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에게는 ‘전(前)’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 영원한 화가, 영원한 작가가 있을 뿐이다. 최재영 본지 대표가 지난 2004년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열린 홍석창 화백의 개인전에서의 만남 뒤로 꼭 10년 만에 다시 만난 홍 화백은 여전히 현역의 자리를 당당히 지키고 있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며 저력을 과시하고 있는 홍 화백의 모습은 당당하고 거침없어 보였다.

 

특히 동양미술 가운데서도 문인화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그의 작품은 국내를 비롯해 중국, 영국, 말레이시아, 대만 국립역사박물관 등 세계 각국의 이름난 미술관에 소장되면서 한국미술 문화를 세계에 알렸다. 또한 국내 이름난 제자들을 많이 배출하는 등 한국 고유의 동양미술을 알리고 있는 점 또한 눈여겨볼만 하다. 홍 화백은 영웅적 운필과 섬세한 세필 사이의 득특하고 웅장한 필력은 미술 애호가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이에 <정경뉴스>에서는 생을 마칠 때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겠다는 홍 화백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재조명해 봤다.

 

예술가들의 집안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어릴 적 외조부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란 홍석창 화백 또한 그의 곁에는 늘 필묵이 함께 했었다. 한문과 사군자, 서예 등을 배우며 자란 그에게 문인화는 어찌 보면 너무나도 자연스런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인화는 사대부나 문인들이 수묵으로 그린 그림으로 시(詩), 서(書), 화(畵)와 함께 갖춰진 그림을 일컫는다. 이 때문에 높은 격조의 멋과 학문의 청아한 향취가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릴 적 유달리 몸이 약했던 홍 화백은 예술을 통해 격동적이고 대범한 자신만의 세계를 내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동양미술을 선택한 것도 운명적이다. 물론 홍 화백이 예술가의 길만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몸이 약했던 점 때문에 의사의 길을 꿈꾼 적이 있기도 합니다”라며 쑥스럽게 웃어보였다. 그가 외조부의 조언에 따라 의사의 길을 포기한 것은 홍 화백 스스로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한국이 낳은 거목 화백이기에 참으로 반가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이 밖에도 홍 화백이 나고 자란 강원도 영월의 자연 모습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조화’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기도 해 영월이란 지역을 한번 더 곱씹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홍석창 화백이 세계적인 문인화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사군자, 서예 등이 어릴 적부터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는 다른 이들보다 자연스럽게 동양미술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시도가 가능했다. 홍 화백의 홍익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입학은 국내 동양미술의 한 획을 긋기 위한 초석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중국문화대학교 예술대학원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전통 동양회화의 진면목을 제대로 공부했고 예술가로서의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또한 그는 30여 년 동안 홍익대 미대의 정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쳐왔고 국내 동양미술의 발전에 큰 획을 그은 차원 높은 예술가다. 현재 홍익대 미대 명예교수 직함을 갖고 있는 그는 “제자들도 이미 정년”이라며 “제자를 넘어 제자의 제자들까지도 이미 국내 미술계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홍 화백의 작품성은 세계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그의 작품들은 중국, 독일, 일본, 미국 등 국제 전시를 통해 국위를 선양했으며 영국 대영박물관, 중국 공자박물관, 중국미술관, 중국 호북성미술관, 대만의 국립역사박물관 등에 홍 화백의 작품을 소장함에 따라 한국의 위상을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청와대 관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시립미술관, 호암갤러리 등 국내의 굵직한 미술관에는 꼭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조혜영 미술 평론가는 홍석창 화백의 예술세계는 이 시대 범세계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무리가 없다고 했다. 우리 시대 독창적인 한국화단의 거장이며, 예술적 욕망 앞에서만큼 타고 난 예술가의 중심에 서 있다고 평론했다.

 

홍 화백의 이런 공로는 각 종 수상경력에서도 볼 수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문화훈장 수훈(2011), 대한민국 미술인상(2011), 대통령 대한민국 문화 예술상(2004), 프랑스 까뉴 국제회화체 특별상(1994), 한국미협전 대상(1975) 등 많은 수상을 통해 많은 이들의 꾸준한 관심과 인정을 받고 있다. 

 

또한 지난 1977년 정부 차원에서 단군왕검의 표준영정을 제작한바 있는데, 이를 그린 이가 바로 홍석창 화백이다. 표준 단군상을 토대로 현정회(단군을 중심으로 민족주체성 확립을 위해 조직된 사단법인체)에서는 홍 화백에게 위촉해, 문화재 전문위원회(영정분과)의 3차에 걸친 수정과 심의를 통해 영정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이듬해 1978년 8월 28일 정부표준 단군영정으로 지정받아 역사교과서 등에 실리기도 했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행했던 일인 만큼 홍 화백의 명함 뒤편에는 단군영정 그림이 새겨져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홍 화백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는 동양미술이라는 영역이 ‘조화’라는 이름 아래 새롭게 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물질문명 등을 문인화와 잘 융합해 하나의 회화로 이끌어내는 현대예술의 대가이기도 하다.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면 이같은 점이 확연하게 나타나있다. 초기 홍 화백의 작품은 주로 수묵 계통의 그림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전통정신에 현대적인 색체가 조화롭게 융합돼 있다. 그는 “문인화를 현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라며 “대범하고 자유롭게 구상과 추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서로 조화를 해가는 것이 핵심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조형성을 강조하는 그의 작품은 2007년 이후로 상당히 역동적으로 바뀌었다. 현대적인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던 홍 화백은 “현대는 대단히 역동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색체 또한 화려해졌습니다. 또한 전통색인 오방색을 수묵과 결합해 대범하고 긍정적으로 표현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세계는 최근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했다. 이에 대해 홍 화백은 “우리의 전통적인 한국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세계화에 동행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며 “민화의 익살스런 장면에 현대에 산재한 배, 비행기 등의 물질문명을 조화롭게 융합했고, 색점을 찍어 밤하늘의 별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어릴 적 강원도 영월의 동강에서 바라보던 밤하늘의 별들을 떠올리며 색점을 찍기 시작했다는 그는 작품의 명제를 <별꽃>이라 칭하며 고향의 정취와 자연의 모습을 살리기 위해 애썼다고도 덧붙였다.

 

 

모든 이들의 염원은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건강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홍석창 화백도 “눈을 감는 그날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는 것이 꿈”이라며 건강관리에 힘쓰고 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다고 말하는 홍 화백은 요즘도 매일 1시간 정도를 운동과 함께 보내고 있다고 한다. “매일 집 주변을 산책하고 집 근처에 갖춰진 운동시설을 통해서도 꾸준한 체력관리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홍 화백의 모습은 약간은 왜소해 보이면서도 강단이 풍겨져 나오는 느낌이다.

 

현재 신촌에 작업실을 갖고 있는 홍 화백은 대학교수로 정년을 하고도 여전히 작품 활동에 전념하고 후학들을 이끌고 있다. 여전히 식지 않은 열정을 보여주려는 듯 작업실을 찾는 후학들을 가르치며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부인 정순희 여사와 두 명의 자녀들 또한 현역에서 예술가로 활동하는 점도 홍 화백이 지금껏 굳건히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할 것이다. 그동안 홍 화백이 국내 미술사의 큰 획을 그어 온 만큼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궁금하다. 이번에는 또 어떤 작품으로 예술인들의 심장을 철렁이게 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