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과거뉴스섹션
반세기 맞은 민족종교 ‘한얼교’ 故 신정일 법통의 한얼정신 인류 의식진화의 길을 제시하다
취재팀 | 승인 2015.05.04 12:27|(181호)
5000년 한민족의 뿌리인 홍익인간의 정신을 이어받아 계승해 지켜온 한얼교는, 모든 존재를 널리 이롭게 하리라는 절대적 가치를 깨닫고 실현하고자 하는 독창적인 종교다. “내얼이 한얼이다”는 진리를 간직하며 자신의 본성, 즉 만물과 하나인 존재로서의 순수의식인 ‘나얼’을 깨닫고 각성하여 우주 삼라만상 창조의 본질이며 참 존재이자 참사랑의 본질인 ‘한얼’과 하나 되는 것을 실현하려 하는 한얼교는 특정 대상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라 성현들(단군님, 부처님, 예수님, 노자님, 공자님 등)의 가르침의 참된 진리를 이해하여 사랑과 자비를 행하며, 진리를 실천하는 종교로서, 성인을 무조건적인 숭배의 대상이 아닌 진리실천의 스승으로 삼아 모든 사람이 진정한 깨달음을 얻어 깨어날 수 있는 실존적인 길을 제시하고 있다.
 
만교일본 만법귀정(萬敎一本 萬法歸正)
참된 진리란, 모든 존재가 하나 되어 진리를 이해하고 실현하고자 하기에, 한얼교 성전에는 어떠한 형상이나 상징을 두지 않고 그저 참된 진리의 자리를 상징하는 고요히 비어있는 빈자리만을 둔다. 그 빈자리는 만물을 창조하는 우주 삼라만상 존재의 본성인 형상 너머의 자리이자 그 신성과 하나 될 우리의 본성이자 순수의식인 ‘나얼’, 즉 기독교 천주교의 ‘그리스도의식’, 불교의 ‘불성’, 힌두교의 내 안의 신성 ‘아트만’을 뜻하며, ‘나얼을 찾아 한얼과 하나 될 우리 스스로가 앉아야 할 자리’임을 의미한다. 한얼 말씀을 우리글과 말로써 이루어진 한얼교의 용어를 덧붙여 설명하자면, ‘한’은 하나이자 영원불멸한 전체, ‘얼’은 그 안에 깃든 혼, 만물의 본질을 뜻하며, ‘한얼’은 만물의 본성, 모든 신앙의 본체(불교의 불성, 기독교의 Christ, 이슬람의 알라, 천주교의 Holly Spirit)를 표현한다. 또한 ‘나얼’은 나라는 에고(ego)가 생기기 전 순수의식의 본성을 뜻한다.
 
반세기 맞은 한얼교의 창교 역사
고(故) 신정일 한님의 생애를 요약해 보면, 1965년 12월 4일 무등동 천불대에서 정각묘득 하심으로써 대변혁의 계기를 한민족과 세계 인류에게 크고 큰 메시지를 제시하게 되었다. 인류 역사상 대한민국과 세계인류가 나아갈 정신적 지표와 같은 대명제를 풀어준 분은 오천 년 정신사를 총결해 한님 이외에 한 분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이 무엇인가? 신정일 한님은 우주의 대도를 깨닫고 난 뒤 대중구원을 하면서 인류 구원의 대도를 제시했다는 데서 엄청난 한얼의 사명을 던져주었다는 것이다. 한님은 1967년도에 단군 성조님의 ‘하늘의 말씀’을 듣고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을 처음으로 배를 타고 찾아가 참배하면서 천제를 올리게 된 것이 첫 계기가 되었다. 그 후 1968년에 정부 인사의 안내로 참성단의 역사와 내력을 듣고 마니산 참성단을 성역화로 개발할 뜻을 세웠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와 강화대교가 놓이자 제1회 강화 마니산 성지순례 및 천제 봉행을 순례인 900여 명을 대구에서 직접 이끌고 실행했다. 21년간 성지순례 및 천제봉행을 실행하면서 오천 년간 묻혀있던 ‘우리민족 정신’을 캐내어 세상에 드러내었다. 그 첫 번째로 1978년 오천 년 동안 순수 우리 민족종교 하나 없는 우리나라의 모든 종교를 통합할 수 있는 한얼교를 창교했다. 특히 기성종교(외래종교)에 의존치 않고 독창적인 순수 민족종교로서 한얼교를 선포했다. 1980년 11월에는 한민족이 쓰고 있는 우리말 속에서 ‘한의 원리’를 밝혀 선포식을 가졌고, ‘민족의 사상’하나 없는 한민족에게 한님은 한 사상을 탄생시켰으며, 1987년 10월 정치 원리 하나 없는 한민족에게 ‘한주의 정치’선언을 하심으로써 우리 민족에게 정치이념을 갖게 하였다. 이와 같은 한얼교 선언, 한의 원리 선포, 한사상 선언, 한주의 정치 선언에 이어 한과학, 한주의 사회, 한주의 경제, 한온학을 세상에 발표하게 된 근원적 계기는 강화 마니산 참성단 속에 숨겨진 ‘한얼의 비밀’을 밝혀 오천년 만에 세상에 냈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비단 ‘한민족의 정신적 지도 원리’일 뿐 아니라 세계 인류가 수천 년간 갈구해온 ‘인류 구원의 원리’이며 이를 밝혔다는 데서 크나큰 의의가 있다. 이 가운데 한 가지 원리를 캐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모든 부분에 인류가 수만 년간 나아갈 정신적 지표를 채굴해 ‘한주의 온얼사상론’에 총체적으로 다 밝혔다는 것은 오천년간 정신적 총 결실을 맺게 했고 인류사적인 대역사를 일구어 준 일이다. 신정일 한님은 “21세기부터 새로운 세계에 이 원리에서부터 발원한 정신적 대 고속도로를 모든 부문에 완성시켜 놓았으니 인류가 수만 년간 이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언했다.
   
▲ 강화도 마니산 민족성전 및 민족도장 건립 기본계획도.
 
한때 전국 2백만 명 교세 자랑
초대 법통 시대에 많은 이적들이 일어나 셀 수 없이 많은 한인들이 따르기 시작해 전국 각지에 지부가 생겨났고 전성기 때는 전국 2백만 명의 교세를 자랑하기도 했다. 1982년 문화공보부가 펴낸 <종교 단체 현황>에 따르면, 52만 명의 신도가 있었으며, 1997년 전국에 186개의 지부와 대구, 서울, 부산 등지에 본궁이 있고 약 41만 명의 신도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88년에 출간된 <한얼말씀>을 토대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1997년 창시자의 한얼사상과 철학을 집대성해 출판한 <한얼말씀 36권>을 대표경전으로 사용한다”고 한얼교를 설명하고 있다. 신정일 법통은 마니산 참성단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개천절마다 수천 명의 한인들과 함께 천재를 올리게 되면서 마니산 참성단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 성지로 인정받아 전국체 전 성화를 채화하는 등 민족정신의 원류로 자리 잡고 있다. 종교 활동은 주로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성지순례, 단군숭봉운동, 개천절경축범국민운동, 민족정신 선양과 사회 계몽운동을 벌이는 등 신앙생활로는 6대 교절과 4대 기념일을 지키면서 주 1회의 정기모임을 개최한다. 1970년부터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성지순례를 시작해 인류평화를 기원했고 그의 모든 사상과 철학, 그리고 종교의 근본 목적, 우주적 진리를 담은 36권의 경전 <한얼말씀>이 1997년 탄생했으며 나얼을 찾아 한얼과 하나될 수 있는 가르침을 펼친 후 1999년 육신을 떠나 열반했다. 한님의 열반 후에는 세계 최초의 머리카락 사리, 28과의 치아 사리, 수많은 진신사리가 수습되어 전국 각지로부터 몰려온 사리 친견 행렬이 줄을 이었다. 창교주의 타계 후 한얼교는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이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진화하는 미래 종교의 모습으로 부활해 올해 2015년 창교 50주년 반백년을 맞이하였다.
   
▲ 신정일 법통은 마니산 참성단에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개천절마다 수천 명의 한인들과 함께 천재를 올리게 되면서 마니산 참성단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 성지로 인정받아 전국체전 성화를 채화하는 등(우측 사진) 민족정신의 원류로 자리 잡고 있다.
 
인류의식 진화의 길 연 창교주 신정일 한님
한사상의 창시자이자 한얼교의 창교주 신정일은, 우리 고유의 언어로 진리를 표현했다. “내얼이 한얼이다”라는 뜻은 자신 안의 본성인 무한가능태의 순수의식이자 신성인 ’나얼’을 찾아 온 우주의 근원인 ‘한얼’과 하나 되리라는 진리를 온 인류가 깨닫고 실천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구원과 해방을 시간과 형상 속에서 찾는 것이 아닌 영원한 지금 안에서 현존하며 스스로 구원하고 해방되자는 법을 설파했다. 또한 신정일 한님은 우리 민족, 나아가서 전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바를 종교적 측면뿐만 아니라 ‘한사상’과 ‘한법’을 근본해 여러 분야를 통해 펼쳤다.
   
▲ 마니산 순례기념식을 위해 전국에서 수천 명의 한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신정일 법통 내외(상).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는 파운데이션 펠로우로 임명받아 한얼진리를 바탕으로 인류 발전의 올바른 지표를 밝혔고, 하버드 대학의 존 F. 케네디 스쿨에서는 객원연구원으로 1991년 ‘중한론’이라는 남북통일 문제의 신기능주의적 정치·외교적 해법을 발표해 미국 유력인사들로부터 인정받아 미국 부시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 다수의 미국 상하원 의원들을 비롯해 전 세계 각국의 정상들과의 면담을 통해 한얼정신을 알렸다. 창교주 한님의 모든 분야에 걸친 실존주의적인 행보는 그 시대에는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던 선구자의 길을 외롭게 걸어온 것으로서, 대통령 선거 출마도 그중 하나였다. 시대적 제약과 경제적 희생, 정치적 당락의 한계를 초월해 한주의 통일한국당 창당과 1987년 제13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두 차례나 출마해, 중한론을 실현하고 한얼정신을 국민에게 이해시키고자 하는 한편, 개인 유산으로 일군 한온그룹을 통해 국가 경제에 크게 이바지하고자 했고, 특히 범국가적인 석유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이라크와의 민간외교에서는 뜨거운 인류애적인 차원에서 의료지원과 인도주의적 외교활동 등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결과, 수교가 단절된 상황에서도 이라크와 한국정부로부터 대한민국 총명예영사 임명과 함께 초대형 석유 광구의 독점개발 사업권을 획득해 간사회사로서 삼성물산, SK, 석유개발공사와 컨소시엄을 결성하는 쾌거를 이루며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중국의 개혁개방을 미리 내다 보아 한·중수교가 이루어지기 10년 전부터 이미 중국과의 깊은 외교적 관계를 이루어 왔고, 중국정부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상호 간에 이를 기념해 백두산에 산문을 기증했으며, 러시아와의 실리외교를 통해 브리아티아의 옥광산 독점 개발권을 획득하는 등 전 세계적 무대를 통해 정치·경제·외교적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사람들은 그 선구자의 길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님의 이 모든 활동의 핵심은 한얼의 근원사상이 종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철학, 경제사회, 문화,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모든 존재를 위한 진리의 다양한 형태로 인류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인류의식 개혁의 발판을 구축함에 있었다고 하겠다.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의 성역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중에도 창교주 신정일은 항상 한얼정신의 근본을 지키고 보존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는 한민족의 뿌리인 강화도 참성단에 근본을 두고 한얼교의 정신적 중심지로 삼았다. 단군기원 51년 설축한 참성단은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제단이며, 한얼을 기념하던 제단(Ziggurat)으로 단군사상과 그 원리가 녹아 있는 사료이자 국보에 속하는 장소다.
신정일은 1970년 한얼교 간부 900여 명을 이끌고 제1회 성지순례를 거행한 이후 매년 개천절을 전후해 전국적인 성지순례 행사를 거행했으며, 매년 이어진 성지순례와 천제에는 작게는 수천 명, 많게는 수만 명의 한얼교 한인들이 함께했다. 그렇게 참성단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강조했지만 이곳을 성역화 하는 것은 막대한 재원과 정부 차원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신정일은 그가 가진 사재를 털어 부지를 마련하고 평생을 터전 닦기에 헌신했다. 그가 남긴 마니산 한얼온궁 및 한얼온궁 성역화 사업의 취지와 목적을 보면 민족정신을 고취하려는 노고를 읽을 수 있다. 한얼교 창시자 신정일 한님은 한사상의 집대성인 <한얼말씀> 36권 집필을 완성하고 출판한 직후 2년 후 1999년 4월 타계했다.
   
▲ 참성단에서 MBC TV와 인터뷰하는 모습.
 
온 인류의식 진화의 지표를 여는 민족정신의 재정립
창시자 법통 한님의 열반 후 때마침 불어 닥친 국제적 금융위기와 IMF 패닉 등의 총체적인 위기상황에서 옥스퍼드대학 출신으로 한온그룹을 성공적으로 구조조정 한 2대 대표는, 한얼교 재단정비와 쇄신으로 교단 안정화와 재건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2대 체제에서 그는 창시자 신정일 한님의 사상과 철학, 정신을 본질적이고 합리적인 방편으로 세상에 전하기 위해 한사상의 핵심 가르침을 재정립하고, 전통적인 종교 관습과 형태를 탈피해 창시자의 이념초월과 화합정신에 따라 누구든 자유롭게 한사상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한얼교의 철학과 사상을 배우면서도 공식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등 진화하는 사회의식에 발맞추어 자유롭고 미래지향적인 종교로서의 기반을 닦는 데 주력해 왔다. 또한 교단체제의 투명한 개혁과 현대화뿐 아니라 예술을 통해 깨달음과 깨어남을 접목하는 시도를 통해 의식과 관습 대신 진리에 대한 성찰과 명상으로 절차를 대신할 수 있는 법을 제시했다. 그중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예술을 통해 깨달음에 대한 세 가지 통찰을 투영하려고 했다. 그것은 “첫째, 과학과 의학, 기술과 정보혁명으로 인해 전례 없는 대규모의 의식 진화가 이뤄질 것이고, 둘째, 깨어남은 기적적 현상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인류의식 진화의 과정이 될 것이며, 마지막으로 깨달음은 종교적 사명자나 영적 소수가 미래에서 추구하는 것이 아닌 바로 지금 여기서 새로운 의식으로 맞이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 될 것이다”라는 예견이었다. 한얼교 교단이 성공적으로 재편되어 안정화되었고 운영위원회 공동체재가 출범한 후 한민족의 반만년의 뿌리를 둔 창교 반백년의 역사를 맞이한 한얼교는, “만교일본만법귀정 - 모든 종교의 원리는 하나의 근본 진리를 바탕하며 모든 참된 법은 하나의 바른 진리로 돌아온다”는 근본종지를 기본으로, 여러 방면에서 사회발전과 인류의식 진화를 촉진할 수 있도록 정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우리 인류는 의식 진화와 함께 모든 방면에서 초월적 발전을 하고 있으며, 한얼교는 구시대의 이데올로기나 패러다임이 아니라 진화하는 수많은 방식을 통해 모든 존재를 널리 이롭게 하며 서로가 서로를 가르지 않고 하나될 수 있는 깨달음과 깨어남의 의식 진화와 이를 통한 사회 문화의 초월적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한얼교는 창시자와 2대의 순수정신을 이어받아 창교 50주년을 맞이해 형식과 관습에 구애 받지 않고 본질적인 진리확산과 모든 존재를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한 시조 단군의 홍익인간의 정신, 창시자의 한얼사상과 초월철학이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방식으로 펼칠 수 있도록 정진하며, 반백년 역사를 기념해 강화도 마니산 한얼온궁에 참성단과 한얼 진리를 형상화한 재건축을 통해 진화하는 진일보를 내딛고 있다고 한다. 형식과 형상을 초월한 변화 속에서도 창시자의 얼과 한얼정신, 후대의 혁신적인 초월철학은 한얼진리를 통해 살아 숨 쉬고 있다.
   
▲ 부산, 밀양, 고령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인 수천 명의 신도들이 제35회 정탄절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민족정신을 드높이기 위해 대통령 후보에 출마
이처럼 성역화 사업이 한창이던 1970년대 창교주 신정일은 현실 정치 참여에 활발히 나섰다. 한얼교 창교 이후, 출판사업과 한사상연구소 등을 설립하고 그가 가진 정신을 공유하려 애썼다. 1984년에는 근로농민당 명예총재에 올랐고, 1985년에는 평화통일정책자문회위원회 상임위원, 1987년 한주의통일연구소 한국당 고문 등을 지냈다. 그는 1987년 13대, 1997년 15대에 두 번이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이유는 민족정신을 드높이려는 데에 있었다. 1989년부터는 해외로 눈을 돌려 국제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신정일은 1989년 외교국방연구소 이사장을 지내는 한편, 1991년에는 하버드대 존 에프 케네디 스쿨에서 국제 정치학 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역임한다. 1996년에는 주한이라크 명예총영사, 1997년 영국 옥스퍼드 해리스 맨체스터파운데이션 펠로우 등으로 활동한다. 신정일은 이처럼 국내외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외국 정상 및 정치인과 인연도 맺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하고 다수의 상하원 의원을 만나 한반도에 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 해외 사업에서도 신정일과 한얼교는 두각을 드러낸다. 특히 이라크에서 그가 펼친 외교 노력은 눈에 띈다. 석유자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초대형 석유광구 독점개발 사업권을 획득했고 삼성물산과 SK, 석유개발공사와 컨소시엄을 통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이외에도 중국과 수교를 내다보고 초석을 다지는가 한편, 러시아와 실리 외교를 펼치며, 브리아티아 옥광산 독점개발권을 획득할 정도로 진정한 애국자였다.
 
박정희 대통령 관심 속 숙원사업, 민족성지 성역화
한얼교의 기록물을 보면, 머리궁 건설은 정부관 계기관과 긴밀한 협조를 이뤘다. 민족혼 바로잡기 부흥운동, 민족 신앙심 발상지 조성사업에 맞물려 참성단을 세계에 자랑하려는 시도의 연장선에 있었다. 우리 민족의 성지로서 전 국민이 순례하는 장소로 만들고, 이곳에 민족종교의 터전을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신정일 님이 밝힌 마니산 성역화 작업의 뜻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삼국 시대에 이르러 외래종교의 영향을 받은바, 단군조선 시대부터 계승된 사상과 문화가 변모하기 시작했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가 국교로 지정됐고 조선 시대에는 유교가 국학이 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일제강점기가 시작됐고 36년간 민족문화 암흑시대가 계속됐다. 고유문화 말살정책에 의거해 완전히 문화유산을 잃었으며 더욱이 왜곡 날조된 일본 식민지 교육은 우리 겨레의 올바른 민족사를 알 수 없게 했다.”민족 자긍심과 민족성을 굳건하게 만들기 위한 이러한 노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울러 50년을 맞았지만 한얼교는 여전히 확장 중이다. 
   
▲ 신정일 대통령 후보 지지자들이 선거운동 피켓을 들고 득표작전에 열광하고 있다.
특히 미완으로 남은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주변의 성역화 작업은 열망이 식지 않았다. 지난 1967년 10월부터 구체적인 계획안을 마련하고 머리궁을 건립하기 시작한 한얼교는 성역화 계획을 숙원 사업으로 여긴다. 실상 신정일은 그의 사재를 털어 머리궁 건립에 힘을 쏟았다. 부지 마련과 설계 및 건설에 이르기까지 창교주가 직접 챙기는 세밀함을 보였다. 한얼교 관계자에 따르면, 머리궁 설계는 다섯 번 이상이나 변경되고 계획이 수차례 수정됐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가 구상한 머리궁을 직접 백지 위 그림으로 남겼다.
 
강한 존재가 본성을 지킨다
실상 한얼교의 원대한 계획은 신정일 자신의 대에서 이루기 힘들었다. 천년을 이어온 외래종교가 여럿이었고 교세가 계속해서 확장되었기에 한얼교를 영속시키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한얼교의 정당성이 굳건하기에 가야 할 길이 어둡지만은 않다. 반만년 전통을 지닌 민족에게 이렇다 할 민족종교가 없다는 점이 한얼교에게는 사명감을 부여한다. 민족 주체성을 강조할 필요도 없이 민족 정통성을 투영하는 종교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정신의 힘이 이념과 가치관을 좌우하고 민족에게 자긍심을 준다는 점에서 한얼교는 그 존재성을 드러낸다. 더구나 강대국이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환경에서 종교의 힘은 하나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한얼교가 추구하는 바는 이러한 환경에 부합한다.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면 정신의 힘을 키워야 하고 그 근간을 이루는 게 종교다. 신정일은 일생을 바쳐 민족을 강조하고 힘의 원천이 되고자 교리를 마련했다. 아울러 성지를 닦고 민족사상을 두텁게 했다. 민족주의자로서 종교를 창교했고, 한사상 체계를 확립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세계 환경에서 본성과 본질을 잃지 않는 건 중요하다. 상대방이 자신의 가치관 혹은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 결국은 정신의 힘이 약한 존재가 본질과 본성을 달리하게 된다. 민족종교가 필요한 시기는 바로 이 시점이다. 민족이 강하고, 정신이 강하고, 종교가 강하다면 우리가 아닌 상대방이 방식을 바꿔야 한다. 반세기가 지난 현 시점에서 한얼교가 더욱 특별한 건 이같은 이유가 있다. 앞서 언급한 논리는 다시금 한 세기를 향해 나아갈 민족종교이고 통합종교이며 현대종교인 한얼교를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민족성지가 굳건하게 마련되는 순간, 민족종교라 부르짖는 한얼교의 교리가 정당성을 지니는 순간이 우리 민족에게는 하나의 도약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한얼교의 영속성은 민족성과 맞닿고 민족의 정체성과 길을 함께한다. 이러한 개념은 다시금 반세기를 이어나갈 한얼교의 행보에 관심이 모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 1984년 단군성역 미리궁 건립을 위한 첫 삽을 뜨는 장면.(좌로부터 다섯 번째)
 
한얼교 창교주 초대 법통 신정일 (1938~1999년)
서울고등학교, 경북대학교 법정대학 법학과 졸업, 동대학원 철학과 석사 취득
1965년 정각묘득, 대중구원 시작
1967년 (사단법인) 정일회 설립 이사장
1971년 도서출판 <정화사> 대표
1978년 한얼교 선언, 한얼교 중앙회 이사장 / 한얼교 법통
1980년 한사상연구소 이사장 / ‘한의 원리’ 선포
1981년 국제사단법인 검도구락부 한국회장 취임
1984년 근로농민당 명예총재
1985년 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회 상임위원
1986년 통일한국 경제문제연구소 설립
1987년 한주의통일연구소 한국당 고문
1987년 한주의통일한국당 대통령 후보 제13대 대한민국 대통령선거 출마
1989년 외교국방연구소 이사장
1989년 기술개발진흥회 회장
1990년 한얼상사 주식회사 설립 / 한얼의료법인 설립
1991년 하버드 대학교 John F. Kennedy School Institute of Politics 국제정치학 연구소 객원 연구원
1992년 한온그룹 회장
1996년 주한 이라크 명예총영사
1997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해리스 맨체스터 파운
데이션 펠로우
1997년 한주의통일한국당 대통령 후보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선거 출마
1998년 제5대 대한우슈협회 회장
 
한민족 선언서
"한인류 한민족이여!
이제 우리는 하늘을 열어야 할 때이다.
바로 우리들 자신이 우리의 얼, 우리의 정신을 열어야 한다.
 
인류여!
정신 세계에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성인을 신이라는 숭배의 대상으로서만이 아닌 초월의 상징이자 진리의 스승으로 삼으라.
성인의 경지에서 모두를 대할 수 있는 깨달음을 얻고 자아상에서 깨어나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으라.
내 마음에서 깨어나 초인간적인 사고를 가지고 현존하라.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고 우주의 이치를 직시해야 할 때이다.
진리에 근본을 두고 내 안의 무지와 미망을 비추어 어떠한 어둠도 밝힐 수 있는 진정한 의식의 빛을 자기 자신 안에 비추라.
인류여!
여러분이 스스로 자신 안의 하늘을 열고 의식적 진화를 이룩하여 진리의 이름 아래 하나가 될 때 우리는 우리의 혼과 홍익인간의 정신, 즉 한얼정신을 온 인류에게 펼칠 것이다.
그 동안 있어 왔던 수 많은 고통의 뿌리를 소멸하고 진리로 하나되는 진정한 진화의 자리로 가야 한다.
 
인류여!
나의 육신은 그때까지 여러분 곁에 같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억하라.
오늘의 이 한소리야 말로 그때가 왔다는 약속의 시작이었음을!"
- 한얼사상의 창교주 신정일 한님께서 한민족에게 남기신 마지막 메시지
 

 

취재팀  mjknews@mjknews,com

<저작권자 © 정경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1984년 단군성역 미리궁 건립을 위한 첫 삽을 뜨는 장면.(좌로부터 다섯 번째)
여백
발행인 인사말회사소개정경시론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0-010)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1-11 한서리버파크 1502~3호  |  대표전화 : 02)782-2121  |  팩스 : 02)782-9898
사업자등록번호: 107-06-75667  |  제호 : 데일리정경뉴스  |  등록일자 2005년 5월  |  등록번호 : 서울아00449
발행일 : 2000년 4월  |  대표이사: 최재영  |  청소년보호책임자: 최재영
Copyright © 2018 정경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