분에 청산도를 낭송하고 나면 감동을 받았다거나 가슴이 뭉클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김성우 ‘돌아가는 배’

김성우 작 ‘돌아가는 배’는 산문이지만 마치 시 같은 산문작품이다. 명문장으로 뽑인 ‘돌아가는 배’ 중에서 일부를 발췌하여 시낭송가 5명이 욕지도 섬 축제 때 야외무대에서 낭송했다. 낭송하는 중간에 박수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낭송이 다 끝났을 때에는 섬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가득했다. 중장년의 남자들에게서 보는 눈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당신의 삶이 담겨져 있고 자기의 이야기를 대변해주기 때문에 가슴이 뜨거워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인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앳되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