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人事)는 만사(萬事)다. 잘 뽑은 사람 하나가 정권의 승패를 가린다. 그만큼 국정에서 인사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국정이 체(體)라면 그 용(用)은 바로 인사이다. 체와 용은 하나다. 그래서 누구나 최고의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되면 적재적소 인사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싶어 한다. 인사가 바로 정권의 공정성을 국민 앞에 실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 역시 인사에 대한 기대가 크다. 때만 되면 어떤 직위에 오를 인사(人士)들의 하마평을 놓고 설왕설래가 많은 까닭이다.

인사권자가 대통령이라면 쓸 수 있는 인재의 폭은 넓다. 굳이 전 정권이 그들의 입맛에 맞게 분류해 놓은 존안자료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이 부르면 달려올 사람들이 많다. 주변에 천거를 부탁하면 많은 인재들이 줄을 설 것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수차례에 걸쳐 인사문제에 난맥상을 보여 대국민 사과를 했어야 했다. 인재풀이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민심의 향방을 모른 탓이었을까? 어디가 막혀 있었던 것일까?

새누리당은 그 수십 년의 정통(政統)으로 미루어보아 당심(黨心)에 맞는 인재들의 존안자료를 많이 보유하고 있어야 옳다. 10년 통치 경험의 새정치민주연합도 나름대로의 인재풀을 소유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나 정당들은 그런 인물 자료에 관하여 무관심한 모양이다. 그래서 여당이고 야당이고 집권만 하면 인사문제로 시행착오를 되풀이 한다. 같은 여당인데도 대통령만 바뀌면 인사난맥으로 한동안을 헤맨다. 전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존안자료가 없었다고 변명해 보지만 그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집권 기간 중 인사 낙마율을 비교한 자료가 있다. 노무현 정부 3.8%, 이명박 정부 9.0%, 집권 2년 된 박근혜

▲ 생각에 잠긴 박근혜 대통령

정부는 낙마율은 벌써 15.8%를 기록해 역대 정부 최다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기관의 수장이 없이 운영되는 부처도 여럿이다. 국가 인재 관리는 기본적으로 행정안전부 소관이다. 행정자치부는 20여만 명 정도의 대한민국 인재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으면서 거의 매년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 물론 기초적인 간단한 자료이다. 이 중 한 2만 명 정도의 존안자료를 새 정권에게 제공한다. 그러므로 존안자료가 부족해 인물 검증을 못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오히려 참신한 인재를 찾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참신한 인재를 찾는 것은 옛날부터 통치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통치자가 그 많은 인재들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주변의 유력자에게 인재 천거를 부탁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도 제후들 밑엔 학식과 견문이 높은 식객(食客)들을 수백 명씩 거느린 재상들이 있어 그 때 그 때 필요한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아왔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부터 천거제가 시행되었다. 주로 현량(賢良)과 효순(孝順)이 기준이 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인재등용의 한 제도로 정착되었는데, 성종 6년(987)에 12목에 지방관과 경학박사, 의학박사를 파견하면서 명경(明經, 경에 밝은 자), 효제(孝悌), 의술에 뛰어난 자들을 의무적으로 추천해 올리도록 했다. 992년에는 문재(文才)나 무략(武略)이 있는 자는 궁궐에 나와 스스로 자천(自薦)하도록 했다. 지방 관료들이 숨은 인재가 있어도 시기하여 아예 천거해 주지 않거나 은폐시키는 경향도 있었기 때문이다. 인종 5년(1127)에는 부정한 청탁 등으로 부적격자를 추천했을 때는 오히려 그 추천자를 처벌하는 법도 만들었다.

조선조에서도 천거제는 여러 차례 손질을 거치면서 숨은 인재를 발굴하는 유일(遺逸)천거제, 공신의 자제들을 우선 등용하는 음서제(蔭敍制), 현량과 등을 통해 권력이 일부 세력에 집중되는 것을 막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인사가 곧 권력이므로 천거제에 따른 부작용도 컸다.

 

 

인재 천거의 바이블로 춘추전국시대 기황양이 자주 인구에 회자된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자 재상이 된 여불위(呂不韋)는 바로 인재 부족 문제에 부딪힌다. 역사 이래 최초로 탄생한 이 방대한 제국을 통치할 새로운 국가시스템을 구축하고 그것을 통치할 새 인재들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방을 붙여 강호의 제제다사(濟濟多士) 3천명을 식객(食客)으로 불러 모아 편히 지내게 한 뒤, 그중 상재(上才)들만 골라 그들이 보고, 듣고, 읽고,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적어 올리도록 했다. 무려 20만 어(語)가 모였다. 이것을 묶어 책으로 편찬한 것이 <여씨춘추(呂氏春秋)>이다. 여불위는 이 책을 도성 성문에 걸어놓고 누구든지 이 책에서 한 자라도 잘못된 것을 찾아내면 천금을 주겠다고 했다. 그만큼 완벽하게 썼다고 자신했다.

이 <여씨춘추>는 ‘기황양(祁黃羊)의 천거(薦擧)’가 나온다. 진(晉)나라 평공(平公)이 기황양에게 물었다. “남양의 현령이 공석인데 누가 그 지방을 다스리는데 적임자인가?” 기황양이 “해호(解狐)가 좋습니다”하고 대답했다. “해호는 그대의 원수가 아닌가?” “공께서 누가 적임자냐고 물으셨지 저의 원수를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평공은 그 자리에 해호를 임명하였다. 사람들은 다 좋은 인사라고 칭찬하였다.

얼마 뒤 평공은 또 기황양에게 물었다. “나라에 재판관이 공석인데 누가 좋겠는가?” 기황양은 “오(午)가 좋겠습니다”했다. “아니, 오는 그대의 아들이 아닌가?” “공께서 누가 적임자냐고 물으셨습니다. 제 아들을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를 재판관에 임명하였다. 사람들은 다 좋은 인사라고 칭찬하였다. 공자(孔子)도 참 훌륭한 일이라고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인재라면 원수도 천거한다’는 ‘기황양의 천거’이다.

 

 

인사는 크게 천거(薦擧)와 청탁(請託)이 있다. 천거(薦擧)는 어떤 일을 맡아 할 수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쓰도록 소개하거나 추천하는 일이다. 이것은 유능한 인재의 재능을 먼저 파악하고 인정하여 친소관계를 떠나 적소(適所)에 추천하는 일이다. 예를 든다면 중국 삼국시대 유비에게 제갈량(諸葛亮)을 천거하는 서서(徐庶)같은 경우이다. 서서는 유비에게 많은 공을 세웠으나 조조가 그것을 알고 서서의 모친을 인질로 잡고 서서를 불러들인다. 서서가 조조에게로 가면서 유비에게 제갈량을 천거한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돌아온 아들을 꾸짖고 자살해 버린다. 이후 그는 조조에게 단 한 가지의 계책도 바치지 않았다. 유비는 삼고초려(三顧草廬)로 제갈량을 발탁해 천하를 3분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조선조 때 이보다 더한 인사 천거가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을 앞두고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일개 정읍현감인 이순신(李舜臣)을 선조에게 천거해 전라 좌수사로 발탁케 한 일이다. 유성룡은 권율도 천거해 육상 전투를 지휘토록 하였다. 이순신이 왜군 수군을 박멸한 영웅으로 부상시킨 이 천거야말로 조선의 운명을 구한 아름다운 천거로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하다.

 

 

반면 청탁(請託)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남에게 부탁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적 용어로 쓰이면 인사 청탁, 이권 청탁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로 변한다. 이런 청탁에는 검은 돈과 뇌물 등이 동원된다. 부정 인사 청탁이 나쁜 이유는 적재(適材)인 타인의 등용 기회를 박탈하고 인사의 공평성을 무너뜨려 조직의 사기를 저하시키며, 업무수행 면에서도 비전문가이기 때문에 능률에 손실을 준다는 점이다.

조선 시대에는 분경(奔競)이라고 하여 인사철만 되면 보따리를 싸들고 권력자를 찾아 쏘다니는 사람을 일컬는 말도 있었다. 뭔가 이익을 위하여 분주히 쏘다닌다는 말인 분추경리(奔趨競利)의 준말이다. <경국대전> 형전(刑典) 금제(禁制)의 분경 조에 보면 ‘분경하는 자는 장(杖) 1백 대, 유삼천리(流三千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삼천리는 3천리 밖으로 유배 보낸다는 벌이다. 이처럼 부정인사 청탁은 엄히 다스렸지만 이것도 조선조 말에는 유명무실해지고 혼탁이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현재도 부정인사 청탁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집단적 부정인사도 여러 곳에서 적발되었었다. 한국인의 DNA 속에 고착된 유전자인가 싶을 정도다. 아무리 엄히 다스려도 약효가 먹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오죽했으면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즉 김영란법까지 생겼겠는가. 이 법이 통과되면 약 2,000만 명이 대상에 포함된다고 하니 기대해 봐야할 것 같다. 부정 청탁자가 동원하는 무기도 갖가지다. 인맥(人脈), 지연(地緣), 혈연(血緣), 학연(學緣), 종연(宗緣)은 기본이고, 처갓집 사돈네 팔촌의 팔촌까지도 동원된다. 조속히 뿌리 뽑아야 할 폐습이다.

인사 청탁을 뿌리 뽑겠다고 ‘인사청탁공개제도’를 마련했던 이명박 시장시절인 2002년 11월 서울시의 자구노력을 소개한다. 서울시는 인사 청탁을 없애고 인사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인사청탁공개제도’를 실시하였는데, 인사청탁자와 청탁받은 공무원의 인사기록에 청탁내용을 기록해 퇴직때까지 유지하고, 서울시 내부전산망을 통해 청탁사실을 정기적으로 공개하며, 인사 때 불이익을 주겠다고 게시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인사청탁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예이다.

발탁(拔擢)이라는 인사제도도 있다. 발탁인사란, 업무 능력이 탁월하고 잠재력이 많은 사원을 승진에 필요한 연한보다 훨씬 앞서 간부로 승진시키는 것을 말한다. 매우 바람직하고 조직의 사기를 위해서도 권장할 만한 일이다. 종6품 정읍현감에 불과한 이순신을 수군 최고사령관인 정3품 전라좌수사로의 7계단을 뛰어넘는 인사발탁은 파격인 한 예이다.

 

▲ 청문회는 후보자가 직책에 대해 얼마큼 적임자이며 임명된 후 어떻게 일 할 것인가에 대한 검증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요즈음 공무원들은 거의 고시제로 공채된다. 법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들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전문직의 경우 특채로 등용하는 문도 열어두었다. 그리고 국무총리, 장관, 고위 법관 등 특별한 고위직 공무원에 대하여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법제화했다. 그러나 이 청문회가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면 새로운 정부 구성을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고위직 지명자들이 청문회 문턱에 들어서기도 전에 낙마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칫 국정공백을 야기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낙마한 고위직 인사는 9명으로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이동흡(철회), 국무총리 후보자 김용준(사퇴), 안대희(사퇴), 문창극(사퇴), 국방장관 후보자 김병관(사퇴), 미래창조과학부장관 후보자 김종훈(사퇴), 교육부장관 후보자 김명수(사퇴),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자 정성근(사퇴),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한만수(철회) 등이었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워졌다. 그래서 인사청문회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다고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현재 시스템의 청문회는 신상 털기로 도를 넘기 일쑤다. 평소 덕망 높고 능력 있어 보이던 사람도 소위 천거나 발탁에 의해 고위직 후보자가 되었다가 청문회 화생방 도크에 들어갔다 나오면 마치 흐물흐물한 걸레가 되어 나온다. 도무지 국민 앞에 낯을 들 수가 없을 지경까지 내몰린다. 이것이 두려워서 고위직에 지명되는 것조차 기피하는 유능한 인재들이 많다.

청문회는 개인적 과실보다는 그가 지닌 능력을 위주로 검증하는 방향으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누구든 성장하면서 시대에 영합한 과실을 범할 수 있다. 그것을 업(業)으로 하여 축재하거나 비리를 양산했다면 지탄 받아 마땅하지만, 인간은 언제든 개과천선(改過遷善)할 수 있는 동물이다. 과실이 없는 인간이란 없다.

청문회가 청문할 것은 그가 그 직책에 대해 얼마큼 적임자이며 임명된 후 어떻게 일 할 것인가에 대한 소신의 검증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후보자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어 의욕을 갖고 맡은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국민의 성원을 받게 밀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청문회의 올바른 가이드라인이 속히 정해져야 할 것이다.

또한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 자가 돌을 던지라는 것이다. 스스로 청문할 자격이 없는 국회의원들보다 도덕적으로 사회의 존경을 받는 석학이나 원로들로 구성된 청문기관 운영도 고려해 볼만하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청문회를 비방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청문회도 장래 고위 공직자가 될 예비 지도자에게 자기관리의 중요성을 깨우쳐 준 순작용도 있다고 평가된다.

 

 

천거는 자칫 청탁으로 비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주변에 좋은 인재가 있지만, 천거하면 청탁으로 비칠까 두려워 천거를 기피하는 현상도 있다. 이것을 막기 위해 고려와 조선조 때에는 의무천거제를 시행했던 적도 있다. 일정 직위 이상의 공무원은 반드시 1명 이상의 인재를 천거하라는 제도였다. 이것은 훌륭한 인재를 찾기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반증이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인재가 많은 나라도 드물다. 그런데도 인재를 찾지 못한다면 인재의 맥이 어디서 막혀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전 대통령의 5공 국보위시절 김재익(金在益) 청와대 경제수석의 천거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 경제부흥의 숨은 주역으로 평가받는 김 수석은 국보위시절 전두환의 경제 가정교사로 천거된다. 당시 허문도 중앙정보부장 서리 비서실장의 천거였다. 김 수석은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제부터 경제는 자네가 대통령이야”라는 일화를 남겼다. 1983년 북한의 아웅산 폭탄테러로 고인이 되었지만 후세인들은 이 인사를 가장 감동 주는 인사로 꼽는다. 정권 주변인이나 원로들이 사심을 버리고 좋은 인재를 천거하는 문화를 조속히 정착시켜야 한다.

 

 

인사는 단지 이름 석 자만을 올리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인격과 경륜과 능력을 모두 활용하는 종합 카드이다. 잘된 인사카드는 국민의 이목과 기대를 집중시키므로 한 방으로 대통령의 인기도도 회복시킬 수 있는 조커 카드가 된다. 그러므로 국민에게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인사카드를 쓸 것인가에 대하여 연구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더 이상의 인사 난맥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권 자체의 신뢰성을 무너뜨릴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박근혜 대통령의 인기가 20%대로 전락한 사태가 발생했었다. 집권 3년차에 위기라면 위기이다. 이것을 차단하고 반전을 하려면 정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인사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 해법의 요지는 역시 ‘투명하고 상생하는 인사 정책’이다.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는 많은 지지자들의 충성어린 충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