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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평화적 핵협상 타결과 북핵문제
윤지원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겸 남북한문제연구 | 승인 2015.05.12 17:25|(182호)
   
▲ 윤지원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겸 남북한문제연구소장.
지난 4월 2일(현지 시각)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이란 핵협상에서 이란과 주요 6개국 P5+1(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은 핵개발 중단 및 대(對)이란 경제제재 해제를 주요 골자로 6월 말까지 최종타결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동안 이란 핵문제에 대해 미국을 주축으로 서방과 이란은 올 3월 말까지 기본원칙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마치고, 6월 말까지 세부사항에 대한 합의를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협상을 진행해 왔다. 이란 핵문제는 2002년 8월 이란 반정부 단체 ‘국민저항위원회(NCRI)’가 중부 나탄즈에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의 존재를 최초 폭로한 이후 12년 만에 극적으로 타결된 것이다.
 
핵협상을 통한 미국과 이란의 관계 정상화
이번 이란 핵협상의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지난 10여년간의 협상 끝에 합의안이 나왔다는 점이다. 이란 핵협상 타결의 핵심은 이란이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를 줄이는 대신 국제사회가 대(對)이란 경제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적 행동이나 위협 대신 평화적 대화와 협상이라는 외교정책의 성과로 간주된다. 즉 미국과 이란 관계에 대한 외교적 관계 복원 등 전방위적인 변화가 중요한 것이다. 지난 1979년 호메이니 정권 하에서 테헤란 미 대사관 점거 사건 이후 미국은 지난 36년간 이란과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또 미국은 지난 15년간 계속된 서방의 이란 경제제재를 주도해 왔다.
이란 핵문제의 최종 타결 시한인 6월까지 기술적 세부 협상에서의 난항 등 다양한 걸림돌도 제기된다. 이 중 중동 지역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 확대와 중동의 정치사회적 불안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동 전문가들은 “이란의 경제제재 해제로 인해 중동 지역 내 반군단체에 대해 지원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란이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예멘, 바레인 등에서 반군 및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암묵적 경제·군사지원을 해 왔기 때문이다. 아울러 2년 임기를 앞둔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미국 내 의회에서의 반발은 계속되고 있다. 현재 미 상·하원에서 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의 반대와 전통 우방국 이스라엘 및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반대도 제기된다. 이란 핵협상에 대해 지난 3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공화당 초청으로 미국 의회에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연설을 감행했다. 이어 미국 공화당 47여 명의 상원의원들이 이란 지도자들에게 “차기 대통령 혹은 의회가 협상안을 무효로 만들 수 있다”는 공개편지를 보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런 걸림돌에도 불구하고 이란 핵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란 지도자들의 정치적 결단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2013년 8월 초 취임한 온건중도파 로하니 새 이란 대통령은 전임 보수강경파의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과는 다른 정치행보를 보였다. 로하니 대통령은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개혁파와 온건파의 지지를 받고 당선됐다. 그는 당선 이후 줄곧 경제제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핵개발의 투명성을 언급했다. 그는 “핵개발 문제는 협상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점을 통해 외교적인 평화적 협상에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이란 핵문제 해결을 통해 이란의 고질적인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등의 국내문제 해결을 위해 타국과의 신뢰관계를 재구축하고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을 촉구했다. 실제로 그는 집권 이후 2013년 10월 제네바에서 처음으로 이란·P5+1 협상에 이어 동년 11월 제네바에서 2차 P5+1 협상이 재개됐다. 2014년 1월 공동행동계획 이행과 동년 7월 이란 협상 시한을 11월 24일까지로 4개월 연장하고, 미국은 이란 동결자금 28억 달러 해제를 발표했다. 2015년 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이란 양자협상 등을 이끌어냈다.
 
한 핵문제 해결은 가능할 것인가
이제 국제사회의 시선은 수년간 고착상태에 놓여 있는 북한 핵문제로 쏠리고 있다. 낙관론보다는 비관론이 더 앞서고 있는 북핵문제는 이란 핵문제와 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평화적 해결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의 핵문제 타결 의지가 중요한데, 현재 그런 입장은 찾기 어렵다. 20여 년을 훌쩍 넘은 북핵 협상은 해결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앞서 강조했듯이, 이란 핵협상 타결의 핵심은 이란이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를 줄이고 그 대가로 국제사회가 대이란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이다. 과연 이런 유사한 사례가 북한에도 가능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 중 북미 간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들 수 있다. 최대 쟁점이었던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고, 2003년까지 해체로 이어지는 합의안이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와 시찰 감행, 한·미의 경수로 설치 및 비용을 제공, 경수로 완공 시점까지 매년 중유 50만 톤 등 경제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북한은 2002년 10월 핵무기 개발 계획을 시인하고, 1993년에 이어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NPT) 재탈퇴를 선언했다. 이로써 제네바합의는 파기됐다. 그 후 북미 양자회담에서 2003년 8월부터 한·미·일·중·러를 포함한 6자회담 체제가 가동되면서 관련국들은 2005년 9·19 공동성명,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를 어렵게 도출해 냈다. 계속해서 김정은 체제 하에 북미는 2012년 2월 북한의 우라늄 농축프로그램 중단과 미국의 식량지원을 골자로 한 ‘2·29 합의’를 발표했지만 중단된 상태다. 이처럼 북한은 북·미 양자 회담을 포함해 6자회담의 평화적 합의안을 이행하지 않고 스스로 모든 합의를 깨는 수순을 반복해 왔다. 게다가 북한은 이란과 달리 NPT 체제 탈퇴 하에서 2006년, 2009년, 2012년 3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한이 2013년 4월 영변 원자로 재가동 선언 이후 북핵 협상은 20여 년 전 제네바합의 이전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북핵 타결을 위해 외교적 노력은 뚜렷한 진척 없이 원점 상태에 놓여 있다.
북한은 이란과 달리 핵무기를 보유한 채 체제의 안정을 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6자회담 관련국들이나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해제만으로 북핵 개발을 중단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란 핵협상에 보여주듯이 외부적 요인보다는 북한 내 국내 정치적 요인이 중요한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의 핵 개발에 대한 투명성을 추구하고 국제사회와의 신뢰구축을 통한 경제개발 지향 등 개혁·개방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가 지향하는 북핵·불용의 원칙을 북한이 수용하지 않고, 폐쇄적이고 핵보유국 병진정책을 추구하는 한 북한과의 평화적 핵협상 타결까지는 쉽지 않는 노정이 예상된다.

윤지원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겸 남북한문제연구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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