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서양고지도 속의 우리나라
김혜정 | 승인 2014.09.11 14:58|(174호)

   
▲ 김혜정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장
동서 문명의 교류는 실크로드를 비롯한 육로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점차 지리적 지식의 축적과 항해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바닷길로 확대 되었다. 동양 세계는 13세기 무렵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동방견문록>과 루브룩(G. De Rubruc.)을 비롯한 선교사들의 기록이 서양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6세기 대항해 시대에 들어서면서 포르투갈,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선교사와 탐험 선단에 의해 동양에 대한 관심과 지도 제작이 더욱 활발해졌다. 우리나라는 13세기부터 서양고지도에 나타난다. 초창기의 서양고지도 속 우리나라는 중국에 편입되어 매우 불분명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 후 17세기 초기까지는 ‘남북으로 기다란 섬’ [테이세이라(L. Teixeira), 1595년]이나 ‘둥그런 섬’ [반 랑그렌(H. F. Van Langren), 1596년]으로, 혹은 ‘사각 형태의 섬’ [뒤발(P. Duval), 1664년]으로 그려진다.

이는 통일신라나 고려에 왔던 이슬람인들 대부분이 배를 타고 온 상인이었고, 이들은 중국의 동해안에서 동중국해와 서해를 건너왔기 때문에 한반도를 섬으로 묘사했다. 서양의 고지도는 이슬람 지도에 그려진 모습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17세기 중엽부터 부정확하지만, 반도의 모습으로 묘사되기 시작하였으며 [블라외(J.Blaeu), 1655년]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현재와 매우 비슷한 반도의 형태 [당빌(J.B, D'Anville), 1737년]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인접국가와 구분하여 단독으로 그린 이 지도는 당빌이 편집하고 제작한 <신중국지도첩>의 42개 지도 중에서 31번째에 있는 지도이다. 이 지도첩은 중국 청나라의 강희황제가 중국에 체류하고 있던 서양의 선교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중국 전역을 측량해 제작한 <황여전람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당빌에 의해 그려진 이 지도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보다 130여 년 전에 제작되었으며 서양에서 우리나라의 지리적 형태를 그리는 기준이 되었다. 또한 이 지도는 두만강 북쪽의 녹둔도까지 한국의 영토로 표기하고 있어 역사적으로 국경문제를 다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지도를 살펴보면 지금의 간도를 비롯한 만주 일대까지 분명하게 우리 영토로 표시되어 있어, 중국은 당시 간도에 대한 조선의 영토권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중국은 물론 서양인들이 한·중, 한·일 간의 영토에 대한 경계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지도이다. ‘꼬레 왕국(ROYAUME DE COREE)’으로 표현한 이 지도 오른쪽에는 머리에 유학자의 주자관을 쓰고 도포를 입고 인삼을 들고 있는 서양인 모습의 선비가 그려져 있다. 위도와 경도를 나타내고 있으며 전국을 8개 지역으로 나누고 주요 산맥과 강 및 도시, 지명 등을 상세하게 표기하고 있다. 울릉도 (鬱陵島)와 독도(千山島- 옛 지명)는 각각 ‘fan-ling-tau’,‘tchian-chan-tau’로 표기하여 우리의 영토임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두 섬은 실제의 모습과는 다르게 위치가 서로 바뀌어 있다. 이는 우리의 선조들이 그린 지도에 독도를 울릉도보다는 육지 쪽에 가깝게 표시해 우산도(于山島)라고 나타낸 것에 따른 영향으로 보인다. 울릉도와 독도를 실제의 위치와 다르게 표기한 것에서 당빌의 지도제작 과정이 전적으로 실측을 의존하기보다는 당대에 전해진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산도는 서양어로 표기할 때 중국식 발음으로 표기되는데, 우(于)를 천(千)으로 잘못 표기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당빌이 독도를 우산도라고 하지 않고 천산도로 지칭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편, 서양고지도를 보면 울릉도가 있던 자리에 ‘다줄레(Dagelet)’로 표기한 경우도 있다. ‘다줄레(Dagelet)’는 프랑스의 해군 대령 라페루즈 백작이 1787년 북방 항로를 탐험할 때, 동승했던 천문학자 다줄레가 처음으로 울릉도를 발견하고 자신의 이름을 섬 이름으로 표기하고 좌표를 써넣어, 서방 세계에 최초로 울릉도의 좌표 위치를 소개한 데서 유래한다.

제주도는 하멜(Hamel, H.)의 <표류기> (1668년 출판)에 의하여 ‘켈파트(Quelpaert)’로 서양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초창기의 서양고지도에는‘도적섬(Ladrones)’,‘풍마(Fungma)’로 표기된 지도가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도적섬’은 당시 제주해역을 통과하던 서양 선박이 왜구와 해적들의 공격 대상이었음을 보여주며, 풍마(風馬)는 바람이 심하고 말을 사육하던 제주를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제주도를 ‘키추(Kitcheou)’로도 표기하고 있는데, 이는 ‘제주’를 표현한
서양식 발음으로 보인다.

이후 점차 켈파트가 등장하면서 풍마와 켈파트를 다로 떨어뜨려 그린 드 페르(N. De Fer)의 지도(1703년) 등에서 지리적인 혼동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다 제주도 표기는 당빌에 의해 제주, 대정, 정의 등의 지명으로 표기되었고, 드 갈루( J.F. De Galoup,1787년)에 의해 과학적인 방법으로 제주해역을 측량하면서 점차 ‘켈파트’로 자리를 잡아갔다.

현재 상영되고 있는 영화 <명량>이 화제다. 그러나 우리가 눈여겨 봐야할 부분은 이순신 장군이 주의 깊게 살핀 지형 지세이다. 이순신은 유속이 빨라서 흘러가는 물길들이 우는 소리가 난다 하여 ‘울돌목’이라고 부르던 지형에 대해 정확하게 알았기에, 이를 이용하여 13척의 배로 수백 척을 거느린 왜군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다. 지도에는 이런 사실까지도 담아낸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프랑스의 지도 제작자 당빌(D'Anville, J. B.)이 중국 청나라 강희제의 명을 받은 예수회 선교사들이 제작한 <황여전람도>에 수록된 지도를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서양에서 발행된 최초의 독립된 한국 지도이다. 이 지도는 처음 뒤 알드(Du Halde, J. B.)의 지도첩(1735년)에 처음 소개되었으나, 1737년 출판된 당빌의 <신 중국 지도첩>에 재수록되었다. 19세기 중반까지 서양에서 제작된 지도에 우리나라의 모형을 제공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김혜정  news@mjknews.com

<저작권자 © 정경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혜정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여백
인기뉴스
    발행인 인사말회사소개정경시론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0-010)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1-11 한서리버파크 1405호  |  대표전화 : 02)782-2121  |  팩스 : 02)782-9898
    사업자등록번호: 107-06-75667  |  제호 : 데일리정경뉴스  |  등록일자 2005년 5월  |  등록번호 : 서울아00449
    발행일 : 2000년 4월  |  대표이사: 최재영  |  청소년보호책임자: 최재영
    Copyright © 2021 정경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