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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정책으로부터 벗어나야…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 승인 2015.04.08 19:25|(181호)
   
▲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강바닥에 두텁게싸여가는 토사를 준설할 생각을 하지만 체제 내에 날로 누적되어 가고 있는 비효율을 왜, 제거할 생각을 하지 않을까?” 엊그제 20여 년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우연히 조우할 기회가 있었다. 경제 관련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오랜 만에 그곳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정부 정책에 협조하는 의미에서 가능한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지 않기로 한지가 벌써 2년 정도 되어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 기관의 내부적인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우리들의 공통 의견은 우리나라가 체제의 경직성을 해결할 가능성이 무척 낮다고 봅니다. 누적되는 비효율의 문제의 해결책은 아마도 외부로부터 오는 충격이 되지 않을까라는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물어보았다. “그런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이 다수입니까? 아니면 소수입니까?” 돌아온 답은 “대체로 내부에서 그런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는 것처럼 체제 또한 살아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환경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신을 거듭해야 한다. 과거에는 합리적이었지만, 시대 변화에 따라서 효율성을 상실한 제도와 정책들은 늘 개선과 혁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일단 어떤 제도나 정책이라도 한번 만들어지고 나면 그것은 당연한 권리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우선은 특정 제도나 정책과 관련된 주무 부처나 기관들의 이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좀처럼 변화를 꾀하기 힘들다.
만들어진 지 2~3년 정도된 정책도 변경하기 힘들다면 수년에서 수십년 된 정책들은 거의 변화 가능성이 없을 수도 있다. 행정부가 규제 일몰제도와 같은 조치를 통해서 일정 기간이 경과한 다음에 자동적으로 특정 규제를 폐지하는 조처를 취하고 있지만 성역화된 규제들은 거의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엊그제 한 회의에 참석해서 쉬는 시간에 한 분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 분은 사법부에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떠나지 얼마 되지 않는 분이다.
“우리 세대는 그래도 운이 좋았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취직을 하는 일도 별로 어렵지 않았고 주변을 둘러보면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형편들이 괜찮은 편입니다. 요즈음 자식들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다음 세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를 생각하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체제를 수선하는 데 더 적극적이어야 할텐데 다들 뭔가 하는 시늉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몰라서 개혁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전진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얼마 전에 필자는 2004년에 쓴 <10년 후, 한국>이란 필자의 저서를 한번 더 읽어볼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 우리 사회가 당면한 모든 문제들이 총망라 되어 있었다. 전망에 약간 문제가 있었던 점은 중국 기업에 의한 경쟁력 문제가 1~2년 정도 늦추어서 본격적으로 노출되는 일만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무슨 일이 있겠어”라든지 “잘 될거야”라는 덕담은 필요하다. 누구든지 비관론보다는 긍정론을 갖고 살아가는 일은 꼭 필요하다. 하지만 인생이든 경영이든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것을 한 바구니에 넣고 이것을 잘 배합해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편으로 긍정론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야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갖고 있는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미래를 준비하는 일도 꼭 필요하다.
근래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홍준표 경남지사 사이에 경남도의 선별적 무상급식에 대한 논쟁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체제 수선이나 개혁과 관련해서 가야 할 길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김 지사를 만나고 난 다음 문 대표는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국영 무상급식 제도에 대해한 치의 개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다. 국민들에게 한 약속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할 것으로 받아들인다. 반면에 홍 지사는 이미 문제가 발생하였기 때문에 전면 무상급식에서 선별 무상급식으로 전환해야 하고 여기서 남은 자원을 가난한 학생들의 교육비로 일인당 50만 원을 지불하는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무상급식은 우리 형편에 시기상조의 정책이란 점을 누누이 강조하였다. 서울시의 무상급식이 우발적인 제안에 의해 실시된 다음,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얼마 가지 않아서 부작용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전망하였다. 선별적으로 형편이 되지 않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선별적 무상급식 정책을 선택하고 나머지 재원을 시설투자 등과 같이 더 필요한 곳으로 배치하는 일이 더 바람직한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것은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 옳고 그름보다는 다수가 뭘 원하는 것을 따를 수밖에 없다. 다수가 늘 옳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민중주의 바람이 거센 곳일수록 얼마든지 다수 의견을 소수의 활동가들에 의해 이끌려 갈 수 있다.
특정 정치인을 두둔하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시행된 정책은 이미 부작용을 크게 노출시키고 있다. 풍선효과에 따라서 많은 재원이 급식비에 지출됨으로써 상대적으로 돈이 들어가야 할 곳에 투입되지 못해서 발생하는 부작용이 언론 지상에 자주 드러나고있다. 이론적으로 예상된 바와 같이 경쟁이 없는 국영독점 급식 체제가 가져올 수밖에 없는 식사의 부실화와 같은 문제들도 뜻 있는 학부모들의 고민을 깊게 하고있는 실정이다.
실시된 지 얼마되지 않아서 부작용이 노출되기 시작한 정책이라도 이를 번복하는 일은 지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노출된 이후 경남의 한 여당 의원은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지역행사에 나가보니 무상급식 폐지에 대해 젊은 학부모, 주부들의 항의가 꽤 심했다. 지사가 저렇게 나오는데 국회의원들은 책임이 없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다.” 또다른 경남의 의원은 “그동안 안 내던 급식비를 다음 달부터 내게 되면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총선을 앞두고 여론이 부담된다”고 말했다.
정책이 실시된 지가 얼마되지 않았고 중앙지에 대문짝 만하게 부작용에 관한 시리즈 글들이 여러 번 실렸지만 사람은 눈 앞의 이익에 좌우되는 성향이 강하다. 이때문에 체제가 노출되는 비효율이 누적되어 상황이 상당히 어려워질 때까지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개혁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결국 해결은 두 가지 방법인 것 같다. 하나는 알아서 스스로 고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는 문제가 악화되어 외부의 강요에 의해 고치는 것이다. 앞의 선택은 현자의 선택일 것이고, 뒤의 것은 우둔한 자의 선택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명확하지만 다수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정치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걱정스럽다. 되는 길로 우리가 나아갈지 아니면 안 되는 길로 나아갈지 결국 깨어있는 국민들과 현명한 지도자들이 결정할 일이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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