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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까지 떨어진 우리 군의 위상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국군의 날 특집 ① 국방정책… 전문가가 본 허와 실
조성기 기자 | 승인 2014.10.13 17:14|(175호)

윤일병은 자대에 배치된 이래 하루도 빠짐없이 상상을 초월한 가혹행위를 받은 것으로 수사결과 드러났다. 지난 8월에는 같은 사단 상병 2명이 휴가 중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윤일병 폭행사망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4년 전 자살한 화천 27사단 심모 여중위 사건도 재수사 결과 성희롱에 가까운 가혹행위에 의한 것임이 지난달 초 드러나기도 했다. 여기에 9월 2일에는 포로체험 훈련 도중 특전사 요원 2명이 사망하는 사건도 터졌다. 9월 16일에는 경북 포항의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을 받던 훈련병 1명이 사망하였고 다른 훈련병 1명과 교관 1명이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 어느 해보다도 군의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제65주년 국군의 날 행사에서 국군 장병들이 분열을 하고 있다.
 
‘터질 게 터졌다’, 이미 곪아버린 군 문제, 해답은 없나?
 
말 그대로 봇물이 터진 듯했다. 군의 위상까지 추락시킬 법한 고질적 사건사고들이, 줄기를 따라 올라오는 고구마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군 내부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사고나 자살사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병영문화 개혁을 줄기차게 지속해 온 군으로서 최근 일련의 군 사건사고는 세간에 주목을 받을 만큼 고질적인 군의 치부가 드러난 셈이다. 일각에서는 터질 것이 터진 것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 군인권센터가 8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28사단에서 발생한 고 윤일병 구타 사망사고와 관련해 피해자들을 위한 추모제를 연 가운데 피해자 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영정 사진을 들고 슬퍼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군 내부 문제가 엄밀한 의미에서 사건사고보다는 그 해결과정에 있다. 올해 갑자기 군의 사건사고가 급증한 것이 아니라 그동안 군 내부에서 가혹행위 및 구타에 의한 사고나 얼차려 등 가혹행위 후 정신적 고통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지만 군이 이를 축소하려 했던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이러한 추론을 뒷받침하는 최근의 경우가 바로 지난해 7월 1일, 경기 성남 제15비행단 소속 김지훈 일병의 자살사건이다. 이날 김일병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군은 밝혔고 곧 일반 자살사건으로 처리됐다. 그러나 사건 전말을 살펴보면 김일병은 지휘계통의 간부가 아닌 다른 간부에 의해 보고절차나 규정도 지키지 않은 얼차려를 받은 직후 사망했다.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군의관 상담을 신청했지만 얼차려는 계속됐던 것이다. 처음에 군은 순직 처리를 해주겠다며 성의 있는 태도를 보였지만 군 입대 전부터 있었던 병리적 성격이 자살의 요인이라는 입장발표와 함께 올해 1월 ‘일반사망’ 판정을 내렸다. 수사결과는 공개하지도 않았다. 김일병의 아버지 김경준 씨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고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수백 장의 수사기록을 토대로 군 수사의 모순을 발견했다.
 
결국 아들이 자살이 아닌 가혹행위에 의한 사망이었음을 밝혀냈고 지난 8월 14일 순직통보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공군 검찰부는 지난달 10일, 얼차려를 가한 간부에 대해 직무유기죄, 모욕죄 등은 증거불충분으로 혐의가 없으며 군형법상의 가혹행위위력행사죄는 기소유예하고 징계 요구를 하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더불어 책임자인 허 단장의 경우 직무유기죄를 적용하지 않고 서면 경고로 마무리지었다.
 
   
▲ 국방부가 근무지원단의 최신 병영 시설을 공개한 13일 오전 서울 국방부 내 근무지원단 병영생활관 내무반에서 장병들이 신형관물대에 물품들을 정리하고 있다.
 
수사에서 재판까지 진실규명에 한계 노출
 
이에 대해 김경준 씨 등 유가족들은 정신적 인격모독, 불법적 얼차려, 잘못 뒤집어씌우기 등 명백한 불법적 행위를 한 것이 동료 병사들의 진술서와 김일병의 이메일 등을 통해 드러났음에도 혐의 없음과 기소유예 처분이 나온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공군이 최종 책임자인 제15비행단장에게 직무유기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위 사례에서 보듯 군 내부의 사건사고 해결 로드맵이나 시스템은 민간 등 군 외부적 시각으로 볼 때 심각한 수준이다. 근본적 대책이나 투명한 수사 등은 고사하고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부대의 부대장이나 간부들에게 피해는 가지 않을지, 쉬쉬하고 문제를 덮는 데만 급급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위의 사례에서 가장 큰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은 군사법제도다. 현행 군사법제도의 문제점은 바로 근대 사법제도의 기본 원칙들마저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우리 군의 법무조직 체계를 보면, 예하부대의 경우 그 부대의 지휘관이 군검찰부와 보통군사법원의 행정사무를 동시에 지휘·감독하도록 되어 있다.
 
또 각 군 본부는 참모총장이 그 역할을 맡고 있고, 국방부는 국방부 장관에게 지휘감독권이 있다. 사건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를 수사하는 헌병대 역시 동일한 지휘관에게 소속돼 있다. 사건의 수사단계에서부터 재판 확정에 이르기까지 사건의 모든 처리단계를 장악하고 있는 지휘관으로서는 마음만 먹으면 사건의 은폐·조작이 가능한 시스템인 것이다. 이는 기소와 심판의 분리 원칙에 위배된다.
 
또 다른 문제는 헌병대와 군검찰 간의 관계다. 사건의 초동수사는 헌병대가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그 전문성이나 독립성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사단급 이상에 설치돼 있는 검찰부와는 달리 단위 부대장 밑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군검찰에 비해 지휘관의 입김에 노출되기가 훨씬 더 쉽다. 게다가 헌병조직이 군검찰조직 보다도 높은 계급이기에 군검찰이 헌병에게 수사와 관련해 명령이나 지휘를 하기는 어렵게 돼 있다.
 
병영문화 개혁 제자리걸음, 왜?
 
최근 군 사건사고가 잇따르자 일각에서는 병역거부운동까지 일고 있는 상태다. 병역거부운동은 과거 일부 종교적 성향에 의하거나 불합리한 군 내부에 상존하는 권위문화에 대한 양심적 거부에 의한 것이 주류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계속되는 군 사건사고에 불안을 느낀 부모들에 의해 온라인상에서 구체적인 모임의 형태로 까지 조직화되며 일고 있다.
 
특히 이런 ‘군 비토 현상’의 결정적 계기가 된 ‘윤일병 사건’과 관련해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까지도 국민적 공감대에 따라 군의 기본권 제한의 틀을 깨야 할 때라는 의견이 나오는 등 근본적 군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자체적 개혁 동력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을 경우 외부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감독 체제와 신고 및 검사제도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그렇지만 군의 입장은 대폭적인 개혁보다는 여전히 원칙론만을 고수하고 있다. 늘 있어온 수준의 병영혁신론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9월 19일, 국방정책 자문위원과 국방부 및 합참의 주요 직위자가 참여한 ‘국방정책자문위원 전체회의’에서 한민구 국방부장관의 언급은, 최근 계속되는 군 사건사고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제시한 해법으로서는 극히 미약한 수준에 불과하다. 한 장관은 이날 병영문화 혁신과 함께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군 대비태세, 조건에 기반을 둔 전작권 전환 등 주요 국방 현안을 설명하면서 최근 군이 어려움을 보이고 있지만“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밝혔다.
 
더불어 “지금 군이 어렵지만 우리 군의 목표는 정예선진강군인데, 병영 혁신도 선진 강군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군이 현재의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정예화된 선진 강군’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자문위원들의 지원과 성원을 당부했다. 국방장관의 입을 통해 나온 군의 이러한 입장은, 군사정부 시대 ‘기강확립’ 차원의 병영혁신 수준이라는 시각이 많다. 그나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추진했던 병영혁신정책에 비해 후퇴된 인식이라고 볼 수 있다.
 
   
▲ 북한이 '1호 전투근무태세'를 선언한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건물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군개혁은 군 수뇌부 의지의 문제다
 
지난 8월 4일 국방부가 제시한 병영문화 혁신안이 과거의 대책을 되풀이한 ‘백화점식’ 안에 불과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장병 언어순화 운동, 소원수리 및 고충처리 제도 개선 등과 같은 병영문화 개선 대책이 나올 때마다 포함되는 ‘단골메뉴’였지만 지금까지 별 효과가 없었다. 여기에 독립적인 외부감시 기구 설치 등 민간에서 제기된 제안들이 혁신안에는 반영되지도 않았다.
 
더욱이 이번 혁신안에는 열악한 병영시설 개선과 복지 확대 등 당장 시행해야 할 부분의 예산확보 방안과 군사법제도 개혁방안이 빠져 있어 병영문화 개선에 대한 진정성마저 의심받기도 했다. 결국 근본적 병영개혁이 요원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한 현실이다. 이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달 16일 ‘군인권팀’을 설치해 운영할 것을 밝히고 정치권도 군사법제도 개혁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는 등 군개혁에 대한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군 스스로의 자정노력이라 할 수 있다.
 
2014년 현재 우리 군의 모습은 50년 전 과거의 군과 흡사하다. 외적인 규모나 병력의 질적 수준은 나아졌지만, 군의 사기와 직결돼 있는 병영문화는 50년 전과 비교해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특히 군사법제도를 손을 보려 할 때마다 군 내부에서는 군 기강이 와해된다거나 지휘권을 약화시킨다며 결사반대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인식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군 내부의 사건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그럴듯한 대책을 쏟아내면서도 군내 폭력범죄가 근본적으로 없어질 수 없다. 군의 폐쇄주의 핵심에는 폐쇄적인 군사법제도가 있다. 그리고 그 사법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는 한 군내 폭력사건과 사고는 결코 근절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군사법제도의 개혁의 주체는 군 자신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더 많은 장병들의 희생을 줄이고 군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길은 국방장관 이하 군 수뇌부들의 의지에 달린 셈이다. 병영문화의 혁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군의 시대적 소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은 군이 인권 모범지대로 거듭날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병영문화 혁신을 통해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내는 우리 군의 노력을 기대해 본다.
 
   
▲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경계태세가 강화된 23일 강원 화천군 중·동부전선 육군 7사단 수색대원들이 철책을 점검하고 있다.

조성기 기자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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