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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의 새로운 터닝 포인트
최재영 | 승인 2015.09.01 17:57|(186호)
   
▲ 최재영 본지 발행인 회장
올해 66세, 물론 많은 나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국민의 안전에 직결된 국가적 현안을 놓고 무박 4일 동안 무려 43시간의 마라톤협상을 하기엔 물리적으로 부담스러운 나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1949년생, 동갑내기 두 사람은 이 일을 거뜬히 해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북측의 황병서 총정치국장, 벼랑 끝에선 남북관계를 단박에 대화와 협력의 정상궤도로 끌어올린 주역들이다. 오랜 시간 동안 고성이나 흐트러짐 없이, 서로를 배려하며 주고받는 협상과 타협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번 ‘8·24 합의’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남북관계 대반전의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됐으면 한다.
 
굴복이 아니라 타협을 택했다
국가 간 협상에 완승과 완패가 어디 있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협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예 굴복하라는 것과 다름없다.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의 결과도 타협과 협상의 논리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비록 포격도발에 대한 부분이 빠져서 아쉽긴 하지만 비무장지대의 지뢰폭발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나마 사과를 받아낸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도 오랫동안 북한의 인민통제체제를파괴할 핵무기나 다를 바 없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겠다고 화답한 대목도 원칙이 통했다고 봐야 한다. ‘비정상적인 사태가 아니면’이라는 조건을 단 것이 단적인 예가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 도발 등의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면 대북 확성기 방송은 언제든 재개할 것이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점이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되 명확한 조건을 달았다는 점에서 원칙과 협상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절충의 기술’을 발휘한 것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의 재개 여부, 이제는 북한 측에 달려있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긴 성과라 하겠다.
 
개인적으로 이번 협상에서 가장 관심을 간 부분은 6개항의 합의문 가운데 첫 번째 항을 꼽고 싶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당국 간 회담을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한다는 부분이다. 물론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문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원론과 추상적 합의를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입씨름을 했었던가. 벌써 박근혜정부의 절반이 지나버리지 않았는가. 따라서 단순히 지뢰폭발 문제에 한정하지 않고 남북 간의 다양한 대화채널을 복원시켰다는 점에서 더욱 돋보인다는 뜻이다.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이 첫 번째 항에 대해 서로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접근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은 지난달 4일 벌어진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이 계기가 됐다. 이를 계기로 우리 군 당국은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터진 북한의 포격 도발은 강경한 대북 대응태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도 북한의 도발에는 ‘선 조치 후 보고’라는 간결한 지침을 내리고 군에 대한 신뢰를 거듭 확인했다. 과거 어느 때보다 대북 대응태세가 강력하고 체계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도 이런 일련의 조치가 매끄럽게 잘 이뤄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최고의 공로는 우리 국민들의 몫이다. 북한의 준전시상황 발표에도 불구하고 크게 동요하지 않으면서 군을 신뢰하고 정부의 조치에 묵묵히 따라줬던 국민의 성숙함이 가장 돋보인 대목이라 하겠다. 역시 안보문제에 있어서도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관건이었다.
 
원칙의 박 대통령, 이젠 더 멀리 봐야
다음으로는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와 발 빠른 후속대응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초긴장 국면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군관계자들과 수시로 소통하고, 일선 군부대로 나가 직접 군복을 입고 대응시스템을 점검하는 모습도 돋보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화 채널을 열어 놓으면서도 대북협상의 단호한 원칙을 강조하고 국민적 지지를 호소하는 대목도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미국과의 공조관계를 가동하며 북측 도발에는 강력한 응징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를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북을 초긴장국면으로 몰아넣었다. 한미 전투기 8대가 한반도 상공을 시위 비행하더니, 막판에는 ‘폭격기의 제왕’으로 불리는 B-52 폭격기와 핵잠수함 등 한반도 이동설까지 거론된 것은 압권이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도 이번 사건을 통해 얻은 것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당장 대북 확성기를 걷어내는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으며, 포격사건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지뢰 폭발에 대해서만 우회적으로 유감 표명 정도로 끝냈을 뿐이다. 따라서 김정은 입장에서는 별로 잃은 게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30대 초반의 나이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또 군부를 지휘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그의 권력구조가 이미 확실하게 뿌리 내렸다는 사실을 내외에 과시한 셈이다. 그리고 중국과 미국을 향해 김정은 정권의 존재감을 확실히 부각시켰다는 점에서도 김정은 입장에서는 고무적이라 평가할 것이다.
 
이처럼 남과 북이 서로 한발씩 물러나면서 최악의 국면은 피하고 상생의 효과를 거둔 것은 대화와 타협이 가져다준 가장 큰 성과인 셈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최악의 위기를 피했을 뿐, 경제상황, 체제문제 그리고 북핵문제라는 더 본질적인 위기가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관계 발전이 시급하다. 이제부터가 새로운 시작인 셈이다.
우리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잊힌 지 오래다. 꽉 막힌 남북관계는 경원선 복원공사나 비무장지대 세계평화공원이라는 거대 담론마저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 역시 지금부터가 정말 중요하다. 과감하게 북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박 대통령 특유의 신념과 의지에 따라 ‘통일 대박’의 프로젝트를 구체화시켜야 한다. 남북을 잇는 열차가 경원선을 달리고 시베리아산 석유나 가스를 실은 열차가 남쪽으로 내려오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기쁘다. 혹여 비무장지대 일부가 평화공원으로 조성된다면 세계적 사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남북 정상이 만나는 꿈도 꿀 수도 있다. 아직도 시간이 있다. 어쩌면 이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 운이 좋은 대통령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수구보수 세력의 구태의연한 성화에 멈칫해선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진정으로 자신을 던질 수 있는 통일대박의 꿈이 대한민국의 희망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최재영  poeco@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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