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학랭킹센터(CWUR)가 발표한 ‘2015년 대학 평가 순위’에서 연세대학교가 100위 내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 1·2·3위는 미국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로 세계적인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정갑영 총장은 “창립 130주년인 해에 세계 대학 중 100위권 내에 들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서울, 원주, 송도 캠퍼스까지 규모가 큰 연세대학교가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세계대학랭킹센터는 설문조사나 대학이 제출하는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객관적 검증이 가능한 정량 지표만으로 평가하는 점이 특징이다. 학교의 크기에 비례해 세계적인 상을 받은 졸업생의 수와 학교의 크기에 비례해 세계 최고의 회사에서 CEO로 있는 졸업생의 수, 세계적인 상을 받은 교수의 수, 유명 학술지에 등재된 연구논문의 수, 논문인용 특허 등이 평가 기준이 된다.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평가된 만큼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세계 저명한 대학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할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정 총장은 ‘자율형 사립대학’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사립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면 그만큼 경쟁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자율형 학교는 유치원에서부터 초, 중, 고교까지 허용되어 운영 중인데, 유독 대학교만이 그 범주에서 빠져있다. 자율형 사립대학이 도입되면 등록금 인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적 요인이 교육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 정부 역시 섣불리 도입할 수 없는 입장이다. 높은 학구열과 고등교육에 대한 욕구가 높은 한국사회에서 교육기회의 보장은 중요한 문제다. 

 

그는 우려에 대한 답을 내놨다. “미국 아이비리그(Ivy League) 대학들의 사례를 보면 됩니다. 자율형 사립대학의 목적은 등록금 인상이 아니죠. 입학제도나 등록금 제도 등에 자율성을 허용해 주면 사회적 책임감은 더욱 커지게 됩니다. 교육소외계층을 위한 장학제도를 폭넓게 운영하는 등 교육기회 형평성에 기여할 것입니다.” 세계적인 엘리트를 키워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전달했다. 연세대학교는 어려운 천민,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미국 초대 선교사였던 언더우드가 창설한 언더우드 학당(경신학교) 역시 고아들을 위한 교육 장소였다. 정 총장이 소외계층을 위한 제도를 만들겠다고 한 답은 연세대학교의 교육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묻자, 아쉬운 점이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2011년 반값 등록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반값 등록금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정부가 4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 등록금을 지원하기로 하면서 반값 등록금을 위한 공약은 실현됐다. 하지만 대학현장에서는 정책 효과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소득분위를 나눠 차등 지원한다는 것이 정책의 골자인데 실질 소득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거주 중인 집이 소득으로 환산되어 장학금 혜택을 보지 못하는 학생들도 있다.

 

“반값 등록금 정책의 경우, 정부가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비해 개개인의 학생들이 받는 지원금은 적은 액수일 가능성이 있죠. 때문에 세계 수준의 연구가 이루어지는 대학원을 지원하는 ‘BK21사업’에 더 집중했으면 합니다. ‘BK21사업’은 국내 산업체와의 산학협동을 통해 산업체의 발전과 국제경쟁력 제고를 1차적인 목표하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이나 창조경제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키워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앞으로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경쟁력 강화에 힘써야 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인위적인 구조조정이나 규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학은 차별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경쟁력 확보는 곧 세계 대학과 경쟁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대학이 스스로 힘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자율형 사립대학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때다.

 

최근 메르스 사태에서 우리 사회의 재난안전관리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체계화되지 않은 질병관리와 안전관리는 국민의 불안감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손실을 발생시킨다. 미래의 위험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정총장은 일찌감치 ‘국가재난병원’ 설립을 제안했었다.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국가재난병원’에 대한 화두를 던진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사건을 당하고 겪는 외상후스트레스, 트라우마를 치료·관리할 의료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가재난병원 설립은 정부주도만으로는 힘든 일입니다. 첫째로 많은 자본이 필요한데 국가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능력 있는 의료진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때문에 민관이 함께 하는 것을 제안 드린 것입니다. 제안 이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국가재난병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재난병원의 경우 재난 대처를 기본으로 하는 병원이다. 평소에는 일반 병원처럼 진료를 하다가 재난이 발생하면 재난병원 체제로 전환해 응급치료를 수행하는 시스템을 기본으로 한다. 정신적 외상이나 바이러스 감염 등 유형에 맞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정갑영 총장이 국가재난병원 설립에 적극적인 이유는 창립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선교사 호러스 알렌이 1885년 연세대의 모체인 제중원을 설립하고 의료를 통한 사회 공헌을 실현했던 것이 연세대의 창립정신이 되었다. 연세의료원이 적자 요인이 많은 어린이병원과 재활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연세세브란스병원의 의료진들은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병원을 통해 수익을 내겠다는 생각보다는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합니다. 환자들이 저희 병원에 높은 신뢰감을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높은 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공헌에 힘쓰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연세 세브란스병원이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도 정 총장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지난 3월, 리퍼트 미국대사가 피습을 당하자 가까운 병원을 두고도 세브란스 병원을 찾았다. 까다로운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인증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JCI 인증은 ‘환자안전’과 ‘양질의 의료서비스’ 등 국제 표준의료서비스 심사를 거친 의료기관에 발급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세브란스병원이 최초로 획득했다.

 

정 총장은 연세대학교가 제3창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의 시작은 18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혜원 설립에 이어 세브란스의학전문과 연희전문의 출범이 제1창학기다. 1957년 세브란스의과대학과 연희대학교가 통합하여 제2창학을 맞이했다. 그가 취임한 후 제3창학을 위한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

 

정갑영 총장이 취임하며 내건 공약 역시 새로운 도약을 위한 것들이었다. 송도 캠퍼스 RC프로그램의 정착과 백양로 재창조 사업, 기숙사(우정원)·경영대학 건물 준공이 그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학교 신문인 ‘연세춘추’에는 과연 지켜질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 글이 실리기도 했다. 그럴 만했던 것이 백양로 재창조 사업은 10년 전부터 계획되었으나 번번이 실행되지 못했고, 경영대학 건물 신축 역시 12년이나 계류되어 있던 사안이었다.

 

정 총장은 “그동안 미루어져 왔던 사업들을 제가 맡아서 진행하게 된 것 같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지만 혁신을 위한 강한 의지가 없었다면 해낼 수 없는 일들이었다. “제3창학은 혁신입니다. 기본적인 인프라를 만들고 혁신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백양로 공사나 대학건물 증축과 같은 하드웨어뿐 아니라 내부 행정 시스템 개혁 등의 소프트웨어 개혁도 진행 중이죠.”

 

백양로 공사는 마무리단계다. 다음 달 말 지상이 개방되고, 10월 초에는 지하공간도 이용 가능해진다. 내부적으로는 교직원 인사 제도를 단순 호봉제에서 성과 연동제로 전환했고 행정시스템을 개혁했다. 비정규직 상근직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방안도 마련해 지난 2월부터 시행 중이다.

 

연세대학교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130년의 역사 속 30만 연세인과 함께 발전해 왔다. 정갑영 총장은 부드러운 얼굴 속에 강한 도전정신과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제3창학을 위한 인프라는 거의 마련이 되었습니다. 연구 역량 강화를 위해서 세계 석학 교수를 영입하고, 한국의 대표적인 학자들이 연세대학교에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연세대학교가 아시아 최고의 명문으로 발전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