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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대한적십자사 ‘SR나눔로드, 한걸음의 기적’대한민국 영토 674km 횡단 ‘마라도에서 임진각까지…’
박윤희 기자 | 승인 2014.10.14 15:18|(175호)
   
▲ 행복한 나눔문화 확산을 위한 대한적십자사의 ‘희망풍차 SR(Serious Request/간절한 호소)나눔로드’ 2기 원정대원들이 지난 7월 23일 제주 공룡랜드에서 추사관을 향해 행군하고 있는 모습.

 “차례로 신속히 버스에 탑승하세요. 각 조장과 스텝들은 인원 다시 한번 인원 체크! 곧바로 출발합니다.” 

뜨겁다. 이 곳은 제주시 한림읍에 위치한 한 리조트. 로비로 내려와 시계를 보니 오전 6시가 채 안 됐다. 대원들은 서둘러 떠날 채비를 마치고 구내식당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30분 안에 120명의 장정 대원과 모든 스텝들이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탑승해야 한다. 숙소에서 모슬포항으로 이동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버스로 삼십여 분. 출정식 시간을 맞추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다.

   
▲ ‘희망풍차 SR(Serious Request/간절한 호소)나눔로드’ 원정대원들이 지난 7월 23일 제주도청을 찾았다. 이 날 원희룡 제주지사와 김대승 대한적십자사 제주특별자치도 봉사단회장, 오미영 제주지사 홍보대사, 청송화 봉사원 30여 명과 RCY 학생들을 비롯한 수많은 도민들이 원정대원들을 환호했다.
 
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대장정 첫날이 실감나는 아침이다. 곧이어 유태균 장정팀장의 지시 하에 대기 중이던 스텝들도 서넛씩 조를 이뤄 버스에 올라탔다. 이상석(서울시립대학교) 스텝장은 여정 중에 지켜야 할 단체생활의 에티켓과 지침사항을 대원들에게 설명했다. 잠시 후 인원 체크를 완료했다는 고강록(24·고려대학교)의 무전이 왔다. 곧바로 버스가 출발했다.

   
▲ 행복한 나눔문화 확산을 위한 대한적십자사의 ‘희망풍차 SR(Serious Request/간절한 호소)나눔로드’ 2기 원정대표 강득철·조고운 대원이 지난 7월 22일 마라도에서 열린 출정식에서 선서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이봉근(26·경북대학교), 박예지(24·배제대학교), 곽상현(24·우송대학교), 김류빈(23·우송대학교), 황덕기(21·한국해양대학교), 김민창(26·건국대학교), 최한수(24·제주대학교), 공태양(24·인제대학교)은 지원스텝으로 이번 여정에 동행했다. 지난해 암 투병중인 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유일하게 종주패를 받지 못했던 윤병찬(21·국민대학교) 스텝도 함께했다. 병찬이가 비보(悲報)를 듣고 서울 행 버스에 오른 날은 겨우 장정 3일차였다. 

유일하게 종주패를 가슴에 안지 못했던 미련이 남아서일까. 그는 그 짧은 기억을 잊지 못해 1년을 기다려왔다고 말했다. “이번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실의와 슬픔에 빠져 있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함께 할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들 11명의 지원스텝은 SR나눔로드 1기 장정 및 지원팀 출신으로 선발된 정예멤버들로 SR나눔로드 2기 장정 대원들의 ‘서포터즈’ 역할을 자청하고 여정에 동행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고 창틀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했다. 새벽녘이라 길가에 흐드러진 여름 꽃향기가 짙게 묻어나왔다. 대장정이 시작되면 다시없을지 모를 여유로움이다. 리조트를 빠져나온 버스가 명월교차로를 지나 명월성로에 올랐다. 차창 밖 저 멀리 보이는 도로의 구릉(丘陵)을 따라 시선을 내려놓았다.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일 이 여정에 오르지 않았다면, 우리의 여름은 지금보다 여유로웠을 것이다. 취업을 위해 영어공부를 좀 더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아르바이트를 해 용돈을 넉넉히 벌거나, 편안한 침대에서 늘어지게 늦잠을 자면서 늘어지게 방학을 보냈을 것이다.

   
▲ 행복한 나눔문화 확산을 위한 대한적십자사의‘희망풍차 SR(Serious Request/간절한 호소)나눔로드’원정대원들이 지난 7월 23일 행군하고 있는 모습.
 
120명의 장정 대원들은 다양한 사연을 갖고 이번 여정 길에 올랐다. 이 곳에서의 3주는 빡빡한 일상과 고된 행군의 연속일 것이다. 퉁퉁 불은 발목과 약해진 관절 통증에 시달릴 수도 있고, 그럴 때마다 나약해진 나 자신을 돌아보며 눈물이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올 여름을 멋지고 보람되게 보내게 될 것이다. 나와 너를 위한 나눔의 발걸음을 한발 한발 이어갈 것이 다. 우리의 발걸음이 모여 674km를 종주할 때쯤이면, 앞으로 닥칠 인생의 역경 앞에서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길가에 핀 해바라기와 코스모스가 버스가 내는 바람에 흔들렸다. 버스는 협재로를 따라 모슬포항으로 힘차게 달렸다. 모슬포항에 다다르자 대원들의 표정이 상기됐다. 배에 오르기 전, 남기용 보건안전강사가 대원들에게 ‘특효약’을 나눠주었다.

바로 생강차로 배 멀미를 앓는 대원들이 약기운으로 지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한 천연 멀미약이다. 그 효과가 꽤나 좋아서 멀미가 심한 대원들도 별 탈 없이 첫 여행을 즐겼다. 배가 남쪽으로 11km 해상을 달리자 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너머로는 송악산과 산방산이 감싸고 있었다.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마라도다.” 본초적 자연과 바람이 숨쉬는 ‘섬 속의 섬’ 마라도. 배가 선착장에 다다르자 기온은 30。에 육박했다. 무더위에도 해안가의 바람은 강했다. 대한적십자사 제주지사 봉사원과 주민들이 선착장에서 대원들을 환영했다. 강득철(23·성균관대학교)와 조고운(24·한양대학교) 장정 대표가 긴장한 표정으로 대열 선두에 섰다. ‘SR나눔로드’ 대원들이 마라도에서 첫발을 내딛었다.
 
출정식은 모두의 ‘경건한 축제’였다. 대원들이 드넓은 마라도의 바다를 등지고 최남단비 앞에 섰다. 신민호 원정팀장이 마이크 앞에 서자 신속히 대열을 정비했다. 김정주 업무지원본부 팀장의 추진경과 보고와 강득철·조고운 대표의 출정신고가 이어졌다. 유중근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두 대표와 함께 깃발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우렁찬 함성소리가 마라도에 울려 펴졌다. 흔들리는 깃발을 보며 대원들은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 지난 8월 1일 충북 감곡중학교 운동장에서‘소망을 담은 풍등 날리기’행사가 진행됐다. 대원들은 날아가는 풍등을 보며 자신들의 소원을 마음에 되새겼다.
 
마라도를 빠져 나와 중식지인 제주 추사관까지 5.2km 장정을 시작했다. 대열 선두에 선 방송차량에서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무더위 탓에 금세 대원들의 얼굴과 등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됐다. 한 시간 삼십여 분을 걸어 도착한 추사관에서 휴식을 취한 대원들은 3그룹으로 나눠 각자 목표된 27km 행군을 소화하기로 했다.
 
반나절을 더 걸어 제주경마공원에 도착하니 벌써 짙게 어둠이 깔렸다.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나왔다. 텐트에서의 첫날밤은 몸서리치게 추웠다. 낮 동안 37。까지 치솟던 기온은 금세 23。까지 떨어져 있었고 바람은 강했다. 물집 환자와 감기의심환자가 속출했다. 짊어진 배낭에서 작은 모포를 꺼내 몸을 덮었다. 불필요한 물품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기 때문에 당연히 따듯한 이불이 있을 리 없었다. 아쉬운 대로 지급받은 우비를 꺼내 덧대고 잠자리에 들었다.
 
장정 3일째. 대원들 대부분이 몸에 이상이 왔다. 게다가 처음으로 30km가 넘는 행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스텝들도 긴장하고 있었다. 지승현(23·충북대학교) 대원은 3일째 기수(旗手)를 자청하고 대열 앞에 섰다. 지친 동료들을 위한 배려였다. 기수는 한쪽 팔로 깃발을 높게 들고 장정하기 때문에 피로도가 빨리 찾아온다. 그는 “오늘을 무사히 넘겨야 남은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것 같다”며 결의를 다졌다.
 
오전 8시부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영암의 날씨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지역 봉사회 분들의 충고가 떠올랐다. 점점 굵어지는 빗줄기에 대열 선두에 선 방송차량의 음악소리가 묻혀갔다. 영상강산업단지 내 영암방조제관리소 다리 밑에서 잠시 비를 피하기로 했다. 곧바로 다시 행군해야 한다.
 
총 32km 중 이제 경우 4km 남짓 걸어 온 상황. 우비를 입고 배낭을 메니 더 무겁게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원들을 우비를 벗고 빗속을 행군했다. 어깨를 짓누르는 고통과 걸을 때마다 전해지는 다리 통증에 비하면 내리는 비쯤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체된 대열은 한 시간 반이 지난 오후 1시 반이 다 되어서야 중식지인 삼호중앙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축축한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허겁지겁 점심을 먹어치웠다.

   
 
힘든 전남 구간의 행군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역시나 이 날도 태양은 아스팔트를 녹여버리겠다는 기세로 내리쬐었고 체감온도는 연일 32。를 넘었다. 이미 대원 대부분의 몸 상태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출발 전 이다슬(4조·21·세종대학교) 대원이 “그늘이 없어서 한 시간 이상 걷는 건 무리다. 전날 8km를 한 번에 걸었기 때문에, 휴식 없이 걷는 것은 몸에 무리가 온다”고 말했다. 얼굴에 맺힌 땀방울은 쉴 새 없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계속된 강행군에 대원들의 몸 상태는 극도로 예민해져 갔다. 도로 상황 역시 열악했다. 
 
중간 휴식지에서 화장실이 없을 수 있다는 유태균 장정팀장의 무전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서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결국 6km를 걸어 도착한 첫 휴게 포인트에서 신소영(21·동아대학교) 대원이 힘겨워했다. 양 다리가 벌겋게 부어 짓물렀다. 덥고 습한 날씨 탓에 아토피 상처가 도진 것이다. 다리를 걷고 열을 식히던 소영은 결국 앰뷸런스 신세를 져야 했다.
 
그는 “출발 전 미리 챙겨온 약도 듣질 않는다” 며 눈물을 보였다. 나는 최대한 질문을 줄였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대부분 비슷한 감정들을 느끼고 있었고, 서로의 고통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힘든 전남 구역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 행복한 나눔문화 확산을 위한 대한적십자사의‘희망풍차 SR(Serious Request/간절한 호소)나눔로드’원정대원들이 지난 8월 7일 임진각을 향해 행군하고 있는 모습.
 
“우로 밀착, 앞으로 밀착! 앞으로 대열 맞춰 걸으세요!” 짧은 휴식 뒤에 오는 고된 행군은 어느새 일상이 되고 있었다. 오후 3시부터 재개된 행렬은 후동사거리(나주서부로)를 지나 23번 지방 국도를 지나고 있었다. 지휘 차량과 나종권 교통지원팀장의 무전이 계속됐다.
 
김상진 원정대장은 대열의 안전한 도보를 확보하기 위해 선두로 뛰고 있었다. 전남 지역 도로는 인도가 확보되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도로 반대편 길가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도로 위에는 컨테이너와 레미콘 차량이 쉴 새 없이 대원들의 옆을 지나치며 위험한 상황을 연출했다.
 
마라도를 떠나 온 원정대는 587km를 지나 경기도 부천에 입성했다. 행군도 드디어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부천 경찰서와 소방 차량, 경기지사 재난대응봉사회 협조로 시내로 이동했다. 대열을 출퇴근 차량을 피해 빠르게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마지막 날 아침. 대원들은 더 걷고 싶어 했다. 한 시간에 4km를 걷고도 힘들어 하던 대원들은 이제 평균 6km의 행군에도 지치지 않을 정도의 체력을 자랑했다. 이 날은 대한적십자 경기도 파주 경찰서 차량과 경기소방 119구급대 차량이 대열의 안전을 위해 이른 새벽부터 동행했다. 중식지인 광일중학교까지 빠른 속도로 행군했다. 목적지인 임진각이 가까워올수록 대원들의 몸은 지친 행군에 적응되고 있었다.

   
▲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 배우 류수영이‘희망풍차 SR(Serious Request/간절한 호소)나눔로드’원정대원들과 함께 행군하고 있다.
 
이들의 일상은 무언가 특별했다. 즉흥적으로 변하는 하루하루는 국토대장정의 묘미였다.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에서 하루 종일을 지냈던 이들에게 그늘 천막 하나, 물 한 모금은 더 없이 소중했다. 대원들은 더 이상 서로에게 계산적인 고민을 하지 않게 됐다. 지역 주민들의 응원 한 마디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를 위한 이 모든 이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더 없이 소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8월 8일. 끝날 것 같지 않았던 SR나눔로드 2기 대장정이 끝이 났다. 돌이켜 보면, 대원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여기까지 왔다.
 
첫날 마라도에 대장정을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날 임진각까지 가는 길목마다 대원들을 맞아주고 응원해 주시는 지역 봉사원 분들과 지역 적십자 직원들의 지원, 주민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16박 17일의 종주가 가능했다.

   
▲ 행복한 나눔문화 확산을 위한 대한적십자사의‘희망풍차 SR(Serious Request/간절한 호소)나눔로드’원정대원들이 지난 8월 7일 임진각을 향해 행군하고 있는 모습.
 
대학생 신분으로, 넉넉지 않은 지금의 형편으로, 아직 어린 나로서 ‘나눔’이란 아직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라는 소극적 자세를 보였던 이들은 많은 이들의 조건 없는 나눔을 받아오면서 많은 것을 얻고 배웠다. 대원들은 서로를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SR나눔로드 2기 최한수 대원의 말을 빌어본다.
 
“우리는 더이상 나눔의 잉여인간이 아니다.”

박윤희 기자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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