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70년, 우리나라가 광복을 맞이한 지 70년이 되는 해다. 일제강점기, 남북 분단으로 UN과 인연이 깊은 대한민국으로서는 의미가 깊다. 더욱이 UN의 수장이 한국인이라는 점에서 올해는 역사에 기록될 만하다. 지난 2006년 취임한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취임 당시 수락 연설에서 “갈등 조정자와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겠다. UN 사무총장으로서 부여된 역할과 양심을 모아서 행사하겠다. 어떤 정부나 외부기관의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고 UN 이익을 위해 행동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반 총장은 이와 같이 취임 시부터 분쟁 해결사를 자처했다. 일부는 대한민국에서 UN 사무총장이 나온 데 대해 의구심을 가진다.

하지만 UN 창설 배경을 알면 고개가 끄떡여진다. 그동안 UN 사무총장에 오른 인물을 면면히 살펴보면 모두 강대국과 거리가 있다. 트리그브 할브란 리, 다그 함마르셸드, 우탄트 UN 사무총장은 각각 노르웨이, 스웨덴, 미얀마 출신이었다. 이후 총장직을 수행한 쿠르트 발트하임,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코피 아난 역시 오스트리아, 페루, 이집트, 가나를 조국으로 뒀다. 이들 출신 국가를 볼 때 UN이 중립성을 표방하고 외부 간섭에 배타적임을 알 수 있다. 실상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지역 강대국에서는 암묵적으로 사무총장직을 맡지 않는다. 이처럼 특정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고 모든 나라가 평등하도록 힘쓰는 게 UN의 맡은 바 책무다. 하지만 UN의 역량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를 사무총장직을 수행한 이들도 인지했다. 두 번째로 총장을 맡은 다그 함마르셸드는 “유엔이 인류를 천국으로 이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옥에서 구출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을 남겼다. 1953년 취임해 1961년 콩고에서 발생한 분쟁으로 이동 중 비행기 사고를 당한 그에게 현실은 부조리했다. 따라서 UN은 이를 해결하는 의지의 산물이었다. 가장 강력한 지도력을 갖췄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이러한 발언은 UN의 힘이 나약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네 번째 UN 사무총장을 지낸 쿠르트 발트하임 역시 한계 속에서 분쟁 해결에 힘을 쏟으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출신인 그는 독일군 나치 복무 기록과 상임이사국의 견제 속에서 분쟁에 적극 개입할 수 없었다. 명목적으로 수장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원활한 활동이 어려웠다. 그는 “UN은 UN이 돕고자 하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처럼 이전 수장들은 UN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느꼈다.

 

반 총장은 그동안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여러 도전을 거쳤다. 그의 행적을 알아보기에 앞서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외유내강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그는 줄곧 정통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 1944년 6월 13일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나 1970년 외무고시(3회)에 합격하면서 외무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978년 유엔대표부 1등 서기관, 1990년 외무부 미주국장, 1996년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 2001년 제56차 UN총회 의장 비서실장 등을 지냈다. 신장이 177cm에 달할 정도로 동시대 인물로는 큰 편에 속한다. 주량은 소주 반 병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소탈하고 근면 성실한 유형이라는 게 주변 사람들의 평이다. 그를 외교관의 길로 이끈 건 고등학교 무렵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던 경험으로 알려져 있다. 실상 그는 서울대 외교학과를마치고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했다. 즉 UN과 인연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UN에 입성하는 길이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여덟 번째 UN 수장이 되기까지 수차례 예비 투표를 거쳤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바다. 상임이사국의 반대도 있었다. 당시 일본이 마지막 순간 기권을 하면서 반 사무총장은 취임식 단상에 오를 수 있었다. 일본과 외교 마찰이 벌어지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UN 사무총장 배출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처럼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견제는 UN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특정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특히 그 국가가 강대국일 경우 UN 사무총장의 위치는 흔들린다. 아울러 UN이 독립적으로 무력을 동원할 수 없다는 점은 명확한 한계다. 즉 분쟁이 발생했을 때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의사를 무시하고는 강제로 타협점을 찾을 수 없다. 반면 수장이 된 이후 행보는 순조로웠다. 2011년 반 사무총장은 두 번째 임기에 도전하며 재임에 성공했다. 특별히 과오가 없던 그에게 UN 사무총장 연임은 예견된 일이었다.
 

주변에서 그의 성과를 꼽노라면 새천년개발목표 달성, 기후변화 대처, 핵확산 방지 등을 든다. 여기서 새천년개발목표란, 절대빈곤과 기아퇴치, 남녀평등 및 여권 신장, 임산부의 건강개선, 보편적 초등교육 달성, 지속 가능한 환경보전, 에이즈와 말라리아 등 각종 질병 퇴치, 동반 발전 관계 구축 등이다. 이러한 목표는 지난 2000년 9월에 합의해 UN 참여국이 2015년까지 실천하기로 한 합의들이다. 주변에서는 UN 회원국이 정한 이들 내용을 반 총장이 원활히 수행했다는 평가를 내린다. 그를 ‘노련한 외교관이자 협상가’로 부르는 이유는 이러한 행보에 있다. 즉 국가 간 이해타산을 적절히 조율하면서 합의를 도출하고 불필요한 마찰을 줄였다는 게 국제사회가 반 총장에게 내린 평가다. 이외에도 국제사회는 그에게 ‘분쟁 해결사’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반 총장은 그중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힘쓰면서 국가 간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데에 탁월한 성과를 냈다. 지난해 12월 열린 ‘제20차 UN 기후변화협약’을 예로 들면, 반 총장은 선진국에서 탄소 배출 감축안을 이끌어 내는 데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기후변화협약은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전 세계적 약속이다. 협약에 영향을 받는 국가는 모두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유럽연합의 경우 1990년과 비교해 2030년까지 최소 40%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한다. 미국은 오는 2025년까지 2005년 대비 최대 28%를 줄이는 게 목표다.
 

반 총장은 이러한 계획이 유지되도록 돕는 역할을 수행하며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이해관계를 조율한다. 실상 UN의 가장 큰 임무 가운데 하나는 이같은 기후변화 대처다. 지난해 9월 열린 ‘UN 기후정상회의’에서 반 총장의 발언은 이러한 기조와 맞닿는다. 그는 “기후변화는 수십 억 인구가 어렵게 얻은 평화와 번영, 기회를 위협한다. (기후변화 대처에 있어서) 새로운 진로를 세워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최근에도 그는 “기후변화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한다.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반 총장은 아울러 협약 촉구의 연장선 상에서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기금 마련에도 힘썼다. UN의 산하기구 가운데 하나인 ‘녹색기후기금’을 통해 반 총장은 개도국의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지원했다. 지난 2013년 12월 공식 출범한 녹색기후기금은 그의 업적 가운데 하나다. 선진국이 자금을 마련해 개도국이 겪는 기후변화 피해를 줄이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게 기구의 목적이다. 2020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 규모의 재원을 확보하는 계획을 밝혔는데, 우리나라 역시 자금 지원에 참여 중이다. 또 반 총장은 전 세계인을 상대로 ‘지구 기후 지키기’홍보 대사 역할도 수행한 바 있다. 그는 2014년 9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나는 기후변화 대응을 지지한다’는 티셔츠를 입고 거리 행진을 하는 한편, 유명 영화배우들과 함께 다니면서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에 앞장섰다.
 

기후변화 대처와 더불어 핵확산 방지 역시 반 총장 재임 기간 중 눈에 띄는 성과다. 그는 ‘핵비확산조약(NPT) 조약’ 40주년을 맞은 지난 2008년 이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반 총장은 “여전히 수만 기에 달하는 핵무기가 존재한다. 더 큰 규모의 핵무기 감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통제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핵비확산조약이란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5개국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다른 국가의 핵을 금지하자는 약속이다.

하지만 현재는 인도, 이스라엘, 이란, 북한 등지에서 핵무기 개발이 이뤄지면서 유명무실한 조약이 됐다. 이때문에 반 총장은 줄곧 핵무기 개발에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빈번히 전달했다. 특히 북한을 상대로 한 제재에 적극 앞장섰다. 그는 “(북한의 핵실험은) 무모하고 충격적이다. 지역 평화를 유지하고 핵확산을 억제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다. 안보리에서 이러한 사태를 규탄하고 의미 있는 조치를 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취하곤 했다. 실상 북한의 핵무기 실험은 반 총장의 재임 기간 골치를 썩였다. 이같은 발언과 함께 그는 핵무기 확산 근절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하고 국제사회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우라늄과 플루토늄 생산을 금지하고 핵무기 없는 세상을 기본으로 하는 UN의 계획이 이러한 결의안에 담겼다.

 

국제사회의 이같은 시각과 달리 국내 정치는 반총장을 어렵게 했다. 그의 보폭을 좁히며 UN 내에서 활동을 제약했다. 특히 선거 때마다 반 총장은 유력 대선주자에 이름을 올렸고 지지층의 질문공세에 시달려야만 했다. 특히 여론조사 기관에서 대권주자 지지율을 조사할 때면 어김없이 ‘반기문’이라는 이름이 상위에 올랐다. 여야 모두 그를 유력 대선주자로 여기는 데에 이견이 없었다. 반 총장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는 지난 2011년 6월 8일(현지시간) 뉴욕 UN 본부에서 있은 모 언론 인터뷰에서도 “(국내) 정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대선 여론조사에서) 이름을 뺐으면 좋겠다. 영어로 번역한 한국 여론조사 보도가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괴롭고 회원국들이 혼란을 일으킬 정도”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 사건에서도 곤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고 성완종 회장 파문이 그 중심에 있다. 국내 정치권의 실상을 보면, 유력 정치인과 친분을 과시하려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사조직을 만들 때 고문이나 명예직을 정치권 인사에게 부여하는 일이 다반사다. 아울러 관계가 있는 이들을 끌어들이기에 바쁘다. 즉 혈연, 지연 찾기에 열을 올린다. 피가 조금이라도 섞인 인물, 어린 시절 얼굴을 못 봤지만 동향이라면 사정권 안에 들어온다. 이같은 인물로 거론되는 게 반 총장이다. 이처럼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반 총장은 국내 정치에 엮이며 국제사회에서 곤란한 처지에 이르렀다. UN 사무총장이라는 본분에 전념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고 퇴임 이후 계획도 공식석상에서 확인했지만 주변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이 때문인지 그는 또다시 국내 정치와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지난 4월 16일(현지시간) 반 총장은 “가족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려 한다. 손주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며 긴장에서 해방되고 싶다. 아내와 45년간 결혼생활을 했는데, 집사람이 고생을 많이 했다. 완전히 자유롭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데 힘을 쏟겠다. 멋진 식당에 가족과 함께 가고 국내 정치 문제와 연관되는 게 부담스럽다”고 공개석상에서 밝혔다. 그는 이어 “(고 성완종 회장 사건과) 나와는 관계가 없다. 충청포럼에서 성 회장을 본 적이 있고 알고 있지만 특별한 관계가 아니다. 국내 정치에 관심 없고 그럴 여력도 없다. 이런 입장을 이전에도 분명히 밝힌 적이 있는데 또 나와 당혹스럽다”고 전했다. 성 회장과 충청 포럼을 둘러싼 연루 의혹이 불거진 직후 그의 발언이다. 한편 정치권 주변에서도 이번 사건 당사자들과 반 총장과는 깊은 관계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충청포럼을 지켜본 모 관계자는 “충청권에 연이 있는 정관계 인사는 관리에 나서며 인맥 쌓기에 바빴다. 상대방이 거리 두기에 나서도 충청포럼 내에서 경조사를 챙기고 세를 넓히려 했다. 충청 포럼 자체가 인맥으로 특정 사안을 해결하려는 성향이 짙었다”고 밝혔다.

결국 반 총장은 국내 정치권의 관행과 성 회장 사건으로 국제사회에서 신뢰도가 다시금 훼손됐다. 이처럼 그의 의사와 무관한 일들이 국내에서 계속 벌어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막을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기존 UN 사무총장직을 역임한 인물들 가운데 대통령이 된 사례가 있어 반 총장으로서는 더욱 곤혹스럽다. 네 번째 총장직을 수행한 쿠르트 발트하임은 퇴임 뒤 오스트리아 대통령에 올랐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은 그를 견제하는 세력과 지지하는 세력 모두에게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이같은 사실을 감안하면 반 총장에게 모든 의혹을 잠재우는 순간은 퇴임 이후 행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그는 본지 최재영 발행인과 지난 2월 서신을 통해“금년은 유엔탄생 70주년을 맞아, 새천년개발목표 달성, 기후변화 협약체결 및 새로운 지속가능한 목표 달성 등 유엔의 중요한 일들을 달성해야하는 해인 만큼, 금년 한 해는 혼신의 힘을 다해 나아가고자 한다”며 지속적인 격려와 응원을 당부했다. 이로써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유엔 역사상 가장 훌륭한 유엔 사무총장이 업적을 남기고 명예롭게 퇴임해 조국의 품에 돌아올 수 있도록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야 할 것이다.

 

2009년 10월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만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의원들과 만찬 석상

“국내 정치는 국내 정치인의 몫이며 훌륭한 정치인들이 잘 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 나는 UN 사무총장으로서 맡은 직무에 충실할 것이다. 국내 정치에 전혀 관심 없다.”

 

2011년 1월 3일(현지시간) 반기문 총장 관련 UN 고위 관계자 발언

“(반 사무총장이) 여러 차례 대선에 나갈 뜻이 없다는 점을 밝혔는데도 계속 거론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반 총장은 이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식적·비공식적으로 밝혔다. 일부에서 후보로 거론하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2014년 1월 6일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주변 지인에게 전한 발언

“2016년 12월 사무총장 임기가 끝난 뒤에도 해외에 계속 체류할 생각을 갖고 있다.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데 상당한 부담을 느낀다.”

 

 

• 출생일 : 1944년 6월 13일생 •출생지 : 충청북도 음성

 

•학력

1963년 충주고 졸

1970년 서울대 외교학과 졸

1985년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졸

2008년 명예 외교학 박사(서울대)

2008년 명예박사(미국 뉴저지주 페어리디킨슨대)

2010년 명예박사(러시아 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

2010년 명예박사(중국 난징대)

 

•주요 경력 및 상훈

1970년 외무고시 합격(3회)

1995년 외무부 외교정책실장

2000~2001년 외교통상부 차관

2003년 대통령 외교보좌관

2004~2006년 외교통상부 장관

2006~2015년 제8, 9대 UN 사무총장

1975년 녹조근정훈장

1986년 홍조근정훈장

2001년 오스트리아 명예대훈장

2006년 알제리 국가유공훈장

2012년 IOC 올림픽훈장 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