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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전쟁에서 살아남는 법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 승인 2015.09.01 18:06|(186호)
   
▲ 공병호 공병호경제연구소 소장
일반인들에게 금리 인하와 인상은 금방 피부로 와 닿지만 환율 절상이니 절하는 무덤덤하기만 하다. 그러나 한국 경제사에서 큰 위기는 대부분 급격한 환율 변동에서 발생하였음을 잊지 않아야한다. 기본적으로 환율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실제로 외환시장은 환 투기 세력뿐만 아니라 각국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각국 외환당국자들의 의도와 목표에 따라 결정되는 성향이 강하다. 특히 강대국들이 재정정책이나 통화정책으로 기대하는 성과를 거둘 수 없을 때 크게 변동된다.
 
중국 정부는 금리를 여러 차례 낮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위안화 환율을 단 3일 만에 5% 가까이 올렸다. 중국 외환당국자들은 “더 이상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강조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최소한 두 자리 숫자까지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릴 계획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중국은 성장률이 7%대 이하로 떨어지게 되면 사회적 소요의 발생 가능성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체제다. 따라서 사회 안정이란 상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다 동원할 수 있는 체제로 이해해야 한다. 여러 차례의 금리인하나 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싸늘하게 식기 시작한 중국 경제를 반등시킬 수 있는 마지막 카드가 위안화 절하(depreciation)이다. 옥스퍼드대 산하 연구기관인 이코노믹스는 위안화가 10% 절하될 때 한국의 수출은 2015년에 -0.38% 그리고 2016년에 -1.14%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반해 중국의 수출은 첫해에 0.2% 그리고 내년에는 1.16%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리가 경험한 뼈아픈 외환위기는 한편으로는 대기업들의 과도한 부채와 과잉 투자 등에도 원인이 있지만 사실상 방아쇠를 당긴 것은 중국의 과격한 환율정책이었다. 1993년 빌 클린턴이 집권하고 이듬해에 중국은 수출증진을 통한 경제성장률을 끌어 올리기 위하여 위안화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1993년 달러당 위환화는 평균 5.7위안이었지만 1994년에는 무려 51%나 절하된 8.6위안까지 떨어지게 된다.
 
중국의 급격한 환율 인하에 일본이 즉시 반응을 보였다. 일본은 1994년 1달러당 99.7엔에서 1998년130.8엔까지 엔화가치를 떨어뜨렸다. 전해지는 이야기는 ‘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일본 대장성 재무관이 클린턴 정부와 비밀 협상을 벌인 뒤 환율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고 한다. 밀실에서 진행된 이런 움직임을 한국에서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당시 우리나라가 얼마나 무지한 상태였는가를 낱낱이 기록한 책이 강만수,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30년>(삼성경제연구소, 2005)이다. 환율전쟁이 진행되는 위기 상황에서도 다수의 정책당국자들은 강만수 전 장관의 이야기에 의하면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얼마나 한심했던지 그의 책 무려 6페이지에 걸쳐 정부, 한국은행, KDI 등에서 쏟아낸 헛소리 모음집이 실려 있다.
 
중국과 일본 양국이 협조하면서 자국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증진시키는 사이에 한국은 정치 논리에 철저히 갇혀 있었다. 국민소득 1만 달러를 유지해야 한다는 김영삼 정부의 성역화된 정책목표 때문에 모든 정책이 1만 달러 달성에 집중되고 있었다. 여기서 한국 정부는 수입이 증가하고 수출이 감소하여 경상수지가 누적됨에도 불구하고 고평가된 환율을 그대로 방치하게 된다. 강만수 전 장관은 이렇게 후회한다.
 
“1994년부터 3년간 경상수지는 물가와 성장률에 희생된 것이다. 대내 균형을 위해 대외균형이 파괴된것이다. 1996년은 물가를 희생해서라도 환율을 크게 올려 수출을 늘리고 수입을 억제했어야 했다. 10%가 넘은 임금상승에서 가격경쟁력 상실을 보전할 수 있는 수단도 사실상 환율뿐이었다. 매년 5% 정도의 절하만 있었더라도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고임금으로 가격경쟁력이 상실되어가고 있는데 환율까지 평가절상되었으니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MIT의 돈 부시 교수와 하버드대학교의 제프리 삭스 교수는 1997년 1월 원화환율의 절하를 강력하게 권고하고 환율이 유일한 처방임을 지적한 바가 있었다. 사실 1달러당 1,000원에 600~700원으로 원화 가치를 끌어올리면 달러표시 국민소득은 크게 증가한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해외 여행 경비가 감소하고 수입물가가 잠시 늘어날 뿐이다. 결국 고평가 환율 때문에 1990년에서 1997년까지 계속 두 자릿수의 경상수지적자가 두 자릿수로 늘어나고 나라 곳간이 비어갔다. 1994년부터 1996년까지 3년 동안 무려 372억달러에 가까운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원화를 절상하는 방향착오를 선택해서 위기를 가속화시키게 된다.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은 아베노믹스를 ‘동북아 안보질서 재편’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을 위해서 미국이 일본 산업의 부활을 용인하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헤리티지재단에 머물고 있는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런 이야기를 전한다. “한국 산업이 일본 산업의 장애물이 되어 일본경제의 부활이 늦어지고 동북아 안보질서 재편의 시간계획에 차질을 빚는 것을 미국이 달가워할 리없다. 그러다 보니 한국 산업의 손발을 어느 정도 묶어둘 필요성에 미국, 일본의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그러면 미국이 중국의 위안화 절하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일까? 이 역시 아베노믹스로 인한 엔저에 중국 측의 반발에 대한 유화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명시적으로 ‘환율정책’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이미 환율전쟁은 시작되었다.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중국에 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제한된 우리로서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보호해야 하는가라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 국제 유가 및 원자재가격의 하락과 수입 감소로 늘어난 경상수지 흑자폭을 적절히 줄이는 조치를 취하면서 개혁과제들을 차질 없이 진행하면서 환율전쟁에 대비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해야 한다. 이번에는 절대로 환율전쟁 에서 패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내각이나 경제팀에 재정 및 조세 전문가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있어서 걱정스럽다.
<외부 필진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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