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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의정포커스①] 당청관계의 변화 가능성과 한계새누리당 꽉 막힌 정국, 당청 간 공동으로 풀어야…
정용택 순천향대학교 외래교수 / 행정학 박사 | 승인 2014.09.11 11:41|(174호)

   
▲ 8월 22일 오후 충남 천안 중앙소방학교를 방문한 새누리당김무성(오른쪽부터)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주호영 정책위의장 등 지도부 임원들이 대원들과 함께 소방안전체험을 마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2기 내각 출범에서 보여준 흠집 난 인사문제들로 ‘국가개조’와 ‘경제살리기’라는 큰 정책구상을 실천함에 있어 여당의 추동력이 그 어느 때보다 요긴한 때다. 우선 입법을 통해 정책구상이 시작되고 기득권을 내려놓는 과정과 가치관에 충돌이 생길 때 국회의 역할, 특히 여당에서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정국 돌파란 매우 어렵게 된다. 그래서 대통령이 여야 원내 대표들과 회동했을지도 모른다. 집권 2년이 지나가고는 있고, 내년에는 선거이벤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여당 내에서 정치 지도자군이 형성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세월호 사건과 유병언의 사망 관련 원인규명에 걸린 숫한 의문의 꼬리를 잘라내는 일 등 꽉 막혀 있는 정국을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공동운명체로서 책임정치를 펼쳐 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여당과 청와대가 공동운명체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여당에서는 당청관계를 국정에 직접 참여하고, 그 책임도 함께지는 조직체로 본다. 나라살림을 한번 해보라는 국민들의 명령을 받은 것이니까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면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가 일어나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공동운명체의 요체이고 책임정치를 펼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그러나 청와대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중심제하에서 정권의 핵심이요,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책임정치를 리드할 곳도 청와대가 될 수밖에 없고, 국가경영 측면에서 일정거리 유지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공동운명체의 틀은 인정하면서도 운영의 형태는 수직적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당청관계는 어떻게 보면 큰 차이이고, 어떻게 보면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물론 어느 정권이든 등장했던 이야기들이다.

사실 수직적 관계나 수평적 관계가 명문화된 규정도 아니고 운영상의 문제이므로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여당 내에서 당청관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 것이고, 소통문제 역시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해 보면 명확해진다. 그 좋은 예가 총리나 장관 인사청문회다. 총리와 일부 장관은 청와대의 결정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총리는 두 명이나 낙마하고 사표를 제출한 총리에게는 유임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여당에게 엄청난 상처를 준 사건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번지지 않도록 불씨를 끄고, 이번 지방선거 당시 ‘박 대통령 흔들기’로 규정하고 선거에 이용한 것은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동운명체라면서 DJ, MH 대통령처럼 당적을 떠날 때도 있었다. MB 대통령도 얼마나 시끄러웠던가? 탈당하지 않고 청와대가 여당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던 정권도 있다. 물론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진다든가 이런 저런 이유로 당적을 떠나게 하는 것은 지지율이나 당리당략에 치우친 국정운영을 탈피한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겠으나 책임정치 차원에서 보면 바람직하지 않다. 현 정권에서 계획하고 있는 국가개조를 원만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당청 간에 공동체 인식이 더욱 절실하다.

당청관계는 공동운명체 조직이라는 인식공유에서 출발해야…

당청관계가 공동운명체라는 것은 국민적 지지를 받은 것 자체가 국민과의 약속이 된다. 당청관계가 수직적 관계를 탈피해 공동운명체로서 수평적 관계가 유지돼야 한다는 목소리는 정권 때마다 수없이 나왔지만 이렇다 할 변화나 방안들이 논의된 적은 별로 없다. 그동안 가장 많이 활용된 것은 대표와 당 3역이 참석하는 청와대 주례회동이라는 회의체를 통해 당청 간 입장이 조율되고 전달되었다.

현재 여당은 그러한 회의체가 운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수직적이다, 아니다”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으로 봐야 한다. 겉으로는 말을 자제하고 있지만 그 기운이 물밑에서 흐르고 있다가 당대표 선출 등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과정 속에서는 어김없이 표출된다. “할 말은 하겠다”라는 형식으로 표심을 사로 잡는다. 그 배경에는 자기부정이 싫다는 틀 속에서 나온 입장이다. 수용하면 모순적 자기부정이 되고, 과거지향적으로 비춰지는 한편, 피하면 개혁적 마인드로 분류되고 미래지향적이라는 주목을 받기 때문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신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김태호, 이인제, 김을동 최고위원을 비롯한 신임 지도부와 오찬을 함께하고 있다.
실례로 국회의장이나 당대표 선출과정에서 친박계(친박, 비박이라는 용어는 언론내용을 참조한 것임)가 패배한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고, 역대 정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초유의 인사청문회 논란이 있을 때 소통문제가 걸려 친박계 역시 적극적인 주장을 펴지 못했던 것을 봐 왔다. 청와대 주장이 너무 강하거나 불통하면(수직적 관계) 여당과의 불협화음이 지속되고, 자칫 권력을 독점하다 보면 부정부패를 낳게 된다. 얼마 전 인사청문회에서 보듯 민심과 이반되는 사건들이 터지면서 그 책임은 고스란히 여당이 떠맡게 된다. 그 대신 여당에서는 지방선거에서 대통령 지지율을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공동운명체라는 인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회의장과 직통 전화를 개설하고, 당대표 선출과정에서 친박과 비박 논쟁이 있었으며, 또 여야 원내대표들과의 청와대 회동을 통해 정례화까지 거론되었다. 이런 행보들은 소통문제가 진일보한 듯 보인다. 정무장관을 통해 일상적인 수준의 업무처리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청와대에서 모를 리 없다. 여당으로서는 성공한 정권을 만들고, 재집권을 목표로 한만큼 당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과정이 가시적으로 국민들에게 비춰지기를 아마도 기대할 것이다.

당청관계의 변화에 앞서 공유해야 할 것들

서로가 필요할 때에만 손을 내미는 관계로는 공동운명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당청관계가 수평적이라는 의미 속에는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 들어 있지 않고, 소통문제 같은 권위주의적 행태가 제거돼야 공동운명체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책임정치라는 명분을 통해 공약 이행과 재집권의 꿈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협의방식을 생각해 보자. 협의를 어떻게, 얼마나 하느냐를 두고 하는 말로 축소해 본다면 당청관계를 협의체 형태로 인식하면 된다. 협의체는 운영의 묘를 살린다면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 또 당청관계에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은 집안일을 가지고 국민을 상대로 떠드는 꼴이 된다.

사실 당청관계는 여당 내 문제이므로 밖으로 공론화시키는 것은 치부일 뿐인데,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마도 책임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의 공약과 소신, 철학이 국정에 반영되기 위해 청와대에서는 여당에서 뒷받침해 달라는 것이고, 여당에서는 국정운영의 실패가 곧 당으로 떠넘겨지므로 함께 결정하고 집행하자는 것이니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없다. 여기에서 리더십으로 틈새를 채워 나가는 전략이 부족하여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상황과 풍토가 바뀌었거나 바뀌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하향식, 일방통행식이었다. 그래서 청와대가 자연스럽게 수직적으로 운영했고, 당에서는 그 수직관계를 받아 들여 국회와 여당은 할 말을 못하고 거수기(정치권에서 흔하게 쓰는 말을 인용)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다. 상향식, 양방통행식이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국민의 참여와 목소리가 반영된 여론정치를 하고 있고, 여야가 뒤바뀔 만큼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높아졌으며, 모든 분야에서 민주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의사결정 과정이 시끄럽고, 복잡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민주사회다.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총리·장관 후보자의 지명마저도 결국 국민의 힘으로 낙마하게 됨으로써 이제는 고유권한도 정당성을 따지는 시대가 되었다. 인사문제 실패 이후 대통령과 야당의 지지율이 마지노선을 넘나들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국회의장이나 당 대표 선출과정을 보면 당직자을를 비롯한 국민들은 소위 친박계에 등을 돌렸는데 70% 정도가 ‘소통이 안 된다’라고 생각하는 국민여론과 일치한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약간 비약해 보면 정치적으로는 양당제가 만들어져 있고, 보수와 진보가 국가발전에 촉진제 역할을 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양적인 사회에서 질적인 사회로 삶의 질을 따지는 시대가 되었으며, 사회적으로는 극단적 행태를 보이는 소위 선진국병으로 일컫는 과도기적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정치·사회적 모습과 경제규모가 커진 상황에서 슬기롭게 의견을 모우는 데에는 일방통행식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세계적인 흐름을 읽어야 한다. 능률성, 경제성, 관료제, 기술을 강조했던 고전적 공리주의만으로는 한계가 드러났다. 국민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 프레테릭슨(Frederickson)이 말하는 국가경영(governance)이나, 오스본(Osborne)과 게블러(Gaebler)가 주장하는 서비스 제공과 권한 부여, 경쟁개념 도입을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렇게 현대사회는 다원화되어 가는 데 불통으로는 관료적이고, 과거지향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새로운 행정 패러다임이 신공공관리로, 정부행정이 아닌 공공행정으로, 공공재와 공익 개념이 다원주의적 관점으로 바뀌듯 당청관계도 대폭 바뀌어야 한다. 또 다른 의제지만 관료제를 견제할 힘은 정당, 특히 여당에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전제들은 어려운 문제로 보지 말고 단순화시켜야 한다. 진정한 당청관계의 변화가 되기 위해서는 협의체 운영의 묘를 살리면 되는 것이고, 틈새를 채워 나가는 전략을 구사하며, 일방통행식을 지양하면서 정치의식의 향상과 세계적인 추세에 맞추겠다는 인식 전환이면 충분하다.

당청관계 변화가능성은 높다

그렇다면 당청관계의 변화가능성은 있는가? 소통문제가 풀리지 않은 한 변화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입장도 있으나,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다. 성공한 정권, 정권재창출이라는 명제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반대할 자가 없기 때문에 소통문제는 조금씩 풀릴 것이고, 해석과 인식 차이, 수준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당에서 요구하면 변화가능성은 높다고 본다. 즉, 변화하지 않고는 국민적 욕구를 담아낼 수 없고, 정권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위 수평적 당청관계가 필수이며, 당대표 선출에서 나타난 표심에 당청관계의 회복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 정기국회가 끝나면 집권 3년차가 되고, 정치적으로는 안정기에 접어든다. 전국적인 선거가 없는 시기에 국가 개조, 부정부패 청산, 저성장 탈피 등 주요 정책 청사진을 펴야 한다. 그 성과로 총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보수집단의 분열은 곧 정권창출 실패라는 경험을 했고 지지자들도 학습효과를 발휘할 것이므로 불협화음이 오래가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당대표 선출과 인사청문회에 민심과 당심이 잘 나타나 있다. 여당이라 할지라도 예전같은 분위기가 아니며 당내 세력 간 파워 이동(power shift)이 시작되었고, 대권 후보가 등장하면 초재선 의원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질 것이다. 이럴 때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유도해 내는 지도력을 발휘한다면 당청관계는 공동운명체적 관계로 변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청와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무장관을 활용하여 성의를 보이는 정도로는 수평적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당에서 수평적 관계를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불통의 이미지를 청산하는 조치나 당 3역 주례회동 등 방법을 먼저 제시하면 장벽을 허물 수 있다.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치루어진 당대표 선출과정에서 한 후보는 안정적 국정운영에, 한 후보는 국정운영은 기본이고 보수재집권을 제시해 결국 보수재집권을 주장한 후보가 당내외에서 모두 표를 더 많이 받았고, 지방선거와 보궐선거에서도 어려웠지만 그래도 패배하지 않은 것은 그나마 개혁적인 목소리가 살아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은 것이다. 지지자들은 밝은 미래, 희망의 메시지를 선택했던 것이다.

이렇게 비전을 제시하고 개혁적인 목소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정치지도자군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 때 보수집단에 대한 기대가치가 높아진다. 이 부분은 집권 중반기에 가시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매우 어렵고 민감한 문제이나 당청관계에서 개혁의 목소리를 분열과 불신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조정해 나간다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정용택 순천향대학교 외래교수 / 행정학 박사  jyt31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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