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사회일반 핫이슈
갑의 횡포, 대한항공 ‘갑을관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 계급적 위화감 만드는 ‘갑질’의 메커니즘‘비상식 사회’의 민낯, ‘갑을관계’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조성기 기자 | 승인 2015.01.09 16:08|(178호)

전 세계 이목을 끌게 된 대한민국 ‘슈퍼 갑질’

대한항공은 사태가 커지자 곧바로 저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문제해결의 과정도 ‘슈퍼 갑’으로서의 기질을 버리지는 못했다. 국민정서를 고려해 발표한 대국민사과문에서 조 전 부사장을 두둔하는 듯한 내용이 포함됐고, 이는 여론악화를 더욱 부채질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조 전 부사장은 부사장에서 물러나야 했고 조양호 회장까지 나서서 대국민사과를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이어졌다.

출발한 비행기가 기체를 되돌려 다시 돌아가는 소위 ‘램프 리턴’은 주로 기체 결함이나 승객의 안전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등 긴박한 상황에서만 시도하게 돼 있다. 특히 비행기가 문을 닫고 출발한 이후에는 기내 모든 권한은 기장에게 있다는 항공법 제50조 제1항에 의거하면, 조 전 부사장의 행동은 월권행위는 물론 법을 위반한 심각한 범죄행위가 된다. 아무리 ‘오너’일지라도 이미 출발한 비행기를 돌릴 수 없는 것이다. 아마 누리꾼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번 사태의 전말에 대해 ‘슈퍼 갑질’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조 전 부사장의 위법 행위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기내에 있던 승객들과 승무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조 전 부사장은 해당 승무원을 무릎을 꿇게 하고 사무장 등에게 큰 소리로 질책했고 책자 등을 집어던지는 소란 행위를 했다. 항공보안법 제23조 제1항에 의하면, 항공 안전을 위해 승무원, 승객들을 향해 폭언과 고성방가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땅콩 회항 사건’은 2015년이 막 시작되는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갑을관계’의 심각성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우리 사회에 이같은 불평등의 논리가 얼마나 편재해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바로미터였다. ‘갑’과 ‘을’은 보통 계약서를 작성할 때 계약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상 용어였다. 하지만 이 두 용어의 결합 형태로 굳어진 이른바 ‘갑을관계’는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본래의 뜻을 벗어나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는, 일종의 관용어가 됐다. 상호 동등의 계약관계에서 주종의 관계 혹은 일정한 권력에 의한 상하관계를 드러내는 상징적 표현으로 굳어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흔히 자조적으로 말하는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우울한 슬로건은 갑을관계가 만연해 있는 2015년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들의 삐뚤어진 인식의 지평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을’은 출세하면 언젠가는 ‘갑’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현재의 굴욕을 감내하는 게 현실이다.

갑을관계, 조선시대부터 이어 온 오래된 관습

자신의 저서 〈갑과 을의 나라〉에서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갑을관계에 대한 인식의 기원을 조선시대로까지 소급한다. 조선시대 계급사회의 서열주의와 민(民) 위에 군림했던 관료 권위주의에서 그 뿌리를 찾는 것이다. 이처럼 비상식적 갑을관계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조선시대 양반사회의 기저에 면면히 흐르는 계급논리가 일제강점기, 군사독재시대를 거치면서 기득권을 가진 특권 계층의 의도와 맞물리면서 지속적으로 확대 재생산돼 왔던 것이다.

   
▲ (좌) 지난 해 6월 발생한 남양유업 부당행위 사건에서 남양유업대리점피해자협의회 관계자들이 남양유업 본사와 단체교섭 타결을 촉구하고 있다. (우) 지난 11월 27일 오후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서울대 K교수 사건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이 교내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의 남양유업 사태에서부터 서울대 교수의 성추행 사건과 잊을 만하면 매스컴에 보도되는 아이돌 가수들의 불공정 노예계약 사건, 라면을 제대로 끓이지 못했다는 이유로 비행기에서 고성방가 했던 포스코 임원사건, 아파트 경비원 폭행과 사망사건에 이르기까지 최근 들어 표면적으로 불거진 갑을관계 사건들이 유독 도드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캐디 성추행 사건이나 서울대 수학과 교수 성추행 사건 등 ‘갑을관계’에서 비롯된 권력형 성범죄 사건은 오랜 기간 가부장적 사회분위기를 유지해 온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범죄행위의 절정을 보여주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가해자가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억울한 범죄행위를 당한 피해자는 침묵해야 하며 가해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는 사회, 그래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사회와 국가의 분위기가 ‘땅콩 회항’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갑의 횡포가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는 이유는 한 쪽의 ‘횡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갑질’은 당연히 을의 피해를 상정하는 것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갑을관계를 통해 을이 극명한 해를 입게 된 케이스가 무수히 발견된다. 대기업과 하청업체 간 관계로부터 직장 내 직급 간 비인간적 대우와 위의 사례에서 보듯 대학교수와 제자들 간의 성추행이나 성폭력, 계약직들에게 가해지는 정규직들의 횡포 등이 그것이다. 또 건설공사 등 도급계약에서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간에 이루어지는 하도급 거래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른바 갑의 횡포는 계급사회인 직장이나 군대에서뿐만 아니라 이해당사자 간 심지어 국가 간에도 벌어진다.

제대로 된 갑을관계, ‘을’이 이끌어야…

그런데 갑의 횡포가 가장 극심한 집단은 바로 철저한 계급사회인 ‘군대’라 할 수 있다. 최근 군 내에서 벌어진 바 있는 ‘군 내 왕따 사건’과 그로 인한‘병사사망 사건’이 대표적인 갑의 횡포에 의한 사건이다. 이처럼 갑을관계에 의한 을의 피해 현상은 우리 사회 전 영역에서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을’은 늘 기회만 되면 ‘갑’의 위치에 오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갑의 지위를 얻으려 혈안이 된다. 그렇게 해서 갑이 되면 을이었을 때의 고통과 수치를 잊고 이전보다 더한 ‘갑질’을 시도한다. 관계의 악순환이다. 나아가 잘못된 갑을관계의 병폐를 직접 경험한 을(乙)조차도 이런 구조를 쉽게 깨트리지 못한다는 딜레마가 더 심각한 문제다. 오히려 속으로는 욕하고 반발하더라도 당장의 피해를 면하기 위해 ‘갑질’에 반항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직면해 있는 부조리한 갑을관계에 대해 무작정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라는게 대다수 ‘을’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많은 이들의 의견과 지혜를 모아 합리적인 개선방향을 이끌어내고 그에 따른 지속적인 목소리를 우리 사회 전반에 내는 분위기가 정착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벌써 정부 차원에서 ‘갑을’이라는 용어를 바꾸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온 갑을관계는 이제 더 평등하고 공정한 관계로 나아가야만 한다. 문제는 어떤 과정을 거쳐 달라지느냐이다. 이에 대해 결국은 ‘갑’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만일 갑이 변하지 않고 계속 ‘갑질’을 고수할 경우 ‘을’의 반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현재 ‘갑’의 변화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고통당하는 ‘을’의 현실을 실감나게 그리며 큰 인기에 최근 종영된 tvN의 드라마 〈미생〉.

얼마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끈 tvN의 드라마 〈미생〉은 ‘갑의 횡포’가 끊이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제대로 보여줬다는 평을 듣는다. 삐뚤어진 갑을관계에서 ‘비정규직’이라는, 고통당하는 ‘을’의 현실을 실감나게 그려낸 것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빼앗았던 것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일반적인 갑을관계도 단순한 계약관계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로 봐야 한다”면서 “시청자들이 드라마 〈미생〉에 그토록 열광했던 것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로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불거진 왜곡된 갑을관계의 변화는 그래서 ‘내 자신’의 권리와 이익의 문제라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을’들의 반란이 결국 제대로 된 갑을관계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조성기 기자  mjknews@mjknews.com

<저작권자 © 정경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여백
인기뉴스
    발행인 인사말회사소개정경시론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0-010)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1-11 한서리버파크 1405호  |  대표전화 : 02)782-2121  |  팩스 : 02)782-9898
    사업자등록번호: 107-06-75667  |  제호 : 데일리정경뉴스  |  등록일자 2005년 5월  |  등록번호 : 서울아00449
    발행일 : 2000년 4월  |  대표이사: 최재영  |  청소년보호책임자: 최재영
    Copyright © 2021 정경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