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대중예술 핫이슈
<국제시장>, 아버지에게 바치는 송가평범하지만 위대한 가장…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정재영 기자 | 승인 2015.04.02 18:45|(180호)

   
▲ 영화 국제시장 티저 포스터(사진 제공 = 국제시장 공식 사이트)
새로운 문화현상을 만든 영화 <국제시장>

<국제시장>은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었다. 불과 두 달 남짓한 시간에 전 국민의 4분의 1인 1,300만명이 관람해 역대 관객 동원 수 2위의 위업을 달성했다. 여야를 막론하고 유력 정치인들이 이 영화를 관람하고 너나할 것 없이 눈물을 흘리고 돌아갔다. 박근혜 대통령도 윤제균 감독과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 씨와 같이 <국제시장>을 관람했다.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과 주인공이 상상으로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에서 눈물을 터뜨렸으며, 영화가 끝난 뒤에도 박 대통령은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마침내 가장 권위 있는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2015 제65회 베를린 영화제에도 ‘한 해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들의 작품’만을 초청하는 ‘파노라마’부문으로 초청받기까지 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월 2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서 문화가 있는 날 여섯 번째 행사로 영화 <국제시장> 관람에 앞서 배우 황정민, 김윤진 등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좌) 영화 <국제시장> 관람을 위해 CJ 손경식 회장, 감독 윤제균, 배우 황정민·김윤진 등과 자리한 박 대통령(우)
<국제시장>을 관람한 80% 이상의 관객들은 만점이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준다. 그러나 평론가들은 대부분 10점 만점에 5~6점만을 매겼다. 평론가들이 주로 비평하는 부분은 윤 감독의 작품적 특성인 ‘신파적 스토리와 연출’이다. 지나치게 대사와 연출 및 장면들에서 감동을 강요한다는 것이다. 또한 주인공이 입체적 인물이 아니라 ‘흥부전’에나 나올 법한 선하고 희생만 할 줄 아는 평면적인 인물이라는 지적도 했다. 그러나 관객들의 호평은 반대로 이런 평면성이 차라리 ‘알기 쉽다’는 데 있다. 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평범해 보이고, 평범해 보이기 때문에 실제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일을 비슷하게 그려냈다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명량>처럼 그동안 돌풍을 불러일으킨 영화들은 역사나 사건의 중요한 현장에서 영웅처럼 싸우며,나라나 모두를 위해 혼신을 바치는 주인공을 다룬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국제시장>의 주인공 ‘윤덕수’는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라는 영화의 캐치프레이즈와 같이 가족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인물이다. 어느 시대에나 있는 소시민적인 아버지, 어머니들의 전형인 셈이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주인공에게 쉽게 공감하고 부모 세대 혹은 조부모 세대가 실제 겪은 일일 것이라는 현실감을 맛볼 수 있다. 비슷한 주제의 미국 영화 <포레스트 검프>와 비교하는 평들이 많이 눈에 띄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범한 가장의 위대한 이야기…“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부산 국제시장 한편에 있는 수입물품상 ‘꽃분이네’. 70대 노인과 그 가족이 운영하는 오래되고 낡은 가게다. 북적이는 국제시장에서도 손님을 잘 끌지 못하기에 가족은 가게를 팔자고 노인을 조르기 일쑤다. 하지만 노인은 가게를 팔 생각이 없다. 오히려 사려고 오는 사람에게 역정을 내며 내쫓는다. 노인은 가끔 아내와 함께 볕을 쬐며 옛 자신의 꿈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는 낡은 가게에 집착하는 고집불통 노인일 뿐이다. 오래된 상처로 한쪽 발을 절며 화를 잘 내고 고집스러운 노인의 이름은 ‘윤덕수’다.

   
▲ 구두를 닦는 어린 덕수와 달구(좌) 독일 탄광에서 일하는 덕수와 달구(우)
시간을 돌려 60년 전, 12살의 윤덕수는 이미 한 사람의 어른이다. 아비규환과 같은 흥남 철수의 한복판에서,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기 위해 피난선에서 내린 아버지의 마지막 외침, “명심해라, 내가 없으면 장남인 네가 가장이다. 가장은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이 제일 우선이다. 알았지!”, 그 말이 12살의 덕수에게 낙인처럼 새겨지고 구걸과 구두닦이 등 궂은 일을 꺼리지 않으며, 가족을 먹여 살리게 된다.

50 여 년 전, 20대 초반의 그는 공부 잘 하는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독 광부로 지원하는 좋은 형이다. 매몰되는 사고를 겪으면서도 성실히 일한 그에게 작은 행복이 온다. 파독 간호사와 파독 광부로 서로 아픔을 달래는 것으로 만남을 시작한, 그리고 평생의 동반자가 될 아내를 만난 것이다.

40여 년 전, 30대의 그는 여동생의 결혼 비용과 가족의 연결점인 ‘꽃분이네’ 가게를 사기 위한 자금을 마련하려는 오라비이자 아버지다. 아내인 영자가 외치는 “당신 인생인데, 왜 그 안에 당신은 없냐구요!”라는 말을 뒤로 하고, 전쟁터인 베트남 한복판으로 떠난다. 자신의 옛 모습을 생각나게 하는 베트남 소년에게 베푼 친절로 목숨을 구하기도 하고, 철수 중 피난민을 구하다가 평생 다리를 절게 되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수는 어느덧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아내에게 편지를 쓴다.

“도주 엄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라고. 우리 이렇게 생각을 해 보자. 그 망할 놈의 6·25 전쟁을 우리 도주가 겪었다고, 서독 그 지옥 같은 작업장에 우리 기주가 들어가 있었다고. 여기 월남, 이 전쟁 통에 우리 아이들이 돈 벌러 들어와 있다고. 모든 게 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참 좋았었겠지만. 그래도 그런 일을 우리 자식들이 아니라 나랑 당신이 겪었던 게 참 다행이다.”

   
▲ 이산가족 상봉의 기쁨에 친구 달구를 부둥켜안고 눈물 흘리는 덕수
1983년에 이르러 아마도 40대를 맞이한 그는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기 위해 뛰어다니는, 흩어진 가족을 합치고자 하는 가장이다. 잃어버린 여동생과 아버지의 유일한 단서인 찢어진 옷소매와 두루마기 하나를 들고 십만 명이 운집한 여의도 KBS로 향한다. 아버지는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결국 어릴 때 입양되어 한국어조차 잘 못하는 여동생 막순을 만나게 된다.

왜 자신을 버리고 갔냐고 울부짖는 막순. 상봉의 기쁨과 여동생에 대한 미안함으로 범벅된 눈물 섞인 덕수의 표정. 그리고 그런 덕수와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누는 달구. 멀리 부산 꽃분이네에서 방송을 보며 기뻐하는 가족. 흥남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하나의 매듭을 짓는 순간이다.

그러나 지금의 ‘윤덕수’는 자식들을 비롯해 그가 평생을 바쳐 온 가족에게서조차 이해받지 못한다. 평생의 친구인 ‘오달구’도 그가 너무 답답하게 산다고 타박한다. ‘아버지’를 빼고 가족은 다 모였지만,‘윤덕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손녀와 아내뿐이다. ‘윤덕수’는 ‘꽃분이네’를 지켜야 한다. ‘아버지’가 언젠가 ‘부산 국제시장 꽃분이네’로 돌아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모인 어느 저녁, 손녀의 재롱을 기대하며 가족들은 둘러앉는다. 손녀는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다른 식구들이 기대하는 노래가 아니다. ‘윤덕수’가 손녀를 데리고 국제시장을 돌아다니며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르는 손녀. ‘윤덕수’는 즐거워하지만, 다른 가족들의 반응은 차갑다. 실망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윤덕수’의 뒤에서 ‘윤덕수’의 자식들은 노망을 의심하며 ‘꽃분이네’에 대한 ‘윤덕수’의 집착에 대해 불평한다. 서글퍼진 ‘윤덕수’는 ‘아버지’의 두루마기를 꺼낸다. 언젠가 돌아오시면, 돌려드리리라 마음먹은 ‘아버지’의 흔적.

“아버지, 저 약속 잘 지켰지요? 막순이도 찾았고요. 이만하면 잘 살았지요? 근데… 진짜 힘들었거든요…”

그런 ‘윤덕수’의 앞에 ‘아버지’의 환영이 떠오른다. ‘윤덕수’는 70대 노인이 아니라 12살 소년 덕수가 되어 그동안 한번도 말하지 않았던 속내를 눈물과 함께 털어놓으며 위로를 받는다. 그 다음날, ‘윤덕수’는 아내와 대화 끝에 “아버지도 이제는 나이가 많이 드셔서 못 오실끼다”라고 말하며 ‘꽃분이네’ 가게를 판다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그제야 덕수, 평범하지만 위대한 가장은 자신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공정한 시각 - “소통과 화합을 전하고 싶습니다”

윤제균 감독은 JTBC와의 인터뷰에서 <국제시장>을 제작하면서 어떤 정치적 제스처도 취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두 가지를 들었다.

   
▲ 국제시장 제작 보고회(사진 제공= 국제시장 공식 사이트)
하나의 이유는 이 영화의 주제가 윤 감독, 즉 현재 대한민국 중장년층의 부모님 세대에 대한 헌사이기 때문이다. 그 시대는 ‘못 살고 가난한’ 시절이었으며, 영화 <국제시장>의 주 목적은 그 시대를 힘겹게 살아나간 분들에 대해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인 사건사고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로 다룰 수밖에 없고, 이렇게 다루게 되면 수박 겉핥기식의 형식적인 내용만 표현할 수 있기에, 차라리 다루지 않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다른 하나는 윤 감독이 <국제시장>을 가족 영화로 구성했기 때문이다. 가장이 부모님을 모시고 자녀를 동반한 채 볼 수 있는 영화로 제작한 것이다. 어느 한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고, 정치적 사건은 이에 있어 부담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상당 부분 중립적인 입장에서 정치적 공정함을 발휘한다. 우선 현대사에서 의도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생략하고 있다. 6·25 전쟁은 주인공과 그 가족의 흥남 철수, 그리고 이승만의 육성으로 전하는 휴전 소식만으로 묘사했다. 베트남 전쟁도 남베트남이 망한 날을 “1975년 4월 30일 베트남 전쟁 종전”이라고 자막으로 간략하게 나타낸다. 주인공이나 주요 인물들은 역사적 사건에서 휘말려드는 일반인일 뿐이지 당사자가 아니며, 많은 민간인들이 이러한 역사 속에서 희생당하고 고통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다른 인터뷰를 통해 “어느 세대든 자기 세대가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고 하지 않나. 10대, 20대, 30대도 똑같다고 보는데, <국제시장>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가진 세대별 인터뷰 때도 한 10대가 ‘힘든 세상에 태어나서 억울하다’고 하더라”며 “그런 면에서 <국제시장>을 본 젊은 세대는 ‘부모들이 이렇게 살았구나’라는 새로운 경험을, 나이든 세대는 ‘우리 젊을 때처럼 지금 세대도 치열하게 살고 있구나’라고 인정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한 윤 감독은 지역감정이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까지도 부당한 것이라고 은연중에 언급했다. 본래 피난민이었지만, 부산에 오래 살았기에 부산 사람이 된 주인공은 ‘부산에 사는 사람이면 모두 부산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한때의 자신처럼 돈을 벌기 위해 타향살이를 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공감한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철없는 젊은 세대에 대해 분노한다. 또한 부산, 즉 경상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이 경상도의 대표 가수인 나훈아보다는 전라도의 대표가수인 남진을 좋아하며, 심지어 전쟁터에서 남진에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지역감정이 허상임을 보여준다.

<국제시장>의 끝…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126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은 덕수에게 몰입한다. 중간 중간 카메오로서 등장하는 현대의 ‘왕회장’의 젊은 시절이나, 고 앙드레 김 선생의 “엘뤠강트한 뻬브릭~”이라는 말투에 폭소를 터트리기도 한다. 흥남 철수 장면이나 이산가족 상봉 장면, 아버지의 환영에게 덕수가 위로받는 장면에서 눈물 흘리지 않는 관객이 드물다.

또한 영화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차츰 높아진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구두닦이나 미군에게 구걸하여 생계를 꾸려나가는 힘없는 피난민 소년이었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청년이 되면 비록 3D 업종인 광부이지만 외국에 나가 외화를 획득하는 산업일꾼이 된다. 중년의 나이에는 미군의 물건을 옮기는 군수업자로 한때의 자신과 같은 베트남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나눌 수 있는 입장이 된다. 주인공의 발전은, 즉 대한민국의 발전과도 같은 모습이다.

<국제시장>은 역사에 대한 풍자나 옹호 혹은 거시적인 정치 사회 담론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Ode to My Father” 그대로 “진짜 소박하게 고생만 하신” 아버지 세대에 대한 감사다.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라는 생생한 삶의 소리와 ‘괜찮다’ 웃어 보이고 ‘다행이다’ 눈물 훔치며 힘들었던 그 때 그 시절을 듣고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 <국제시장>. 누구나 지금 살아가는 삶이 힘들다고 하지만, 그 삶을 살게 해 준 밑거름이 되어준 우리의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를 위한 감사의 메시지다. “모든 문화 콘텐츠의 가치는 작가를 떠나게 되면 관객에게 달려 있다”는 윤 감독의 말대로, 우선 보고, 그리고 감동을 느낄 영화라고 생각한다.

정재영 기자  jyjung37@mjknews.com

<저작권자 © 정경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발행인 인사말회사소개정경시론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0-010)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1-11 한서리버파크 1405호  |  대표전화 : 02)782-2121  |  팩스 : 02)782-9898
사업자등록번호: 107-06-75667  |  제호 : 데일리정경뉴스  |  등록일자 2005년 5월  |  등록번호 : 서울아00449
발행일 : 2000년 4월  |  대표이사: 최재영  |  청소년보호책임자: 최재영
Copyright © 2021 정경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