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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안전은 없었다’일그러진 사고공화국의 자화상
조성기 기자 | 승인 2014.11.03 16:36|(176호)
‘안전사고’의 끝은 어디일까? 2014년 대한민국은 ‘사고공화국’이다. 육지에서, 해상에서, 이제는 도심의 한복판에 이르기까지 안전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언뜻 1994년 공중과 해상, 지상에서 연이어 터진 대형사고들이 떠오른다. 지난 10월 17일 판교 테크노밸리 야외광장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인해 16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고 중상자도 상당히 발생했다.
 
그야말로 ‘안전불감증’이 부른 대참사였다. 특히 붕괴 사고의 원인인 환풍구에 대한 안전 기준조차 없었고 설치 규정도 지방자치단체별로 제각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제 명실상부 ‘사고공화국’이란 오명을 뒤집어 쓴 대한민국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는 목소리가 높다.
 
   
▲ 7월 17일 오전 광주 광산구 장덕동 수완지구 한 아파트 인근 도로변 인도에 강원 소방1항공대 소속 소방헬기가 추락해 기장 등 5명이 숨졌다.
예고된 사고, 언제까지 계속되려나?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붕괴사고는 예정된 사고였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1,000여 명이 몰린 행사현장에 안전요원이 단 한명도 배치되지 않았고 무대도 기존 설치 위치에서 변경되는 등 안전상 문제가 많았다. 안전관리 소홀로 인한 ‘인재(人災)’였던 것이다.
 
특히 판교사고는 올해 들어 잇따라 터진 인재에 가까운 사고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고여서 적지 않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1월 전남 여수 낙포동 앞바다에서 600여 톤의 기름이 유출된 사고로 출발한 올해 안전사고는 2월 13일 경기 남양주의 빙그레 제2공장의 폭발로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하는 사고로 본격화했다. 이 사고 나흘 뒤인 17일에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떠난 부산외대 학생들이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로 10명이 사망하고 103명이 부상하는 대형참사가 발생했다. 전형적인 인재사고였다. 이 사고로 인해 국내는 물론 해외언론까지 한국의 ‘안전불감증’을 입에 올리며 추후 대책마련에 촉각을 세웠지만 인재형 안전사고는 계속됐다.
 
3월에도 현대중공업 크레인 철판 추락으로 인한 하청노동자의 사망사고와 서울-하남버스 간 충돌로 인한 2명 사망사고, 울산 현대삼호중공업 노동자 추락사망사고, 울산 현대중공업 14안벽 드릴십 포카데스크 족장 철거 중 붕괴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등 막을 수 있었던 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4월은 더 잔인했다. 울산 현대 미포조선 추락사망사고와 안산 반월공단의 화학물질 제조공장 폭발사망사고에 이어 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을 태운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29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실종되는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
 
이후 5월 26일 8명의 사망자를 낸 고양종합터미널 화재사고, 28일 21명이 사망한 전남 장성 효사랑 요양병원 화재사고, 9월 25일 발생한 서울지하철 4호선 이수역 승강장 사고 등 자잘한 작은 사고는 제외하고 제법 큰 사고들만 해도 십수 건이 터져 나왔다. 지난 7월 17일에는 진도 세월호 수색업무 차 파견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던 강원소방본부 소속 헬기가 광주에서 추락해 3명이 숨지는 사건까지 발생했을 정도였다.
 
   
▲ 4월 16일 오전 9시께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승객 447명과 승무원 24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좌초돼 구조대원들이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
‘왜 되풀이되나?’ 대책마련보다 인식변화 시급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역시 이런 사고들의 연장선상에 서있는 전형적 ‘인재사고’였다. 이들 사고 대부분은 안전수칙만 제대로 지켰다면 면했을 사고들로 올 한 해를 규정하는 키워드를 ‘안전불감증’으로 꼽아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현실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이번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는 그동안 안전사고들의 ‘종합판’과도 같은 총체적 문제들이 드러난 사고였다. 경기경찰청 수사 결과 참고인 신분으로 진술한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의 한 기술사는 “단돈 30만 원만 들였다면 이번 사고발생을 막을 수 있었다”고 전제한 뒤 “현재 환풍구 덮개 받침시설이 어느 정도의 무게를 버텨야 하는지에 대한 법적 기준조차 없는 게 현실”이라며 개탄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환풍구 받침대가 애초 설계대로 시공됐는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조사하는 등 대처하고 있지만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지난달 22일 경기도를 대상으로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판교 사고 문제가 집중 거론되는 등 판교사고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의 ‘안전사고’ 문제가 가장 큰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은 “세월호 참사 뒤에도 경찰청이 스스로 만든 안전 매뉴얼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언급한 뒤 ‘다중운집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에 따라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행사에 대해 경찰은 45개 항목을 점검해야 하는데, 이러한 사실이 지켜지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국토부가 판교 환풍구 사고 직후 환풍구에 대한 높이와 주변 안전장치 설치 규정을 만들고 환풍구 덮개 받침대가 견딜 수 있는 무게도 명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일반 국민들의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세월호 사고’를 겪고도 어처구니없이 터져 나온 사고가 바로 판교사고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안전뿐만 아니라 시민건강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한 시민단체의 조사결과 드러나 통풍구 유지관리에 대한 대안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 10월 17일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에서 열린 제1회 판교테크노밸리 축제 행사장 인근에서 한 환풍구 위에 서있던 사람들이 환풍구 덮개가 붕괴되며 20m아래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 경찰과 소방당국이 구조를 위해 구급차를 대기하고 있다. 오후 8시 30분을 기준으로 15명이 사망한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젠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할 때
 
“사고가 아니라 학살”이라는 주장까지 나오는 등 이미 세월호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안전관리, 사고 후 대처, 대안마련 등 모든 부문에서 총체적인 부실을 보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이러한 불행한 사고들은 계속 터질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다.
 
이미 올 초부터 연이은 참사를 겪은 데다 판교 환풍구 붕괴사고 이후 사고처리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매번 반복되는 대형 참사들 속에서 과연 우리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을지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안전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엄밀하게 따져보면 ‘성장주의’ 사회 분위기가 그러한 토대를 만든다고 지적한다. 고질적인 대한민국 특유의 ‘빨리빨리병’ 때문이라는 견해다.
우선 대부분의 분야가 외적으로 표출되는 실적이 성공과 실력의 가늠자가 되기 때문에 사후서비스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투자와 관심은 손해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 한진현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9월 22일 충북 충주시 산척면에 위치한 석회석 생산 광산을 방문해 주요 시설물을 점검하고 광산 사고 및 재해 구호작업 훈련을 참관했다.
이 때문에 시설에 대한 유지관리는 생색이 나지 않는 업무다. 사고가 나면 당장 눈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예산도 투입하고 인원도 배치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경우 예산도 깎고 투입인원도 줄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현상이 반복되다 보니 대형사고의 가능성은 늘 잔존하고 있다. 기업이든, 정부기관이든 운영효율성을 위주로 경영하다 보니 언제나 안전이 희생되는 구조다. 그러나 이제는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남아도는 예산으로 안전에 투자한다는 편견을 버리고 먼저 안전 분야에 투자해야만 지금과 같은 악순환을 개선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귀띔한다.
 
이와 관련해 안전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갖고 있는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로 볼 때 이제 효율성을 논할 때가 아니라 얼마나 안전한지가 최고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며 “이번 사고 또한 우리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사고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앞으로 또 닥칠 수 있는 안전사고를 걱정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씁쓸하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9월 13일 오전 서울 송파구 제2롯데월드 신축공사현장을 방문해 공사현장을 살펴보며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

조성기 기자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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