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12월 23일 내무부 해양경찰대로 설립된 이후 60년이 넘도록 한 순간도 경찰의 이름을 벗은 적이 없던 해양경찰은 지난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의 해경 해체 선언이 있은 지 정확히 6개월 만인 11월 19일 정부조직법 제24조에 의해 독립 외청이 아닌 국민안전처 산하 ‘해양경비안전본부’로 조직·개편됐다. 조직원들은 여전히 경찰 신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조직명에서만 경찰이라는 단어가 빠져, 경찰들의 집합체인데 경찰이 아닌 기이한 상황에 빠지게 된 셈이다. 명예직인 경찰공무원에게 경찰이라는 명칭은 그 자체로 명예를 나타내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사고 직후 선체 밖으로 나온 172명 전원을 50분 동안 성공적으로 구조했으나 그 과정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해상에서의 국민안전을 책임지고 중국의 불법조업을 막아 어민들의 안정적인 생계를 확보하는 한편 지난 2010년 천안함 폭침 때 승조원 104명 중 58명을 구조하는 등 군·경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던 일당백의 해양경찰에게 명예마저 빼앗은 선택은 과연 옳았을까. 삼면이 바다인 반도국가인 우리나라 해상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 같던 해양경찰은 이제 경찰이면서도 경찰이라 부를 수 없는 비참한 처지에 이르렀다.

 

해양경찰 해체 이후 새롭게 재편된 해양경비안전본부 소속 직원이나 경찰청으로 소속을 바꾼 해경 수사관들 모두 해체 이후의 해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세월호 사고 당시 현장 대응 능력이 부재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지휘부는 책임을 지지 않은 채 퇴임했거나, 해양경비안전본부에서 그대로 일하고 있는데다가 정부가 해상 경험이 전혀 없는 경찰청 출신 인사를 수장으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대응 미비로 해경을 완전히 뒤바꾸겠다고 호언장담한 정부가 바다 근무 경험이 없는 지휘부를 꾸린 것이 과연 해상사고의 대응능력을 키우겠다는 정부의 올바른 의지인지 의심스럽다.

정부가 기존의 해경 수사·정보 기능을 경찰청으로 옮기면서 792명이던 해경 수사·정보 인력은 절반 이상 경찰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경의 수사·정보 기능이 경찰청으로 넘어가면서 그동안 해온 업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수행하는 등 해상에서의 임무에 특화된 인력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육상과 해양 경찰청 모두 손해이며 더 나아가서는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지 못한 국가적 인력 낭비로 이어진다.

해양경찰학과의 한 교수는 “중국, 일본 등 우리의 주변국들은 해상주권을 지키기 위해 해상 관련 조직을 강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다”며 “해상안전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해양의 특수성을 반영한 해양경비안전본부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휘부를 비롯한 해경의 모든 구성원이 현장 대응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상에서의 독립적인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존에 해경이 담당해 왔던 각종 업무가 관련법률 개정으로 인해 지방자치단체나 유관기관으로 이전되면서 해운항만 분야의 안전관리 등 곳곳에서 공백이 생겨나고 있다. 제주해경본부는 ‘해운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도내 여객선터미널에서 시행되는 임검(탑승객)과 화물 검사에서 빠졌지만 별도로 경찰관이 배치되지 않고 해운조합 소속 직원들만 임검에 나서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져 지명수배자 등에 대한 감독이 약화된 상황이다.

특히 화물선과 여객선에 선적되는 화물에 대한 검사를 제주해양수산관리단 소속 해사안전감독관 2명이 전담하다 보니 정작 출항 전 해당 선박 내부에 대한 안전점검에 공백이 발생하는 등 제2의 세월호 참사가 언제고 반복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되버렸다. 더구나 해운법 개정에 따라 현행법상 어선은 지자체가, 유·도선은 해경본부가, 화물선 및 여객선은 해수부가 제각각 담당하게 되면서 선박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안전관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또 해경본부의 훈련 분야도 구조 훈련 시간을 기존 17시간에서 100시간으로 늘리는 등 무리하게 구조 중심으로 확대되면서 불법조업 중국어선 등이 사실상 현장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도 이같은 현실이 무시되고 있어 정작 실무에 대한 전문성 약화만 초래하고 있다. 실제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제주해경본부가 나포한 불법 조업 중국어선 수는 모두 37척으로, 이는 전년도 같은 기간 13척에 비해 무려 184.6%(24척)나 급증한 수치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4일 자로 ‘해수욕장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해수욕장 안전관리 주체가 해경에서 지자체로 넘어갔지만 전문성 약화와 전문인력 구인난, 상황실 운영 허점 등 다양한 문제점만 야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도내 해양안전 분야 전문가는 이와 관련해 “해경 해체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안전관리에 공백이 노출되고 있는 만큼 이같은 문제점에 대한 체계적이고 면밀한 분석을 통한 후속대책이 조속히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어선의 서해 북방한계선 인근 해상 불법조업이 올해 들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서해 5도 일대의 꽃게 조업이 지난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중국어선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고 있다. 인천해양경비안전서에 따르면, 5월 현재 서해 NLL 인근 해상에서 해군 레이더망에 포착된 중국어선 수는 지난해 같은 시기와 비교해 100여 척이 늘어난 하루 평균 346척으로 집계됐다.

불법조업 중국어선은 4~5월과 9~10월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데, 서해 NLL 인근 북한 해역에 머물다가 감시가 소홀해지면 우리 어장 쪽으로 남하했다가 꽃게를 싹쓸이한 뒤 달아난다. 대청도의 한 어민은 “최근 들어 중국어선이 NLL 인근에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다시 몰려오고 있다”며 “지난해 중국어선이 치어까지 싹쓸이하는 통에 올해 꽃게 어획량은 작년의 3분의 1 수준도 안 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는 올해 인천 해역의 꽃게 어획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70% 줄어든 1,600~2,200t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인천해경서는 “2012년부터 서해 수온이 0.5도씩 오르면서 어장 형성 시기가 당겨지고 있다”며 “조업철에 서해 NLL로 접근하는 중국어선 수도 전년도보다 보름가량씩 당겨져 같은 기간을 비교하면 증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밝혔지만 해양수산부의 ‘서해 5도 주변지역 중국어선 출몰 현황’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작년 5월 19일 해경 해체 선언 이후 6월부터 12월까지 서해5도 지역에 출몰한 중국어선은 총 29,614척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 출몰한 중국어선(25,444척)에 비해 총 4,170척, 월 평균 600여 척이 많은 수준이다. 특히 150여 척이 줄어든 6월을 제외하면 모든 달에 걸쳐 중국어선의 수가 크게 늘어났다.

 

해경 해체 선언 후 1년, 국민안전처 산하 조직으로 재편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해경은 아직 이렇다 할 홈페이지조차 구축하지 못해 많은 민원인이 온라인 행정서비스 등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안전처는 연말까지 홈페이지를 전면 개편할 예정인데, 이때 5개 지방본부의 홈페이지만 새로 만들 계획이고 17개 해경안전서 관련 소개나 업무 관련 정보는 소속된 지방본부 홈페이지에 포함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경찰서 단위로 홈페이지를 갖추고 조직 소개부터 행사·정책·업무 안내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육상 경찰과 비교되면서 조직 해체로 위축된 해경 직원들의 사기를 더욱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될 것이다. 해경 관계자는 “비록 기능과 인력이 축소됐지만, 해경안전서는 여전히 해상 안전과 치안 부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며 “육상 경찰서와 비교하면 더 초라해지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 크다”고 토로했다.

 

대한민국의 영해는 영토의 4.5배가 넘고, 배타적 경제수역까지 생각하면 그 범위는 훨씬 광범위하다. 일본과 중국의 해양주권 위협과 북한의 해상 도발, 갈수록 늘어나는 중국 어선들의 불법조업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하루바삐 해경이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독수리가 낡은 부리를 과감하게 바위에 부딪쳐 깨버리고 새로운 부리를 얻어 제2의 인생을 살 듯 해양경찰이 잠시 경찰의 이름을 벗었다 하여 본질까지 경찰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들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으로 순간의 난항(難航)을 버텨내 새로운 해양경찰로 재탄생하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