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12월 13일 오후(현지시각) 미얀마 네피도 미얀마 국제회의센터(MICC)에서 열린 ASEAN+3 정상회의에 참석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준비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장기집권 발판 마련

일본 중의원 임기는 4년으로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중의원은 중간에 해산이 단행되지 않는 한 2018년 12월까지 임기가 보장된다. 그렇다고 아베 총리의 임기가 그 때까지 보장되는 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선거는 2015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재선이 돼야 총리직도 보장이 된다. 현재로서는 당선이 자명해 보인다. 내년 선거에서 아베 총리와 대적할 인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자민당 간사장이었던 이시바 시게루 정도가 잠재적인 경쟁자였지만 내각에 붙잡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는 처지다. 2015년 가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기면 아베 총리는 2018년 9월까지 임기가 보장이 된다. 중간에 스스로 중의원을 해산하지 않는 한 무려 3년 9개월 동안 총리직을 수행할 기회를 얻는다.

아베 총리로서는 눈치보지 않고 원하는 대로 정책을 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이때문에 아베 총리가 과거처럼 우익세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한일관계 개선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낙관론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전망이 다수 의견은 아니다. 사실 이같은 낙관론에는 어느 정도 당위론과 희망사항이 가미된 것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눈치볼 이유가 없는 아베 총리가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정책은 무엇일까. 중의원 선거 압승 이후 아베 총리는 첫 일성으로 “개헌은 나의 신념이자 목표”라고 단언했다. 평화헌법을 바꾸겠다는 야욕을 거침없이 드러낸 것이다. 종전 70년이 되는 2015년에 아베 총리는 아베 담화를 발표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과거에 대한 반성도 담겠다고 거듭 이야기하고 있지만 방점은 일본의 미래에 찍혀 있다. 전쟁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보통국가’로 거듭나겠다는 것이 바로 아베 총리의 정치적인 목표다.

개헌에 성공하려면 중의원과 참의원(상원의원격) 3분의 2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중의원은 연립여당인 자민 공명당이 3분의 2 이상을 장악하고 있지만, 참의원에서는 자민당이 과반수에도 미치지 못한다. 아베 총리로서는 2016년 여름으로 예정돼 있는 참의원 선거에서 크게 이기는 것이 개헌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현재 일본 정치권의 분위기라면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의 압승이 예상된다. 아베 총리가 참의원이나 중의원 3분의 2보다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이 되도록 국민을 설득해 나가겠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은 개헌을 위한 본격적인 홍보전에 나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개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2015년부터 개헌이 일본 정치권의 화두로 오를 것이라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개헌 분위기를 잡아가며 아베 총리가 추진할 정책은 자위대의 행동반경을 전 세계로 넓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위한 법 개정 작업에 나서는 것이다. 아베 정권은 2014년 7월, 국민 반발에도 불구하고 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각의 결정을 했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 또한 2015년 초부터 본격적인 법 개정 작업에 나설 예정이다. 자위대의 행동 반경을 전 세계로 넓히는 것은 이미 미국의 지지를 얻은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을 위한 중간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2015년 봄에 최종 개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 개정안에는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일본이 국내 법 개정에 서두르고 있는 이유다.

▲ 중국 포털 신랑 사용자 (@Fighterman)가 제공한 중국이 23일 공식 설치한 동해 ‘방공식별구역(ADIZ)’와 일본 ADIZ이 겹치는 모습. 여러 국가는 영공 외부에 전투기의 긴급 발진(스크램블)이 필요한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는 ADIZ을 공식 설치했다. 이 구역은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열도) 상공을 포함해 일본이 설정한 방공식별권과 겹쳐 중국해 상공에서 중국과 일본 전투기들 사이에 대치하는 일이 늘어나 양국 간 군사적 긴장이 한층 더 높아졌다. (출처 : 중국 신랑군사포털)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으로 자위대의 활동 범위가 넓어질 경우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나라는 다름아닌 중국이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다오위다오)를 놓고 일본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미국과 일본의 군사협력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용인 문제는 2015년 동북아 정세에 긴장감을 가져올 변수다. 경제적으로는 중국 의존도가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 안보는 미국,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 이와 같은 동북아 정세 변화는 부담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동북아 정세만 놓고 보면 한일관계를 개선해 나가기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한일관계, 개선될 것인가, 악화될 것인가

사실 한일 양국만 놓고 보면 2015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라 한일관계 개선의 명분을 찾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좋은 환경이다. 2014년 7년 만에 재계회의를 연 한국의 전경련과 일본의 게이단렌은 2015년 국교정상화 50년을 기념해 공동 포럼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경제문화 교류가 활발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치관계 복원으로 이어질 만한 여건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장벽은 역시 ‘위안부’ 문제다.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성의 있는 태도다. 이에 관해서 우리가 양보할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없다. 그렇다면 일본은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2015년에 과연 성의 있는 무언가를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가능성은 낮아지고 있다.

2014년 아사히 신문의 위안부 기사 일부 오보 인정 이후 일본 내에서는 “위안부 강제연행은 없었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아베 정부는 총선거 공약으로 위안부 오보에 대한 해외 홍보를 강화하겠다고 내세웠을 정도다. 보수 언론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사히 신문의 오보 문제를 끊임없이 물고 늘어지고 있다. 위안부 기사를 썼던 옛 아사히 신문 기자가 근무하는 대학에는 온갖 협박전화와 협박편지가 날아들 정도로 분위기는 험악하다.

▲ 지난 12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157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참가 학생이 피켓을 들고 있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 아베 정권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우리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무언가를 내놓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위안부 문제로 국익이 훼손됐다며 아사히 신문이 나서서 오보 문제에 대한 해명을 해야한다고 압박할 정도다. 이때문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한일 국장급 협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협상은 겉돌고 있다. 외무당국자들이 어떤 식으로 문제를 풀기에는 너무 많이 나갔다는 분위기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으로 자위대의 해외 활동 범위가 넓혀지면서 일본의 우경화 분위기는 더욱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베 정권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일 가능성은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다.

▲ 지난 11월 11일 오전(현지시각) 중국 베이징 옌치후 국제회의센터(ICC)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기념사진에서 입을 다문 채 악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전혀 물러설 기미가 없는 아베 정권이 한일 정상회담을 계속 요구하는 속내는 과연 무엇일까. 아베 총리는 2차 정권 출범 이후 2년 남짓한 기간에 무려 50개국을 순방했다. 역대 일본 총리 중 가장 많은 나라를 순방했지만 정작 중국, 한국 등 주변국과의 정상회담에는 실패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베이징 APEC에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전력으로 노력을 기울인 것도 이런 비판을 의식한 면이 있다. 두 나라 정상이 만난 이후 특별히 경제, 외교 관계에 진전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지만 만난 사실 자체에 의미를 두는 분위기다. 일본으로서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압박하는 미국의 눈치도 볼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로서는 조건 없이 한국과 정상회담 자리에 앉는 것만으로도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우리가 굳이 성과 없는 정상회담에 나서 아베 정권의 입지가 넓혀줄 필요가 있느냐는 신중론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로서는 한일 정상이 만나는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은 2014년 말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했던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다. 한중일 3국 간 외무장관 회담이 속도를 내면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과거의 전례를 보면 3국 외무장관이 만난 후 한 달 이내에 정상회담이 열리곤 했다. 3국 정상회담이 일단 열리고 나면 한일 간 악화된 분위기도 어느 정도 누그러질 가능성도 있다. 이럴 경우 자연스럽게 한일 정상회담 분위기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일각에서 나온다. 일단 정상회담이 열리고 나면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행보를 빠르게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전망은 말 그대로 그동안의 외교관계 개선 전례를 토대로 한 시나리오에 불과할 뿐 위안부 문제 등 역사 인식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어떤 방식으로 찾겠다는 구체성은 결여돼 있다.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지만, 2015년 상반기는 한일관계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중대한 갈림길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2015년 6월에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까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한일관계는 과거와 같은 협력관계로 되돌아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베 정권 이후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이번에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한국도 당분간 일본에 대한 너무 많은 기대를 접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지만 적어도 2015년 상반기에는 이 모든 것에 대한 결론이 희미하게나마 윤곽을 드러낼 것은 분명해 보인다.

황형규 매일경제신문 도쿄특파원  hwang21@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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