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25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성 김 6자 회담 수석 대표의 토로

성 김 전 주한 미 대사가 워싱턴으로 돌아와 세 개의 모자를 썼다. 6자 회담 수석 대표, 대북 정책 특별 대표,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가 그것이다. 성 김 대표가 2014년 12월 초에 한국, 일본, 중국 등을 차례로 방문하기에 앞서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 정부의 고위 외교관들과 만났다. 주한 미 대사 자리를 내놓았지만 여전히 북한 문제는 그가 안고 있는 핵심 외교 숙제였다. 성 김 대표는 이 자리에서 외교관답지 않은 진솔한 이야기를 토로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그는 먼저 지난해 11월 4일 실시된 미국 중간 선거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고 한다. 야당인 공화당이 하원에 이어 상원의 다수당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공화당은 북한 문제 등 외교 현안을 놓고 당근보다는 채찍을 강조하는 매파 집단이다. 성 김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말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함으로써 대북 협상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겠느냐는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북한과 어설프게 협상에 나섰다가는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릴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더욱이 미국 입장에서 북한보다 전략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이란과의 핵 협상에 매달리고 있다. 이란과 2015년 상반기까지 협상을 계속해 이란 핵 개발 문제의 일단락을 짓겠다는 것이 오바마 대통령 정부의 확고한 구상이다.

▲ 성 김 전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3월 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성 김 주한 미국대사 초청 관훈토론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성 김 대표는 북한이 극적인 전략적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미국이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서 핵 개발을 강행하는 북한을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다는 것이 미국의 딜레마다. 또한 미국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없는 현 상황에서는 한국의 박 대통령 정부가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뜻을 내비쳤다고 한다.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박 대통령이 대북 주도권을 쥐고,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한문제의 돌파구를 열어보는 시도를 하는 게 좋겠다는 게 성 김 대표의 메시지였다.

오바마 대통령 정부는 박 대통령 정부의 등을 떼밀면서 대화 분위기 조성에 나서고 있다.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과 북한 당국의 소니 픽처스사 해킹으로 북한 인권과 해킹이 새해 긴급 현안으로 부각됐지만 북한을 응징하는 쪽에만 무게중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 정부의 한 당국자가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 정부가 2014년 말과 2015년 새해에 띄우고 있는 애드벌룬이 북미 직접 대화이다. 성 김 대표는 2014년 12월 한, 중, 일 등을 방문해 “미국은 여전히 6자 회담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끝내는 최선의 방법으로 믿고 있지만, 미국은 실질적인 논의의 가능성이 있다면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환영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무부에서 북한 문제를 총괄하는 다니엘 러셀 동아태 차관보도 2014년 12월 16일 브루킹스 연구소 연설을 통해 다음과 같이 대북 대화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 한국, 중국은 모두 다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일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과의 양자 대화를 실험해 보기도 했으나 결국에는 프레임을 수정했다. 북한은 미국을 속이고 미국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우리는 4자 회담도 시도해 봤고, 6자 회담도 해 봤다. 그러나 우리는 한반도의 안정과 궁극적으로는 북핵의 폐기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북한은 지금 경제성장과 핵 프로그램 유지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이것은 불가능한 목표다. 북한은 결국 협상을 통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현재 중국은 북한에서 더 많은 대화를 이끌어 내고. 북한을 더 적게 압박하는 레시피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 북한과의 일대일 직접 대화를 꺼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사안에서 한국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생각할 때 우리는 대북관계의 모든 과정에 한국이 반드시 개입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이 북한과의 양자 협상을 꺼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한국과의 중요한 합의 위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뤄나가야 한다고 믿고 있다.”

북미 간 사이버 전운과 북한 인권

미국이 소니 픽쳐스사를 해킹한 주범으로 북한 정부 당국을 지목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함으로써 북미관계가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고조됐던 양국 간의 갈등이 이번에는 사이버 공격 문제로 비등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미국이 실제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리면 최소한 오바마 대통령 정부에서 북미관계는 파국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게 워싱턴 외교가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 미국 영화 제작사 소니픽처스(이하 소니)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 비서에 대한 암살 작전을 소재로 제작한 코미디 영화 〈인터뷰>의 포스터.

특히 미국에서는 내년부터 본격적인 여소야대 정국이 전개된다. 야당인 공화당이 하원에 이어 상원 다수당을 차지함으로써 의회가 대북 강경 대응 분위기를 선도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은 오바마 정부가 북한에 대한 초기 대응조치에도 강한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최근 보도했다. 상원 군사위원장으로 내정된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우리가 왁자지껄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 로저스 하원 정보위원장 (공화당, 미시간 주)도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하원을 통과한 대북 제재법안을 이제 상원이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에 집권 7년차에 접어드는 오바마 대통령 정부도 외교적 유산을 남기는 차원에서 북한문제를 놓고 ‘채찍’과 ‘당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때 무게중심이 채찍 쪽으로 옮겨갈 여지가 늘 남아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 의회에 사이버 보안 입법을 서둘러 정비해 달라고 요구했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의회가 북한과 같은 사이버 공격 집단에 강력한 응징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입법 조치를 완료하면 오바마 대통령 정부가 ‘비례적 대응 원칙’에 따라 북한에 대한 공세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면 북한은 무역, 투자, 원조 면에서 미국의 광범위한 제재를 받게 된다. 이중용도 기술 및 무기 판매와 관련된 수출 통제를 받고, 식량, 의료, 에너지 분야 원조가 금지되며, 미국과 교역에 따른 금융 지원이 제한된다.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금융기구로부터의 지원이나 신용 공여도 어려워진다.

오바마 대통령은 테러 지원국 지정에 따른 파장 등을 포함한 종합적인 대북 응징책을 준비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장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기보다는 대북 금융 제재를 강화하는 등 북한 옥죄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비록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있지만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금융 거래를 할 수 없도록 차단하면 북한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게 미국 정부의 판단이다. 다만 대북 제재를 강화하면 북한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중국의 협력을 얻기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데 미국의 고민이 있다.

새해 벽두부터 유엔 안보리는 북한 인권 결의안을 정식 안건으로 다룬다. 유엔은 2014년 12월 18일에 총회 본회의에서 북한 결의안을 통과시켜 안보리에 회부했었다. 이 결의안은 북한 인권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해 북한 당국의 책임자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총회 결의안은 구속력이 없다. 국제사회에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관이 유엔 안보리다. 그러나 안보리에는 거부권을 보유한 중국과 러시아가 버티고 있으며 두 나라가 북한 인권문제의 ICC 회부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한미 양국은 한국의 TPP 조기 가입 협의 착수

워싱턴 D.C.에 있는 주미 한국 대사관의 한 고위 당국자는 새해 한미 간의 가장 시급한 현안 중의 하나로 한국의 TPP 가입 문제를 꼽았다. 이 당국자는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역사적 유업을 남길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가 경제이고, 그중의 하나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4년 12월에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통해 압승을 거둠에 따라 미국과 일본간 TPP 협상이 2015년 1분기에 타결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주미 한국 대사관의 판단이다.

한국은 2014년 말에 한덕수 무역협회장을 급파해 미국 조야에 한국의 TPP 조기 가입 의사를 전달했다. 한 회장에 이어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을 방문해 정부 차원에서 한국의 TPP 동참 의사를 사실상 표명했다. 한국 정부의 한 당국자는 “2015년 가을이 되면 미국이 대선 정국으로 접어든다. 이때문에 오바마 대통령 정부가 TPP의 의회 승인 절차를 서두를 수밖에 없다. TPP 협상 타결안이 나오면 대통령이 서명한 뒤 의회가 90일간에 걸쳐 심의하게 돼 있다. 미국은 이와 같은 내부 절차를 밟는데 5∼6개월이 필요해 2015년 9월 이전에 의회의 표결이 이뤄지려면 2015년 3월까지 일본 등과 협상안을 타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TPP에는 미국, 일본 등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비록 TPP 체결 협상에는 참여하지 못했으나 13번째 가입 국가가 되겠다는 메시지를 미국 등에 보내 놓은 상태이다. 올해 한미 양국의 통상 당국이 한국의 TPP 가입을 위한 속도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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