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은 국내 정치권에 의미 있는 해다. 인구이동에 따른 표심 변화가 눈에 띄어서다. 지난해 충청권 인구는 건국 이래 처음으로 호남 인구를 넘어섰다. 올 10월에는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조정 판결을 내렸다. 정치인에게 인구는 표로 인식된다. 시간이 갈수록 영남과 호남의 인구 비율이 줄어 중원의 중요성이 더해간다. 머지않은 미래에 충청권이 차지하는 정치 비중이 영호남을 넘어설 수 있다.

▲ 지난 5월 30일 통계청은 ‘2013년 세종시 특별 센서스’ 보고서에서 세종시 인구증가율이 3년 사이 27.2%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말에는 세종시를 포함한 충청권 인구가 호남 인구를 건국이래 처음으로 넘어섰다.

세종·충청권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국토교통부에서 진행한 조사(기준기점 2013년 12월 31일)를 보면, 대한민국 인구비율은 경기(24%), 서울(20%), 부산(7%), 경남(7%), 인천(6%), 경북(5%), 충남(4%) 순이다. 서울과 수도권 인구를 합하면 절반에 육박하고 영남과 호남, 충청권의 인구가 많다. 하지만, 지역별 인구 비율은 최근 시간이 흐르며 바뀌는 모습을 띤다. 정치권에서 주목할 부분은 충청권의 변화다.

올 3분기도 충청권은 인구 증가 추이를 나타냈다. 통계청이 지난 10월 27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세종시(5.42%)를 비롯해 충북(0.07%)과 충남(0.02%)은 인구가 늘었다. 특히 세종시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인구유입률을 보임으로써 선거 판세에서 중요성이 더해졌다. 이 같은 인구증가는 2010년 이후 지속된 현상으로 최근 조사 자료를 봐도 명확하다. 지난 5월 30일 통계청은 ‘2013년 세종시 특별 센서스’ 보고서에서 세종시 인구증가율이 3년 사이 27.2%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원인은 당연히 행정도시 건설에 따른 인구 유입이다.

당분간 이 같은 흐름이 계속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2030년까지 인구 50만 명을 수용하는 도시건설이 목표이니 합당한 추론이다. 세종시에서 발표한 인구 통계는 10월 말 기준으로 14만 5,431명이다. 통계 조사 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증가 흐름이 뚜렷하다. 더해지는 정치 위상을 감안할 때 세종시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선거마다 충청권은 격전지

▲ 헌법재판소는 지난 10월말 선거구 조정 판결을 내렸다. 선거구 간 인구편차를 3대 1로 둔 현행 선거법이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결정이다. 내년 말까지 선거구 간 인구비례를 2대 1이 넘지 않도록 조정해야 한다.

물론, 일부는 충청권의 영향력을 논하기에 급한 감이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 중심지로 확고한 서울과 해양수도로 여겨지는 부산 등 경쟁 도시가 만만치 않아서다. 하지만 지각 변동 조짐이 이미 시작됐다. 지난 10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인구 변동으로 20대 총선에서 선거구를 조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지역구에 따라 인구 편차가 심하니 이를 평등하게 수정하라는 결정이다. 해당 판결로 영남(9곳)과 호남(8곳)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 충청권의 경우 늘어나는 선거구와 줄어드는 곳이 같아서 일단 변화가 없다. 오히려 세종시 건설로 의석 하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향후 인구유입까지 감안하면 상황은 더 유리하다. 선거제도를 두고 여러 논의가 국회에서 진행되겠지만, 인구 변화에 따른 표의 이동은 거스를 수 없다. 표의 이동은 권력의 이동을 의미한다.

결국, 세종시를 비롯한 충청권 민심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졌다. 큰 싸움에서 결정권을 지녔다는 얘기다. 실상 충청권은 좋게 말해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주인공이 아니되, 반짝 조연으로 활약한 게 그간 충청권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제 영호남보다 충청권 표심에 더 주목할 날이 머지않았다.

갈지자 행보, 인물을 모셔라

지역 구도가 명확한 국내 정치권의 특성상 충청권은 대선과 총선 때마다 갈지자 행보를 보이곤 했다. 19대 총선 결과를 봐도 주도권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당시 충북과 충남에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당선 비율을 보면 각각 5:3, 4:3이었다. 세종시를 야당에서 가져갔으니 동수라 봐도 무방하다. 자유선진당 3석을 제외하고, 여야 접전이 이뤄졌다.

비등한 상황에서는 큰 인물이 중요하다. 정권 재창출을 하려는 편이나, 정권 탈환을 노리는 편이나 표심을 읽어야 한다. 이때 지역 안배가 중시되고 지역 맹주로 여겨지는 인물이 대접받는다. 접전마다 충청권 인사가 정치권에 얼굴을 내비치는 이유다. 큰 싸움판에서 승리를 낚는 데 주목받은 건, 줄곧 충청권 정치인이었다.

이번 정부도 마찬가지다. 특히 박 대통령의 충청권 사랑은 특별하다. ‘중원을 장악해야 대권을 잡는다.’는 공식이 이전보다 강해졌다. 집토끼는 확실하니 산토끼에 방점을 두겠다는 의도다. 국무총리 후보를 비롯해 차기 대선주자로 충청권 인사가 자주 오르내리는 건, 이를 방증한다. 게다가 18대 대선 직전에는 작고한 육영수 여사가 충북 옥천 출신임이 부각됐다. 아울러 충청권 인사의 청와대 입성설이 언론에 흘러나왔다.

▲ 세종특별자치시는 2012년 7월 1일 발족했다. 같은해 12월부터 정부 부처의 세종청사 이전이 시작하면서 인구유입이 지속되고 있다.

공약에서도 새누리당의 중원 러브콜은 지속됐다. 관습법이라는 근거 약한 논리를 내세운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으로 둔갑했지만, 현 정권의 충청권 껴안기는 계속됐다. 특히 박 대통령은 대선이 치러지기 전, 이명박 정부 정책에 반대 의견을 밝혀 충청권을 두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지난 2013년 12월 19일 ‘세종특별자치시설치특별법 일부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사실도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보여준다. 비록 여당 일부에서 잠시 표심의 흐름을 놓친 기류가 감지됐지만, 박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환영 의사를 밝히는 등 세종시 사랑은 여전하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면, 여당의 충청권 확보 전략은 세종시를 빼놓을 수 없다. 사실상 수도가 이전하는 일이고, 시간상의 차이가 있을 뿐 정치권의 무게 중심은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쏠린다. 야권이 서울시를 가져간 상황에서 여권은 세종시마저 확보하지 못했다. 정책과 예산에서 호감을 사야 하는 건, 여권에 일종의 숙명 같은 일이 됐다.

뼈아픈 야당, 입지 확보가 관건

야당은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여당과 야당을 비교할 때, 속이 타는 건 오히려 야당이다. 18대 대선에서 정권 창출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충청권 인구가 호남권을 추월했다. 게다가 지난 7·30 재보궐 선거에서 전남 순천-곡성 지역을 새누리당에 내주며 뼈아픈 일격을 당했다. 텃밭이 줄어드는 실정이니 야당으로서는 입지가 좁아졌다. 호남권 사수와 더불어 충청권에서 세를 넓혀야 하는 형국이다. 최근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반기문 UN 사무총장 영입에 불씨를 살린 건 이 같은 정세 변화와 맞닿는다.

충청권 표밭 다지기에 걸림돌은 당연, 여당이다. 반 사무총장을 둘러싼 힘겨루기에서도 드러난다. 최근 느닷없이 대권 후보로 오르내린다는 얘기도 있지만, 실상 반 사무총장은 지난해부터 암암리에 물망에 올랐다. 명확히 이름이 거론되지 않았지만, 중도 성향과 충청권을 공통분모로 하는 인물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에서 유권자는 머릿속에 그를 떠올렸다. 그간의 이미지와 국제사회에서 쌓은 업적, 충북 음성을 고향으로 둔 반 사무총장은 여야를 떠나 구미가 당기는 대선주자다.

야당이든, 여당이든 일단 한 편의 지지를 받으면 중원에 근거를 둔 인사가 선거에서 유리하다. 호남과 영남의 표밭이 확실히 갈리는 국내 정치 상황이 낳은 결과다. 자신의 출생지든, 부모의 출생지든 중원에 끈이 있어야 한다.

대다수 정치인은 혈연, 학연, 지연 가운데 하나내지 둘 이상을 챙기려 한다. 장차 정치를 하려면 세종시 또는 충청권에서 아이를 낳고 키워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중원, 캐스팅보트 수준 넘는다

그간 정치 1번지는 여의도였다. 청와대 제2집무실과 국회 분원 이전 논의가 힘을 받을 때도 걸림돌은 그 같은 이미지였다.

일부에서 서울에 소재하는 곳이 분원이고 세종시가 본원이어야 합당한 주장도 본원과 분원이 뒤바뀐 채 왜곡됐다. 이권 싸움과 관습법에 막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결국, 충청권의 정치 운명은 사람의 손이 아니라 세월의 손에 달릴 가능성이 커졌다.  

캐스팅보트가 이전처럼 중원에 머물 경우, 정치권의 세종·충청권 사랑은 계속된다. 문제는 캐스팅보트 수준을 넘어선다는 데 있다. 적은 인구가 그간 한계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표가 늘어나 중원의 힘이 세졌다.

조만간 대선과 총선의 승패를 가르는 분수령이 세종과 충청권에 펼쳐진다. 그간 조연으로 활동했던 곳이 주연이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빠르면 19대 대선에서 유권자는 충청권 출신 대통령 후보에게 표를 던질지 결정해야 한다.

조호성 기자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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