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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와 유승민의 정치이념새누리당 유승민 前 원내대표의 국회 합의 정치의 명암
김의상 기자 | 승인 2015.08.10 14:23|(185호)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의 합의 정치는 갈 길 바쁜 박근혜 정부의 국정 추진 동력의 발목을 잡았다. 공무원연금법 개혁을 20년이 걸리게 처리했고, 거기에 헌법에 위배되고 행정부의 발목을 잡을 게 빤한 정부시행령 개정 요구의 국회법개정안을 끼워 처리하여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불가피하게 하는 등 정부의 요구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 법안 처리에 청와대가 발끈했다. 결과적으로 여당의 원내대표 경질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청와대의 사정과 경질과 더불어 국민적 인기를 얻은 유승민의 정치철학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월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원유철 원내대표, 김정훈 정책위의장 등 새 지도부를 접견, 환담위해 자리로 향하고 있다.
‘유승민의 정치’는 무엇인가?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저는 매일 이 질문을 저 자신에게 던집니다. 저는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고 싶었습니다. 15년 전 제가 보수당에 입당한 것은 제가 꿈꾸는 보수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입니다.
지난 15년간 여의도에 있으면서 내가 몸담아 보지 않았던 진보 진영에도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을 사랑하는 훌륭한 정치인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 그분들의 생각 중에 옳은 것도 많고, 저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느낄 때도 많았습니다.
좋은 생각, 옳은 생각을 가진 선량들이 모인 이 국회가, 우리 정치가 왜 국민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불신과 경멸의 대상이 되었는지 우리는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지난 4월 8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문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 중 마지막 대목이다. 이 연설문은 유승민의 정치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어서 여기에 중요한 대목만 발췌 요약한다.
 
▲새누리당은 고통받는 서민·중산층 편
앞으로 새누리당은 기득권 세력, 재벌 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중산층의 편에 서겠다. 빈곤층, 실업자, 비정규직, 초단시간 근로자, 신용불량자,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장애인, 무의탁노인, 결식아동, 소년소녀가장, 다문화가정, 북한이탈주민, 이런 어려운 분들에게 노선과 정책의 새로운 지향을 두고, 그분들의 통증을 같이 느끼고, 그분들의 행복을 위해 당이 존재하겠다. 양극화 해소를 시대의 과제로 제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찰력을 저는 높이 평가한다. 이제 양극화 해소는 여야가 따로 없이 해결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새누리당은 양극화 해소에 앞장서고,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나누면서 커가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정당이 되겠다.
 
▲진영을 넘어 합의의 정치로
여와 야, 보수와 진보의 진영을 벗어나 우리 정치도 공감과 공존의 영역을 넓히자는 꿈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 여당 시절 추진했던 FTA, 연금개혁을 야당이 되니까 반대하는 일, 의원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에서 여야가 당론투표를 강요하는 일, 역대 정권마다 여당이 정부와 청와대의 거수기 역할만 해오던 일, 이런 부끄러운 일들이 진영싸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나는 원내대표로서 가급적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의원들의 자유로운 의사를 구속하지 않겠다. 여야 진영 간, 보수·진보 간의 대립과 반목을 넘어 진영의 창조적 파괴를 통한 국민 신뢰 회복을 주장하면서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제안한다. 우리는 용기를 내 통 큰 합의를 하자.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
나는 이 연설을 쓰면서 2012년 새누리당의 대선공약집을 다시 읽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누리당의 공약이다. 문제는 134조 5000억 원의 공약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는 점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이 반성한다. 지난 4월 1일 정부가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복지재정 효율화 방안’을 발표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3조 원의 복지재정 절감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지난 3년간 예산 대비 세수부족은 22조 2천억 원이다. 이로써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 현재의 복지제도를 더 확대하지 않고 그대로 가더라도 앞으로 복지재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복지의 목표는 ‘중(中)부담-중(中)복지’라고 생각한다. 스웨덴, 프랑스, 영국, 이태리 같은 유럽 국가들보다는 낮지만 현재의 미국, 일본보다는 다소 높은 수준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 단기부양책보다 성장 잠재력 키우기
앞으로 100년간 한국경제가 성장을 못하는 것은 경기변동의 문제가 아닌 성장을 뒷받침할 노동, 자본, 기술 등 세 가지 요소에 구조적 문제, 즉 펀더멘털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성장에 대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20세기의 성취를 21세기에 다 날려 보내고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 것이다.
성장 잠재력이 약해져서 저성장이 고착화된 경제에서 국가재정을 동원하여 단기부양책을 쓰는 것은 성장 효과도 없이 재정건전성만 해칠 뿐이라는 KDI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단기부양책을 버리고 성장 잠재력을 키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성장 잠재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자본, 노동, 여성, 청년, 교육, 과학기술, 농어업, 제조업, 서비스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 변화의 최종 목표는 우리 경제의 경쟁력 강화와 성장 잠재력 확충이다.
 
▲가시적 성과보다 개혁기반 구축을
박근혜 정부가 단기부양책보다는 노동-금융-교육-공공의 4대 부문 개혁을 말하고 2017년까지 잠재성장률 4%대 진입을 목표로 ‘3년의 혁신으로 30년의 성장을 추진하겠다’고 나선 점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3년 내의 성과에 조급해서는 안 된다. 잠재성장률을 4%대로 높이는 일은 3년의 개혁으로는 달성하기 어렵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앞으로 3년 동안 다음 정부가 후퇴시킬 수 없는 개혁의 제도적 기반을 구축할 수만 있다면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다.
 
현 정부의 국정철학과 많은 차이
이 연설은 국정 전반에 대한 자신의 정치철학을 피력한 것으로 여당보다는 야당에서 명연설이라고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하는 현 정부의 철학과는 여러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박 후보가 대선공약으로 내세운 ‘증세 없는 복지’를 두고 유승민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라고 잘라 말한 점, 국회가 특히 여당이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것, 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도 상당 부문 지킬 수 없게 되었다고 야당과 국민에게 사과까지 한 점은 너무 앞서갔다고 본다. 여당에서는 유승민의 개인 철학이라고 깎아내렸다. 아마 청와대에서는 이 연설로 유승민 원내대표의 행적과 발언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았나 싶다.
유승민은 국회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민의의 전당으로 이끌고 싶었다. 법안 처리도 진영논리를 떠나 오로지 국민을 위한다는 본연의 사명감에 입각한 합의정치를 추구했다. 어찌 보면 순진무구한 이상주의자같이 보인다. 우리의 정치 현실과는 다소 괴리가 있다. 그가 원내대표에 출마한 것도 그런 이상 정치를 실험(?)해보고자 한 것 아니었을까.
유 원내대표는 소신대로 합의의 원칙을 내세워 원내대표 직무를 수행했다. 야당도 모처럼 말이 통하는(?) 여당의 원내대표를 맞아 겉으로는 퍽 부드러워졌다.
유 원내대표는 역대 정부가 해내지 못한 공무원연금개혁을 반드시 여야 합의를 통해서 이루어내려고 과욕을 부렸다. 그러나 야당은 공무원연금개혁을 20년에 걸친 점진적 개혁으로 관철하여 기선을 잡자, 본회의 통과를 조건으로 이번엔 뜬금없는 국회법개정안(국회가 정부의 시행령에 대해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끼워팔기로 내놓았다. 야당의 동의 없이는 쟁점법안을 통과시킬 수 없게 한 ‘국회선진화법’을 빙자한 것이다. 국회법개정안은 삼권분립의 헌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는 정부의 국정수행을 국회가 발목 잡고 늘어질 우려가 불 보듯 했다. 박 대통령도 이런 점을 내세워 수차례 절대불가의 입장을 밝혔었다. 유 원내대표는 공무원연금법 개혁 합의 성과에 몰입했던 나머지 국회법개정안의 파급효과를 간과했을까?
 
박 대통령의 분노와 앞으로의
국회법 개정안의 거부권이 행사된 6월 25일, 국무회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박 대통령의 참고 참았던 노기(怒氣)가 폭발한 때문이다. 언론은 일제히 이것을 ‘대통령의 분노’라는 등 갖은 췌사(贅辭)를 동원하여 기사화했다. 이하는 바로 그날 박 대통령의 발언 요약이다.
 
“지난 6월 15일, 위헌소지가 큰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됐습니다. 이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시정 요구권은 역대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의가 되었지만 항상 위헌성 논란이 계속돼왔습니다. 지난 2000년 2월에는 본회의에 상정된 개정안이 위헌성이 있다는 이유로 수정 의결된 바 있고, 금년 5월 1일 국회운영위원회에서도 위헌 가능성을 감안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개정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 과정도 없이, 그것도 아무 연관도 없는 공무원연금법 처리와 연계해서 하룻밤 사이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가 되었습니다. -<중략>- 이것은 다른 의도로 보면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충분한 검토 없이 서둘러 여야가 합의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 개정안은 국가행정체계와 사법체계를 흔들 수 있는 주요한 사안으로, 여야의 주고받기식이나 충분한 검토 없이 서둘러서 진행할 사안이 아닙니다.”
 
민생법안, 청년일자리 창출 법안 국회에 3년째 묶여있어
“정치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 먼저 생각하고, 정부의 정책이 잘될 수 있도록 국회가 견인차 역할을 해서 국민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부와 정부정책에 대해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 비판만을 거듭해왔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 정부가 애써 마련해서 시급히 실행하고자 하는 일자리 법안들과 경제 살리기 법안들이 여전히 국회에 3년째 발 묶여있습니다. 가짜 민생법안이라고 통과시켜주지 않고,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을 해볼 수 있는 기회마저 주지 않고 창출을 왜 못하느냐고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법들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서 정부에만 책임을 물을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국회와 정치권에서 국회법 개정 이전에 당연히 민생 법안의 사활을 건 추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의)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묶인 것들부터 서둘러 해결하는 것을 보고 비통한 마음마저 듭니다. 정부를 도와줄 수 있는 여당에서조차 그것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국회법개정안으로 행정업무마저 마비시키는 것은 국가의 위기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국무회의는 국회에서 통과 안 시켜준 법안을 열거하는 기막힌 회의가 되어버렸습니다. 지난 1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고 후 아동학대예방을위한법안 처리가 시급한 상황에서 여야는 아동학대와 아무 관련도 없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특별법과 연계 처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급한 영유아보육법은 2월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연계법안만 통과되었습니다. 또한 지방채 발행 요건을 완화해서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한 지방재정법개정안 처리와 행정부의 고유권한인 목적예비비 집행을 연계했습니다.
법안 내용상 전혀 관련이 없는 관광진흥법과 최저임금법의 처리를 연계하기로 합의했던 바도 있었습니다. 더구나 연계처리에 합의했던 관광진흥법을 포함해서 서비스산업 육성을 위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 등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한 많은 법안들은 길게는 3년이 다 되도록 상임위에서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하고 발이 묶여있습니다. 내년 총선까지도 통과시켜주지 않고 가짜 민생법안의 껍질을 씌워 끌고 갈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중략-
“국회가 꼭 필요한 법안을 당리당략으로 묶어놓고 있으면서 본인들이 추구하는 당략적인 것을 빅딜하고 통과시키는 난센스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법들은 국민의 민생과 삶에 직결되는 것도 아니고, 국민 세금만 가중시키는 것들입니다. 매년 800억 이상의 운영비를 지원하는 아시아문화전당같이 자기들이 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빅딜하여 통과시키면서 민생과 일자리 창출 법안은 몇 회기를 거쳐도 통과시켜주지 않습니다.”
 
정치권 국민 위해 거듭나야
“저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정치권이 국민을 위해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의 존재의 이유는 본인들의 정치 생명이 아니라 국민에게 둬야함에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입니다. 정치는 국민의 민의를 대신하는 것이고, 국민의 대변자이지, 자기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도 당대표로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무수히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국민들에게 신뢰를 받기까지 어려운 고비를 넘겨서 당을 구해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선이 되기 위해 정치권에 계신 분들의 한결같은 말씀은 ‘다시 기회를 준다면, 다시 국민들이 기회를 주신다면 신뢰정치를 하고,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맹세에 가까운 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신뢰를 보내준 국민들에게 그 정치적 신의는 지켜지지 않았고, 저도 결국 그렇게 당선의 기회를 달라고 당과 후보들을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만이 남았습니다.”
 
   
▲ 난 7월 10일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으로 사퇴와 관련,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들어서고 있다.
배신의 정치... 국민이 심판해줘야
“저는 정치의 본령은 국민의 삶을 돌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가 정도로 가지 않고 오로지 선거에서만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정치를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이제 우리 정치는 국민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정치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국민들뿐이고, 국민들께서 선거에서 잘 선택해주셔야 새로운 정치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선거를 수단으로 삼아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주셔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의 정치 수준도 높아져서 진실이 무엇인지, 누구를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인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대통령 분노의 민낯
박 대통령이 분노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여야가 합의를 해놓고도 처리를 안 해준 민생법안이 61개나 되는데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국정의 발목만 잡으려 하고 있으니 대통령으로서 화를 낼 만도 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민생 경제 현안 법안도 9개나 남아있는 형편이다.
박 대통령이 배신 운운한 것은 선거철만 되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 바치겠다고 해놓고 막상 당선된 뒤엔 국민의 삶을 헌신짝 보듯 하는 국회의원들 전부를 지칭한 것이다. 표를 구걸하다시피 얻어 당선된 뒤 민생을 위한 일은 하지 않고 자기 정치만 하면서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아 민생이 뒷전으로 밀리게 하는 행태를 꾸짖은 것이다. 박 대통령의 일갈에 여당은 밤을 새우며 민생법안 61개를 통과시켰다. 그러므로 이것은 의지의 문제였다는 방증이다.
정치권은 박 대통령의 질타가 유승민 원내대표를 지목한 것이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유 원내대표는 당연히 거부권 정국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그러나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 분노의 표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유승민을 포함한 정치권 모두를 향한 질타로 보이기 때문이다. 만약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한 문책이라면 야당이 주장한 대로 선거법 위반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야당이 이 문제를 제기했는데 선관위의 유권해석도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 의원들, 특히 친박 세력은 유 원내대표를 희생양으로 내세워 거부권 정국을 돌파하려고 갖은 애를 썼다.
유 원내대표는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배신의 정치여서가 아니라 거부권 당한 국회 여당의 책임자이기 때문이다. 유 원내대표는 대통령-당대표-원내대표 라인의 제2의 책임자다. 정권의 동력은 입법으로 구현되는데 바로 그것을 추진하여 정권을 뒷받침할 자는 여당의 원내대표이다. 그는 당·청관계를 수직이 아닌 수평적 관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청와대와 새누리당과의 관계는 조직적으로 수평일 수는 없다. 조직상 대통령이 당연직 총재이므로 당은 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뒤늦게라도 그것을 깨달았기에 유 원내대표는 다음 날 새누리당 정책자문위원 위촉장 수여식에서 인사말 도중 직접 손으로 쓴 반성문을 읽었다.
“국민들께 참으로 송구스럽고 우리 박근혜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대통령께서 국정을 헌신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데 충분히 뒷받침해드리지 못해 송구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할 테니 대통령께서도 마음을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십시오. 박근혜 정부와 대통령의 성공을 누구보다 간절히 바랍니다.” 그는 청와대를 향해 90도로 허리 굽혀 사과했다.
그러나 국정에 갈 길이 바쁜 박 대통령으로서는 더 이상 야당과의 합의의 장에서 사사건건 밀리고 끼워팔기를 할 수는 없었다. 이제 집권 후반기로 접어들어 공약 실천에 촌음을 아껴 매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약 실천을 이미 포기한 유 원내대표와는 결별할 수밖에 없었다.
 
유승민이 가야할 길
유 원내대표는 6월 26일부터 13일간의 버티기 침묵 후 7월 8일 의원총회의 결의대로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한껏 모양을 갖춘 퇴임이었다. 취임 157일 만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입니다. 저의 정치 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제1조 제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라고 했다. 법과 원칙과 정의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강조했던 정치의 덕목이고 헌법 제1조 제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는 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통상 사용하던 말이다. 묘한 여운을 남긴 사퇴의 변이었다.
소위 정치인 유승민 의원의 ‘따뜻한 보수·합리적 보수’는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여기서 막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가 여당과 야당, 진영의 논리를 넘어 오로지 고통받는 국민을 위한 자신의 정치철학을 실천하기엔 아직 때도 환경도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 앞으로 어떤 위상에 올라야 유승민의 합리적 보수 정치가 실현 가능할까? 그의 사퇴를 놓고 많은 언론들이 소위 ‘유승민 정치’를 거론했다. 어떤 이는 유승민이 맡아서는 안 될 원내대표직을 성급하게 맡았던 것이 패착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것이 패착일지 묘수일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젊은이들 중 차기 리더로 유승민을 꼽는 층이 급격히 늘고 있다. 종전에 보지 못했던 현상이다. 그는 당장은 코앞에 닥친 다음 총선 공천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의 꿈의 정치는 일단 20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다음의 일이다.
 
당(黨)·정(政)·청(靑)은 하나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분노 역시 국정책임자로서 당연한 의지 표현이다. 박 대통령에게는 국민과의 공약 이행이 최우선 과제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정책 수행을 입법으로 추진해줄 책임자인 국회 원내대표와 갈등할 여유가 없다. 코드가 맞지 않은 원내대표 경질은 잘한 일이다. 다만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의 직접화법이 아닌 대통령으로서의 여유 있는 제스처로도 충분히 그 정도의 의사 전달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국민 앞에 노기 띤 민낯을 보였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정치권 전반의 국정 발목 잡기에 대한 질책은 시의적절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총선을 앞둔 정국에서 정치권은 깊이 자성해 볼 일이다. 총선은 대통령의 임기 중에 치르게 되어있고,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 후임으로 원유철(53·경기 평택) 의원, 정책위의장에는 김정훈(57·부산 남구갑)의원, 사무총장에 황진하(68·경기 파주)의원을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원유철 신임 원내대표는 경기 평택 출신의 4선 의원으로 28세 때 최연소 경기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됐으며 경기도 행정부지사를 지냈다. 유 전 원내대표와도 호흡을 잘 맞춰왔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듯이 새누리당은 서로 상처를 보듬고 국정을 책임지는 집권여당으로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며 “당·정·청은 삼위일체, 한 몸이다. 소통과 협력을 통해 국민에게 무한 봉사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청와대도 이번 인사에 만족감을 표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새누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156일 만에 당·청 회동을 가졌다.
이날 모처럼 밝은 표정의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는 김무성 대표의 노고를 치하했다. 김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이 곧 우리 당의 성공이다. 앞으로는 더 이상 당·청 갈등은 없다”고 답하고 회동이 끝난 뒤 19분 동안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 원유철 대표는 준비해온 찰떡을 청와대 직원들에게 돌렸다. 당·청이 찰떡궁합이 되자는 의미로 해석됐다.

김의상 기자  estkin@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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