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사청문회는 2000년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되었다. 정권교체를 이룬 국민의 정부가 도덕적으로 투명한 인사를 검증 받아 등용함으로써 정권의 신뢰를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당시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야당이었다. 한나라당은 옳거니 하고 현미경 잣대를 들이대 인사청문회를 통해 김대중 정권 4명과 노무현 정권 2명 등 도합 6명의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데 성공했다. 당시 정부의 인사에 사사건건 불만을 쏟아내는 야당의 공세에 노무현 정권은 “코드(code)에 맞는 사람을 골라 쓴다”면서 맞서기도 했다.

또다시 정권이 바뀌었다. 10년 만에 다시 야당이 된 새정치민주연합은 보란 듯이 이명박 정권에서 6명, 박근혜 정부에서 7명을 청문회 과정에서 털어냈다. 더구나 박근혜 정부는 집권 2주년을 겨우 넘긴 상태다. 분풀이일까? 현재까지 13명, 앞으로 또 몇 사람이 더 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여야 합하면 14년 동안 청문회에서만 낙마한 인재가 19명이다. 본인이 청문회를 기피해 고위공직지명을 거절한 사람까지 합하면 그 몇 배수의 인재들이 낙마되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요즈음 언론은 청문회 포비아(phobia·공포증)가 고위 인사들 사이에 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위공직 기피현상은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국정운영의 주역을 담당할 적재적소의 인재를 발탁하는 데 중대한 장애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의 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순전히 청문회의 무차별적인 신상털기다. 언론까지 합세하고 있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청문과정에서는 40여년 전의 주민등록등본이 등장했다. 이런 식이라면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현실적 항변이 나올 법도 하다. 이런 청문회 잣대에 대해 대다수 국민은 오히려 너무 심하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정권이 체(體)라면 인사는 용(用)이다. 정권의 승패는 사람 씀(用)에 달려 있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참신한 인재를 발탁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최고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그런데 인사청문회가 최고지도자의 용병을 사사건건 발목 잡는다면 어떻게 원활하게 국정 운영을 할 것인가? 한편 무소불위의 인사권자라 하여 흠결 많은 사람을 의도적으로 등용해서도 안 된다. 인사청문회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면 인사권자의 횡포도 방지하고, 인사권자의 적재적소 인사도 보장해 주는 청문회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지난해 경기도의 인사청문제도가 화제에 올랐다. 남경필 지사는 작년 8월 야당과의 연정을 추진하면서 도내 6개 산하기관장 인사에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청문회 방법은 도덕성검증은 비공개로 하고 정책검증은 공개적으로 하는 방식이었다. 현행 국회청문회의 절충안이었다. 이 제도를 채택하면서 그는 비공개의 도덕성 검증이라서 혹시 봐주기식 청문회가 되면 어떻게 하나하고 걱정했었는데 오히려 비공개이기 때문에 더욱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져 6명 중 2명이 낙마했다. 물론 도덕성 청문회자료는 밀봉하여 도지사에게 전달되고 6개월 후 폐기되었다.

청문회 절차는 인사 청문 요청 → 도덕성 검증위구성 → 도덕성 검증위 1차 인사청문(비공개) → 소관 상임위의 2차 능력 → 자격 인사청문(공개) → 청문결과 도지사에 제출 → 도지사 임명의 순서를 밟았다. 특기할 것은 청문회 후 낙마한 2명도 개인적 흠결이 공개되지 않아 사회적 품위를 지킬 수 있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공개 청문회의 단점을 보완한 도덕성과 정책 투트랙 인사청문회가 더 바람직하다는 실험결과를 도출한 셈이다.

 

 

반면 14년째나 계속되고 있는 국회 인사청문회의 가장 큰 병폐는 피청문자의 개인적 프라이버시가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헌법에도 위배될 수 있다. 공직 후보자라고 하여, 그것도 본인이 청탁한 것도 아닌 발탁에 의한 후보자인데 청문회장에 서면 마치 무슨 범죄자를 다루듯 인격 침해를 서슴지 않는 발언과 무차별 신상털기가 공개적으로 자행된다. 이로 인하여 당사자는 결코 보상받을 수 없는 인격적·사회적으로 거의 매장될 수준의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게 된다. 요행히 채택이 되어 임명되면 몰라도 낙마할 경우 그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이 때문에 인사청문회법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내부로부터도 커지고 있다. 털어보면 먼지 안 날 사람이 없다. 그럴 때마다 새 인물을 내논다는 것도 무리다. 그래서 아예 공석으로 비워둔 요직도 있었으니 이것은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는 일이다. 국회 인사청문법의 제도적 보완이 시급한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세월호 사고 뒤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총리를 청문회 때문에 사상 초유로 유임시킨 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청문회에 가기도 전에 개인적 비판이나 가족들 문제가 거론되는 데는 어느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같고, 높아진 검증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분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국회도 인재들에게 나라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주는 데 있어서 현행 인사청문회제도에 개선할 점이 없는지를 짚어보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해주길 바란다”고 인사청문회의 개선을 주문했었다.

 

여기에 발 맞춰 지난해 7월 새누리당에서 ‘인사 청문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가 결성되고 세 차례의 회의와 한 차례의 공개토론회를 가졌었다.

그리고 11월 27일 제도개선안을 내놓았다.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박민식,김종훈·이강후·박성호·김동완·김현숙 의원 등 국회의원 7명과 최준영 인하대 교수, 손병권 중앙대 교수, 가상준 단국대 교수 등 10명이 마련한 안이다.

이 안은 공개적인 정책 검증과 비공개의 도덕성 검증을 핵심으로 했다. 정책부분 검증은 인사청문회 전체회의에서 실시되며, 도덕성 부분 검증은 인사청문위원회 산하에 ‘도덕성 심사 소위원회'를 구성해 공직후보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진행하도록 했다.

이 안은 특히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며, 필요한 경우 소위원회 의결을 통해 사후 공개가 가능하도록 했다. 도덕성 심사소위와 인사청문 요청 기관 간 소통을 강화해 사전 검증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자료의 개별 공지는 금지했다. 그리고 인사소위원회의 인사청문회 개회 24시간 전까지 위원회에 공직후보자의 도덕성 심사 경과와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인사 청문 기간도 현행 20일에서 30일로 확대하고, 인사청문위원회 활동 기간도 현행 15일 이내에서 25일 이내로 연장했다. 그리고 국회법을 개정해 인사청문 과정에서 부적절한 언행을 하는 경우 국회법에 따라 징계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추가했으며, 특히 언론보도 개선 방법 등도 논의했다. 그리고 대통령직 인수법을 개정해 새 정부가 1기 내각 구성을 위한 인사지원시스템을 구축하고, 고위공직자가 갖춰야할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을 설정하기로 했다. 장윤석 의원은 “인사청문회가 인사검증보다는 정쟁으로 변질돼 운영되는 것은 종식돼야 한다. 여야가 국민 눈높이에서 청문회가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며 여야의 협조를 당부했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운영위에 계류되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고위공직자의 인사청문회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부작용을 동반한 현행 검증 방식은 개선돼야 한다. 이것이 여론이다.

그러려면 첫째, 인사청문회의 더욱 세밀하고 객관적인 규정과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 지난 청문회를 종합해 보면 어떤 이는 위장전입 문제로, 어떤 이는 병역 미필문제로, 또 어떤 이는 이중 국적 문제로 낙마하는 등 그 잣대가 사람에 따라 각기 오락가락했다. 그 때 그 때 다른 잣대가 적용된다면 청문회의 공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 그러므로 좀 더 세밀한 부분까지 명확한 지침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인사 청문 후보자의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보장해 줄 수 있도록 도덕성 검증은 비공개 원칙을 채택해야 한다. 도덕성 검증이 후보자의 인격을 침해하고, 명예를 실추시킨다면 혹 그가 임명이 되더라도 조직을 장악하는 영(令)이 서지 않는 심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청문회란, 인재의 능력을 검증하여 그에게 용기를 주고 정책 수행을 소신껏 의욕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북돋는 역할을 해야지 인재에게 상처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핵심은 도덕성 검증의 방법에 달려있다. 도덕성 검증을 위해 국회의원이 아닌 외부 원로나 덕망가들로 구성된 소위원회를 운용해 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오히려 한 차원 높은 검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언론 보도 개선 방안이다. 취재 윤리를 뛰어넘는 보도, 선정적 보도들은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 규제되도록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이것은 국회와 언론이 머리를 맞대고 협의하면 도출해 낼 수 있는 문제다.

인사청문회의 제도개선은 시급하다. 정부가 국정 공백 없이 폭넓게 행마(行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문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청와대의 철저한 사전 검증이다. 이 검증에 구멍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청문회가 시끄러웠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사권자가 먼저 참신하고 공정한 인재를 찾아서 추천하는 일이다. 찾아보면 청와대와 국민의 입맛에 맞는 인사가 어디엔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