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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특집 (5) 한중 정상 회담 박근혜 정부에 숙제 안겨…
남현호 | 승인 2014.08.12 17:00|(173호)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여름 한증막 더위만큼 뜨겁다. 전쟁만 안 했지 전쟁에 준하는 긴장관계가 형성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아시아 재(再)균형 정책, 중국의 대국 굴기(屈起), 일본의 보수 우경화, 러시아의 신(新) 동방정책 등 각국의 외교안보 노선이 서로 충돌 내지 뒤섞이면서 그야말로 한반도 주변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갯속이라 할 수 있다. 마치 구한말 열강의 각축전을 보는 듯하다. 그 중심에 북한이라는 `불량 국가(Rogue States)와 마주하고 있는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외교적 시험대에 서 있다. 특히 지난 7월 3일 이뤄진 한중 정상회담은 박근혜 정부로 하여금 장래 북한 문제에 있어 주변국과 어떻게 공조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지에 대한 외교적 숙제를 안겼다. 우리 언론과 북한 전문가들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역대 중국 최고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북한보다 앞서 한국을 방문한 것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남북한 관계 저울추가 한국으로 기울었다고까지 평가했다. 북한이 중국을 의식한 듯 회담 결과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 주석의 방한 자체가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는 메시지를 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중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중국 논리에 우리가 당했다는 부정적 견해도 있지만, 북한을 긴장시키기에는 충분했다는 견해도 있다. 양국 정상은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라는 표현으로 북핵 불용 원칙을 공동 성명에 반영했다. 지난해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유관 핵무기 개발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및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는 문구를 공유했다. 물론 우리가 요구한 북한 비핵화나 북한 핵실험 반대라는 표현은 없지만, 중국이 조금은 진전된 자세를 보인 것은 사실이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서는 추가 핵실험 중단 경고를, 미국에 대해서는 핵우산 불가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6자회담도 마찬가지다.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6자회담 참가국들이 공동 인식을 모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6자회담 재개가 먼저라는 입장을 보였던 중국이 `조건을 마련해야’한다는 문구에 얼마나 연연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양보한 듯한 모양새를 보였다. 하지만 6자회담에 대한 인식이 180°로 바뀌었다고 보기에는 성급한 측면이 없지 않다. 우리 정부와 미국이 요구해 온 `‘비핵화 사전 조치’라는 표현이 없는 한 중국과의 공감대가 완전히 형성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 북한 주변 국가들의 결속력을 강화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기는 될 수 있지만 현 상황에서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오히려 6자회담 당사국들이 북한 문제에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을 더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미국은 현 상황에서는 북한과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보이고, 일본은 북한과의 국장급 협의를 통해 납치 일본인 피해자 문제를 협상 카드로 자체 대북제재를 일부 해제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북중 관계 Down, 북러 관계 Up

  무엇보다 최근 가장 주목되는 상황은 소원해진 북중 관계를 틈타 러시아가 북한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있고, 북한도 대러 협력에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북중 관계는 지난해 3차 핵실험에 따른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 이후 멀어지기 시작했다. 중국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동참하고 북한 경제에 절대적인 원유 수출을 막으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은 1970년 말부터 연간 30만~50만 톤의 원유를 중국에서 공급받고 있는데, 올해 초 중국의 금수 조치로 원유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이같은 장기적 금수 조치는 극히 이례적으로 북한에 대한 중국 당국의 실망감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경제 제재에 북한은 여러 루트를 통해 항의를 하고, 때로는 통사정을 하고 있지만, 한때 혈맹이었던 중국의 태도는 여전히 강경하다. 특히 지난해 12월 북한과 중국의 가교 역할을 해 온 장성택 처형은 양국 사이를 갈라놓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북한이 러시아와 의도적으로 가까워지려는 데는 자체 대북 제제를 가하고 있는 중국을 향한 암묵적 항의로 풀이된다. 안보리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돈줄이 말라가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의 도움이 절실할 것이다.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등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과 크림반도 사태로 유럽의 제재에 놓인 러시아가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란 점도 어쩌면 둘 사이의 관계가 친밀해진 배경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북한과 러시아 간 경제협력 관계가 빠 른 속도로 진전하는 모습이다. 러시아는 옛 소련 시절 북한이 졌던 채무 100억 달러를 탕감해 주었다. 3차 핵실험으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돼 있던 지난 4월 말에는 유리 트루트네프 부총리가 냉전 이후 가장 고위급의 러시아 사절단 이끌고 평양을 방문했다. 양측은 무역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고, 중국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지하자원 개발 사업에 러시아 기업이 참여키로 합의했다. 일부 러시아 기업들은 금광 등 북한 지하자원 개발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러시아의 대북 석유 수출이 늘면서 북한에 대한 전체 수출 규모도 2012년보다 48.6% 증가했다. 이는 국제사회 대북제재가 강화된 가운데 진행된 것으로서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북한이 대중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러시아를 끌어들인 결과로 보인다. 지난달에는 러시아와 북한이 공동으로 개보수 공사를 추진해 온 북한 나진항 부두 화물터미널이 개통했다. 나진항 3호 부두 터미널은 연간 최대 5백만 톤의 화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는데, 러시아 석탄을 수출하는 데 이용된다.

  북한과 러시아 간 협력은 경제를 넘어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소속 군악단이 지난 6월 말 방북해 평양 등에서 공연을 했는데, 북한 권력 서열 2위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러시아 군악단을 만나 “북러 친선관계가 더 높은 단계에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말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모스크바에서는 김일성 주석의 옛 소련 방문 기념 사진 전시회가 열렸다. 올해가 북한과 러시아 간 경제. 문화협정 체결 65주년 되는 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최근의 양측의 긴밀한 접촉은 우리 정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외경제협력 구상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꿈꾸는 박근혜 정부로서는 지금의 북러 관계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중국이 비핵화를 한반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등 압박을 강화하자 또 하나의 오랜 동맹인 러시아를 통해 경제적·외교적으로 숨통을 틔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듯 보인다. 러시아와 중국 간 줄타기를 하던 과거의 등(等)거리 외교 카드를 다시 빼든 셈이다. 러시아로서도 심상찮은 동북아 흐름에 소외되지 않으려고 북한에 애써 가깝게 다가가는 모습이다. 러시아는 쿠릴 열도(북방영토)를 두고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일본과 전쟁 경험이 있는 러시아도 우리나라처럼 역사 수정주의 노선을 보이며 집단자위권 헌법 해석 변경 등 군사력 확대에 열을 올리는 일본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또 한때의 앙금을 씻고 최근 관계가 호전되기는 했지만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대국화를 꿈꾸는 중국도 신경 써야 한다. 여기에 일본을 동지로 삼아 아시아로의 재균형 정책을 모색 중인 미국도 견제해야 한다. 러시아는 크림 사태에 따른 서방의 경제제재로 유럽으로의 서진(西進)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따라서 동진(東進) 정책으로 출구를 모색해야 하고 그 교두보로 북한을 염두에 둔 듯 보인다.

  북한 입장 대변해 온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동반자’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최근의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 관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김정은이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최고 권력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우방인 중국은 김 제1위원장의 방중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특사를 알게 모르게 중국으로 보내고 있지만 중국은 콧방귀만 끼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어 하기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냉대를 받는 김정은으로서는 러시아가 신호만 주면 득달같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으로 달려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고 싶을 것이다. 안에서는 큰 소리를 치고 있지만 외부에서 그를 인정하지 않는 이상, 그는 평범한 `어린 독재자일 뿐이다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위기이자 기회

  지금의 동북아 정세를 보면 극히 불안정하여 갈등을 증폭시킬 만한 상황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위기이자 기회일 수도 있다. 전략적 가치 증대로 외교적 역할을 확대할 필요성이 커진 셈이다. 무엇보다 북핵 문제에서 주도권을 뺏겨서는 안 될 것이다. 지난달 북핵 문제 핵심 당사국인 한국, 미국, 중국의 연쇄 접촉이 있었지만, 북핵 문제의 실질적 진전을 위한 돌파구는 찾지 못했다. 6자회담 당사국들의 공조 체제가 무너질 조짐을 보이는 상황이다.

  즉, 북한이 진정으로 핵 프로그램을 종결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를 해야 하는 상황이 곧 올지 모른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실기(失機)하지 않도록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안테나를 더 높이 세울 필요가 있다.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 유지 해야만 한다. 지난달 초 러시아 정부가 북한의 잇단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것처럼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물론, 여차하면 제재에 동참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정보 교류와 협력이 필요하다.

  8월 이후 남북관계도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다. 9월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보내겠다고 했지만 북한은 언제든 약속을 어길 수 있다. 한 쪽에서는 대화를 진행하면서도, 한 쪽에서는 도발 위협을 끊임없이 하는 북한의 태도에 유연성 있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정화두로 제시한 `‘통일 대박론’에 매몰돼 `통일 ’을 일방적으로 외친다면 북한으로 하여금 또 다른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지난달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을 이어갈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가 발족됐지만 오히려 이것이 북한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노파심마저 든다. 북한은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에 대해 ‘흡수통일’ 논리라며 비난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한미, 한중, 한러 관계,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주변국 모두 북한의 급작스런 체제 붕괴를 우려 하지만 금방이라도 북한이 무너질 것이라는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다. 그들은 한반도에 대혼란이 초래돼 의도와는 다른 상황으로까지 갈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단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면서 우리의 진정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전향적 남북관계 구축 전략이 필요하다. 그 다음에 `‘통일’이란 단어를 꺼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또 이를 위한 원만한 다자 외교 구축은 박근혜 정부의 남은 임기 최대 과제가 아닐까 싶다. 이 즈음 남북 관계에도 여름 무더위를 식혀 줄 단비 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남현호  hyunho@yna.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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