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리더십을 맞이한 새정치민주연합이 어떻게든 수권 가능한 야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는 과정이 앞으로의 야당의 운명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최근 원전비리, 해외자원개발, 각종 기업들의 불법 정치자금 문제 등을 중요한 개혁 쟁점으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는 집권 중반기를 넘어가면서 개혁 드라이브를 통해 국면을 전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개혁 드라이브가 기존의 인사개혁 실패,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얼마나 국민들의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어찌됐건 야당의 입장에서는 개혁의제를 청와대와 여당이 점유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난감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적으로 개혁은 야당의 수권 아이콘이었던 것처럼 정치적인 배경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가 개혁의 의제를 먼저 내놓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17일 박근혜 대통령, 김무성 대표, 문재인 대표의 3자 회동은 야권 지지자들에게도 관심 사항이다. 많은 언론에서는 현실 권력과 미래 권력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프레임을 통해 오래간만에 성사된 2012년 대선 후보의 재회를 미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진부한 프레임일 것이다. 새로운 야당, 수권을 바라보는 변화된 야당의 메시지를 많은 야당 지지자들이 기대하지 않았을까? 3자 회동에 참여하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과연 어떤 의제를 들어 청와대와 여당에 각을 세울 것인가, 그리고 이런 의제는 얼마만큼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가가 관심의 대상이어야 했다.

그러나 개혁을 점유한 청와대는 정치적 협력과 협조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어떻게든 3자 회동에 참여하는 명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지만, 야당은 어떤 명분을 갖고 있었는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경제 정당으로 거듭날 것을 표방했지만 실제 체감 경기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대해선 대안 없는 모습이다. 물론 문재인 대표는 소득중심의 경제를 강조하기는 했지만, 연말정산 문제, 서민 증세의 움직임이 얼마만큼 야당의 소득중심의 경제를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개념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혹자는 지난 연말정산이나 담뱃값 인상 과정에서 야당의 협조가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관련 법률이 통과됐던 것 아닌가라는 질타성 역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 서민증세라고 야당이 외치는 연말정산이나 담뱃값 인상은 야당과 여당이 함께 결정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표가 외치는 소득중심의 경제성장은 어떤 내용인가가 되물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경제성장이나 경제회생 등을 주도하는 정책수단은 정부 여당이 갖고 있다. 물론 관련법이 중요한 정책수단이기는 하지만 경기부양이나 각종 정책수단을 선택하는 권한은 야당보다는 여당에게 더 많이 부여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집권이며, 또한 집권세력의 권한이고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소통이 없었거나 미진했다는 평가를 받는 박근혜 대통령은 어찌됐건 3자 회동을 통해 최소한의 변화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심판을 외쳐왔던 야당 문재인 대표는 어떤 변화를 보여주었는가 하는 점이 면밀하게 지적돼야 할 것이다. 3자 회동은 권력과 권력이 만나는 자리이기는 하지만 국민이 동의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권력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에 단순한 정치적 프레임에 매몰되기보다는 국민에게 야당이 적절한 메시지를 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야당의 의제 실종 또는 의제 선점 능력의 미흡성은 4·27 재보궐선거에 새정치민주연합이 표방하고 있는 프레임에도 나타난다. 물론 여당의 때늦은 종북 프레임은 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면 야당은 무언가 새로운 정책 지향을 제시하는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는가 반문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 심판론이 실제 선거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과거 일련의 선거들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심판론을 온전히 버리지 못하고 경제정책 실패와 관련된 책임론 또는 심판론으로 이름만 바꾼 것이라는 비판적 평가도 많다.

그러나 경제정책의 실패에 대한 대안에 목말라 있는 국민들 입장에서는 과거 심판론을 외치던 야당과 별다른 차별성을 갖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라는 키워드는 중도 유권자들의 표심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야당의 경제정당 또는 경제정책 심판만으로는 중도층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야당은 경제정책 심판을 내세우기 전에 민생, 생활경제에 대한 면밀한 진단과 대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없다면 여당에서 내놓은 종북 프레임은 대안 프레임으로 보궐선거 환경에서 표심을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의제의 부재 상황에서 최근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것은 홍준표 경남지사의 무상급식 중단 선언이다. 문재인 대표와 홍준표 지사 간의 짧은 대화는 사실상 서로가 인정했던 대안을 찾는 무게감보다는 벽에 이야기하는 가벼움의 해프닝 정도를 끝나버렸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 선거를 뜨겁게 달궜던 무상급식 논쟁은 선거결과만 놓고 보면 야당의 승리였지만, 이제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한 시기다. 홍준표 지사의 이러한 대응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끌어올려 보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것이든 어떤 것이든 논쟁으로 끝나 버린 무상급식의 구체적인 집행 문제를 면밀하게 제시하는 야당의 모습이 필요했던 만남이었다.

사실 현행 ‘학교급식에 관한 법률’에는 학생들의 급식비용 지급은 부모에게 의해 이루어져야 하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일부 또는 전체를 지원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국가의 급식비 지원은 의무사항이 아니라 권고사항이라는 것이다.

역시 학생 급식비 제공은 부모의 의무로 되어 있다. 물론 이 법률에 대한 개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중이지만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논란의 중심에 있던 무상급식의 문제는 제도적으로 해결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야당이 할 일이다. 지방재정이 어려운 상태에서 현행 개정되지 않은 법률은 지방자치단체장이 무상급식을 할 수 없다고 해도 사실 이를 제약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해 야당이 지난 서울시장 보궐 선거 이후 어떤 장치를 마련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국가의 의무교육에 대한 책임의 연장선상에서 무상급식의 문제를 바라보자고 한다면 이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중앙정부의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치적 논쟁이 이에 대한 해답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이런 장치 없이 어떻게 무상급식을 중단하겠다는 여당의 지방자치단체장을 막을 수 있겠는가? 대안 없는 만남, 대안 없는 무상급식 논쟁이 국민들을 지치게 만드는 것이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야당이 민생경제, 국민의 지갑이라는 키워드를 내놓은 바에야 이런 부분들에 대한 대안을 갖고 국민들에게 호소해야 할 것이다.

3자 회동, 무상급식 중단 등 야당에게 일종의 정치적 호재를 제공할 환경들이 조성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야당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의 지속이다. 그렇다면 4·27 재보궐선거는 어떤 승리를 야당이 이룩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들게 된다. 야당은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 경제를 살피는 대안 정당의 면모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동안 놓쳐온 무상급식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실현할 것인지, 그리고 국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민생을 살리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마련하지 않는 한 다시 한번 패배를 맞볼 수밖에 없다. 당내 복잡한 갈등구조가 이미 광주 보궐선거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난 10월 보궐선거에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의 기억을 잊어서는 안 된다. 광주를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는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광주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대안이 없는 야당으로 이번 선거를 치른다면, 결국 정치적으로는 패배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야당 자신의 과오를 명확하게 진단하고 이를 180도 바꿀 수 있는 대안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를 심판하고 싶다면 무엇으로 어떤 대안으로 심판할 것인지 내놓는 정당으로 거듭날 때 국민의 선택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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