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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육의 균형은 불가능한 일일까?
정경NEWS | 승인 2013.10.10 11:10|(163호)

 

   
▲ 공병호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우리의 현대사가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이런 역사 인식은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친 성취에 대한 자긍심으로 연결되고 한 걸음 나아가 이런 자긍심을 앞으로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그러나 역사학계의 주류를 차지하는 분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피해야 하지만 역사는 학자의 사관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게 된다. 전문가들이 갖고 있는 역사관 자체가 한쪽에 편향적이면 그런 시각에 입각한 해설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7권의 서적들은 좌파적 시각이 강한 역사적 해석을 담고 있다.

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경제사학을 연구한 서울대 이영훈 교수는 현행 고교 교과서의 문제점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 “현행 역사 교과서 어느 하나도 6·25전쟁이 국제 공산주의 세력의 무력 침입에 맞서 대한민국이 우방 미국의 도움을 받아 인권과 자유를 방위한 전쟁이라고 가르치지 않고 있다. 6·25전쟁은 동족상잔의 슬픈 전쟁이었으며, 그 후유증으로 반공독재가 강화되었다고만 쓰여 있다.”(동아일보, 2013.9.9.)

빙산의 일각에 해당하는 사례이지만 이런 시각이 현재 한국사 연구자들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 필자와 같은 일반인들과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역사 전문가들 사이에 격차가 벌어진 원인은 무엇일까?


학계의 ‘주류’가 누구인가
학계는 ‘어떤 견해를 갖는 사람들이 주류를 차지하는가’라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자기 증식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주류를 차지한 일군의 학자들은 자기들과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교수진으로 뽑게 되어 주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학계에 발을 딛기가 힘들다. 이런 경향은 역사처럼 구조적으로 외부와의 교류가 적은 분야에서 더 강할 것이다.

이런 일은 비단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경제학 역사를 보면 흥미로운 사례를 만날 수 있다. 1940년대 정부 개입에 의한 복지국가 이론이 유행하던 시절에 경제학파 가운데 케인즈 이론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였다.
 
이런 지적 분위기에서 미국 내에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학파의 거두이자 걸출한 자유주의 철학자인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뉴욕대학에서 시간 강사로서 겨우 생계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의 저술을 읽다보면 1940년대 정부 개입주의의 광풍이 불 때 학문적으로 소수파에 속했던 그가 얼마나 외로웠던가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1980년대 들어서 그의 주장이 채택되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학자는 일단 지적 투자를 하고 나면 경로 의존성을 갖게 된다. 자신이 투입한 지적인 투자 때문에 웬만해서 다른 견해를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1990년대 공산주의의 붕괴와 같은 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모델을 이상향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전향하는 데는 상당 시간이 걸렸다. 이런 극적인 사건은 현실에서 실패라는 결과로 뚜렷이 드러나지만 대부분의 이론은 옳고 그름을 검증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학계에 일단 주류를 차지한 사람들은 생물학적 수명이 끝날 때까지 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들이 양성한 후배 학자들이 선배의 것을 이어받고 또 그들이 자신과 입장을 같이하는 후배 학자들을 밀어주고 끌어주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역사에 대한 해석 문제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빛과 그림자를 모두 내포한 역사 교육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형성 과정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한다면 이는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어, 사학계는 건국 전후 한국의 토지개혁에 대단히 부정적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조차도 안병직과 이영훈의 『대한민국 기로에 서다』라는 책을 보면 틀린 사실임을 알 수 있다. 이승만 정부가 6.25 직전까지 마무리했던 토지개혁은 그 어떤 나라의 토지개혁보다 민주적이고 진취적이었다. 이런 객관적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건국 전후에 대해서는 대단히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역사학자들이 많다.

오래전에 나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관련된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었던 적이 있다. 성장하면서 한 번도 이승만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말년에 부정 선거로 인해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말았지만 대한민국의 건국에서 이승만의 역할은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국제 정세를 보는 예리한 안목과 시야, 원활한 의사소통 능력 등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건국이 과연 가능하였겠는가? 그리고 그가 가졌던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체제에 대한 굳건한 신념 때문에 신생 대한민국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지만 당시의 지적 분위기를 미루어 보면 거의 기적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당시 여론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선호하였다.

5.16 군사 혁명(쿠데타)만 해도 그렇다. 헌정 질서를 어지럽힌 면에서는 쿠데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4.19 혁명 이후 매일 수많은 데모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경제의 기틀을 다지는 일이 과연 가능하였을까? 장면 정권 하에서도 경제계획안이 있기는 하였지만 정치적 안정 없이는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는 양보할 수 없는 제도이지만 신생 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가 가진 폐해도 많다. 장기간에 걸친 프로젝트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나는 중국이 개인에게 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언젠가는 전환하리라 본다. 그러나 등소평의 개혁개방 시대부터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면 현재와 같은 성장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을까?

사람에 따라 다른 의견을 내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수십억 인구로 구성된 나라에서 수많은 소요 때문에 심각한 혼란에 빠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그들 나름대로 먹는 문제와 자유의 문제 사이에 적절한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1960년대 한국이 수출지향형 경제개발 정책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당시의 지적 분위기는 철두철미하게 민족주의적 경제체제의 구축이었다. 인권 탄압이나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후유증을 낳았지만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한국의 경제성장 노선의 선택은 탁월하였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수많은 신생 국가들이 독립의 길을 선택하였지만 한국처럼 반듯한 나라를 만든 곳이 어디에 있을까?

나는 역사 교과서가 우리 근현대사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부정적인 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앞 세대들이 정말 대단한 일을 했구나라는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그런 역사 교육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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