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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총기난사 참사를 통해 본 우울증의 사회적 심각성
정경뉴스 사회팀 | 승인 2015.06.08 11:56|(183호)
2015년 5월 13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있는 송파·강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예비군 3명이 사망하고, 부상자 2명이 발생했다. 범인 자신도 그 자리에서 자살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범인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분노를 폭발시킨, 계획적인 범행이라고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정경뉴스>는 현대 사회의 ‘유행병’으로까지 자리 잡기 시작한 우울증에 대해 짚어봤다.

   
▲ 예비군 총기난사 사건 하루가 지난 14일 오후 공개된 서울 서초구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사건 당시의 혈흔이 아직도 선명하다.
예비군 총기난사 사건과 우울증
이번 총기난사 사건은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닌 계획된 범죄였다. 범인 최 모 씨는 사건이 발생한 ‘영점사격 훈련’ 전에도 총기 손질을 계속하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열 발의 실탄이 지급되는
‘영점사격 훈련’시간이 되자, 그는 제일 먼저 실탄을 받을 수 있는 좌측 1번 사격 자리로 가기를 고집했다. 안전 고리에 총기를 연결하는 절차를 눈속임으로 넘긴 뒤, 실탄을 배부받자마자 총기를 풀어내어 주위 예비군들을 향해 조준 사격하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의 상흔에는 ‘반드시 죽이겠다’는 살의가 담겨 있었다고 부검 결과 밝혀졌다.
   
▲ 13일 서울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총기난사로 3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지난 2013년 10월 전역한 범인은 군 생활 중 B급 관심병사로 분류되어 부대를 여러 번 옮겼을 뿐만 아니라 우울증 치료 전력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유서는 “무슨 목적으로 사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살아있으니깐 사는 것 같다”고 시작하며 세상에 대한 불만과 삶에 대한 회의, 모두를 쏴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군 복무 중 총기난사를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표현마저 있었으니, 정신적인 문제가 실로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조교와 통제관들도 범인을 제압하기는커녕 범인의 흉탄을 피해 도망가는 추태를 보였다. 애초에 ‘안전 고리에 총기를 연결할 때 반드시 조교가 검사한다’는 규칙과 ‘영점 사격 시 실탄은 세 개의 탄창에 3~4발 씩 나누어 지급한다’는 규칙을 정확히 지키기만 했어도 이와 같은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총기난사 참사는 허술한 제도와 우울증 환자의 충동이 빚어낸 인재
(人災)라고 봐야 할 것이다.
 
   
▲ 지난 2008년 10월 2일 우울증으로 인해 톱스타 최진실이 스스로 숨을 끊었다. 사진은 2008년 10월 4일 영결식 장면.
우울증이란 무엇인가
이번 사건으로 인해 우울증이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된 것도 사실이다. 지난 2008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진실, 2014년 8월 자살로 생을 마감한 로빈 윌리엄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우울증을 앓았으며 그것이 자살의 동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영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8%에서 12%는 한번 정도 우울증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가 우울증을 자각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며, 피로하거나 힘이 없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울증을 간단히 정의하면 ‘스트레스에 취약해지는 증상’이다. 보통 사람이 보거나 느끼기에 가벼운 스트레스라고 해도, 우울증 환자는 견딜 수 없는 큰 괴로움으로 느끼게 된다. 우울증은 그 원인도 규명되지 않았으며, 특별한 증상으로 구별할 수 있는 질환도 아니다. 다만 일시적인 우울감과는 다르며 개인적인 약함의 표현이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엄연한 정신질환의 한 종류로 분류되는 ‘병’이다. 특히 중중 우울증의 경우 결코 의학적인 도움 없이는 치료될 수 없다. 우울증의 가장 심각한 증상은 자살을 원하는 생각이 드는 것으로, 우울증 환자의 3분의 2는 실제로 자살을 생각하며 10~15%는 실제로 자살을 한다는 통계도 있다.
미국 정신의학회(APA,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는 우울증을 자가 진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했는데, 다음 증상 중 다섯 가지 이상이, 2주일 내 동일하게 반복적으로 나타났다면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① 생활하는 데 있어, 기능적인 감퇴를 느끼며 매일 우울한 기분이 지속된다.
② 하루 대부분의 활동에서 흥미 또는 즐거움을 현저하게 상실했다.
③ 특별한 운동이나 식이 조절이 없는데도 식욕이나 체중이 현저히 감소 또는 증가한다. 기준은 체중의 경우 1개월에 5%의 변동이며, 식욕은 자신의 평균적인 식욕과 비교했을 때이다.
④ 거의 매일 불면 또는 지나치게 긴 시간 수면을 하게 된다.
⑤ 객관적인 시점에서 봐도 안절부절 못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차분해진다.
⑥ 거의 매일 심한 피로를 느끼며 활력을 잃는다.
⑦ 자기 자신에 대해 비난하거나, 무가치하다고 느끼거나, 행동에 대한 과도한 죄책감을 느낀다.
⑧ 주·객관적으로 볼 때 사고력·집중력의 감소를 보이며, 결정에 어려움을 느낀다.
⑨ 죽음에 대해 반복적으로 생각하거나 자살 시도 혹은 자살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운다.
 
다만 자가진단으로 우울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성은 있다. 특히 최근에는 증상은 가벼우면서도 일상생활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신종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과거의 우울증은 약이나 휴식으로 치유될 수 있었으나, 이 새로운 우울증은 가족이나 직장동료와의 사회적 관계를 고치지 않는 한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신의학자 및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 대표적인 우울증 증상의 하나로 절망감이 있다. 사진은 빈센트 반 고흐의 ‘흐느끼는 늙은 남자(영원의 문에서)’.
한국 사회의 우울증 문제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4월 3일 서울 및 6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만 20세에서 59세까지의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국민행복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 결과, 우리 국민들 가운데 36%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응답자 중 56%가 스스로 우울증인가를 의심해 본 경험이 있었으며, 전체의 3분의 1은 정서적 문제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응답자 중 28%에게서 실제로 우울증 의심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우울증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30년 우울증은 질병부담이 가장 큰 질환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감안해도, 한국 사회의 우울증 증가율은 지나치게 높은 편이다.
2014년 하버드 의대 자문교수로 위촉된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국, 중국, 일본 등 극동 아시아 사람들의 우울증 양상은 비슷하다”라고 언급했다. 감정 표출에 익숙지 않고,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문화의 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한국 사람들은 우울함을 느끼고, 그로 인해 불면증이나 식욕부진 등의 명백한 증상이 나타나도 우울증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도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할지 몰라 치료를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라고 전언했다.
일부 우울증 환자는 자신이 우울증인 것을 알지 못하고 일상생활에서 상당히 위축되고 신체적 및 정신적인 기능이 떨어질 때까지도 자신의 기분 문제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호소하지 않는다. 자신의 입장에선 항상 그렇게 살았던 거니까 그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지를 자기도 모르게 된 것이다. 거기다가 이런 경우라면 주변 사람들마저 환자의 상태가 그렇게 심각한 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여러 요인이 겹쳐 현재 한국 사회의 우울증 환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전 교수는 한국 사회의 우울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경우, 정신질환을 경험한 유명인들이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고, 치료를 통해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미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누구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자신에게 문제가 나타나도 적절한 해법을 찾게 되었다.
그에 비해 한국 사회에서는 우울증에 대해 대부분 성격이나 주변 상황의 문제로 치부한다. 환자 자신이 치료에 대한 의지를 보여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가족이 하지 못하게 말리는 일도 있다. 우울증도 다른 모든 병과 마찬가지로 치료시기를 놓치면 치료가 매우 어렵다. 이를 토대로 생각해 보면, 한국 사회는 먼저 서구 사회처럼 우울증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환이며 이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필요성이 있다.
 
   
▲ 우울증에는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사진은 지난 2월 13일 서울시청 시민청 활짝라운지에서 시민들이 서울문화재단 주관으로 설치된 ‘마음약방’ 자판기를 이용하는 모습.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뒷받침돼야…
전홍진 교수는 우울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점에는 국내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전진아 연구위원은 “우울증은 정신질환 중 대표적인 외래질환으로, 약물복용 지도가 꾸준히 이뤄지면 충분히 관리될 수 있는 질환이지만 국내의 정신질환 치료 및 개선을 위한 의료서비스 이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대다수가 의료서비스 이용을 하지 않음을 유추할 수 있다”라고 밝히면서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정책적 개입을 주문했다.
또한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의 김윤아 연구원은 “우울증은 개인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장애를 유발하는 중요한 공중보건학적 문제일 뿐 아니라, 우울증과 자살에 따른 사회경제적 부담도 지난 2011년 기준으로 10조 3,800억 원에 이르며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우울증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일상생활로의 복귀가 가능한 질환이며, 적극적인 인식 개선 노력과 함께 사회적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다. 우울증은 현대 사회의 주요한 정신질환 증상이며, ‘심리적 감기’라고 할 만큼 누구나 경험할 수 있고 때론 자살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문제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당신도 우울증을 겪고 있을 수 있다. 아직 당신 자신이 그것을 모를 뿐이다.

정경뉴스 사회팀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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