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을 관운(官運)이라고 하는 걸까? 곳곳에 널린 청문회 지뢰를 피해 이완구 국무총리가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제43대 국무총리로 탄생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2번째 총리이자 박 정부가 3수(修) 끝에 길어 올린 모처럼의 대어여서 국민적 기대도 크다.

지난 2월 16일 치러진 ‘이완구 총리 임명동의안’ 표결에는 새누리당 155명, 새정치민주연합 124명, 무소속 2명 등 총 281명이 참여했다. 투표 방법은 자유투표로 진행됐다. 새누리당은 여유로워 보였다. 출석인원 표만 모아도 과반(141표)은 훨씬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개표 결과가 나왔다. 찬성 148표, 반대 127표, 기권 또는 무효 6표였다. 과반은 넘겼지만 겨우 7표차의 아찔한 신승이었다. 그 일곱 표를 ‘럭키 세븐(Lucky 7)’이라며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는 다르다’는 유머가 SNS로 날라들었다. 청문회의 쟁점으로 거론되었던 의혹도 우연히 일곱(7) 가지였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 이탈 일곱(7) 표는 이 신임 총리에게 두고두고 자기 성찰을 촉구하는 시금석의 의미로 남겨두기로 한다.

이런 와중에 새정치민주연합의 노골적인 충청 민심 눈치 보기가 가세되었다. 그보다 큰 것은 총리 지명자 낙마 두 번째인 박근혜 정부에게 또 한 번 더 낙마시킨다면 어떤 국민적 저항을 받을지 자신도 없었다. 충청권에서 포스트 JP(김종필)라고 사랑을 받고 있는 이완구 후보자를 떨어뜨린다면 다음 총선에서 어떤 역풍을 맞을지 두려움도 작용했다. 더불어 새누리당의 기를 쓴 ‘라이언 李병’ 구하기 특공작전도 전개되었다. 이완구 후보는 도무지 낙마시킬 수 없는 신의 한 수였다. 그러니 박근혜 정부의 기막힌 조커카드가 아니겠는가.

 

▲ 지난 2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완구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의 이완구 총리의 다양한 모습들.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청문회 점수는 F학점이었다. 그렇다고 지레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 총리에게는 오히려 청문회에서 호되게 깨진 것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앞으로는 누구도 그에게 청문회식 잣대를 들이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고 그는 이번 청문회를 통해 그의 신상 의혹 등에 대하여 국민으로부터 조건부 용서를 받은 셈이다. 국민은 그에게 밉지만 한번 더 기회를 주어 큰일을 하도록 기회를 주었다. 그러니 이 신임 총리는 조금도 의기소침할 필요 없이 소신껏 국정 수행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 총리의 장점은 그의 외모에서 풍기듯 엄청난 에너지와 추진력을 느끼게 해 주는 데 있다. 그가 지난 시절 충청도지사나 국회에서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보여준 열정으로 국정을 수행한다면 얼마든지 A학점은 보장될 수 있을 것 같다. 국민은 이 총리를 통해 신선한 충격을 받고 싶어 한다. 그의 활기찬 일거수일투족이 국정에 새 바람을 불러와 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려면 요즈음 TV에 비치듯 매사에 분주한 충청도 아저씨 같은 이미지를 부각시켜 주길 바란다.

 

 

 

을미년 설날을 맞아 이완구 국무총리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2월 18일 취임 후 첫 설 연휴를 맞아 소외 계층을 만나고 치안현장을 방문하는 민생행보를 서울 중구와 서대문구에서 펼치고, 연휴 중에도 특별 근무하는 명동 파출소와 종로 소방서를 방문했다. 그런 모습은 확실히 활력이 있어 효과가 있었다.

이 총리는 설 연휴가 끝난 지난 2월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도 ‘강한 총리실’ 구현을 주문하고 나섰다. 처음으로 총리실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다. 이 총리는 공무원들이 사사건건 국회가 입법해 주기만 기다리면서 손 놓고 있지 말고 우선 국회가 아닌 정부 차원에서라도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가 있나 찾아보고, 대통령령이나 시행령만으로도 개정이 가능한 정책적 수단으로 무엇이 있는지 적극적으로 찾아 시행하자고 주문했다. 이것은 여의도만 바라보고 손 놓고 있었던 과거 행정부의 관행에 각성을 촉구하는 첫 시동이었다.

특히 이 총리는 지지부진하고 있는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에 가속도를 내자고 강도 높은 주문도 했다. 그는 500조 원에 달하는 공공부문 부채와 싱가포르, 홍콩 등 외국에 비해 비효율적인 금융 산업 등을 조속한 시일 내에 개혁해야 한다고 고강도로 주문했다.

앞으로는 총리실이 부처 컨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을 회복해야 한다며 논란이 많은 건강보험료 개편안도 총리실이 주도적으로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완구 총리는 특히 공직자 기강확립을 청문회 때부터 강조했다. 신상필벌 원칙 도입도 재확인했다. 공직기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나는 이번이 마지막 공직이라는 각오로 ‘신상필벌’을 확실히 하겠다. 공과 과를 엄정히 구별하여 상벌을 분명히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세종청사 근무 직원들의 업무 효율성을 위해서도 1급 이상 간부들만 국회를 모니터링 하도록 하고, 국회 때문에 공무원들이 세종시에서 서울로 우르르 몰려가는 일을 앞으로 삼가라고 주문했다. 총리실 직원은 가급적 1급 이상 간부들만 국회 상황에 대응하도록 못 박은 것이다. 세종시 청사에서 수 백km 떨어져 있는 여의도만 쳐다보는 업무 낭비를 막아보자는 한 방책이었다.

 

 

2월 25일로 박근혜 정부의 국정 3년차를 맞이했다. 박 대통령은 3년차의 최우선 국정과제가 경제살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완구 총리는 물론 새 내각의 최우선 과제이기도 하다. 이 총리도 미리 내다보듯 취임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저는 국무총리로서 무엇보다 먼저 경제 살리기에 온몸을 바치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경제상황이 매우 엄중합니다. 세계경제의 장기적인 침체로 인해 중소기업인, 소상공인, 농어민을 비롯한 많은 국민들이 생업의 현장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는 데 정부의 모든 역량을 최우선 집중해 나갈 것입니다.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개혁과 규제개혁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여 경제성장 동력을 확충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겠습니다. 박근혜 정부 3년차인 올해가 우리 경제의 도약을 이루는 결정적 시기라고 생각하며 경제활성화로 국민의 어려움을 풀어가겠습니다.”

이어서 소통과 통합에도 자신이 앞장서겠다고 했다. 대화와 타협, 협력과 상생의 문화가 민주주의의 가장 소중한 가치이며 통합된 사회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하며, ‘국민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면서 국민과의 원활한 소통에 열정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와의 소통, 여당 야당과의 소통, 사회 각 분야의 소통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사회 각 분야의 화합과 통합을 이루는 데도 총리의 더 큰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유지하고 국민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저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국가개혁의 굳건한 토대를 구축해 나가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공직사회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그가 취임사에서 밝힌 경제활성화와 4대 부문 개혁, 소통과 화합의 사회통합, 공무원 기강 확립 등은 국민의 요구와 같다.

국무총리는 일인지하 만인지상( 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재상이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국무총리의 권한(정부조직법 제15조)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각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감독하고, 국무위원 임명을 제청할 수 있는 권한(국무위원 임명제청권)과 해임을 건의할 수 있는 권한(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을 가지며, 중앙행정기관의 장의 명령이나 처분이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대통령의 승인을 얻어 이를 중지 또는 취소할 수 있다. 국무총리는 또 대통령, 국무위원과 함께 국무회의 구성원이 되는 지위를 가지며 국무회의 부의장이 된다. 이 밖에 대통령 권한대행권, 국회 출석 발언권, 국정행위문서 부서권(副署權), 총리령 발포권 등을 가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통령제 하에서의 국무총리는 그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다. 오죽하면 행사에서 대통령의 축사를 대신 읽는 ‘대독(代讀)총리’, ‘새도우(실체가 없는 그림자)총리’라는 말이 유행했겠는가. 누구나 국무총리에 등용되면 첫 소감이 ‘쓴소리’하는 총리, ‘노라고 대답할 수 있는 총리’, ‘직언하는 총리’, ‘책임총리’가 되겠다고 소신을 밝힌다. 국민은 혹시나 하고 기대해 보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완구 국무총리만은 좀 다른 총리가 될 것 같다는 것이 국민 모두의 기대이다.

JP(김종필)는 지난 번 고 박영옥 여사 상가에 문상 온 이 총리에게 박 대통령이 섬세한 여성이기 때문에 ‘직언한다’느니, ‘쓴소리한다’ 느니 등의 좀 강한 단어는 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충고했다. 역시 노(老) 정객다운 심려 깊은 한 수 충고이다. 때로는 부드러운 말투가 더 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총리가 과연 박근혜 대통령을 어떻게, 얼마큼 잘 보필할 수 있을까. 이 총리는 청문회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겸손을 배웠을 것이다. 스스로도 ‘국민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 라고 자세를 낮췄다. 그는 경찰 출신이고, 충남지사 출신이며, 누구보다 풍부한 행정 경험을 가진 총리이다. 그리고 소통이나 화합의 명수라고 소문나 있다. 아직 나이도 젊고 추진력도 갖췄다. 그가 성심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모시고, 집권 3년차의 경제 살리기와 민생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한다면 국민 행복시대를 열어 더 큰 국민적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