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세운 계획이 틀어졌다. 관료 중에서도 엘리트로 이뤄졌다는 경제부처가 불경기로 위신이 떨어졌다. 물론, 메르스와 가뭄 탓이 크기는 하다. 해결 방안은 추경이다. 국회는 지난달 24일 11조 5천억 원에 달하는 예산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추경 논란의 정점은 7월부터지만, 기미는 이미 6월 초부터 있었다. 당시 가계와 기업이 경기회복을 주도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경제계에 만연했다. 직전 달인 5월 수출이 부진했고 2/4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분기와 비교해 하회할 가능성이 컸다. 실상 집계하니 5월 수출액이 전년동기 대비 11% 감소했고 경제성장률 역시 1.0%가량 부진했다. 이 같은 수치와 함께 가계 부문에서 메르스 사태가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힘을 얻었다. 결국 추경으로 가닥이 잡혔다. 전년도 세월호 참사가 소비 위축을 불렀듯, 메르스와 가뭄이 맞물려민간 부문이 자생적으로 동력 역할을 하기 어려웠다.

 

올 하반기 추경 규모는 11조 5천억 원을 훌쩍 넘는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곳은 보건·복지·고용 분야다. 올해 본예산과 비교해 해당 분야는 4.7조 원에 달하는 예산이 추경으로 늘었다. 이외에도 문화·체육·관광(0.3조 원), 사회간접자본사업(1.3조 원), 산업·중소기업·에너지(1.7조 원) 등이 올해 초 계획보다 증가했다. 천문학적 수치지만, 실제 나가야 할 돈에 비해선 턱없이 부족하다. 예산을 바라는 쪽에서는 늘려야 하는데, 그렇다고 없는 돈을 마냥 찍어낼 수는 없다.

 

재원이 없으니 추경 가운데 9조 원이 넘는 금액이 국채다. 나머지는 한국은행 잉여금과 전력산업기반기금, 고용보험기금 등 각 부처의 여유 자금 등으로 충당된다. 이로써 정부 부채는 579조 원을 넘어선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종전 35.7%에서 37.5%로 1.8%포인트 오른다.

 

이 때문인지 추경을 바라보는 시각에 우려감이 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이를 두고 걱정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우리나라 재정적자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해 양호하다는 얘기다. 실상 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2014년 말 기준으로 노르웨이, 호주, 스위스 등과 최하위 수준에 있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부채 증가 속도 역시 낮은 편에 속한다. 결국, 정부 입장은 경기회복을 목적으로 돈을 푸는 데 긍정적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이 나빠지는 게 불가피하다. 하지만 시기를 놓치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주변 국가보다 뒤처질 수 있다. 다른 나라 역시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벗어나려 확장적 재정정책을 추진했다. 게다가 공격적이었다. 국가채무가 늘지만, 우리나라 재정 건전성은 국제적으로 양호한 수준에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경기회복으로 경제성장률이 높아져야 세입도 늘고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재부의 입장을 대변하듯 수치상으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조금씩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다. 경제부처의 판단이 현재까지 옳았다는 방증이다. 지난 2012년 연 2.3%, 2013년 연 2.9%, 2014년에는 연 3.3% 성장률을 기록했다. 세계경기회복에 힘입어 국내도 경제가 호전됐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이처럼 경제성장률을 조금이나마 높이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은 확장적 재정정책, 즉 추가 예산 집행이다. 빚 규모가 늘어나 비난 여론이 일겠지만 딱히 방법이 없다. 그나마 지난 6월과 7월 사이 대한민국을 강타한 메르스로 올해 추경 편성은 이전보다 자연스러웠다.

 

야당에서 ‘슈퍼추경’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금액은 더 커질 수 있었다. 모 민간 연구소는 두 배에 달하는 돈이 경기회복에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11조 5천억 원이 아닌 22조 원을 제안했다. H 연구소는 지난 6월 경기침체가 예상보다 심하다는 이유로 ‘울트라 추경’을 요구했다. 세수 결손에 따른 재정절벽 발생을 방지하려 10조 원가량의 세입 추경이 필요하다고 봤다. 세입 추경 이외에도 성장률 3% 달성을 위해서 12조 원 정도의 세출 추경이 추가로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야당 지도부의 거센 반발과 빚 걱정에 부딪히지 않았다면 건국 이래 전무후무한 추경이 이뤄질 뻔했다.

 

정부와 재계는 성장률 3%대를 달성하려는 욕심이 강하다. 2년 연속 2%대 성장률을 보이다 지난해 간신히 3% 성장률로 올라섰는데 아쉽다는 얘기다. 야당에서 지적했듯 후대에 전가하는 채무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려 한다는 지적이 여기서 나온다. 일반 가정은 소득을 있을 경우 빚 갚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국가 채무는 다르다. 갚을 길이 없다. 늘어갈 뿐, 줄어드는 게 애초 불가능하다. 추경 규모를 마냥 늘릴 수 없는 이유다. OECD 회원국 평균보다 우리의 재정 건전성이 낫다고 하지만, 일부 국가의 재정 악화가 심해서 평균치가 높아진 탓도 있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유로존 국가들이 글로벌 경제위기로 재정 상황이 극히 나빠져 있다. 특히 그리스는 채무 덫에 걸려 헤어나올 길이 막막하다. 국가 전체가 디폴트 우려로 시달리는 중이다. 이처럼 OECD 회원국 가운데 유로존 국가의 재정이 악화된 상태다.

 

하지만 올해 추경은 정부의 확고한 방침과 여당의 지지로 국회에 제출된 지 18일 만에 가결됐다. 특히 여당 정책위의장 김정훈 의원 등 새누리당 신진 지도부는 정부 입장을 적극 옹호했다. 그는 “사람에게 응급약을 투여할 때 시간 맞춰서 정량을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약도 버리고 사람도 버린다. 추경은 어려운 국가 경제를 살리기위한 응급처방이다. 경기침체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빨리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도 추경이 필요하다”며 본회의 통과를 채근했다.

 

반대편에서 예산 낭비를 막아야 할 야당도 시늉에만 그쳤다. 의원 각자가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늘릴 기회여서 극렬한 반대 의사를 표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간 야당 집권 시절에도 추경을 세 차례 한 바 있어서 마냥 비난할 입장이 아니었다. 1998년과 2004년, 2005년도 정부는 추경을 집행한 바 있다.

 

재정 건전성 논란도 있었지만 다른 진통도 있었다. 이번 예산안을 논의하면서 기존에 불거진 문제점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른바 ‘쪽지예산’을 비롯해 ‘총선용 선심예산’ 등 여·야 의원이 합심해 재원을 확보하려는 이합집산이 목격됐다. 강동원 의원은 추경 심의과정에서 “현행 국가재정법 제89조(추가경정예산안의 편성)에는 정부가 추경 예산안을 편성하는 사유가 명시돼있다.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나,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일부 예산이 도로, 철도, 댐 등 일반적인 SOC 사업에 치우쳤다. 정부가 제시한 추경 편성 사유인 메르스, 가뭄과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이어 “(예를 들면) 2015 회계연도 본예산 심사에서도 삭감된 ‘평화의댐치수능력증대(350억 원)’, ‘민자유치건설보조금(1,500억 원)’이 추경에 편성됐다. 국회 심사에서 삭감한 사업을 정부가 슬그머니 끼워넣는 것은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무시하고 무력화시키는 행태”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이처럼 매번 예산안 통과 시 불협화음이 들리는 건 ‘예산=민심=지지율’이라는 공식 때문이다. 예산 확보 능력이 정치력의 잣대로 여겨지니 정부 부처는 물론, 국회의원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낸다. 특히 국회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의원들은 지역구 사업을 자신의 임기 내에 해결하려고 예산안에 손을 댄다. 정치권 관계자는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지역구에서 당선되려면 가능한 한 많은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야당의 경우 지도부가 추경 편성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더라도 지역구 의원은 암암리에 예산을 끌어들여야 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당의 입장과 국회의원 입장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즉, 지역구 의원은 예산을 챙겨 국회에 입성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 특히 민원이 제기된 사업에서 야당 의원은 사활을 걸다시피 한다. 여당은 추경을 총선용으로, 야당 의원은 총선에서 내세울 선전용으로 여긴다. 자신의 지지자 앞에서 지역구 사업을 운운하며 표심을 잡아야 하니 예산을 놓치기 어렵다. 실상 이번 추경 논의 과정에서도 볼썽사나운 행태가 벌어졌다.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달 16일 추경 심의를 하다가 여론에 뭇매를 맞았다. 추경 목적을 잊은 채 지역구 민원성 사업에 예산을 요구해서다. 국토위 소속 여·야 의원이 한목소리로 도로와 철도 부문 예산을 심의하면서 증액까지 요청했다. 하지만 모처럼 단합된 모습이 여론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혔다. 결국, 본회의 통과 과정에서 관련 예산이 삭감됨으로써 논란은 일단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