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사건·사고
표류하는 ‘군’, 무엇이 문제인가?‘윤일병 사건’으로 본 대한민국 군의 그늘
조성기 기자 | 승인 2014.09.11 14:03|(174호)

   
▲ 육군 7사단의 푸른 병영 만들기 프로젝트로써 한국 군(軍) 상담학회 교수 지원하에 대대급 전 장병을 대상으로한 집 단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한여름의 폭염이 작열하던 지난 8월 4일, 용산에 위치한 국방부 브리핑 룸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수십 명의 기자들이 숨을 죽인 채 브리핑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카메라를 든 사진기자들만이 포토라인을 분주히 오갔다.

이윽고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표 나게 굳은 표정으로 단상에 오른 한 장관은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알아 챌 수 없는 짧은 한숨을 내쉬곤 곧바로 ‘대국민사과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4월 7일 육군 제28사단에서 발생한, 이른바 ‘윤일병 사건’에 대한 사과성명이었다.

대한민국 군대 내, 암세포처럼 퍼져 있는 고질적인 구타 및 가혹행위가 확실한 실체로 모든 국민들 앞에 그 나신(裸身)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계속되는 구타와 가혹행위, 왜 이 지경까지?

한 장관은 대국민사과성명에서 “신성한 병역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입대한 윤일병은 병영 내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일상적으로 파괴되고,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받는 가운데 한 마디 하소연조차 하지 못하고 죽음에까지 이르렀다”며 “이런 일이 발생할 때까지 우리 군은 이를 예방하고 관리·감독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사죄했다. 한 장관은 대국민사과성명에서 이후 ‘민관군 병영혁신위원회’를 가동하고 현역, 전역 병사와 부모는 물론 시민단체까지 참여시켜 전군 차원의 제도개선 방안을 도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관련해 첫 번째 조치로 국방부는 열흘 뒤인 13일,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를 통해 ‘병영문화 혁신안’을 제시했다. 이 혁신안에는 ‘장병 기본권 제고를 위한 군인복무기본법 제정’과 ‘구타 및 가혹행위 관련 신고 포상제도 도입’, ‘현역 입영대상자 판정기준 강화’, ‘현역복무 부적합자 조기 전역’, ‘GOP 부대 근무병사 면회제도 신설’ 등 20개 단기 및 중장기 과제가 포함돼 있다. 그렇지만 혁신안이 오랫동안 누적된 병영 내 폐습을 근본적으로 근절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 육군의 한 병사가 고통을 호소하자, 인근 군병원으로 호송 준비를 하고 있다.
국방부가 혁신안을 통해 제정 의지를 밝힌 ‘군인복무기본법’은 장병의 권리침해 구제방안과 함께 종교생활 및 진료 보장, 사적 제재금지, 병 상호 간 명령과 지시, 간섭 금지 등의 내용이 담긴다. 구타 및 가혹행위 방지를 위해 제3자에 의한 신고 포상제도, 이른바 군파라치제를 도입하고,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과 보복을 막는 제도적 장치도 강구하기로 했다.

선임병들의 집단구타로 지난 4월 7일 숨진 윤일병은 경기도 연천 소재 28사단 예하 포병대대 의무반에 전입·근무하면서 지난해 말부터 올 4월까지 4개월 정도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했고, 결국 사망했다. 윤일병 폭행에는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간부마저 가담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줬다.

이에 따라 사건이 발생한 포병대대 의무반의 이모 병장과 하모 병장, 이모 상병, 지모 상병 등 선임 4명은 상해치사와 공동폭행 및 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의무반의 의무지원관인 유모 하사 역시 윤 일병에 대한 폭행 및 폭행 방조 혐의로 군당국에 기소됐다. 사실 군대 내 구타와 가혹행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47년 우리나라 군이 출발한 이래 이 문제는 오랫동안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와도 같았다. 특히 30년 이상 지속된 군사정권 하에서는 건들이지 못하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는 사실상 병영문화의 목표는 ‘기강확립’이 전부였다.

병영문화 개선책, 이상과 현실의 괴리 커

   
▲ 군기확립을 위한 군 훈련을 실시하는 모습
권위적이다 못해 폭력적인 병영문화에 대한 메스를 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97년 출범한 국민의 정부부터였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인권 대통령을 표방한 김대중 대통령의 의지로 1999년 6월, 파격적인 ‘신병영문화 창달 종합계획시안’이 발표됐다. 이 방안은 소대 단위로 움직이던 기존 내무생활을 분대 단위로 바꿔 개인시간을 보장하고 ‘자기계발 프로그램’을 가동해 사회에 복귀했을 때 적응하기 쉽도록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고착되고 일그러진 병영문화를 개선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병영 내 상습폭행과 가혹행위는 지속됐다.

2001년 4월, 해병 2사단에서 이 모 일병의 분신자살 기도사건이 그 대표적 사례였다. 선임병들의 상습적인 구타가 원인이었다.

이후 참여정부 역시 2003년 ‘병영생활 행동강령’과 2005년 ‘선진병영문화 비전’ 등 인권을 앞세운 종합대책들을 차례로 내놨지만, 2005년 논산훈련소 인분사건, GP 총기사고 등이 연달아 터지면서 병영문화 개혁이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이 오히려 후퇴했다. 병영문화 개선보다는 안보의식을 높이는 데 더 집중하면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이전 정권들의 ‘군 기강확립방침’에 초점을 맞췄던 것이다. 특히 2010년 터진 ‘천안함 사건’으로 미미하게나마 추진되던 병영문화 개혁의 숙제는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결국 2011년 7월 해병대 총기난사사건 등 군 사건사고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더구나 단순수치 상으로는 이전 정부보다 더 늘어났다. 즉, ‘병영문화 개선’보다는 ‘기강확립’, ‘안보의식 강조’에 포커스를 맞춘 경우 군폭력사고가 더 빈번히 발생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참여정부 시절 군 폭력사건 수치를 보면 2003년 73건, 2004년 61건, 2005년 65건, 2007년 80건 수준이었던 것이 이명박 정부 들어 89건(2008년), 96건(2009년), 117건(2010년), 135건(2011년) 등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이처럼 군내 대형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역대 정부가 대책을 내놨지만 결과적으로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빈수레만 요란했다’는 평가가 그래서 허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현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큰 변화는 없었다. 북한군 노크 귀순, 28사단 임병장 총기난사 및 무장탈영사건에 28사단 관심병사 자살사건, 윤일병 사건까지 군내 사건사고는 끊이질 않고 있다.

잘못된 군 문화, 병사들 문제만이 아니다

   
▲ 첫 면회를 허가받은 한 병사가 가족들과의 만남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군복무 중인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장남 남 모 상병이 지난 4월 초부터, 행동이 느려 훈련과 업무를 제대로 못 한다는 이유로 수차례에 걸쳐 후임의 턱과 배를 주먹으로 때리고 성추행한 혐의로 입건돼 또 다른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이런 사실은 육군이 28사단 윤일병 구타 사망 사건이 드러나자 군 당국이 전 부대에 대한 가혹 행위 여부 전수 설문조사를 하면서 드러났다.

사실상 총체적인 난국인 셈이다. 때문에 국방부가 지난달 4일 제시한 병영문화 혁신안 역시 과거의 대책을 되풀이한 ‘백화점식’ 처분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장병 언어순화 운동, 소원수리 및 고충처리 제도 개선 등과 같은 병영문화 개선 대책이 나올 때마다 포함되는 ‘단골메뉴’였지만 지금까지 별 효과가 없었다. 여기에 독립적인 외부감시 기구 설치 등 민간에서 제기된 제안들이 혁신안에는 반영되지도 않았다. 더욱이 이번 혁신안에는 열악한 병영시설 개선과 복지 확대 등 당장 시행해야 할 부분의 예산확보 방안과 군사법제도 개혁방안이 빠져 있어 병영문화 개선에 대한 진정성마저 의심받고 있는 형국이다.
한편, 병영문화의 고질적 병폐는 병사들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강하다. 그렇다면 실제 병사들을 지휘하고 병영 생활 개선을 담당해야 할 간부들의 상태는 어떨까? 간부라고 병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군사법원이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군 간부 인성검사 이상자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육해공군 장교 25,000명과 부사관 55,000명 등 8만여 명 간부들 가운데 6.7%에 해당하는 5,400여 명이 정신이상 판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관찰과 도움이 필요한 B급 ‘관심 단계’가 3,800여 명, 극심한 심리 장애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큰 C급 ‘위험 단계’도 1,500여 명에 달했다.

이와 관련해, 해마다 군 간부들의 자살 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구성원 비율로 따지면 병사들의 자살과 비교해 결코 적지 않은 수치다. 지난 2012년 32명, 2013년 31명, 그리고 올해는 지난 6월까지 10명으로 나타났다. 부대원들의 생사를 책임지는 통솔자로 확고한 국가관과 윤리의식을 갖춰야 할 간부조차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체계적 지원 대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간부 선발 시 인성검사 결과를 적극 반영하는 등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지난 8월 13일자 ‘뉴욕타임즈’ 사설의 제목은 ‘계속되는 한국의 수치(More shame in South Korea)’였다. 세월호 사건에 이어 한국인들의 수치심과 절망감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내용이다. 60년 넘게 북한과 군사적 대치를 이어 오고 있는 현실 때문에 군의 효율성을 이유로 외부 개입을 배제하는, 우리의 군 문화적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작금의 군 관련 사건들은 군의 근본적인 수술을 요구한다는 것이 사설의 골자였다. 이미 곪아버린 우리 군의 문제는 전 세계적인 관심사가 된 것이다.

이제 국방부와 정부 당국은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의 마음으로 병영문화 개선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을 때다.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현 군의 상황에서 기존의 땜질식 처방과 미봉책은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이다.

 

조성기 기자  ageldoma@hanmail.net

<저작권자 © 정경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발행인 인사말회사소개정경시론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150-010)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1-11 한서리버파크 1405호  |  대표전화 : 02)782-2121  |  팩스 : 02)782-9898
사업자등록번호: 107-06-75667  |  제호 : 데일리정경뉴스  |  등록일자 2005년 5월  |  등록번호 : 서울아00449
발행일 : 2000년 4월  |  대표이사: 최재영  |  청소년보호책임자: 최재영
Copyright © 2021 정경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