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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지도에 등장한 아프리카
정경NEWS | 승인 2014.06.11 18:00|(171호)

 

   
▲ 김혜정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장
아프리카에 대한 말의 연원은 카르타고와 인접한 북아프리카에 살던 여러 민족의 이름이었던 아프리(Afri)와 ‘추위와 공포가 없는 땅’을 의미하는 ‘aphrike’에서 유래한다고 알려졌다. ‘Afri’는 페니키아 어로 ‘먼지’를 뜻하는 ‘아파르(afar)’와 연관되며, ‘aphrike’는 그리스 어 ‘phrike(추위, 공포)’에 접두사 ‘a-’를 붙여 만든 어휘이다. 말의 연원이 어느 것이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아프리카’라는 말은 아라비아인들에 의하여 북서지역으로 확대되었으며, 대항해시대 이후에는 네덜란드의 항해자들에 의하여 대륙의 이름으로 정착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아프리카는 아시아 대륙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대륙이다. 전 세계 총 지표면의 5분의 1가량을 차지하며 서쪽으로 대서양, 북쪽으로 지중해, 동쪽으로 인도양과 접해 있다. 17세기 이래 유럽 제국(諸國)의 식민지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들이 탄생하였다.


아프리카 모습의 원형을 갖추게 된 최초의 지도
유럽에서 아프리카는 두 부분으로 인식되었다. 지중해 문화권에 속하면서 그리스, 로마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아프리카 북부지역과 그 밖의 중남부 지역이다. 아랍이 스페인의 남부를 지배하던 중세 말경까지 유럽과 관계를 맺었던 북부 아프리카와 달리 그 외 지역은 1487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Bartolomeu Dias)가 포르투갈로 귀환하면서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온 뒤에야 알려졌다.

따라서 1300년에 제작된 <헤리포드 지도>를 보면 아프리카의 모습은 아시아에 붙어 있으며 길쭉한 배의 형상으로 왜곡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450년에 제작된 <카탈란 세계지도>에도 지중해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과 북부 아프리카는 비교적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그 외 지역은 이전 시기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디아스의 항해 이후 그려진 <엔리쿠스 마르텔루스의 필사본 세계지도>(1490년)에 당시 항해에서 얻은 지식을 반영하여 인도양을 내해(內海)가 아닌 외해(外海)로 표현하고 있는 점은 이전보다 진보하였으나 아프리카 동쪽 해안선이 매우 왜곡되어 표현되었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1502년 알베르토 칸티노가 그동안의 탐험 성과를 토대로 아프리카 동쪽 해안선과 인도반도 등의 실제 모습을 담은 <칸티노 세계지도>를 제작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이 지도는 서양고지도에서 아프리카 모습의 원형을 갖추게 된 최초의 지도로 알려졌다.


조선에서 제작한 지도에 아프리카가 등장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1402년 조선에서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에 조선과 직접 교류했던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아프리카까지 그려져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아프리카 대륙의 윤곽을 비교적 잘 묘사하고 있다. 이는 서양보다 100년이 앞선다. 이 지도는 아랍사람이 만든 아프리카 지도와 몽골사람이 세계를 제패했을 때 만든 세계지도를 참고하여 제작한 세계지도이다. 우리 선조의 지도에 대한 인식과 지도제작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 지도의 특징은 중국이 중앙에 크게 위치하고 한반도의 면적이 실제보다 훨씬 크게 표시되어 있으며 일본이 그 아래 조그맣게 표시돼 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적 세계관에 기초하면서도 우리나라를 중국과 대등하게 표현하여 우리 민족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 한 장의 지도는 갓 창건된 조선의 기개를 느끼게 해 주지만 그 후로 조선이 제작한 지도는 더 이상 세계로 뻗어 나가지 못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조선의 상상력은 한반도와 중국으로 축소되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난 호에 아메리카 대륙을 소개할 때, 영국과 프랑스가 각자 지도를 제작하면서 서로 자기 나라에 유리한 방법으로 표현하느라 사실을 왜곡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경우, 유럽의 열강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였다. 그들은 아프리카 대륙을 발견하고서도 이를 식민화하려는 움직임이 더디었다. 그것은 아프리카의 가치를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871년 트란스발(Transvaal)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를 점점 잠식하며 식민화하기 시작했다. 워낙 많은 나라가 이곳에 뛰어들었기에 국경분쟁은 자명한 일이었다. 이에 1884년 유럽 열강은 물론 미국까지 참석한 가운데 베를린에서 회담이 열려 아프리카의 영토 분할 문제를 논의하게 되었다. 아프리카 쟁탈전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취지의 회의였다. 그러나 이는 아프리카 입장에서 보면 합법적으로 아프리카의 침입을 허가해 준 것과 같았다.

결국, 1885년부터 아프리카에는 새로운 국경선이 만들어졌고 이 국경선을 기준으로 한 새로운 아프리카 지도가 만들어졌다. 따라서 대개의 지역이 지형을 따라 이루어진 국경선과는 달리 아프리카 대륙은 구획을 나누는 듯한 직선으로 국경선이 이루어지게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프리카를 차지한 열강들이 새로 설정한 국경선에 따라 서로 다른 민족을 한 지역에서 같이 살도록 하고, 식민지배의 효율성을 이유로 종족 간의 차별적인 정책을 펼친 것은 ‘르완다 내전’에서 보듯 종족 간의 분쟁이라는 현대사의 비극을 낳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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