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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단(文壇), 상습 글도둑질문단의 고약한 풍토 막 내려야…
장우호 기자 | 승인 2015.08.05 18:08|(185호)
그간 침묵으로 일관했던 대한민국 문단의 표절 문제가 신경숙 표절 사태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신경숙의 책은 옆구리에 끼는 것만으로 여학생들을 지적이고 감수성 넘치게 만들었으며, 문학에 관심이 없어 그의 책을 읽은 적이 없는 사람도 그의 이름만은 한번쯤 들어봤을 만큼 널리 알려진 대한민국 대표 여류작가다.
신 씨의 글에 대한 표절 의혹은 이미 수차례 있어왔지만 빈번한 표절 시비에도 소위 ‘잘나가는 작가’와 대형출판사의 횡포로 한 번의 큰 문제도 없이 이리저리 잘 비켜갔다. 표절의 문제는 비단 신경숙만의 문제가 아닌, 한국 문단 전체의 문제다. 표절의 대상은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외국 문학과 신춘문예작과 미발표작, 심지어는 무명작가의 개인 블로그 글까지 가리지 않고 행해졌으나 대다수의 ‘잘나가지 못하는 작가’들은 문단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문제 제기를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표절에 무감각해진 작가와 그런 작가를 두둔하기 바쁜 대형출판사, 이 두 집단에 의해 대한민국 문단이 썩어가는 것을 더는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네티즌 사이에서 불매운동 등을 통해 일어나고 있다.

내려놓은 글쟁이의 신념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글 쓰는 것 역시 쉬워졌다. 개인 블로그나 커뮤니티 사이트에 짧은 연재글이라도 올린 사람들은 스스로를 ‘글쟁이’라 칭하며, 또 그렇게 불리길 원한다. 본디 글 쓰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던 말인 글쟁이가 예스럽고 우아하게 느껴지는 것은 문장을 향한 열망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는 이가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돈을 받고 글을 쓰는 프로작가 중에는 신예 문인 때의 고상함을 잊은 자가 많은 듯하다. 비루한 생활 속에서도 우리 문학을 지키고자 하는 신념 하나로 자부심을 갖던 작가는 어느덧 돈과 판매부수에 눈이 멀고 만 것이다. 작가가 쓴 텍스트는 많은 고민이 깃들어 작가만의 고유한 색이 담겨야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필사(筆寫)’에 빠져 창작의 열의가 사라진 한국 문단은 표절을 해도 안 걸리면 그만인 데다 걸린다 한들 모르쇠로 일관하면 쉬이 넘어가는 폐단을 반복하고 있다.
 
   
▲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신경숙의 작품집.
표절을 아는 몸
시인 이응준(45)이 지난 6월 16일 허핑턴포스트에 올린 글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에서 신경숙의 소설집 《오래 전 집을 떠날 때》(《감자 먹는 사람들》로 재출간)에 실린 단편소설 <전설>의 한 대목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우국, 연회는 끝나고》(김후란 번역) 중 <우국>의 일부를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표절의 근거가 된 대목은 다음과 같다.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워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미시마 유키오 <우국>(1960, 번역 1983)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결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신경숙 <전설>(1996)
 
위 두 문단은 글의 흐름이나 묘사가 동일하다. 특히 이 씨는 ‘레이코는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 중위도 이를 알고 기뻐하였다’고 번역된 《이문열 세계명작산책》의 <우국>과 비교하면서 “‘사랑의 기쁨을 알았으며’라는 밋밋한 표현을 김후란 시인 특유의 유려한 표현으로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고 번역했는데 이러한 언어조합은 지극히 시적인 표현으로서 의식적으로 도용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튀어나올 수 없는 문학적 유전공학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순수문학 프로작가로서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명백한 ‘작품 절도행위-표절’인 것”이라고 비난했다.
 
   
▲ 최근 표절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오른 신경숙.
침묵하면 잊히리라
이응준 시인이 표절 문제를 제기한 하루 뒤인 17일 신경숙은 출판사 창비에 입장문을 보내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같은 날 창비는 공식 성명문을 통해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며 더 나은 문장이 만들어진다면 표절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신 씨는 이어 지난 6월 2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둘러대는 모호한 입장을 고수했다. 이번 표절 논란의 핵심인 <전설>은 이미 15년 전 문학평론가 정문순에 의해 거론됐지만 유야무야 묻혔던 적이 있다. 신경숙은 지금 이 순간도 침묵하면 자연스레 잊힐 것이라 기대하고 있을지 모른다.
 
82학번 신도리코
신 씨의 표절 논란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1999년 계간 〈문학동네〉 여름호에 실린 신 씨의 소설 <딸기밭>에는 재미 유학생 안승준의 유고집 《살아는 있는 것이오》의 서문에 실린 아버지의 편지글을 가져다 쓴 구절이 있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신 씨는 “유족에 누를 끼칠까 봐 유고집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작가로서 타인의 글을 몰래 가져다 쓰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나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작가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신경숙의 대표작 《엄마를 부탁해》 역시 수필가 오길순 씨가 자신의 수필을 표절했다고 주장했으나 신 씨 측에서 묵살했다. 오 씨가 2001년 출간한 수필집 《목동은 그후 어찌 살았을까》에 실린 〈사모곡〉
은 오 씨의 아버지가 혼잡한 전주 단오제에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온 가족이 어머니를 찾아 헤매다 13일 만에 겨우 상봉한 이야기다.
한편 신경숙의 표절 논란이 일자 최근 한 SNS에 ‘기하’라는 필명의 글이 올라왔다.
 
“신도리코도 와?”
그날 행사에 소설가 신경숙 선배가 온다는 얘기에 김상 시인이 이죽거렸다. 나는 그의 비아냥이 못 마땅해서 심하게 대들었다. (중략) 김상 시인은 술을 마시다 말고 자취방에 나를 데려갔다. 3면 벽을 책으로 둘러싼 자취방에서 김상 시인은 내게 신경숙의 소설과 다른 작가의 소설들을 번갈아 비교해 보여줬다. 신경숙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몇몇 동문들의 시와 소설을 보여주고 비슷한 구절이 적힌 다른 책들도 보여줬다.
 
우리 삶을 투영할 줄 알아야…
신경숙이 등단한 1985년 이후 문창과 출신들이 문단을 점령하고 있다. 이들 사이에서는 서술방식과 표현기법을 익히기 위한 필사가 당연시되고 있었는데 글쓰기가 보편화되면서 필사는 문창과 학생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서로 필사에 좋은 책을 추천하는가 하면, 매 장마다 오른쪽 페이지를 필사용으로 비워놓은 필사 전용 책이 나오기도 했다.
필사는 유명한 작가의 수작이나 좋아하는 작품을 대상으로 고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품을 그대로 베껴 쓰며 해당 작가의 문장력과 문체를 체득(體得)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견작가의 풍부한 문장력을 터득하는 데 수월한 반면 자신의 색을 나타내는 훈련을 게을리하면 해당 작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스스로를 옭아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소설가 ㄱ씨는 “이들은 필사를 통해 세련된 문체로 수준 높은 단편들을 생산했지만 상상력과 뒷심 부족으로 대부분 장편 부문에서까지 큰 활약을 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문학평론가인 정은경 원광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세련된 문장과 구성, 이미지, 비유, 발상 등에도 이들이 우리의 삶과는 무관하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김수영의 <온몸의 시학>과 대지에서 빚어내는 신동엽의 소박한 언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 지난 6월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문화연대-한국작가회의 긴급토론회, 최근의 표절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에서 문학평론가 이명원(좌측) 경희대 교수가 발제 중이다.
문학 발전 막는 카르텔 시스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여기저기서 구조나 문장을 가져다 살짝 바꿔 쓰는 등 문학계에 만연한 표절의 습관화는 작가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형 출판사는 오로지 이익을 위해 돈 되는 작가를 띄우고 보호하기 급급하다. 신예작가들이 갈망하는 문학상 제도는 출판사의 라인 만들기로 변질됐고, 때로는 좋은 작품을 심사위원인 중견작가가 말없이 가져다 쓰기도 한다. 표절을 따져야 할 평론가 역시 출판사가 발행하는 문예지의 각종 위원으로 활동하며 쓴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같은 출판사 소속의 작가에게 찬사를 보내기 바쁘다.
이런 행태를 꼬집어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6월 23일 서울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열린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토론회에서 발제 중 “(신경숙 표절 사태를) 한국문학이 돈과 패거리 권력으로 무장해 지나온 십수 년의 실험이 어떤 희망 없는 변곡점에 도달한 사건으로 인식돼야 한다”며 “치매 상태에서 집 나가 행적을 알 수 없는 것은 신경숙 소설 속 ‘엄마’가 아니라 오늘의 ‘한국문학’”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후속 논의장으로 마련된 7월 15일 ‘신경숙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의 미래’ 토론회에서는 앞서 2000년에 신경숙의 ‘우국’ 표절 의혹을 제기한 정문순 문학평론가가 참석해 “문학의 대서사와 거대 담론이 무너진 1990년대에 나지막하고 모성적인 인상을 주는 신경숙의 작품이 문단의 필요에 의해 적극적으로 추앙받으면서 신경숙이라는 ‘괴물’을 우리 문단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씨는 이어 “충만한 것은 소녀적 감수성이며, 결여된 것은 사회적 인식이나 세계에 대한 감수성인 문학소녀급 소설가에게 한국문학은 그동안 지나치게 의존해왔다”며 “신경숙이 상습 표절을 저지르는 괴물이 될 때까지 문학인들은 적극적으로 동조하거나 방관해온 셈이니 이제 와서 누구를 비난하겠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대성 문학평론가는 “젊은 비평가는 ‘인턴’ 개념으로 지목돼 비평적 자율성이 경색된다”며 “‘주니어 시스템’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구조에 가깝다. 답을 윗세대 혹은 선배가 정하고 후배는 찾아내거나 따르는 방법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문학권력이 유지되는 시스템을 질책했다.
 
기초 없는 한국 문학, 재건이 답이다
한국 문단은 소위 ‘주류 문단’이라 불리는 창비와 문학동네 등 대형 출판사와 스타 작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언론과 문학상 제도, 주니어 시스템 등이 만들어낸 문학권력으로 찌들었다. 여기저기 곪고 병든 것을 숨기고자 신인 작가의 젊은 피를 수혈 받았지만 갈수록 비대해지는 몸뚱이는 탁혈(濁血)을 정화하지 못하고 토해내고야 말았다.
신경숙 표절 사건은 신경숙의 개인적 문제로 넘길 것이 아니라 문학권력에 대한 문제 제기의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로부터 퍼져야 할 파장은 문학권력의 변화나 갱신이 아닌, 외부세력으로 인한 문학권력의 전복과 붕괴다. 모든 것을 부숴버린 뒤 착실하게 문학인이 지향할 가치를 고민해야 할 일이다.

장우호 기자  koreana37@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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