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나라 일본에 비해 대지진이 없었던 대한민국. 그 원인을 학자들은 대한민국, 즉 한반도가 ‘유라시아 판’이라는 안정된 땅 위에 위치하고 있어서라고 설명한다. 지진이 잦은 일본의 경우에는 ‘유라시아 판’, ‘태평양 판’, ‘필리핀 판’이라는 세 판의 접촉지대에 위치하고, 수시로 이 판들이 충돌하기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국이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경고가 계속 켜지고 있다. 이론적으로 한반도보다는 더욱 안전해야 할 중국에서 쓰촨(四川, 사천)성 대지진(리히터 규모 8.0)을 포함한 큰 지진들이 일어났으며,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지진의 수가 70년대의 연 평균 19.2회에서 현재 연 평균 47.7회로 증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5월 25일 일본에서는 리히터 규모 5.6의 지진이 발생했지만, 한반도에는 영향이 없었다. 국민안전처는 한반도에 리히터 규모 7.0 이상의 대지진이 벌어질 확률은 1만 년에 한 번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반도에서 지난 도호쿠 대지진이나 쓰촨 대지진과 같은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은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근현대에 들어와 한반도에서 처음 지진 기록이 표기된 것은 1905년이다. 그 이전까지 발생한 지진에 대해서는 역사적 기록을 통해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이 역사적 기록을 정리한 사람은 와다 유지(和田雄治)라는 일본인 기상학자다. 재미있게도 그는 측우기, 첨성대 등 우리나라 기상 관련 유물에 대해 세계에 널리, 그리고 올바르게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와다는 1912년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7,188권의 역사자료부터 서기 2년부터 1855년까지의 역사지진자료를 정리했다. 현재 대한민국에 남아있는 역사적 지진의 기록은 이 정리를 기본으로 하여 수정·보완한 것들이다. 이 기록 중 가장 관심 있게 봐야 할 것이

<삼국사기>에 기록된 혜공왕 15년의 지진이다. 서기로 환산하면 779년에 일어난 이 지진은 경주에서 발생했으며, 민가가 무너지고 100여 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현대의 지진 연구자들은 이 지진의 강도가 최소한 리히터 규모 8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는 지진이라는 단어가 1,900번이나 등장한다. 16세기 중종 시기의 실록에는 “유시(酉時, 오후 6시)에 세 차례 크게 지진이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성난 우레 소리처럼 커서 인마(人馬)가 모두 피하고, 담장과 성첩(城堞)이 무너지고 떨어져서, 도성 안 사람들이 모두 놀라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고, 밤새도록 제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노인들이 모두 옛날에는 없던 일이라 하였다. 팔도가 다 마찬가지였다”라는 대지진의 기록이 남아있다.

본격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과학적 기록이 등장하기 시작한 1978년도부터의 기록을 보더라도, 지난해까지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지진은 1,168회에 달한다. 이 중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규모의 지진은 43회다. 리히터 규모 5 이상인 지진은 6회에 불과하다. 빈도로 따지면 겨우 1%에도 못 미치는 적은 수준이다. 적은 수준이라고 하지만 한반도가 결코 지진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증거들이다.

 

지진은 발생하는 시기를 예측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한번 발생하면 국민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불안감이 매우 큰 재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건축물들은 구조 설계를 할 때 내진 설계(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하는 방법)를 간과해 왔다. 1988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은 최소한도의 지진 대책마저 이뤄지지 않았다. 1988년에 제정된 내진 설계 규정은 이하의 건물에만 내진 설계를 의무화 하도록 규정했다.

① 6층 이상의 건축물

② 연면적(각 층의 바닥 면적의 합계)이 100,000 제곱미터(약 3만 평) 이상인 건축물

③ 지진구역 I(지진 빈도가 잦았던 서울 등 7개 시와 경기도를 포함한 5개 도)에 속하는 지역 중 학교, 병원, 위험물 관리 시설, 대단위 주거단지 등에 해당하는 건축물

④ 국가적 문화유산으로써의 보호 가치가 있는 박물관, 기념관, 기타 이와 유사한 건축물로 연면적이 50,000 제곱미터(1만 5천 평) 이상인 건축물

②번과 ④번을 보듯이, 우리나라는 건물의 규모가 크지 않으면 내진 설계를 의무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①번의 경우, 2005년 3층 이상 건축물을 대상으로 내진 설계를 시행하는 것으로 변경되었지만, 2005년 이전에 지어진 저층 건축물들은 내진 설계가 되어 있지 않아, 외장형 보강재를 설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일부 건물들은 주차 공간 및 환기를 위해, 벽체를 없애고 기둥과 서까래에만 의존하는 ‘필로티’공법을 시행하는 경우도 있다.

‘필로티’공법은 지진에 약해, 미국의 경우 반드시 ‘특별지진하중’을 적용해 국제적 기준에 따라 본래 건물의 무게보다 2.5배를 견딜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경우 ‘필로티’공법을 사용할 때에도 공사비의 절감을 위해 일반 건물과 같이 본래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만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하여 3층 이하의 건물들은 대부분 벽돌로 지어지고 있는데, 벽돌 건물은 그 특성상 지진에 취약하기 그지없음에도 가격이 저렴하고 공사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계속 이용되고 있다.

 

일반 건축 관계자들만 이런 안이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니다. 관계 주무부서인 국민안전처조차 지진에 대해서는 ‘발생하지 않을 일’로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3년 국민안전처(당시 소방방재청) 소속 국가 지진방재기준 기획단은 ‘국가지진위험지도’라는 지침을 내놓았다. 1997년에 한 차례 작성된 바 있는 이 지침은, 국내 건축물 내진 설계의 기초다. 문제는 2013년 판 ‘국가지침위험지도’에서, 서울을 포함한 대부분의 지역의 내진 설계 기준을 낮췄다는 점이다. 이 지침에 대해 지질자원연구원은 “기존의 내진 설계 기준에 따라 공사할 경우 리히터 규모 6.0의 지진에 버틸 수 있는 건물을 건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3년에 제정된 새 기준에 따르면, 리히터 규모 5.5에 겨우 버틸 수 있는 건물을 짓게 된다”라고 아쉬워하기도 하였다.

더 심각한 것은 소방방재청(현 국민안전처)은 이 지침을 만들기 전인 2010년 한반도를 대상으로 지진 시뮬레이션 실험을 수행한 바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리히터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많이 일어난 지역인 충북 보은군을 진앙지로 삼아,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규모 6.8의 지진일 때 사망 1만 2천 8백여 명, 부상 59만 4천여 명, 긴급 대피해야 하는 피난민이 51만 명이 발생할 것으로 계산되었다. 건축물도 5만 4천여 동이 붕괴, 18만 동의 전파

(全波), 44만 동의 반파, 부분 손실 184만 동에 이를 것으로 집계되었다. 당시 전체 건축물이 665만 5천여 동이었으니, 전체 건축물의 38% 정도가 지진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진앙지를 서울로 변경해 보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는데, 인명 피해는 7배 이상으로 증가하고 건축물 피해가 전체 건축물의 90% 이상으로 추산되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전 세계가 내진 설계 기준을 강화하고 있는 시점에, 이와 같은 참혹한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음에도 대한민국 주무부처만 역행하고 있는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이뤄지는 재난대응 안전훈련에서도 지진보다는 화재나 홍수에 대비한 훈련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인공호흡법이나 소화기 사용 등의 훈련은 많이 하지만, 대피 훈련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오사카 시는 해마다 880만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지진 대피훈련을 진행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도 평상시에 피난소 체험 훈련을 수시로 시행하고 있다. 이런 일본의 사례에 비춰보면, 우리나라의 지진 대비 정책은 실로 부족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한반도 대지진이 1만 년에 한 번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는 사실은 언제든 그 ‘1만 년의 1번’의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의미다. 지하의 통신망이나 전력선은 5.0 규모의 지진에도 끊어지며, 수도관과 가스관이 폭발하면 화재와 침수가 일어난다. 지진에 대한 국가적인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자연재해는 회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고, 평시에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노력을 거듭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국민안전처는 5월 21일 지진재해대책법에 대해 ‘지진·화산재해대책법’으로 일부 법률을 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앙부처와 지자체가 각각 위기관리 실무 매뉴얼과 현장 조치 행동 매뉴얼을 작성·활용하게 하며 중앙정부 차원의 종합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금년부터는 재난대응훈련에서 지진과 관련해 훈련을 늘릴 것이라고 한다. 이번 네팔 대지진을 통해 정부와 민간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