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후폭풍으로 최경환 경제팀이 흔들리고 있다. 올해 경제 살리기를 위한 승부수를 던지겠다고 의지를 불태웠으나 연초부터 이런 의도가 빗나갔다. 연말정산은 국세청이 매달 직장인의 월급에서 미리 세금을 거둔 뒤 1년 뒤 결산해서 각종 공제를 뺀 실제 세금과의 차액을 이듬해 2월 돌려주거나 추가로 받는 것을 말한다. 1,600만 명 직장인이 대상이다. 이번 연말정산 파동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경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연말정산 환급금이 줄면서 소비경기가 식어 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연말정산 파동은 이제 증세를 공론화하자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증세 없는 복지 확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만큼 지금와서 세금을 올리겠다고 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복지 수요는 늘어나고 불황으로 세수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부가 세수 확보를 위해 꺼낼 수 있는 카드는 그다지 없다는 게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고민이다. 연말정산 파동의 전말과 관련해, 후폭풍을 점검해 보고 불붙고 있는 증세 논의에 대한 향후 전망을 살펴본다.

▲ 지난 1월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연말정산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마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연말정산 파동 전말과 후폭풍

연말정산 파동은 어떻게 보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올해 연말정산부터 소득공제 대신 세액공제를 주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도 변화로 연말정산으로 돌려받는 돈(환급금)이 달라졌다. 소득공제는 소득이 많은 사람이 유리했다. 전체 소득에서 먼저 공제를 해 준 뒤에 깎아준 소득에다 일정한 비율의 세금을 매겼기 때문이다. 반면 세액공제는 저소득층이 유리하다. 전체 소득에 대해 먼저 세금을 매긴 뒤 남은 돈에다 공제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을 배려한 세액공제는 세금정책 방향을 바로 잡은 것이다. 그러면 왜 옳은 방향으로 나아간 세액공제 방식의 새로운 연말정산이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지난해보다 연말정산을 통해 8,000억 원 이상 세금을 더 거두었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2013년 세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연소득 5,500만 원 이상 가구는 세부담이 늘어나는 반면, 5,500만 원 이하 소득자는 세부담이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즉 세법을 바꿔 조세 형평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 주장과 달리 가구원 숫자에 따라 연소득 5,500만 원 이하 가구의 일부도 세금 부담이 늘었다. 가장 큰 논란을 빚은 것은 자녀 관련 공제제도였다.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꾸면서 7세 이상 자녀를 둔 가정은 세액공제를 받았다. 반면 6세 이하 자녀나 자녀를 둘 이상 둔 가정은 세부담이 늘어나는 사례가 일부 생겼다. 더구나 자녀 1인당 최대 50만 원을 주는 자녀장려세제 혜택을 받지 못한 연소득 4,000만 원 이상 가구의 불만도 터져나왔다.

부양 가족이 없는 저소득 1인 가구 불만도 상당했다. 근로소득공제가 줄었기 때문이다. 1인 공제자는 전체 소득 공제자 1,123만 명 가운데 14.0%인 157만 명으로서 이 중 연말정산 개편으로 세금이 늘어난 소득자는 연봉 2,000만 원 이하를 빼면 148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본인 이외 별도 인적공제를 받지 못하는 미혼이나 맞벌이 부부들이다. 가족이 있으면 누구나 부담할 수밖에 없는 의료비와 교육비를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꾼 것도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공제혜택을 그만큼 줄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소득공제로 바꾸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빗발쳤다.

결국 이번 연말정산은 13월의 보너스가 아니고 13월의 세금폭탄으로 변했다. 해마다 연말정산으로 1백만 원, 2백만 원을 돌려받았던 중산층 직장인들이 되려 1백만 원, 2백만 원을 내놓을 형편이 되었다. 정부는 서둘러 대책을 내놓았다. 당장 올해부터 적용하기는 무리인 만큼 보완을 해서 내년부터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비난 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정부는 소급적용을 하지 않겠다고 버텼으나,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새누리당의 주장에 끝내 굴복했다.

▲ 연말정산 세금폭탄 문제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자료제공 리얼미터, 95퍼센트 신뢰수준 오차범위 4.4%)

새누리당과 정부는 불만이 상당했던 다자녀와 1인 가구에 대한 세금 혜택을 늘리기로 했다. 소득세법 개정안을 4월 국회에서 처리하되 올해부터 소급 적용하기로 했다. 일단 현행대로 연말정산을 진행한 뒤, 개정된 항목에 대해서는 해당 납세자들에게 세금을 되돌려주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야당이 주장했던 교육비와 의료비의 소득공제 전환은 없던 일이 됐다. 혜택이 주로 소득이 높은 사람에 돌아간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었다.

문제는 이것으로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다. 엄청난 상처와 후유증을 남겼다. 부작용도 우려된다. 정치권과 정부는 고비를 넘겼다고 할지 모르지만 생채기는 심각하다.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한 큰 틀은 그나마 유지를 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여론에 떠밀려 위기를 모면하려고 세법을 다시 고치고 소급 적용까지 하겠다고 나선 것에 대해 나쁜 선례를 세웠다는 점이다. 실제 세금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정확하게 살펴보기도 전에 법부터 고치게 된 셈이다. 어려운 과정을 통해 결정된 세금 정책을 제대로 시행도 하기 전에 바꾼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예컨대 자녀를 둔 근로소득자의 경우 보육수당과 세액감면이라는 이중의 혜택을 받는 만큼 연말정산에서 다자녀 공제혜택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비난 여론이 인다고 해서 불과 며칠 만에 도로 혜택을 늘려주었다는 점은 정상적인 행태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법조인 출신의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의장도 나쁜 선례라는 기자들의 지적에 “동감한다”고 밝히면서 “바람직하지 못한 절차”라고 덧붙였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국민들의 불만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잘했다고 자평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했고 불신만 쌓이게 했다는 점에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세제개편은 어떤 식으로 해도 불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번 번복으로 앞으로 세제개편을 할 때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커졌다. 납세자들이 법을 우습게 여기고 세부담이 늘어난다고 판단하면 문제를 항상 삼을 수 있는 것이다. 세금 부담이라는 전체 국민과 관련된 사안을 제대로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한 채 졸속처리했다는 것도 문제다. 세금을 스스로 내려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잠자는 거위의 털을 뽑듯이’, ‘옹달샘의 샘물을 긷듯이’라는 표현이 나왔겠는가. 그만큼 세금 거두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나치면 세금을 못내겠다고 버티는 이른바 조세저항이 우려된다. 연말정산을 잘못 바꾸었다는 비난 여론이 일자 국민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포기한 채 그저 불만이 있으니 돌려줘야 한다는 새누리당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여당과 합의해 통과시켜 준 법안을 지금와서 비난 여론이 인다고 해서 대대적인 개편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다.

▲ 1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엉터리 경제정책 비판 기자회견’에서 이화여대, 고려대 등 대학생들이‘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제정책이 서민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정부와 재계만의 위기 탈출용’이라고 비판하면서 최경환 부총리 정책에 F학점을 주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증세를 할 것인가, 복지를 줄일 것인가… 선택이 필요

이번 연말정산 파동을 계기로 세금과 복지정책을 종합적으로 살펴보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보완책에 내놓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증세를 본격적으로 논의하자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중산층과 서민들은 돈많은 대기업이나 고소득층에 대한 더 많은 세부담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을 설득하는 방법으로 정부가 증세라는 큰 틀을 인정하고, 법인세와 금융종합소득세 개선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야당과 일부 진보적인 성향의 학자들은 주문하고 있다. 기업들이 부담하는 법인세를 늘리고 돈 많은 사람들이 내는 금융종합소득 부담을 더 늘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세수가 많아야 나라 곳간이 튼튼해지고 경제 살리기를 위한 실탄으로 쓸 수 있다.

그동안 정부는 집권 초기 복지비용 확보 방안으로 비과세 감면 축소와 지하경제 양성화, 정부지출 구조조정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이미 연간 10조 원씩 세수가 모자라는 상황이다. 장밋빛 성장을 예상해, 정부가 재정운용 계획을 짠 탓에 세수 부족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2년 전 연말정산 개편 당시 1조 3,000억 원 세수 증가 효과를 기대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연말정산 파동으로 세금감면을 많이 해줄 수밖에 없다. 이번 보완책으로 저소득층은 세금이 추가로 깎여 세금을 아예 내지 않는 면세자는 늘어날 것이다. 2012년 기준으로 직장인 가운데 면세자는 전체 32.7%인 515만 6,000명에 이른다. 고소득자 세금도 줄면서 세수 부족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 세수가 3조 4,000억 원 이상 부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5차 전체회의에서의 모습으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피곤한 듯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그럼에도 최경환 부총리는 증세는 없다고 못박고 있다. 경제가 살아나면 세수는 저절로 늘어난다는 입장이다. 법인세를 올리는 데도 반대다. 세계적으로 외국인 투자유치 경쟁을 벌이는 마당에 우리만 법인세를 올릴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비과세 감면 축소로 세수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법인세를 올려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법인세율로 보면 우리나라가 22%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중간 수준에 불과하다.

결국 국민의 선택,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세금을 올리고 복지를 늘릴 것이냐. 세금을 올리지 않고 복지를 그대로 둘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세금은 그대로인데 복지를 늘린다는 것은 이야기가 안 된다. 나라 살림살이는 빚더미에 오를수밖에 없다. 이번 연말정산 파동만 해도 국민들의 세부담은 분명 늘었다. 하지만 정부의 재정지원도 늘어난 게 사실이다. 예컨대 저출산 관련 보육비 지원, 양육수당, 지방자치단체 출산 장려금을 비롯한 복지 지원이 늘어나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는 증세를 하지 않은 채 세수부족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물론 경제가 잘 돌아가면 세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하지만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는 갈수록 내려가고 있고, 우리나라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의 경제가 예전만 같지 않은 상황이다. 연초부터 최경환 경제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홍인표 경향신문 편집 부국장  01626612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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