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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한국 민주주의는 전진한다
박상병 | 승인 2014.07.16 14:54|(172호)
민주화 이후 국무총리 지명자의 역사관을 놓고 국민여론이 이렇게 폭발한 적은 없었다. 대체로 부동산투기 의혹이나 병역비리 또는 논문표절등의 도덕성 문제가 발목을 잡았지, 칼럼이나 강연 등에서 드러난 역 사관 문제가 세간의 화제가 됐던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문창극 전 총리 지명자의 경우 바로 이 대목에서 억울하다고 주장한 것은 납득할 부분이 없진 않다. 여태까지 그런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사청문회장에 가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표현대로 해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중도 낙마하는 모양새는 30여 년 언론인으로 살아왔던 자신의 명예마저 실추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창극, 끝까지 아름답지 못하다 문창극 전 지명자는 자신이 사퇴할 때까지 자신의 과오가 무엇인지, 국민이 왜 그토록 반대하는지 여전히 그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듯 했다. “외람되지만 이 자리를 빌려 감히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며 쏟아낸 그의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을 뿐더러 사실관계도 부합하지 않은 주장이 많았다. 그리고 외람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주장을 하지않는 것이 도리다. 명색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을 받은 사람이고 더욱이 국민의 심판에 의해 중도 사퇴하는 입장이 아닌가. 그런데도 할 말이 뭐가 그렇게 많은지,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의 주장을 쏟아내는 모습은 보기가 좋지 않았다. 역시 대한민국 국무총리 감으로는 자질 부족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차라리 깔끔하게 물러난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가 생각날 정도였다. 두 가지만 짚어보자. 문 전 지명자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론에 흔들리지 않은 법이 필요하다며 국민의 뜻만 강조하면 여론정치가 된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여론은 변하기 쉽고 편견과 고정관념에 의해 지배받기 쉽다고까지 말했다. 겉으로 보면 일리 있는 이야 기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틀렸다. 국무총리를 뽑는 행위는 고도의 정치행위다. 정치행위는 법대로가 아니라 법이 닿지 못하는 국민여론이 우선이다. 더욱이 국무총리는 행정 각부를 통괄하는 자리다. 국민여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떻게 정책을 펼칠 것이며, 어떻게 행정 각부를 통괄하겠다는 것인가. 이미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아니 다수의 국민이 분노하는 상황이라면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다. 그럼에도 국민의 뜻과는 관계없이 밀어붙인다면 그것이야말로 독재정치와 같은 것이다. 특히 이번 박근혜 정부 2기는 박 대통령 스스로 밝혔듯이 ‘국가개조’를 지향하는 혁신정부다. 국민적 지지가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국정혁신의 동력을 살릴 수 없다. 그렇다면 일찌감치 문 전 지명자가 물러나는 것이 정도(正道) 였다. 여론을 혐하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두 번째로 법률적 절차만 따져보자. 문창극 전 지명자는 법을 만들고 법치에 모범을 보여야 할 곳은 국회라고 지적하면서 “대통령께서 총리 후보를 임명했으면 국회는 법 절차에 따라 청문회를 개최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청문회 법은 국회의원님들이 직접 만드신 것입니다”라며 국회와 정치권을 비판했다. 과연 그의 말이 옳은가. 이번에도 문 전 지명자의 주장은 옳지 못하다. 우선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 전 지명자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임명한 적이 없다. 단지 후보자로 지명만 했을 뿐이다. 국회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임명할 수 없다. 그것이 법적 절차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이 자신을 총리 후보로 임명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스스로 법적 절차를 무시한 주장과 다름 아니다. 더욱이 헌법에 보장된 인사청문회는 박 대통령이 총리임명동의안에 재가를 하지 않으면 국회로 넘어가지 못한다. 즉, 박 대통령이 재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사청문회가 열리지 못하는 것이지 그것이 국회 탓이라고 볼 수 없다. 국회는 이미 인사청문회를 위한 특위위원장까지 선임해 놓고 대기하고 있던 상태가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문 전 지명자는“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깨면 이 나라는 누가 법을 지키겠습니까?”라며 주장하고 있다. 명색이 언론인 출신이다. 사실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그의 주장이 공허한 이유다. 지난 30여 년의 언론인 생활도 이런 식으로 했는지 오히려 궁금할 정도이다. 몰랐다면 할 말이 없지만 알고도 이렇게 주장한다면 오만한 것이다. 역시 민심이 천심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동의안에 재가를 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만약 인사청문회장에서‘친일 식민사관’ 논쟁이 벌어지고 온 나라가 다시 진영 싸움으로 갈라질 경우, 어쩌면 대한민국은 가장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국민적 자존심까지 짓밟힐 정도로 후폭풍이 우려됐다. 그리고 문 전 지명자를 감싸 안을 새누리당 특위위원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 이 얼마나 낯 뜨거운 일들이 백주대낮에 벌어지겠는가. 이웃 일본이나 중국이 어떻게 보고 있을지도 솔직히 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고심 끝에 박 대통령이 재가를 하지 않은 것은 그런 국민의 뜻을 헤아린 것이며, 최악의 상황을 피한 결단으로 보인다. 이 대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여론, 즉 민심이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문창극 전 지명자에 대한 비난과 분개의 목소리는 쉽게 접할 수 있었다. 70% 이상의 국민이 총리 지명을 반대했던 일부 여론조사 결과도 괜한 것이 아니었다. 그 여론이 쉽게 바뀔 것이고 그 여론을 따르면 안 된다고 했던 문 전 지명자의 인식이 더 큰 문제였던 셈이다. 역시 민심이 천심이었다. 제 아무리 극우 수구세력들이 저항하고 목소리 높여본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뚜벅뚜벅 전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켜켜이 쌓인 적폐가 태산처럼 높고,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 모습이 우리 현실이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의 중심은 살아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박근혜 대통령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불과 반세기 만에 민주주의를 일군 우리 국민의 저력을 거듭 신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제는 그 바탕 위에서‘박근혜 정부 2기’가 국정혁신의 새로운 동력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 국민을 믿지 못하면 천하의 권력도 도적이 되기 마련이다. 문창극 전 지명자 낙마 이후의 새로운 국정비전을 기대해 본다.

박상병  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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