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정부는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법률에 따라 금연지도원제도를 7월부터 시행키로 했다. 금연구역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데도 단속 인원이부족해 사실상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지방자치단체의 흡연단속활동에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금연파파라치’ 등의 부작용 양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런 와중에 4월에는 국가와 KT&G를 상대로 폐암 사망자의 유족들이 15년간 끌어온 이른바 ‘담배피해소송’에서 대법원이 “KT&G와 담배회사는 손해배상의 책임이 없다”는 원심(원고 패소)을 확정했다. 27돌을 맞는 ‘세계 금연의 날’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나온 대법원의 판결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4월 10일,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폐암으로 사망한 김 모씨의 유족 등 30명이 지난 1999년 국가와 KT&G를 상대로 낸 2건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오랜 흡연으로 암이 생겼으니 담배회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이른바 담배소송이 시작된 지 15년 만에 내려진 판결이었다. 결과는 1심과 2심 모두 흡연자(원고) 패소였고, 이번에도 역시 피고 측 손을 들어준 것이다. 20년 이상 담배를 피우다 폐암에 걸린 사람 7명(현재 6명 사망)이 소송을 내면서 시작된 ‘담배소송’도 이로써 종지부를 찍었고, 여기에 KT&G 측도 배상책임 공방이나 논란은 더이상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흡연피해자 측은 아직 물러설 뜻이 없음을 밝혔다. 개인소송 원고 측 배금자 변호인은 패소 확정 당일 “(이제) 한 번의 싸움을 했을 뿐이다. 소송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며 법원의 이번 결정을 두고 “생명을 중시하지 않고 국가와 담배회사의 눈치를 보는 판결”이라고 힐책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 내용을 살펴보면, 재판부는 담배를 오랜 시간 꾸준히 피워온 것이 무조건 폐암 발병의 원인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또 설사 원인이라 하더라도 담배회사가 폐암으로 인한 손해를 책임질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소송의 최대 쟁점은 흡연이 폐암 등 질병의 원인이 되는지, 즉 인과관계를 어떻게 입증할 것인지 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담배와 폐암 또는 후두암 등 질병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서 거론했지만, 판단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앞서 개인소송 판결에서 일부 인과관계를 인정한 상고심마저 부정하며 “(상고심에서는)흡연자 측의 패소 부분만 다투고 있는 것”이라 밝히고, 원심이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던 폐암 사망자 2명에 대해서도 “이들이 걸린 폐암의 종류를 고려하면 담배와 질병의 인과관계는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담배를 꾸준히 피운 사람들 사이에서 폐암 발병률이 높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인정은 되지만 흡연자 개개인을 놓고는 좀 더 까다롭게 봤다. 유전이나 체질, 음주 같은 생활 태도를 따져야 하고 폐암 종류도 흡연으로 인해 발병하는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법원의 기준을 놓고 판단하면 흡연으로 인한 폐암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소송 참여자 7명 가운데 4명에게만 해당한다. 하지만 이들 4명 역시도 법원은, 담배 제조회사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폐암이나 후두암이 발병한 흡연자와 그 유족들이 손해배상 청구 당시 “국가와 KT&G가 담배의 유해성을 충분히 경고하지 않아 흡연을 시작했고, 이후 니코틴 의존 때문에 담배를 끊을 수 없었다”는 ‘표시상의 결함’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대법원은 “담뱃갑에 경고 문구를 기재하는 것 외 다른 설명이나 경고를 표시하지 않았다고 해서 표시상의 결함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담배회사가 해롭지 않다면서 흡연을 독려했다고 보기도 어려울뿐더러 담배의 위험성이 알려진 상태에서 개인이 스스로 선택해 피운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 결론지었다.

 

 

이 개인소송 패소 나흘 후인 4월 14일, 이번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K T&G와 필립모리스코리아, BAT코리아 등 3개 담배회사를 상대로 537억원 규모의 ‘흡연으로 인한 의료비 손실액 환수소송’을 제기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소송 규모는 흡연과의 인과성이 큰, 폐암 중 소세포암 등 3개의 암 환자 가운데 20년 이상 하루 한 갑씩 흡연한 환자, 흡연기간을 30년 넘긴 환자 등에 건보공단이 2003~2012년 사이 진료비로 부담한 금액이다. 그러나 이번에 개인소송이 패소하면서 건보공단의 담배소송 역시 전망이 밝지 않다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이와는 별개로 건보공단은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 건보공단이 이처럼 자신감을 내보이는 바탕에는 국민 5천만 명의 약 1조3천억 건에 달하는 방대한 빅데이터가 깔려 있다. 국민들이 태어나서부터 숨질 때까지의 진료기록 등 2년 전부터 900억 건이 넘는 ‘국민건강정보 DB’데이터를 구축해왔다. 건보공단은 이것이 대법원의 개인 담배소송 판결 중 ‘인과관계’ 사안을 뒤집을 만한 근거도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세계보건기구(WHO)와의 협력 등을 통해 흡연과 질병의 구체적인 인과성이나 담배회사의 위법행위를 입증할 방침이다. 소송규모가 상당한 만큼 이러한 빅데이터를 활용한 흡연피해 연구결과를 비롯해 국내외 전문가들의 자문 등 다양한 근거를 내세울 방침이다.

 

개인사건과는 달리 흡연 피해자들에 대한 건보공단의 의학적 자료는 승소 가능성을 높일 것으로 일부 전문들은 분석하고 있다. 지선하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130만 명을 20년간 추적 연구한 결과로 모인 데이터들은 상당한 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담배소송을 바라보는 지역 의약단체들도 소송을 지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등 건보공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들은 흡연으로 인해 한해 1조7000억원의 진료비가 추가로 발생하는 등 흡연피해가 심각하다며 ‘이번 소송은 국민의 건강을 지킴은 물론 금연운동 확산을 위해서 마땅히 해야 할 소송’이라고 지지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건보공단의 소송 외에도 박재갑 전 국립중앙의료원장 등 9명이 2012년 담배사업법이 국민의 보건권과 생명권, 행복추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을 침해한다며 국내외를 통틀어 처음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해 현재 진행 중이다.

 

 

국내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해외로 가면 승소 사례가 꽤 된다. 특히 미국이 가장 활발한데, 이는 제법 ‘해볼 만한 싸움’이기 때문일 것이다. 1950년대 무렵부터 담배회사에 대한 소송이 시작된 미국은 줄기차게 담배회사가 승소를 해온다. 그러던 중 1994년 담배회사들이 니코틴의 중독성 등 담배의 유해성을 덮어버린 내부문서가 발각되면서 1999년 폐암사망자의 유족이 담배 회사로부터 8백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진다. 이후 담배회사들에 대한 개인의 승소 판결이 이어지고 있으며 배상금액도 계속 커지는 추세. 일본, 독일, 프랑스 등 다른 나라는 대부분 아직 우리나라처럼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실정으로, 결국 국내 여러 담배소송 결과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개개인의 인과관계를 모두 입증하긴 어렵지만, 담배가 폐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건 여러 연구에서 일관되게 확인되고 있다. 매년 5월31일, 세계 도처의 세계보건기구와 그 회원국들은 ‘세계 금연의 날(World No Tobacco Day)’을 기념한다. 이날은 흡연과 관련된 건강 위험을 알리고, 담배의 소비를 감소시키는 효과적인 정책을 지지한다. 금연구역을 관리하고 금연문화를 뿌리내리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는 정부는 오는 7월29일부터 금연지도원제를 실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공인(公認) 금연파파라치가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각도 팽배하다. 이를 사전예방하기 위해 복지부는 지방자치단체의장이 금연지도원을 위촉할 수 있는 자격기준과 이 제도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직무범위, 교육내용 등을 담은 구체적 시행령을 마련, 4월 25일 입법예고했다.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2012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20대 여성의 흡연율은 13.6%로 전체 평균치 7.9%를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여성의 흡연율은 지난 1998년도 6.5%에서 2012년 7.9%로 늘어나는 등 갈수록 여성 흡연이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금연운동 확산이 절실한 것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5월 31일 ‘세계 금연의 날’을 전후해 흡연으로 인한 폐해가 생생한 금연광고를 홍보할 방침이다. 딱딱하게 굳은 폐암 환자의 폐나 흡연으로 검붉게 변해버린 이, 말기 폐암환자의 마른 몸 등이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소개된다. 영상으로 보면 흡연에 대한 혐오감이 느껴질 정도로 자극적인 금연광고인 것이다.

 

개인소송은 막을 내렸지만 건보공단의 새로운 담배소송 제기와 함께 자극적인 금연광고 등 일련의움직임이 금연 정책의 새로운 전기로 작용해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높다. 어찌됐든 이것이 대한민국이 ‘금연공화국’의 불명예를 떨쳐내는 새로운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