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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의 구조 변화와 대일 외교의 과제양국 간 전략적 가치 못 느끼면 협력 어려운 시대
조양현 국립외교원 아시아태평양연구부 부교수 | 승인 2015.08.10 17:46|(185호)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한 한일관계는 대외관계에서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해소되지 않음에 따라 서로 간의 제약요인이 되고 있다. 냉전기를 통해 전통적 우호관계를 유지했던 한일 양국은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쌍방이 손해를 보는 관계에 있다. 또한 급변하는 동북아 국제정세를 감안할 때 양국은 경색된 한일관계를 타개하고 신뢰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는 윈 - 윈의 관계로 발전하고 못하고, 제로 - 섬 내지는 마이너스 - 섬 관계에 있다.

한일관계 50주년의 현주소
   
▲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신조 일본 총리가 2014년 3월 25일 오후(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미국 대사관저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기 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일 정상이 악수를 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는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 정부에 대해 위안부 피해자와 국제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성의 있는 조치를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일본 측의 강제 동원을 보여주는 증거가 없으며, 위안부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이 끝난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까지 양국 외교당국 간에 8차례의 국장급 회담이 있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외교적 마찰을 넘어 경제·사회·문화 분야에도 파급되어 양국 간의 투자와 교류를 위축시키고 있다. 한국의 대일(對日) 태도는 전에 없이 냉각되어 있고, 일본에서는 반한(反韓) 감정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에서 한류(韓流)가 급속히 퇴조하고, 혐한론(嫌韓論)이 우익세력이나 일부 보수정치가들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체에 침투하기 시작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한일관계 및 대일외교의 구조변화
한일 양국은 해방 이후 20년간 국교가 없는 비정상적인 관계를 지나, 1965년에 국교정상화를 이루었다. 그후 50년 동안 한일관계는 ‘정냉경열(政冷經熱)’로 불리는 비대칭적인 성장을 했다. 양국 간의 경제·문화·인적 교류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지만, 정치·외교 관계에서는 과거사와 독도 문제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 반복되는 양상을 보였다.
경제 분야에서는 한일 간의 상호의존 관계가 확대·심화되어 왔다. 한일 간 교역액은 수교 당시 2.2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11년에는 1,080억 달러에 이르러 500배 가까이 성장했다(이후 한일관계 악화의 영향으로 2014년에는 860억 달러로 감소)1). 1965년에 연간 1만 명 수준이던 인적 상호 방문이 이제는 하루 평균 1만 5천 명 수준으로 증가하였고,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이후 민간 교류 및 문화 교류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한편 정치·외교 분야에서 양국은 협력과 갈등의 이중적 관계를 지속해 왔다. 자유주의 진영에 속한 한국과 일본은 세계적인 패권국가 미국과 더불어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한쪽 축을 형성하면서 정부 간 경제 협력을 추구해 온 반면, 일제의 식민 통치에 대한 인식 차이와 독도 영유권 갈등은 한일관계의 발전을 가로막은 장애 요인으로 작용했다. 1990년대에도 한일관계는 ‘냉탕-온탕’의 사이클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한일 간에 상호 배려가 사라지고, 영토·과거사 문제와 안보·경제·민간 교류 간의 분리대응 기조, 즉 정경분리(政經分離)원칙이 훼손되는 사례가 발생하였다.
최근 한일관계에서 위안부, 교과서, 야스쿠니 등 역사인식 문제와 독도 문제를 축으로 대결 구도가 선명해진 것은, 양국 정부가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에 기초해 한일관계를 관리하던 이른바 ‘1965년 체제’가 시대적 한계에 직면했음을 의미한다. 과거사와 영토 문제의 입장 차이를 간직한 채 안보와 경제 논리를 우선하여 타결된 한일회담은 냉전기를 통해 한반도안정화 및 한국의 경제 발전, 나아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했지만, 이제는 과거사 문제가 오히려 한일관계의 핵심 쟁점으로 등장해 양국 관계를 어렵게 하고 있다.
냉전 종결 후 안보 면에서 양국의 연대감의 약화와 함께 국력의 격차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체제의 수렴, 시민단체 등 비정부 주체의 역할 확대, 양국 간 교류 형태의 다양화 등의 구조적인 변화를 겪었다. 한국에서는 민주화 이후 외교 정책에 미치는 여론과 시민 단체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외교 현안이 국내정치의 쟁점으로 부상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또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등 사법 당국이 위안부 문제와 징용 피해자 보상 문제 등에서 한국 정부와 일본 기업에 해결을 요구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외교 당국의 협상이 더욱 어려워졌다.
일본 정계에서는 ‘강한 외교’를 주장하는 전후 세대의 보수 정치인들이 주류로 등장하면서 역사수정주의와 영토내셔널리즘이 힘을 얻었고, 반성과 사죄를 기본으로 하던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과 태도가 바뀌었다. 일본 정치가 외교를 주도하면서 전후 일본 외교의 기조였던 정경분리원칙이 훼손되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적인 변화를 배경으로 진행된 ‘외교의 정치화’는 외교당국의 역할 주변화 및 효율성 저하라는 문제를 초래하였다. 양국에서 과거사와 영유권 문제와 같은 외교현안이 정치 이슈화하면서 외교 당국의 현안 장악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한일 양국 간에 과거사와 독도 문제의 대응에 많은 외교 자원이 투입되고, 외교보다 ‘내교’, 즉 여론 대책에 많은 자원이 소모되는 악순환이 구조화되었다.
   
▲ 과거사 문제가 부각되면서 한일 양국 간 외교에 어려움이 생겼다. 사진은 혐한 시위 중인 일본 시위대(좌)와 반일 시위 중인 한국 시위대(우).
 
동아시아 파워 밸런스 변화와 한일관계의 전략성
전술한대로 한일관계의 지난 50년, 즉 ‘1965년 체제’가 식민지배의 가해자와 피해자 혹은 선진국과 개도국이라는 수직적이고 특수한 관계의 성격이 강했다면, 이제는 수평적이고 보통의 국가관계로 변화하였다. 이는 한일 양국이 상대방의 전략적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 협력하기 어려운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차원에서 보자면, 중국 부상을 배경으로 역내 국제관계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동아시아의 파워·밸런스 변화는 한국의 전통적인 우방인 미국, 일본과의 관계를 상대화했다. 최근 일본에서는 한국의 ‘중국경사론’, 한국에서는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은 미국, 중국과의 관계설정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대한 외교적 난제를 안게 되었다.
지난 6월 22일 서울과 동경에서 양국 대사관이 주최하는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고, 여기에 아베 신조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이 교차 참석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사의 짐을 내려놓고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협력”하여 “새로운 50년의 원년이 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아베 총리도 “양국 국민과 다음 세대를 위해 한일관계를 발전”시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처럼 두 정상이 한 목소리로 미래지향의 한일관계를 강조한 데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번영을 위해서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기본가치 및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공유하고 있는 한일 양국의 우호협력관계가 불가결하다는 일치된 인식이 있다. 일본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유지·강화하고, 한국은 북한 및 통일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일 협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반도 분단 상황 지속, 북한 문제 발생, 중국의 부상 및 대량살상무기, 테러, 환경 등 비전통 안보, 지역적 경제협력, 국제금융경제의 불투명성 등을 고려할 때, 한일 협력은 ‘지역 공공재’이자 한·미·일 협력의 전제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포스트 1965년’시대의 인식 전환
위와 같은 전략적 관점에서 보자면,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은 우리 대일외교의 과제는 한일 간의 개별 현안 중심의 대응을 넘어, 거시적인 차원에서 한일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 안정적인 한일관계 구축을 위한 토대 마련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는 ‘1965년 체제’ 하에서 축적된 우호협력의 성과를 계승·발전시키는 한편, 그 한계인 과거사와 관련한 갈등을 극복하고 중장기적인 대일 전략을 재구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작업은 결코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그동안 한일 양국은 공동 작업을 통해 ‘과거 직시’, ‘상호이해와 신뢰’, ‘선린우호협력’, ‘공생의 복합 네트워크’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한일 미래비전과 실천 방안을 제시해 왔다. 김대중 정부와 오부치 내각은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1998년)을 통해 한일관계의 미래비전으로 “과거를 직시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에 바탕을 둔 우호협력관계”를 제시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제시된 한일신시대공동연구 보고서(2010년)는 신시대 한일관계의 발전 방향을 담은 “한일신시대공동선언”의 채택을 제언하였다.
이와 같은 우리의 대일정책은 과거의 노력과 성과를 계승하되, 한일관계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에 있어 몇 가지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먼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과거와 미래의’ 시점을 공유하려는 노력이다. 과거사 직시와 미래지향적 협력을 병행하되, ‘분리 대응’원칙을 견지함으로써 ‘지배·피지배의 기억에 집착하는 과거회귀적인 발상’이나 ‘미래의 밝은 협력만을 강조’하는 이분법적 접근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전술한대로 한일은 경제 및 안보 등 양자 현안은 물론 지역 및 글로벌 현안 대응에서 정부 간 원활한 소통이 안 될 경우 양국 모두가 피해를 보는 구도에 있다. 따라서 한일 간에 과거사나 독도 관련 마찰이 발생하더라도 그 영향이 타 분야로 파급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분리 대응’이 국익 극대화를 위한 현실적 대안이다. 즉 과거사와 독도 문제에서 우리의 입장을 관철하면서 기타 분야에서 일본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사와 독도 문제의 대응에서는 ‘재발·악화 방지’를 위한 관리 차원의 노력과 역사인식의 공유라는 ‘완치’를 위한 장기 처방을 병행해야 한다.
‘포스트 1965년’ 시대의 한일관계를 위해 요구되는 두 번째 발상 전환은 ‘양자에서 다자로의’ 시점 전환이다. 양국 간 현안에만 매몰되지 않고, 북한 문제, 중국 부상 등을 감안해 안정적인 지역·세계 질서의 구축이라는 다자적 관점에서 한일 양국의 상호 전략적 가치를 재인식해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미중의 양강 구도(G-2)가 가시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중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질서가 역내 중소국가들에게 불편한 것이 되지 않도록 견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일 양국의 협력이 불가결하다. 한일이 지역의 안정과 평화라는 전략적 관점에서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게 될 때, 과거사 문제의 처리도 좀 더 용이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 주도에서 시민사회로’ 주체의 다양화와 관련한 대응이 요구된다. 한일관계에서 정부-비정부 주체(여론, NGO) 간 소통 강화 및 성숙한 시민의식을 토대로 과도한 민족주의, 포퓰리즘, 외교의 정치수단화를 견제해 한일관계의 안정성과 정책 일관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최근 급속히 증가한 한일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 기업, 학자 간의 다층적 인적·문화 교류는 정치·외교 마찰을 완화하는 중요한 자원인바, 장기적 관점에서 이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민간 부문의 한일 간 교류 확대는 한중 교류 확대와 함께 동북아 경제통합 내지는 시민공동체의 토대가 된다는 전략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외교당국이 한일관계 전체를 주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관념을 버리고, 역사인식의 공유라는‘완치’를 위한 장기 처방에 관한 인식 공유와 비전 도출을 유도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국내적으로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관련 전문가, NGO, 이해 당사자를 중심으로 논의의 장을 제공해 사회적 합의를 유도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일본 사회의 양심 세력과 연대해 인류 보편적 가치 차원에서 과거사 반성과 화해가 세계적 대세이며, 역사 왜곡이 일본의 국제적 역할 확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환기시켜 나가야 한다.
 
대일외교의 과제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선 한일관계의 재정립을 위해서는 과거사 현안인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불가결하다. 이를 위해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의 계승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성의 있는 대응을 핵심으로 하는 우리의 대일 요구를 유지하되, 그 요구 수준을 올리거나 위안부 외의 사안으로까지 전선을 확대하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
한일정상회담의 부재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중일 3국 정상회의의 개최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구체안이 가시화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일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한국 정부는 한일정상회담과는 별개로 다자회의인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해서는 개최국으로서 일관되게 찬성해 왔다.
만약 한중일 정상회의가 개최된다면, 과거사 관련한 우리의 입장은 유지하면서, 한일 정상 간에 주요 현안을 논의했다는 적극적인 의미 부여가 가능할 것이다.
보수우경화라는 일본의 중장기적 추세를 현실로 인정하고 한일관계의 전략성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바탕으로 대일외교를 재정립해야 한다. 향후 일본 사회의 역사수정주의가 한층 노골화하고 아베 내각과 같은 보수 내각의 장기 집권이 현실화할 경우에 대비한 중장기적인 대일정책의 방향 및 과거사 프레임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어프로치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아시아태평양연구부 부교수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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