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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결국 예견된 인재(종합)규정 무시·무책임·무능…대한민국 안전불감증, 이대로 안 된다
오진영 기자 | 승인 2014.05.07 17:00|(170호)

세월호 침몰의 참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돈만 알고 안전은 뒷전인 선사와 무책임한 선장, 정부기관·수사당국의 무능이 함께 만들어낸 인재(人災)가 사고를 불렀다는 데 대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특히 이번 사고는, 1993년 발생한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와 너무나 닮아 있어, 21세기 대한민국이 아직도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승객을 선실에 버려둔 채 세월호를 가장 먼저 탈출한 이준석 선장만 있는 건 아니다. 목숨을 걸고 해적을 속이는 기만전술로 시간을 끌어 최영함과 해군 특수전여단의 작전을 도운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서 세월호 선장은 한국 선장의 명예마저 침몰시켰다. 그리고 적어도 그에게 수백 명의 인명을 내맡긴 우리 사회의 구조적 취약점을 더는 부인할 수가 없다.

   
 

4월 16일 오전, 청해진해운 소속 6825톤급 화물여객선 세월호(SEWOL)가 제주도로 향하던 중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전날 짙은 안개로 약 2시간30분 늦은 오후 9시께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출항한 세월호는 476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우고 다음날 오전 사고 해역 맹골수도에 닿았다. 오전 8시48분37초, 세월호가 오른쪽으로 방향 전환을 시도하자 ‘쿵’ 소리를 낸 뒤 옆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구조신고는 8시52분32초, 전남소방본부에 처음 접수됐으며, 해경은 6분 뒤인 8시58분 정식 조난신고를 접수하고 사태 파악에 나섰다. 이어 9시28분, 소방헬기와 소방정이 사고 해역에 급파되면서 본격적인 구조 작업이 이루어졌다. 선체는 점차 기울어 10시20분 왼쪽으로 완전히 누웠고, 약 10분 후 이준석(69) 선장과 승무원들이 먼저 탈출을 감행했다. 거꾸로 뒤집힌 세월호는 선수 끝부분만 남기고 11시께 수심 37m 물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이날 해경함정과 해군함, 관공선 등 총 167척의 함선이 투입돼 다음날 새벽 철수할 때까지 생존자 수색에 어떠한 성과도 내지 못했다.

476명을 태운 여객선이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을 때, 희생자 가족들은 땅을 치며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 특히, 침몰하는 세월호의 탑승객 절대다수가 기다림과 설렘으로 수학여행 길에 올랐던 325명의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었기에 세월호 참사가 준 충격과 슬픔은 어느 때보다 컸다.

◇ 침몰 前, 무엇이 사고를 불렀나

(1) 과적에 부실 고박, 복원력 잃어

   
 
배가 기울 당시 ‘쿵’ 소리와 함께 컨테이너 화물이 한쪽으로 쏠렸다는 증언은 과적 대비 고박(화물 등을 선박에 고정시키는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유증한다. 연안여객선의 운항 실태를 잘 아는 전문가는, 출발 전 세월호의 화물과 자동차를 제대로 결박하지 않았을 것이고, 배가 변침(항로 변경)하는 순간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복원력을 회복하지 못했다고 추정했다. 이는 과적행위가 비일비재했고, 안전 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도 증빙한다. 20여 차례의 안전점검과 정밀검사에 아무런 이상 없이 통과된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는 이날 안전점검표에 차량 180대와 화물 1,157톤 등 총 3,608톤의 물량을 실었다고 기재했지만, 한국선급(KR)이 승인한 화물 적재 기준을 3배나 초과했고 차량은 한도보다 30대를 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전날 출항보고서 기록에 없는 컨테이너와 차량을 더 싣는 모습이 CCTV 화면에 포착됐다. 세월호는 이처럼 화물량을 3배나 초과한 상태로 출항했지만 해양경찰이나 해운조합(운항관리실), 인천항만청 등 누구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미 출항 시점부터 안전관리에 구멍이 뚫려 있었던 셈이다. 이때 복원성이 유지되려면 여객과 화물을 포함한 최대 적재량을 1,400톤가량 줄이고, 평형수는 1,000톤가량 늘려야 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승인조건보다 적게 실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고 후 과거 세월호에서 근무했던 전 항해사와 기관사 등 승무원들이 평소 세월호가 전복될 위험이 있었다며 “예전에도 화물과 승객을 더 많이 실으면서 평형수를 제대로 채우지 않았다”는 증언을 했다.

또, 과적을 했다 하더라도 화물을 단단히 고정시켰더라면 복원력을 쉽게 잃지 않아 사고를 막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선사는 고박장비도 제대로 갖춰놓지 않고 운항을 했다. 세월호 운항관리규정에 따르면 차량 고박에는 ‘안전율 4 이상’의 설비를 사용해야 하며 밧줄과 쇠줄 등으로 모두 네 곳, 화물은 7~8곳씩 각각 고장해야 하지만, 세월호는 오로지 밧줄만을 사용했다.

(2) ‘퇴물선박’ 2주 전부터 이상징후

   
 

사고 초기, 세월호는 맹골수도에서 변침을 시도할 때 115도로 급선회하면서 배가 기울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선박자동식별장치(AIS) 기록을 정밀 분석한 결과, 우현으로 45도 정도의 ‘완만한 포물선’을 그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뭔지 모를 선체 결함이 이번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사고 직전 진도선박관제센터(VTS)의 교신내용과 “오전 8시 무렵 큰 배가 멈춰 있었다”는 조도면 주민들의 증언, 선원들, 해운업체 관계자 등의 진술이 그 가능성에 힘을 보탠다.

이중 무엇보다도 세운호가 사고 2주 전 조타기 전원 접속 등 이상징후가 있었음이 속속 드러났다. 그러면서도 이에 대한 조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정황도 포착됐다. 선원들이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 탱크와 스태빌라이저(선박 균형 유지장치), 항로 변경의 핵심장비인 조타기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 수리를 요청했지만 청해진해운은 이를 가볍게 무시했다. 지난 2월 해양경찰 특별점검에서 배가 침수됐을 당시 물을 막아주는 수밀문의 작동이 불량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세월호 참사는 여러 차례 제기돼온 선박 결함문제가 있었던 만큼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비난여론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2012년 10월 국내 도입 후부터 사고가 난 4월까지 세월호는 해운조합에서 매월 1회 시행하는 월례점검까지 포함해 해양경찰과 한국선급, 인천항만청, 선박안전기술공단(KST) 입회하에 세월호는 무려 20회 이상 안전점검과 정밀검사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는 수백 명의 인명 피해를 낳는 대형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무리한 증축은 참사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일본선사로부터 20년이나 퇴역한 배를 구입해 무단으로 개조하는 과정은 기계적 결함을 초래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앞서 세월호는 승객을 더 많이 태우기 위해 철판 등을 덧대는 방식으로 객실을 더 늘렸고, 배의 무게는 6,825톤으로 239톤 더 증가했다.

(3) 승객 버린 선장-돈에 눈먼 청해진해운

그간의 상황과 청해진해운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감사보고서 등을 종합해보면 선사의 무리한 경영방식이야말로 이번 사고의 가장 주된 원인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수많은 승객들을 그대로 둔 채 탈출했던 문제의 세월호 승무원들은 평소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세월호 선장은 선박사고 매뉴얼의 기본도 지키지 않아 최악의 인명피해를 불렀다. 실제 사고 발생 직후 긴박한 상황에서 선장의 역할은 온데 간데 없었다. 선장은 모든 보고를 받고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판단한 뒤 5~10분 안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승무원들이 상황을 오판해 선내 대기 방송을 한 것이 확실히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라는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준석(사진) 선장은 원래 선장이 휴가 가는 바람에 세월호를 맡은 대리 선장이다. 국제화물선 선장을 25년 한 국립목포해양대 임긍수 교수는 “제대로 된 선장을 써야 하는데, 청해진해운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책임감이나 실무적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을 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월호의 경우 대리 선장 밑에서 지휘체계나 위기 대응 매뉴얼이 도무지 작동하지 않았다. 진도관제센터가 “선장이 최종 판단을 해 승객 탈출시킬지 결정하라”고 재촉하는데도 세월호에서 돌아온 답은 “탈출하면 구조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침몰 해역에서 진도 동거차도까지의 거리는 1.5km. 어선이 10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에 나왔다가 바다로 뛰어내렸더라면 대부분 구조됐을 것이다.

이 배경에 청해진해운이 있었다. 이 회사가 지난해 선원들 안전 교육비용으로 쓴 돈은 고작 54만1천원. 1인당 약 4천원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에 청해진해운의 전체 승무원 절반 이상은 단기 계약직이며, 이준석 선장 역시 타선사의 60~70% 수준인 월 270만원의 임금을 받는 등 대부분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열악한 처우와 급여가 승무원들의 근무 태도를 훼손시켜 이번 참화를 초래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청해진해운의 작년 영업손실은 7억8,540만원으로 지난 10년 이내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2012년 일본선사로부터 중고의 세월호를 매입할 당시 190억원에 가까운 돈을 줬고 개보수에도 30억원을 들였다. 이때 세월호를 담보로 산업은행에서 100억원의 대출을 받았다. 여객선의 수입에 급급했던 청해진해운은 직원들의 안전교육은 뒷전이었다. 광고선전비 명목으로는 2억3천만원을 쓴 것이다.

한편 2,400억원 가량의 개인자산을 보유한 청해진해운 실소유주인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과 그 아들들의 역외 탈세 혐의가 드러나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청해진해운은 세모그룹이 부도난 이후 1년 반 뒤인 1999년 2월 개인주주들을 모아 자본금 34억원으로 설립됐다. 또, 구속기소된 이준석 선장에게 검찰은 특가법상 도주선박,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다섯 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이때 과실치사상은 희생에 비해 최대 7년6개월로 형량이 너무 약하고, 이른바 ‘뺑소니 선박’ 혐의는 최대 무기징역까지도 가능하지만 법원의 유죄 인정이 가능할지 현재로선 불투명한 상황. 그러나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는 법조계의 판단과 판례가 있고 이 선장을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검찰은 기소를 위한 종합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

◇ 침몰 後, 상황을 더 최악으로 몰고 간 요인들

   
 
배를 버리고 달아나면서 승객 구조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외면한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은 사고 발생 직후 우왕좌왕하다가 승객들을 구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을 모조리 흘려보냈다. 1분 1초가 아까운 마지막 순간에도 승객들이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던 11분의 황금시간(골든타임)이 있었다. 이때 “객실 밖으로 나오지 말라, 안전한 선내에 대기하라”는 어처구니없는 방송을 내보내 승객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외부 구조대와 손쉽게 연락을 취할 수 있었던 비상무전기도 외면했다. 배가 침몰하거나 통신이 끊긴 비상상태에 사용하는 일명 쌍방향무전기(VTS, 투웨이라디오)는 배에 장착된 통신시설 VHF와 동일한 기능을 한다. 선장이나 선원이 어쩔 수 없이 퇴선을 할 때 이 무전기를 들고 나가 외부와 교신하는 핵심장비로, 선박안전법에 의해 반드시 비치해야 하고 기기 성능과 배터리 상태까지 정기 점검을 받아야 한다. 세월호에도 이 비상용무전기 3대가 비치돼 있었다. 물론 승무원들이 먼저 배를 떠난 것부터 잘못이지만, 배를 떠나더라도 최소한 비상무전기는 들고 갔어야 했다. 하지만 탈출하던 승무원들의 손에 들려 있었던 무전기는 외부통신용 비상무전기가 아닌 평소 자신들끼리 통화할 때 사용하는 내부용 무전기였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가장 악화시킨 건 ‘총체적 부실 대응’이었다. 사고 해역에 도착한 해경과 해군, 민간선박 등이 세월호에서 승객 구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배 밖으로 탈출한 승객들을 구조하는 데 그쳤다. 세월호 안에 남아 있던 승객들은 구조할 수 없었다. 사고 선박에 남아 있던 승객 수, 승객들이 모여 있는 객실 등 기초적인 정보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세월호 선장을 해경이 탈출하도록 돕는 아이러니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8시54분 최초 신고 학생의 전화를 받은 해경은 “경·위도가 어떻게 되느냐, GPS에 경·위도가 안 나오느냐”는 대답을 재차 요구하는 등 사고초기대응부터 아마추어식 대응으로 일관해 결국 아까운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말았다.

◇ 결국 ‘후진국형’ 사고… 朴 “재난관리체계 재구축”

   
 

대형 재난사고가 터지면 정부는 사고대책본부를 꾸리면서 컨트롤타워를 정하고 대통령 권한으로 현장의 모든 상황을 총괄케 한다. 그렇게 피해를 최소화해 나가는 것이 기본 매뉴얼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컨트롤타워는 보이지 않았다. 정부가 2004년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을 만든 이래 그간 25차례나 개정을 거쳤지만, 세월호 침몰에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래서 더욱 세월호 참사에 전세계가 놀랐고 또 ‘후진국형 사고’라는 나라 안팎의 비판도 당연했다. 승선 인원을 놓고도 처음에 477명에서 459명, 462명, 475명, 476명으로 집계를 번복했다. 여객선 승선 인원조차 전산시스템으로 점검을 못하면서 위기관리능력조차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놓고 본 세월호 사고의 원인은 한마디로 ‘人災’라 정의할 수 있다. 그러면서 결국 국가재난대응체계를 통째로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적잖게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4월 21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사고에 따른 책임소재의 철저한 규명 및 관련자에 대한 일벌백계를 약속했다. 또, 바닥을 드러낸 정부의 재난대응능력에 대한 철저한 쇄신을 촉구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박 대통령은 “위기 시 현장과 부처 간 협업과 대응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보다 강력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며 “정부의 위기대응시스템과 초동 대처에 대해서도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애도정국 속 잇단 실언, 국민불신 가중

   
 
수석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공무원들의 안일한 근무기강과 정부의 위기대응시스템 등에 대한 총체적 재정비를 강력히 주문했다. 같은 날, 생존 학생의 학부모 20여 명은 안산교육지원청 앞에서 대국민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특히 “생존 학생들이 죄인의 심정으로 보내고 있기에 ‘정부의 지속적인 보살핌’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 와중에 정치인들의 신중치 못한 언동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더욱 가중시켰다.

지난달 20일 세월호 사고 현장을 찾은 송영철 안행부 국장은 사망자 명단 앞에서 동행한 공무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려다 희생자 가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결국 해임됐다. 이날 또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밀양 송전탑 시위현장을 담은 동영상과 세월호 사고피해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전남 진도실내체육관 사진 한 장을 올렸다. 권 의원은 유가족들에게 명찰을 달지 못하도록 막은 한 여성을 지목하며 밀양 송전탑 반대 시위에 있던 인물과 동일하다는 주장의 글을 올렸다. 그러나 이 여성은 단원고 학생의 가족으로 드러나면서 권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머리 숙여 사죄해야 했다.

이에 앞선 17일, 박 대통령이 진도실내체육관을 방문했을 때 실종자가족대책위원회 대표로 나선 한 남성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그는 이번 사고와 무관한 새정치민주연합 당원 송정근 씨로, 6.4지방선거 안산지역구 예비후보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송 씨는 세월호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는 비난을 받고 스스로 탈당했다. 이밖에도 ‘색깔론’으로 물의를 일으킨 새누리당 한기호 최고위원, ‘자작시 논란’ 김문수 경기도지사, ‘폭탄주 술자리 참석’ 유한식 세종시장 후보, ‘국민정서 미개’ 막말한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의 막내아들까지, 희생자와 시름에 잠긴 가족들을 배려하지 않는 정치권의 무사안일한 처신이 잇따라 도마 위에 오르면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 ‘무사귀환’ 대국민 염원, 팽목항까지 닿기를

   
▲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고 발생 일주일째, 지도 팽목항에서 희생자 가족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반면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국민의 간절한 염원은 종교·지역·사회를 넘어 전국 각지에서 추모물결을 이뤘다. 이맘때 남산 백범광장, 함평나비축제 등 주말 나들이 인파로 북적여야 하지만 추모 열기에 동참하기 위해 대부분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4월 19일 밤 안산 화랑유원지에는 시민 약 2,000명이 참석해 실종자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는 촛불 기도회를 진행했다. 불교계는 25~27일 종로 주변에서 계획했던 연등회 행사 대신 백등을 다는 추모제로 변경했다. 20일 전국의 교회와 성당에서 열린 부활절 예배와 미사에서 역시 종교인들은 세월호 침몰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과 실종자 귀환을 한 목소리로 기원했다.

세월호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승객들과 어린 학생들을 탈출시키고 목숨을 잃은 승무원 박지영 씨를 의사자로 지정하자는 대국민 청원운동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4월 18일 10만 건을 목표로 올라온 글은 나흘 만에 서명은 3만 건을 넘어섰다. 의사자로 지정되면 유족에게 보상금, 의료급여 지원과 국립묘지 안장 등 예우가 주어진다.

팽목항에 자원봉사단들이 배식 봉사를 위해 몰리는가 하면 따뜻한 온정의 손길도 줄을 잇고 있다. 광주은행, KB국민은행, 외환은행 등 은행권과 학교, 각종 사회단체에서 사고 현장에 구호물품을 보내는 등 사태 수습에 힘을 보태고 있다. 들리지 않는 구조자 소식에 다수의 연예인과 스포츠스타도 기부금과 구호물품을 끊임없이 전달하고 있다. 비탄에 빠진 사고피해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국민들의 하나된 모습은 이번 총체적 난국을 헤쳐 나가는 데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지난 4월 20일 작성된 글입니다.)

오진영 기자  pppeo0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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