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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중동에서 힘을 못쓰는 이유
정경NEWS | 승인 2013.12.02 16:16|(165호)

 

[정경뉴스=최진호 美 보스턴 특파원] 오바마 집권 2기의 중동 외교문제는 그 복잡함이 상상을 초월하여 일반인들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중동에 석유가 없었다면 이 지역이 좀 더 평화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중동지역의 시리아와 이란 문제 외에도 북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이른바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민주화 열풍이 불어닥친 이후 아랍지역 내부에서 오랫동안 미국의 우방이었던 사우디의 이슬람권 내 알력으로 인한 미국과의 불화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다. 이젠 오바마의 팔레스타인 수용정책에 이스라엘까지 반발하며 숙적인 이란의 핵시설 선제공격에 독자행동을 취하려 하고 있다. 이란 핵문제 관련 6개국과 이란이 11월 20일 제네바에서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회의를 열어 4일 만에 타결되었으나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는 이에 격노하고 나섰다. 거기에 러시아와 중국까지 이란과 시리아를 지원하며 중동지역의 패권을 노리고 있어 이 지역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 2013년 8월 23일 시리아인들이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러시아 영사관 앞에서 시리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살에 항의하고 있다.

미국은 중동에서 초강대국 지위 잃어가
가장 큰 문제는 10년 전만 해도 미국이라면 모두가 두려움에 떨었던 중동지역에서 이제 어느 나라도 미국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에 쏟아부은 막대한 비용으로 인한 재정적
자가 국력을 크게 약화시켰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등 아시아로 제조업 기반이 넘어가 수입국으로 전환된 이후 금융 파생상품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려다 2008년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서구 자본주의의 종말을 고했다고까지 평가받고 있다.

이제 포스트 자본주의 시기로 넘어가는 고실업과 불황의 시대에 3차에 걸친 양적완화정책에도 경기는 좋아지지 않고 있으며 무려 17조 달러(한화 약 1경8천조원)가 넘는 천문학적인 빚에 시달리고 있다. 예전 같으면 기축통화의 지위를 이용해 달러를 무한정 찍어내면 그만이지만 이제는 문제가 완전히 다르다.
 
오바마 케어 문제 하나로 연방정부 서비스가 셧다운이 되고 국가부도 위기 직전까지 갈 만큼 미국의 재정은 총체적인 바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경제적 기반을 상실한 미국이 아직까지도 초강대국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근본주의 기독교의 가면을 쓰고 십자군 전쟁이라며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더니 지금까지도 중동 국가들을 석기시대 원시 국가 취급하며 혐오하거나 무시하고 때려잡을 기세로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은 크나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이빨 빠진 호랑이가 이제 기력이 다하여 숨이 가쁜 와중에도 자신만만 오기를 부리고 있는 형국과 같다는 생각이든다. 하나의 슈퍼 히어로 국가의 패권 독점이 아닌 여러 나라로 힘이 분산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말로만 중동문제 해결 다극화를 외치며 국제기구를 통해 미국의 부담을 줄이려 한다면 이는 매우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과거 미국 정부가 공산권 확산을 막기 위해 1970년대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 국민투표로 민주적으로 들어선 공산 정부를 상대로 비밀리에 군 장성들을 매수하여 군부 쿠데타를 일으키게 하고 수많은 남미인들을 납치하고 고문하게 한 바 있는 '더러운 전쟁'을 벌인 것이 최근 비밀문서 해제를 통해 다 밝혀지지 않았는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자국민 개인정보와 우방국 정상들 휴대폰까지 은밀히 도청하는 미국을 정의의 슈퍼맨이라고는 이제 아무도 믿지 않는다. 오히려 숨은 조커를 찾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소나 탐지기로 고담시 시민들을 전부 위치추적하며 ‘내가 누군데. 내가 하면 다 옳아!’ 하는 과대망상에 빠진 왕자님, 배트맨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아버지 부시 대통령 행정부가 일으킨 걸프전쟁부터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최첨단 무기를 동원해 전쟁을 벌이면서도 미국은 중동지역에서 점점 더 죽음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겉으로는 중동 평화를 외치면서 뒤로는 비밀스런 전쟁을 벌이고 있는 현 오바마 정부는 그래서 더 문제가 크다.

미국에 맞서는 세력에 반하는 반군들을 교묘히 지원하거나, 무인 폭격기인 리퍼나 드론으로 수천 명의 민간인을 게임하듯 본토에 앉아 살상하는 등 원격조종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라는 이름에는 브랜드 파워가 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미국이 이끌어낸 현대의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때 따라오는 미국의 젊고 자유롭고 실용적인 이미지가 훨씬 공정하고 창의적이며 대중적인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예술, 문화, 학문, 과학기술 분야의 소프트 파워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무단 도감청 문제나 영문도 모른 채 관타나모에 수용되어 십년도 넘게 짐승 취급받고 있는 테러 용의자들의 인권문제, 비밀리에 반민주적인 쿠데타를 지원하거나 드론으로 무고한 여성이나 아이들을 계속적으로 무차별 학살한다면 미국이 보장하는 민주 국가 건설이나 평화 유지도 한낱 서커스 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오스만 투르크의 영토. 녹색으로 칠한 부분은 전성기인 슐레이만 1세(재위 1520~1566년) 때의 영토.


미국은 왜 중동에서 현지화에 실패했나
중동의 역대 슈퍼 파워들은 어떤 형태로든 현지의 문화를 수용했다.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터키공화국의 조상인 투르크족(튀르크족)이라 할 수 있다. 터키의 영토는 지금은 아나톨리아 반도로 축소됐지만, 과거에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에 걸친 대제국이었다.

중간에 몽골제국이 중동에서 패권을 행사한 기간을 제외하면, 11세기부터 19세기까지 거의 대부분 기간 동안에 이 지역의 패권을 행사한 민족은 투르크족이었다.

투르크족은 한국인들은 ‘돌궐’로 발음하고 중국인들은 ‘투쥐에’로 발음하는 유목민족이다. 이 민족은 중앙아시아와 몽골 초원에서 활약하다가 당나라(618~907년)와의 경쟁에서 밀려 중동과 동유럽으로 민족 이동을 단행한 뒤 현지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민족이다.

투르크족이 돌궐족의 후예라는 점은 오늘날의 터키가 서기 552년을 자신들이 나라를 세운 해로 기념하고있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552년은 돌궐족이 몽골 초원의 유목민족인 유연족의 지배에서 독립한 해다. 투르크족은 중앙아시아와 몽골 초원에서 활약한 민족이기 때문에 새로운 정착지인 중동에서는 당연히 이방인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중동에 성공적으로 정착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이 지역의 패권을 행사하기까지 했다. 그 비결은 무엇보다도 현지화 정책이었다.

투르크족의 현지화 정책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슬람교 개종이다. 이런 적응력이 있었기 때문에 투르크족 국가인 셀주크 투르크가 11세기부터 중동의 강자로 등극하고, 또 다른 투르크족 국가인 오스만 투르크가 14세기부터 지역 최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개의 투르크 국가가 보여준 현지화 정책은 이 지역에 먼저 정착한 민족들이 투르크족의 지배에 대해 반감을 덜 갖도록 하는 데 기여했다. 현지화라는 측면에서 현대의 미국은 원초적 한계를 갖고 있다. 중동에 영토를 두지 않고, 이 지역을 원격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현지화를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그렇다면 중동 사람들을 존중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미국은 이마저도 무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편파적 태도로 중동 사람들을 자극하고 있는 점만 봐도 미국이 이 지역을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지 잘 드러난다.


   
▲ 키루스 2세의 조각상.


다양성 존중 없인 중동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중동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유럽이 만나는 지역이다. 또 이곳은 유목문화와 농경문화와 상업문화가 한
데 어우러진 곳이다. 그래서 세계의 여타 지역에 비해 문화적 다양성이 매우 강한 지역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충돌이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다.

그래서 중동의 역대 패권국들은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는 이 지역을 지배할 수 없었다. 투르크족은 물론이고 투르크족 이전의 패권국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점에서 가장 모범적인 나라는 고대 페르시아 왕조인 아케메니드 페르시아(기원전 550~기원전 330년)다.

투르크족이 중동의 여타 민족들과 혈통이 다른 것처럼 페르시아 역시 중동의 주류 민족들과 혈통이 달랐다. 페르시아와 그 후예인 이란은 이라크·시리아·사우디·쿠웨이트·레바논 등이 속한 아랍권과 혈통이 다르다.

아랍권은 셈족인 데 비해 페르시아는 인도·유럽어족이다. 그래서 고대 페르시아는 아랍권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이 같은 이질감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아랍권 사람들은 마호메트가 이슬람교를 창시한 서기 7세기를 문명의 출발점으로 인식하지만, 이란 사람들은 이슬람교를 믿기는 하지만 그런 인식을 거부한다.

이란인들은 서기 7세기 이전에 존재했던 페르시아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 아랍의 이민족들을 통치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다양성 존중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키루스 2세의 정책에서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키루스 2세는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고레스 대왕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성경에서는 그가 이스라엘인들의 종교를 존중해준 사실을 전하고 있다. 고대 세계의 정복자들은 피정복민들에게 정치적 복종뿐만 아니라 종교적 개종까지 강요했다.

고대 사회로 갈수록 제정일치 경향이 강했으므로 정복민이 피정복민에게 자기의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키루스 2세는 그런 일반적인 방식이 중동에서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중동처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에서는 그런 방식이 제국의 통치력을 도리어 약화시킬 수 있다고 판
단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피정복민이나 속국민들에게 페르시아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강요하지 않고 각자 자기 민족의 종교를 믿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기독교처럼 유일신 사상을 갖고 있는 조로아스터교의 나라가 피정복민의 신들을 존중해준 것이다.

키루스 2세가 다양성을 얼마나 존중했는지는 기독교 성경에서 그가 매우 훌륭한 인물로 묘사된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비(非)기독교권의 군주가 성경에서 훌륭한 인격자로 묘사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성경 이사야서 45장 1절에서는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키루스 2세)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세계 각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열어서 닫지 못하게 하리라”
라고 했다.
 
여호와 하나님이 키루스 2세에게 기름을 부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그가 중동과 주변 지역을 정복했다는의미다. 하나님이 키루스 2세에게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그를 왕으로 임명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키루스 2세의 정복사업을 하나님의 뜻에 의한 일로 평가한 것은 키루스 2세의 다양성 정책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음을 반영한다.

오늘날 미국은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페르시아 같은 과거의 패권국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한편으로는 석유에 대한 욕심에 빠져, 또 한편으로는 자국 문화에 대한 과도한 우월감에 빠져 중동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있다.

이 지역의 역대 패권국들에 비해 미국은 가장 ‘무지’하고 가장 ‘무식’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중동을 지배하는 나라가 갖춰야 할 ‘기본 예의’를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페르시아보다 못할 뿐만 아니라 돌궐족보다도 못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현지화 및 다양성 존중의 과제를 이루지 못한 미국이 2011년부터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현상을 해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현지화나 다양성의 존중 없이도 중동을 지배하는 방법은 압도적인 파워를 보유하는 길 뿐이지만, 지금의 미국은 그것마저 힘들다.
 
현재의 미국은 연방정부의 ‘셔터 문’을 들어올릴 기운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한테 필요한 일은 하루빨리 중동을 포기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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