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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승절과 대한민국
박상병 시사평론가 정치학 박사 | 승인 2015.09.01 18:11|(186호)
   
▲ 박상병 시사평론가 정치학 박사
아내와 함께 모처럼만에 영화 <암살>을 봤다. 일제 강점하에서 조국해방을 위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80여 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진 듯했다. 가상으로 설정한 여성전사 안옥윤의 활약상이 영화의 흥미를 돋우는 데 결정적인 소재였는데, 실제로 중국에서 조국해방을 위해 뛰어든 우리 여성전사들이 상당수 활동하고 있었음을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
또 한 사람,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약산 김원봉이다. 화면에서 본 것처럼 자신만만했던 해방전사요, 낭만적인 풍모에 지략까지 갖춘 엘리트였다. 기회주의적 노선과는 확실하게 담을 쌓은 약산은 일본 제국주의 심장에 직접 총을 겨누는 정면대결의 길을 택한 인물이다. ‘의열단’은 그 산물이었다. 그가 스크린에서 살아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해방정국의 불행한 역사로 인해 남과 북, 어디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지만 약산이야말로 열혈 해방전사의 몇 안 되는 상징적 인물이 아니던가.
 
한국광복군, 우리도 전승국이다
영화 <암살>에도 잠시 영상이 소개되지만, 일제가 항복선언을 한 뒤 1945년 9월 2일 도쿄만에 정박했던 미군함 ‘미주리호’에서 일제의 항복문서 조인식이 열렸다. 일본 정부를 대표한 외무대신 시게미츠 마모루(重光葵)가 다리를 절며 항복문서에 서명을 하는 모습이다. 잘 알려졌듯이 시게미츠는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투척한 폭탄으로 오른쪽 다리를 잃은 인물이다.
중국은 일제가 항복문서에 서명한 이튿날인 9월 3일을 ‘중국인민항일전쟁승리 기념일(전승절)’로 정하고 텐안먼 광장에서 축하 행사를 갖는다. 올해가 특히 70주년이므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까지 예고된 상태다. 이 날을 기념해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의 초청을 받았으며, 이에 화답해 박 대통령도 중국 방문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재개관식에는 참석하되, 텐안먼 광장의 열병식은 참석하지 말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직도 한국전쟁의 아픈 기억이 남아 있는데, 장렬히 산화한 한국전쟁 용사들을 위해서라도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은 당연하다 못해 당당하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의 한국광복군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과 그 동맹인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그리고 중국군과 함께 2차대전 연합국 일원으로 일부 전투에 참여했던 것도 사실이다. 비록 갑작스러운 일제의 항복선언으로 한국광복군이 계획했던 ‘국내진공작전’이 무위로 끝나긴 했지만 임시정부는 반제민족해방투쟁사의 당당한 주체였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서 당당히 박수를 치는 것도, 또 박수를 받는 것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게다가 열병식에는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중국 인민해방군 부대가 빠졌다고 하니 더더욱 주저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장제스와 저우언라이가 격찬했던 임시정부의 항일투쟁 성과들을 우리가 애써 조심스러워할 이유가 뭐가 있다는 말인가. 오히려 자축하고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포인트도 잊지 말자. ‘전진! 전진! 전진!’하며 텐안먼 광장에서 울려 퍼질 ‘중국인민해방군가(팔로군 행진곡)’, 그 곡을 쓴 사람이 음악천재 정율성(鄭律成) 선생이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서 우리 대학생들에게 언급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그가 작곡한 노래가 전승절 텐안먼 광장에서 울려 퍼질 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뜨거운 감동을 잊지 못할 것이다.
 
누가 임시정부를 욕되게 하나
우리 헌법은 전문에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비록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투사들이 대부분 빠졌지만 임시정부는 일제 강점기 사실상 유일한 망명정부 역할을 했다. 김원봉의 의열단이 훗날 한국광복군으로 편입됐던 것도 대한민국임시 정부의 정통성을 확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 안팎에서 일제 강점기 조국 해방투쟁의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려는 무지와 몰상식의 음모론이 점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대표적인 논점이 이승만을 ‘국부’로 치켜세우며, 올해를 ‘건국 67주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권력 있고 돈만 있다면 역사까지 바꿔칠 수 있다는 오만방자한 행태에 분노가 치밀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한 가지만 짚어 보자. 1948년 5·10 총선으로 선출된 제헌의회는 ‘제헌헌법’을 처리하고 이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승만 대통령을 선출한 제헌헌법은 그 전문에 당시의 정부수립을 (1)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 (2)이제는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한다고 규정했다.
구체적 명시는 하지 않았지만 제헌국회마저 대한민국 건국을 3·1운동으로 탄생한 대한민국임시정부로 규정하고 있으며,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정부를 이전 정부에 대한 ‘재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론 그 이후의 헌법개정에서는 아예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규정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에서도 명백한 것은 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주체인 셈이다.
다만 국권을 상실했기에 망명지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세웠을 뿐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이 명백한 사실을 왜 정치권 안팎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지 그 속내가 궁금할 뿐이다.
이승만정부에서는 잘 알려진 대로 친일세력이 주도권을 쥐면서 사실상 항일투쟁의 역사와 정통성이 빛을 바래고 만다. 친일잔재 청산을 위해 설치한 ‘반민특위’가 친일파 경찰들에 의해 짓밟힌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약산이 월북한 배경도 이것이다. 그러니 친일의 후예들은 항일투쟁의 역사를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대놓고 그런 말을 할 수 없으니 이참에 프레임을 바꿔보려는 계산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정부를 건국으로 설정하고 이에 협조한 친일세력을 건국세력으로 명명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 항일투쟁사가 묻혀 버릴 뿐더러 ‘친일과 항일’의 프레임이 없어지고 친일파들도 건국세력으로 부활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친일의 후예들, 그들은 아직도 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셈이다.

 

박상병 시사평론가 정치학 박사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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